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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화’된 북핵문제, 시간은 누구편인가?<칼럼> 전현준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
전현준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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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3  0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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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하면 ‘로맨스’이고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의미로서 ‘외도’는 나쁜 일인데 자기 또는 자기편이 하면 정당하고 남이나 남의 편이 하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빗대어 생겨난 억지 논리이다.

이 용어는 개인사나 일개 국가 내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용어의 정당성을 떠나 북핵문제를 이 ‘사자성어(?)’에 대입해 보면 미국은 자기편인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정당하고 자기편이 아닌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것은 부당한 것으로 간주한다.

본래 ‘부도덕한 무기’인 핵무기를 최초로 개발해서 최초로 사용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비록 일본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통해 태평양전쟁을 약간 일찍 끝내기는 했지만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에 미국은 핵무기 사용을 고려했기 때문에 자칫 한반도도 핵참화에 휩싸일 뻔했다.

이후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은 앞다투면서 핵무기를 개발하였고 주변국들과 극심한 안보갈등을 겪었던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도 핵무기를 개발하였다. 미국은 이들의 핵은 용인하였으나 이란, 이라크, 남아공 등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서는 강한 압박을 가하여 실패하도록 했다. 대표적인 ‘내로남불’식이고 핵문제의 ‘정치화’ 사례이다.

한국전쟁 시기부터 미국의 핵공격 위협을 받은 북한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부터 핵무기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소련, 중국의 철저한 감시통제로 인해 여의치 않았고 겨우 원자력발전을 전제로 한 영변핵시설 건설이 용인되었다.

그러나 1989년부터 시작된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세계사적인 변혁은 북한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였다. 특히 1990년 9월 30일 한소수교,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추동하였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포기했다고 생각하였고 1960년대부터 시행한 재래식 무기 위주의 ‘자주국방’으로는 안보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철통감시 때문에 핵무기 개발은 용이하지 않았고 ‘백년숙적’인 미국의 안보위협만 없다면 굳이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하에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시도하였고 1994년 10월 미국으로부터 최소한의 안보를 보장받을 수 있는 ‘북미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 시기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1995년부터 수년간 수십만명이 사망한 ‘고난의 행군’ 등으로 인해 내부 정치적 안정에 진력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을 오판하게 하였다. 미국은 ‘북한 조기붕괴론’에 집착하여 제네바 합의 이행을 미루었고 제네바 합의 후 3년이 경과한 1997년 8월에야 신포에서 경수로 착공식을 가졌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북한의 대미 불신은 극에 달했고 전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북한은 1998년 8월 대포동1호 발사를 시작으로 미국과의 대결준비를 본격화하였다. 물론 북한은 마지막까지 미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고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고대하였다. 그렇게만 되면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는 대량살상 무기를 개발할 필요가 없어지고 그것을 민생경제 회생에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미국 강경파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곧 붕괴될 북한을 살려줄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어떤 경우에도 미국은 북한의 생존을 담보해주지 않을 것임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미국에 대한 믿음은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더욱 진력하였다. 2002년 북한은 핵무기 개발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세계는 경악하였다.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저지를 위해 노력하였고 2005년 9.19공동성명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성명 채택 다음날 북한의 경제숨통을 조이기 위해 BDA(방코델타아시아) 사건을 일으켰고 미국의 행동을 목도하면서 다시한번 미국의 대북 ‘압살’ 정책을 확인한 북한은 핵무기 개발 속도를 가속화하였고 2006년 10월 9일 제1차 핵실험을 하였다. 한반도에서의 세력균형은 깨졌고 미국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매진하였다. ‘핵없는 북한’과 ‘핵있는 북한’의 위상은 전혀 달랐다.

미국은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북한에 대해 군사적 위협이 아닌 경제봉쇄를 통한 붕괴를 시도하였다. 만일 군사적 공격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시도했을 경우 수백만명의 사상자가 생긴다는 미국의 시뮬레이션 결과 때문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전략적 인내’ 정책을 구사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나서고 있다. 북한도 미국의 뼈속 깊은 대북 적대시 정책을 잘 알지만 전쟁보다는 평화가 더 낫다는 판단하에 대화에 나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진정성을 확인해보기 위한 행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이 대화에 나서고 있다는 판단하에 대화에 집중하기보다는 제재에 더욱 큰 힘을 쏟고 있다. “만일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면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는 유치원생을 다루는 방식인 ‘회유책’을 북한이 모를 리가 없다.

미국이 아무것도 아닌 종전선언조차 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모든 핵무기, 핵시설,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신고하라는 것은 기본적인 전술전략도 모르는 소치이다. 만일 미국의 대북 군사 불공격과 체제안전보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초1급비밀’인 모든 핵관련 정보를 신고한다면 미국은 최첨단 스텔스무기를 동원하여 일순간에 북한의 핵시설을 초토화시켜 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여러 차례 속아본 북한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양국 간 불신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핵 폐기)와 CVIG(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한 안전 보장)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핵문제 해결은 거의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간은 내편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제재가 계속되면 북한은 몇 개월을 버티지 못할 것이고 결국 항복할 것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그러나 70여년간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끄떡없다.

오히려 시간은 북한편이다. 트럼프의 인기는 날로 하락하고 있고, 만일 11월 중간선거에서 참패한다면 탄핵 위기에 빠질 것이다. 우리로서는 대화를 선호하는 트럼프체제가 지속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의 호기를 놓쳐서 트럼프가 낙마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트럼프가 살 수 있는 길은 북한을 ‘내로남불’을 적용할 수 있는 ‘내편이나 친구’로 만드는 일 외에는 없다.
 

전현준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한반도평화포럼 부이사장)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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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2)
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8-09-05 11:46:25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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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환 (thkwak) 2018-09-03 04:01:35
전현준 박사의 칼럼에서 주장하는 기본 논조에 공감한다. 비핵화 후속조치에 북미간 합의를 이루지 못해 종전선언과 핵신고를 놓고 선후를 따지다 보니 지핵화 진전이 없어 6.12 북미정상회담이후 지금까지 80여일동안 선후문제를 놓고 밀고댕기도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과연 9.5 대북특사단 방문이 성공을 가져 올것인지 불투명하다. 특사단이 빈손으로 오지 않게 하려면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비핵화 이행로드맵을 만들어 김정은 위원장의 통 큰 ㄱㅕㄹ단을 유인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에 특사단을 보니 함께 설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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