관계와 간격


사회생활에서 사람관계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가장 기본적인 가족관계에서 출발해 친구, 동창회, 지역, 회사, 모임 따위의 사람관계를 형성하고 이것은 사회활동을 하는데 기본을 이룬다. 사람관계를 잘 풀지 못하면 사회생활에 큰 지장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사람관계는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며 능력이 커질수록 넓고 깊어진다.

하지만 반대로 나이를 먹는 것과 관계없이 사람관계가 극도로 축소되고 좁아지는 경우도 많다. 여성들이 결혼 후 인간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성들과의 관계를 끊고, 동네 아줌마나 학부모 모임, 동창회 정도로 사람관계가 축소되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것은 곧 사회활동의 위축을 뜻한다.

사람관계의 기본은 혈연관계인 가족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허물도 없고 특별히 지켜야할 예의도 필요 없는 무조건적인 관계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부모가 혹은 자식이, 아니면 남편이, 아내가 가족 구성원을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가? 설사 그 비판이 옳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가족만은 이해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자식자랑을 하는 부모 이야기를 공감하지만 특별한 지식이나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고, 옛말에 `마누라 자랑하는 사람은 팔불출`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누구나 가지는 기본 감정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모든 사람관계를 풀어나가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람관계에 있어 간격과 가치를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은 거의 초보적인 가족,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사람관계를 풀려고 한다. 기혼자가 남편이나 부인 이외의 이성관계를 만들 때 혈연, 가족 개념으로 관계를 만들면 뭐가 되겠는가? 이런 식의 방법은 사회활동을 온전히 할 수 없는 미숙아나 미성년자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는 스스로 `단일민족` 혹은 `이웃사촌`이라고 말하지만 가족, 혈연관계를 벗어나면 적대적 관계로 변한다. 거리를 지나가다 눈빛이 잘못 마주치거나 혹 어깨라도 부딪치면 곧바로 으르렁거리며 적개심을 드러낸다. 민주주의나 정치, 통일 따위의 높은 개념도 철저히 가족, 혈연관계 중심으로 풀어낸다. 동창회, 학연, 지연, 종친회 따위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치한 감정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병폐이다. 오히려 개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 타인에게 몸이나 얼굴을 맞대거나 포옹을 하는 살가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가족관계에서 부모와 자식, 혹은 부부의 관계의 거리는 제로에 가깝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일정한 간격이 있어야 한다. 그 간격은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으면서 지켜야할 어떤 가치를 말한다. 가장 기본적인 사람관계는 상호 존중이라는 간격이 필요하며, 뜻을 같이 하는 동지관계는 의리라는 가치의 간격을 지켜야 하고, 스승과 제자의 경우는 헌신과 예의라는 간격을, 직장은 책임과 능력이라는 간격이 필요하다. 나아가 정치인과 유권자, 국가와 국가의 관계도 나름대로 지켜야할 가치의 간격이 있다.

사람사이에 간격이라는 가치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합리적인 이성과 그에 맞먹는 가치관이 필요하다. 막연한 편안함도 버려야하고, 이기심도 버려야 한다. 상대방의 발전과 나의 발전이 달라서도 안되고, 관계를 통해 더 나은 가치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남북의 통일은 사람관계의 성숙, 즉 사회의 성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굴복을 하거나 명령하는 관계는 초보적인 가족, 혈연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것은 아주 쉽고 편안하지만 유치한 관계이다. 통일은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의 열매이다.

첫나들이

▶첫나들이/강신범/조선화/78*120/2000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북한화가 강신범이 그린 <첫나들이>란 조선화이다. 이 작품은 여느 북한미술과는 좀 다른 특성을 가진 그림이다. 또한 북한 미술의 최근 변화된 경향을 부분적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형식은 조선화이지만 기존의 방식과는 좀 다르다. 조선화의 특성은 윤곽선을 무시하고 면(面)으로 화면을 처리하는 몰골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이 그림은 외곽선을 중심으로 한 구륵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나무와 개, 나귀는 몰골법으로 처리했지만 주형상 인물은 구륵법을 사용했다. 또한 과감한 여백의 표현도 특징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우리나라의 풍속화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색상도 비교적 화려하지만 은은한 담채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사상적인 내용을 발견하기 어렵다. 조선시대의 모습을 그린 것도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랑신부로 보이는 남녀가 나귀에 먹을 것을 싣고 봄나들이를 하는 장면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신랑은 기분 좋게 웃고 있고, 손을 잡은 신부는 수줍어 하지만 싫은 표정은 아니다.  앞쪽에 그려진 혀를 삐죽 내민 검둥개의 표정도 재미있고, 길조인 까치를 그려 넣은 것은 민화적인 요소가 결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리를 하면, 화사한 봄날 결혼한 남녀가 소풍을 가는 즐거운 모습을 풍속화 방식으로 재미있게 그린 작품이다.

북한미술에서 이러한 경향의 그림은 조선화나 북한미술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이런 방식의 그림은 그저 변화된 북한의 생활, 인민의 다양한 정서를 반영하기 위한 부분적인 시도이지 주류는 아니라는 것이다.

김치찌개를 좋아한다고 하루 세끼 김치찌개만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뭘 모르는 것이다. 횟집에서 곁반찬은 없고 회만 당그라니 나온다면 무슨 맛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곁반찬만 있고 회가 없다면 그것은 더 웃기는 일이다.

북한의 대표적인 회화가 조선화라고 해서 반드시 수령화나, 사상적 알맹이가 가득 찬 작품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판화, 가벼운 내용의 수채화, 과슈화, 삽화도 있고,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이나 여성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림도 있다. 이것은 북한의 미술을 대표하지는 않지만 북한미술을 떠받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