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럼프의 종전선언 드리블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의 친서(8.1)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답신(8.4) 교환 이후 양측은 판문점에서 협상을 재개한다. 이 협상을 통해 트럼프가 목표하는 것은 분명하다. 품페이오의 3차 방북을 성사시켜 2차 북미정상회담을 일궈내는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중간선거 승리로 확실히 다가갈 수 있다. 북 서한 수령 당일 북미 2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고, 북에 띄운 서신에서 품페이오 방북을 제안한 그의 언행 수순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앞에는 북이 ‘선차적’이라 못 박은 종전선언이 가로 놓여 있었다. 협상이 다시 열렸으나 이번에는 그 진행 사실 자체가 철저히 가려졌다. 그만큼 결론이 불투명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8월 14일(현지 시간) 품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커튼의 일부를 슬쩍 들춘다. 여름휴가에서 복귀한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만난 그날, 품페이오는 트위터에 전날(8.13) 강경화 장관과 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며 “우리는 진전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올려, 3차 방북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한다. 이를 신호로 언론은 8월 12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벌어진 최선희 북 외무성 부상과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의 접촉 관련 보도를 쏟아낸다.

8월 15일 한겨레신문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이달 말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면서, 이에 따라 “북-미 사이에 이견이 일부 해소됐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북미가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 문제에 대해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뤘다”고 했다. 8월 16일 <미국의소리(VOA)>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 등 주요 언론들도 미국과 북한이 종전 선언과 핵 목록 신고를 맞바꿀 가능성이 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종전선언은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 없는 대통령 독자 영역에 속한다. 트럼프 자신의  결단만 있으면 그는 북미 관계를 대폭 진전시킬 수 있고, 그 성과로 정치적 승리를 얻어 나갈 수도 있다. 자, 언론의 추측 보도처럼 트럼프는 정말 그 결심을 했을까?  8월 18일 북 노동신문은 “현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결심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 시점, 미국의 주류 기득권 세력은 일제히 봉기한다. 8월 15일 미국 재무부는 대북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관료 집단의 저항이다. 8월 16일 미국의 북 전문 매체 <38노스>는 북의 신포 조선소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탑재 가능 신형 잠수함의 건조 정황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전문가 집단의 반발이다. 8월 18일 일본 외무성은 북의 해상 환적을 감시하기 위해 호주, 캐나다 초계기들이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 배치된다고 발표했다. 미 국방부의 세련되고 글로벌한 솜씨다. 8월 19일 볼턴은  “북의 비핵화는 남북 간 약속”이라며, 미국이 비용을 치를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강변한다. 자기 팔이 또 자기 얼굴을 가격한다. 겹겹이 둘러싸인 트럼프. 이대로 가면 중간선거의 가장 큰 득표 요소가 그만 정체되고, 북의 대응에 따라서 악재로 돌변할 수도 있다.

바로 이 시점, 언론이 말하는 트럼프의 ‘승부사 기질’이 작동한다. 8월 20일 트럼프는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곧 이뤄질 것 같으냐?”는 질문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다시 만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동아일보.8.22)”고 했다. 2차 정상회담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이는 곧 종전선언 수용 의사 공개 선언을 뜻한다.  저항하는 참모들을 건너뛴 트럼프의 단독 드리블이다.

2. 주류의 치명적 태클

1) 트럼프 측근 3인의 플리바게닝

트럼프의 북미 빅딜 용의 있음, 발표 다음 날(8.21) 그의 ‘러시아 스캔들’ 관련 두 건의 재판이 열린다. 하나는 2016년 3월부터 트럼프 캠프에서 선거대책본부장을 하다가 러시아 관련 불법 로비 혐의로 그해 8월 사퇴한 매너포트의 재판이다. 그는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이와 관련한 트럼프 진영과 러시아 사이 내통 혐의 등을 조사하는 뮬러 특검에 의해 18개 혐의로 기소됐는데, 이날 8개 혐의가 유죄판결 됐다. 우크라이나 집권 여당에게 불법자금 6500만 달러(725억3800만 원)를 받고, 은행에서 불법대출 2500만 달러(279억3800만 원)를 받은 것 등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 주류 기득권 세력 일부의 검은 단면을 여실히 드러낼 뿐,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로 10년 이상 일한 코언의 재판이다. 미국 연방검찰에게 선거자금법, 금융사기 등 8개 혐의로 기소된 그는 이날 재판에서 두 여성에게 성관계 폭로 방지용 돈을 준 것은 트럼프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진술한다. 검찰에게 유죄를 인정하거나, 타인의 범죄를 증언하는 대가로 자신의 형량을 깎거나 처벌을 면제 받는, 플리바게닝을 선택한 것이다. 두 여성에게 돈을 준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주장해온 트럼프는 크게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코언의 플리바게닝은 그보다 열배, 백배의 타격을 트럼프에게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자신의 형량 경감 또는 면제를 위한 검찰과의 거래에 응하는 순간, 검찰이 원하는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0년 개인 변호사, 자신의 내밀한 것까지 꿰고 있는 코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순간, 트럼프는 얼음이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플리바게닝에 묶인 측근이 둘이나 더 나왔다.

트럼프의 40년 금고지기이며, 현재 그 일가의 부동산 회사 <트럼프 오가니제이션>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앨런 위슬버그가 트럼프의 성 추문 수사 등에 협조하는 대가로 검찰 처분 면제를 받은 것이다. 또한, 트럼프의 또 다른 절친 아메리칸미디어(AMI)회장 데이비드 페커도 피해 여성들에게 돈을 주고 독점 보도 계약을 맺은 뒤 이를 고의로 보도하지 않은 혐의를 플리바게닝으로 처리했다. “위슬버그의 '검찰 투항'을 회사 임직원들도 사전에 눈치 채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8.27) 트럼프 가 뮬러 특검에 긴장하는 사이 연방검찰은 코언, 위슬버그, 페커 등 3인을 플리바게닝으로 획득하는 번개 ‘작전’에 성공한 것이다.

2) 코언 “트럼프, 러시아 해킹 알고 있었다”

재판에서 트럼프 죄상의 일부를 폭로한 다음날(8.22) 코언은 변호사를 통해 “뮬러 특검이 흥미를 가질만한 정보를 알고 있으며 이를 특검에 진술할 수 있다. 그것은 러시아의 대선 개입 해킹에 대해 트럼프가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는 폭탄 발언을 한다. 연방검찰의 코언 플리바게닝 최종 표적이 러시아의 대선 개입에 트럼프가 내통했다는 혐의를 입증하는 것임이 이로써 명백해졌다.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 그리고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것 등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은 2016년 7월 22일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 사이에 오고간 이메일 1만9천 개가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공개된 이메일을 통해 민주당 전국위원들이 힐러리 후보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등 불공정 행위가 드러났고, 이에 전국위원회 의장이 사임했다. 이렇게 끝나나 싶었는데, 힐러리 후보 로비 묵 선거대책본부장이 이번 폭로는 트럼프 후보를 돕기 위해 러시아가 꾸민 일이라고 주장한다.

7월 25일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를 개시하고, 7월 26일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가 해킹 배후일 가능성이 있다.”면서 “트럼프는 푸틴에 존경을 표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선거판 이전투구라 할 만하다. 그러나 사건은 그해 11월 8일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에 오히려 확대된다. 12월 16일 오바마는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정보기관들의 조사 결과, 러시아의 대선 개입 사실이 밝혀졌다고 단언하고, 12월 29일 대선 개입을 이유로 러시아 외교관 35명을 추방하는 등 러시아 제재를 단행한다.  이제 ‘러시아 스캔들’은 미국 대선의 여야 공방 소재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을 근본적으로 가로막는 차단벽이 된다. 또한,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추구할 때마다 트럼프의 발목을 잡는 강력한 통제력으로 작용한다.

2018년 7월 16일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동안 국제회의 등에서 몇 차례 만났으나 그것은 약식이었고 이번이 정식 회담이었다. 정상회담을 3일 앞두고 뮬러 특검은 2016년 해킹을 이유로 러시아 정보 요원 12명을 기소한다. 상징적 행위였으나, ‘러시아 스캔들’의 부정적 이미지가 환기됐다. 회담에서 양측은 핵 군축, 시리아, 이란 등 인류의 안전과 평화가 걸린 중대 문제를 논의했으나, 미국 주류는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트럼프의 한마디에 집중했다.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반역적”이라고까지 말했다.

7월 17일 트럼프는 결국 말을 바꾼다. “러시아가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라고 말하려 했으나, 말이 잘못 나와 그만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도 모자라, 트럼프는 7월 18일  <CBS 방송>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직접 책임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3. 방북 취소, 하루 만의 결정 아냐

8월 23일 품페이오는 기자회견을 열어 다음 주에 방북할 것이라고 발표한다. 또한, 공석이었던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비건을 임명한 사실을 밝히며 방북에 동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만 하루 만에 트럼프는 그것을 뒤집는다(8.24). 그 하루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워싱턴포스트>는 8월 24일 오전 북으로부터 편지가 왔고, 이를 본 트럼프가 “이번 방북은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방북을 취소했단다.

트럼프는 방북 성공의 조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건 종전선언 수용이다. 그런데, 23일 방북을 발표할 때는 북이 그 조건을 철회했다가 24일 다시 내걸었단 말인가? 23일 방북 발표 당시, 미국은 날짜를 특정하지 않았다. 이는 북미 간 합의 사항이 아직 아니란 뜻이다. 또한, 김정일 북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아예 부정했다. 이는 성공적인 방북 준비와 거리가 있다는 자인이다.

8월 20일 2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공언하며 기세를 올리던 트럼프는 코언의 플리바게닝이 알려진 바로 다음 날(8.21) 돌변한다. 웨스트버지니아주 대중연설에서 그는 “제재를 빨리 풀어주고 싶지만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북의 선 비핵화’ 즉, 북미협상 포기 발언이다. 그리고 코언이 뮬러 특검에 협조하기로 했다는 발언이 나온, 그 다음날(8.22) 트럼프는 아베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다음 달 유엔총회에서 동맹국들과 강력한 대북 제재에 대해 대화를 계속하기로”한다. 유엔 총회 계기에 북미 2차 정상회담을 하려던 시간표를 스스로 지운 것이다. ‘러시아 스캔들’과 뮬러 특검이 나타나면 말을 바꾸는 현상의 재연이다.

방북 취소를 발표하며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 갈등 해소 이후 가까운 장래에 방북을 기대한다”고 했다. 중국과의 무역 갈등은 빨라야 중간선거 이후에나 정리될 수 있다. 1차 정상회담 취소 후 재추진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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