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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신흥무관학교, 이수병 선생이 있었다” 30주년 맞은 경희대 총민주동문회 김재운 회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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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24  23: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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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희대학교 총민주동문회 30년 기념행사를 하루 앞둔 24일 광화문에서 김재운 신임 회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경희대학교 총민주동문회(경희대 민동)가 창립 30년을 맞아 25일 오후 4시 경희대학교 크라운관에서 기념식을 개최한다.

25일부터 경희대 민동 회장을 맡게 된 김재운 신임 회장과 24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한 야외카페에서 만나 지난 30년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30주년 기념행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통일뉴스 : 각 대학마다 민주동문회가 있지만, 경희대 민주동문회가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먼저, 창립 배경에 대해 설명해 달라.

■ 김재운 신임회장 : 민주동문회는 연세대에서 제일 먼저 창립된 것으로 알고 있고 우리는 88년 8월 28일 창립돼 30주년을 맞게 됐다. 87년 6월항쟁으로 운동이 대중화된 것이 배경이 됐다.

학생운동이 활성화 돼 있던 시기에 만나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이 졸업 후에도 뜻을 이어나가기 위한 틀이 필요해 자연스럽게 모였다. 총동창회는 그때까지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고 단순한 친목과 학연만 추구했기 때문에 그걸 뛰어넘는 민주적 가치를 같이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됐다.

88년에 만들어졌지만 이전에 졸업했던 민주적 지향을 가진 선배들도 후배들이 모인다고 하니까 합류해서 70년대 초반 학번까지 참여하고 있다.

   
▲ 1988년 8월 28일 경희대 총민주동문회의 역사적인 창립대회가 300여 명의 동문들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다. [사진제공 - 경희대 민동]

□ 경희대 민동이 특별히 활발하게 진행된 이유는 뭔가?

■ 활발하게 활동하던 각 대학 민동들이 10년 가까이 하다가 휴지기를 갖기도 하고 했는데 경희대는 꾸준한 것 하나로 칭찬받는 것 같다.

결국 사람의 문제 같다. 우선 상근자가 꾸준히 있었다. 김병수, 이창훈, 김종욱, 강이화 등이 오랜 기간 상근했고, 상근자 중심으로 알고 지낸 사람들이 민동에 출입하게 됐다. 이들이 오랜 기간 다른 공간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접고 민동에 헌신한 것이 경희대 민동 유지에 큰 기여를 했다.

김봉우 초대 회장이 12년 정도 회장을 맡아 민동의 운영과 조직 틀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이후 정해랑 2대회장, 김용호 3대회장, 박용익 4대회장도 각각 회장을 오랜 기간 맡아 일했다.

□ 경희대학교 하면 ‘신흥무관학교’가 떠오른다.

■ 경희대 민동이 무엇을 할 것이냐는 기준을 갖는데서 운명처럼 하나는 신흥무관학교, 다른 하나는 이수병 선생이 있었다.

신흥무관학교는 우리가 후신이라는 걸 알고 역사에서 끄집어내 현실에서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 대학이 그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고 시대적 사명을 다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면, 신흥무관학교는 일제 강점기 하에서 독립 간부 양성 학교였다.

그것은 그 시대에 아주 적절한 사명이었고, 이후 친일잔재 청산도 그렇고 민주주의 완성에서도 아주 적절한 시대적 요청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2003년 11월 20일~23일 3박 4일 간 신흥무관학교 옛터를 찾기 위해 답사를 떠났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를 뚫고 황량한 옥수수밭 한 가운데서 학교터를 발견하고 감격에 겨워 하는 동문들. [사진제공 - 경희대 민동]
   
▲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대미를 장식한 표지석 제막식이 2011년 12월 12일 열렸다. [사진제공 - 경희대 민동]

□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행사도 치른 것으로 안다.

■ 1911년에 만주 유하에서 창립됐는데, 2011년이 100주년이었다. 경희대 민주동문회와 민족문제연구소, 우당기념사업회 3자가 주축이 돼 기념사업회를 만들었고, 동문들도 나섰다. 나도 기획팀장을 맡아 실무를 총괄하면서 같이 활동한 것은 행운이었다.

□ 신흥무관학교 현지에도 가 보았나?

■ 2003년도에 규모 있는 답사를 시행했고, 이것이 100주년 신흥무관학교 터 답사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터가 세 군데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2011년 100주년을 맞아 세 곳을 온전히 가볼 수 있었다.

100주년 때는 우리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가기 위해 규모도 키우고 일반 국민들도 갈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러나 옥수수가 우거지고 돌무더기 없어져 누가 거기가 터라고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정도였다.

□ 표지석이나 기념관 같은 것을 설치하지는 않았나?

■ 2002년까지는 나무 현판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표지석를 세우려고 모색했는데 중국의 동북공정도 그렇고 뭔가 표시 남기는 것에 대해 중국 당국은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 1975년 4월 9일 사형당한 이수병 선배의 추모제를 전국 최초로 학내에서 대중적으로 치렀다. 1990년 4월 8일 추모제를 시작한 이해 매년 서울과 서원 교정을 오가며 추모제를 갖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2015년 11월 7일 경희대학교 교정에 평화민주동산을 설치하고 이수병 선생의 추모동상을 제막했다. 이정숙 여사가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사진제공 - 경희대 민동]

□ 경희대 민동에서 2차 인혁당 사형수인 이수병 선생을 각별하게 기념하는 것으로 안다. 많은 혁혁한 선배들이 있을 텐데, 이수병 선생 기념사업을 중심에 둔 이유는 무엇인가?

■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도 많고 희생되신 분들도 있지만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고문조작으로 돌아가셨다. 법에 의해 집행됐다지만 살인이 저질러졌고 32년이 지나 무죄판결 받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억울하게 고문조작에 의해 돌아가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민주화의 길로 나가는 초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희생되신 분들과 다른 경우로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뜻을 모았다.

또, 이수병 선생 행적에서 “통일은 실제 이런 거야”라는 것을 그 엄혹한 시기에 제시하셨다. 만나는 게 통일이라는 걸 그때부터 밝혔다. 민주화와 통일의 과정에서 정신을 살려야 할 중요한 분이라서 초기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우리의 기준점이었다고 생각한다.

□ 이수병 선생 추모사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나?

■ 알려야 하는 게 중요했다. 민동을 만들 시점까지만 해도 이름만 꺼내도 불온시할 정도였다.

1990년 15주기 추모식 때 학교 추모제를 규모 있게 준비해 당시 학생 2,000여명이 참석했고, 국제캠퍼스도 2,000여명 이상이 참석했다. 학생운동이 활성화되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이수병 이름을 대중화 시켰고, 그런 반향이 있어서 언론에서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일대기와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암장>이라는 책을 냈고, 이를 다시 보완해서 <이수병 평전>을 발간해 내용을 갖춰나갔다. 그리고 의령 묘소참배를 간부 중심으로 해마다 갔다. 매년 묘소를 참배하면서 우리 활동을 되돌아보고 다지는 계기로 삼았다.

무죄 판결을 받고 나서 장학금을 마련해 ‘이수병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게 됐고, 학교에서도 뒤늦게 명예졸업장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내 민주평화동산에 동상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조금씩 명예회복을 해나가고 있다.

   
▲ 2015년 4월 16일 세월호 1주기를 맞아 교수, 직원, 학생, 동문들이  추모대회가 열린 광화문까지 희생자 추모행진을 벌였다. [사진제공 - 경희대 민동]

□ <친일인명사전>을 펴낸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도 경희대 민동과 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안다.

■ 경희대 민동 초대 회장인 김봉우 선배가 민문연 전신인 반민족문제연구소 초대소장을 맡으셨고, 재원도 일할 사람도 없으니까 동문들이 차출(?)돼서 조세열, 김민철을 비롯해 많은 동문들이 참여했다. 신흥무관학교 후예로서 <친일인명사전> 발간과 친일잔채 청산 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던 것 같다.

□ 경희 민동 30주년을 맞아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나?

■ 꼭 30년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세대가 온 거니까, 그동안은 인연으로, 초기에 만들어진 정신으로 쉼없이 왔다면, 민주동문회니까 민주에 걸맞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 번째 과제는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을 했지만 아직 연혁이 복원된 건 아니다. 학교 당국이라든지 구성원들은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신흥이라는 두 글자의 연혁을 복원하는, 이름을 되찾는 것이 계속 과제라 본다.

더 직접적 자극이 된 것은 지난 6월 8일 육군사관학교에서 신흥무관학교 107주년 기념식을 했다. 육사 생도들이 존경심을 표현하는 열병식을 했고, 정신적 계승을 다짐했다.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적 계승은 육사에서 하더라도 실질적인 계승자인 경희대도 나름대로 계승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경희대 전 구성원이 이를 계승하는 걸로 주요사업을 놓고 있다. 그리고 내가 5대회장에 출마하면서 공약 중 하나로 경희대와 육사 두 학교의 108주년 축구대회를 제안했다.

두 번째 과제는 민주동문답게 살기를 해 나가자는 것이다. 동문회 행사하면 내용에 공감하고 술 한잔 먹고 헤어지는 패턴이다. 학연으로 이어져왔지만 민주적 가치 지향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러려면 학연에서 지연으로, 지역연대에 의미를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직장보다는 지역, 학연을 지연으로 발전시키자는 거다. 새롭게 회장이 될 결심을 하면서 생각했다.

과별 지부 모임이 있지만 동문들이 지역별로 살고 있기 때문에 향후에는 지역모임을 활성화시키고 경희대 차원만이 아니고 전민동(전국민주동문회) 차원에서 지역모임을 해보려 한다. 예를 들어 서대문에서 한다면 경희대는 물론 연세대를 비롯해 여러 민동 회원들의 명단을 공유해서 제안해보려 한다.

   
▲ 2017년 4월 8일 경희대학교 평화민주동산에서 이수병선생 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이수병 선생 42주기 추모식과 제9회 고령(苦嶺) 이수병 장학금수여식이 진행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 경희 민동 30주년 기념행사를 소개해 달라.

■ 25일 오후 4시 크라운관에서 외부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것이 아니라 동문 중심으로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먼저, 그 동안 활동을 쭉 정리를 한번 했다. 연표와 사진을 다 정리하고 30년 사진전을 부대행사로 진행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학교에 오신 동문들이 많고 학교도 변화가 많아 경희민주 평화올레라는 식전행사를 2시부터 하려고 한다. 4.19탑, 본관앞, 민주평화동상, 청년벽화까지 경희민주 평화올레를 진행한다.

옛날 풍물패 선배들과 현역들이 행사 시작을 알리는 풍물판굿을 연다. 그리고 이수병, 신흥무관학교, 경희민주단체협의회(경민협) 활동 영상으로 30년을 결산한다. 이 영상을 배경으로 이수병 장학생들이 가수 이지상 동문과 <이수병 추모가>,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합창한다.

축하공연은 이수병 선생의 부인 이정숙 여사가 직접 출연해 큰틀의 <금강산> 노래에 맞춰 무용을 선보인다.

□ 30주년 행사를 계기로 민동도 더 발전할 것 같다.

■ 행사 비용도 사전 공지해서 상당금액을 동문들이 보내줬다. 내일 참가비까지 보태면 동문들의 힘만으로 행사를 치를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행사를 계기로 이수병 기념사업과 신흥무관학교의 연혁, 제대로 이름찾기를 전면 선포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간간이 신흥무관학교의 중요성을 언급할 정도로 대중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됐다.

□ 민주동문회는 사회적 현안들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

■ 어쨌든 민주주의라는 것은 그 자체로서도 가치가 있지만 지금 우리 한국사회에서는 통일과 연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실질적인 민주주의 완성은 통일을 통해서 나타나고, 통일은 민주주의가 훨씬 더 발전해야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

지금 우리는 민주동문회지만 우리 동문들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 통일을 위해 통일 일꾼으로, 통일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 구체적 사업계획도 있나?

■ 아마 1989년도 정도에 사학과 학생회에서 고구려유적 답사를 추진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북에서도 수용해 예비회담 날짜까지 잡혔지만 실현되지는 못 했다.

내년 3.1운동 100년이자 임시정부 100년을 맞아 우리 민주동문회가 고구려유적 답사의 하나의 주체로 나서려 한다. 지금은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들이 추진하기로 일단 확정지어 놓은 상태다. 이것을 경희대학과 민주동문회가 같이하는 것으로 해서 30년 만에 재추진하려 한다.

   
▲ 김재운 경희대 민동 신임 회장은 '활동의 내실'을 강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경희 민동 5대회장으로 30주년 행사를 맡은 개인적인 소회도 있을 것 같다.

■ 동문회라고 하면 운동에서는 조금 가치 면에서 작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노동운동이나 시민운동은 그래도 운동을 한다고 그러는데 동문회운동이라면 조금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운동이라는 건 자기가 살아가는 공간 모두가 그 나름대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30년간 가치가 적은 거라 생각한 것을 실제 가치있는 일로 만들어 왔다. 그래서 이 소중한 공간이 더 많은 사람한테 소중하게 다가가게 하려면 활동이 내실 있게 돼야 한다 생각한다. 이제는 내실을 가져가는 것에 힘을 쏟고 싶다.

그동안 그냥 좀 남는 시간을 가지고 투여했다면, 나머지 회원으로 참여하는 분들이 자기의 본업이 있지만 남는 시간에 참여했을 때도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활동을 하고 싶은 게 지금 생각이다.

우리 동문들,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학교 동문들이 같이 많이 도와주고 같이 이런 것을 해나갔으면 좋겠다. 민주동문회라는 것이 정말 민주스럽게 될 수 있도록 같이 했으면 좋겠다.

□ 경희 민동 회장 활동만 하나? 아니면, 다른 직업이 있나?

■ 그간 당 활동을 오래 하다가 민주주의국민행동에서 일했고, 최근에는 주권자전국회의에서 상근하다가 7월에 그만두고 총회를 집중 준비하고 있다. 한 마디로 백수다.

 

(수정, 24일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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