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 / 전 한신대학교 교수

이 글은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남북 교류가 있을 무렵에 초안된 글이다. 최근 영화 ‘공작’은 국가보안법의 자가당착적인 적나라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황당함 그 자체로 변해 가고 있는 즈음 함께 생각해 보는 글이 되길 바란다. / 필자 주

 

입추가 지났으니 “가을이 왔다” 할 수 있다. 남북 문화 예술 교류 공연과 남북 정상회담도 9월 중에 다시 열릴 것 같다. 그러나 지난 2월 ‘봄이 온다’ 공연은 못 올 뻔했다. 공연을 못하게 될 것이 아니라, 이런 ‘제목’ 자체를 사용하지 못할 뻔했다. 평창올림픽 북측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썼다고 그렇게 야단 분란을 일으킨 자들이 ‘봄이 온다’란 말의 유래와 맥락을 안다면 아마도 공연 자체가 불발이 될 뻔도 했을 것이다.

‘봄이 온다’는 손세봉 저 북한 소설 <<은하수>> 10장에 나오는 소제목이다. <<은하수>>는 총서 ‘불멸의 력사’ 연속물 항일혁명시기편 3권으로 1987년 문예출판사에서 출간한 장편 소설이다. 은하수 10장은 김일성 주석(김성주)이 길림 감옥에 갇혀 있을 당시를 기록한 내용이다. 그래서 ‘봄이 온다’란 김성주가 곧 감옥에서 출옥할 날을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아니다. 인젠 이 감방에 갇혀서 보고나 듣고 지시나 써 보내고 할 때가 아니다. 감옥을 테고 나가야 한다. 감옥 밖의 일, 더욱이 동만 사태, 돈화 사태가 엄중해 지고 있는 데 내가 감옥 안에 앉아서 세월을 보낼 수야 없지 않는가.” (352쪽)

일제는 당시 길림 일대의 항일투쟁 인사들을 모조리 잡아 감옥에 가두고 있었다. 아직 만주의 온도는 영하의 추위 속에 ‘봄이 온다’는 낭만적으로 들릴 수 없던 때였다. 그래도 감옥 안의 죄수들은 엄연한 계절이란 손님이 찾아오는 것이 오직 하나 위안이 될 뿐이었다. ‘봄이 온다’ 이 말 한 마디가 속임 없이 사시는 바뀌어, 김성주는 감옥에서 나오고, 강도 일제는 물러가고 말 것이란 희망이 이 말 속에 다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런 내용이 ‘봄이 온다’와 연관이 된다는 사실을 보수들과 태극기 부대가 알았을 진데, 과연 자유한국당 정객들과 태극기 부대가 그냥 있었을 것인지 가히 상상을 불허한다. 그리고 남측 청와대 당국도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결코 이 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최대한 요로를 통해 사실 관계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봄이 온다’를 기획한 주최자들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물론 보수 정객들과 태극기 부대들도 몰랐던 것 같다. 아니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이 나간 후 그 어느 측도 문제를 삼는 다면 그것은 어중이떠중이 같은 얼간이나 하는 짓일 것이다.

그러면 그 어느 측을 막론하고 이들을 이런 얼간이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이런 소설류를 읽거나 소지하고만 있어도 그것은 불법 유인물 소지 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7조에 의하여 처벌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에 어느 외국인들이 이 소설을 읽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보수들이 더 난감할 것이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문제 삼지 않다니? 손자병법에도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 했거늘 북에 적개심을 가지고 사는 자들이 북한 소설, 그것도 김일성의 출옥을 기다리는 제목을 국가가 하는 행사의 주제로 사용했다는 것을 용납한 것이기 때문에 태극기 부대들은 적과 싸울 전략도 모르는 얼간이 무리들로 취급 받을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와 여당의 논객들과 정치인들이 ‘봄이 온다’가 이런 색깔을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용했다면 이것 역시 얼치기 취급 받기 십상일 것이다. 알고도 이를 사용했다면 보수들의 공격의 표적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고 결코 끝내 사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반년이 벌써 지나가는 마당에 아직 진보와 보수 어느 측도 이 사실을 감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쿠바 미사일 사태 때에 미국과 구소련은 그 절박한 적대적인 상황에서도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대처해 핵전쟁의 위기를 모면했다. 적에게 정보를 알리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이다.

지금 남한 안에는 이런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국가보안법에 걸려 경찰 조사와 재판을 받아 본 사람이라면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을 누구나 갖게 될 것이다. 어떻게 적의 암호 해독마저도 하지 못하게 하고 암호문 자체를 소지하고 있는 것이 이적 행위란 말인가? 현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군의 통신병들은 모두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 암호 해독을 위해 가지고 있는 적의 문건 자체가 국가보안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통신병이 적의 암호 해독을 위해 적의 문건을 가지고 있었다고 아무리 항변해도 이런 항변이 대한민국 법정에선 통하지 않는다. 판사의 마지막 판결문을 보자. 적의 문건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로는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 다만 우리 사회가 성숙하여 그런 문건 소지 정도로는 위험 소지가 없다로 집행유예 받는 수준이다.

이렇게 생각을 할 때에 진보와 보수 모두를 위해서라도 지금 국가보안법은 도움이 안 된다. 제 3자가 볼 때에 얼간이 취급 받기에 십상이다. 북에서는 전체 소속원들이 혁명 이런 역사 소설을 다 읽는다. 북을 방문하여 누구와 대화를 해도 저작물들에 해박하다. 이 말은 ‘봄이 온다’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얼마나 웃기는 짓이냐 남한에서는 ‘봄이 온다’를 알기나 하고 공연 제목으로 삼았느냐고 웃고 있을 것이 아닌가.

아마도 이런 글을 쓰는 자체도 이미 ‘은하수’를 읽고서야 가능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가? 생각할수록 한심하고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다.

2015년 가택수색과 함께 압수당한 북한 관련 저작물들은 아직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과연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그 누가 보아도 웃음거리 밖에 안 되는 법이다.

김일성 가면을 가지고 그렇게 문제 삼던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이 글을 읽는 것은 자유이다. 그는 김일성 가면을 앞장서 문제 삼던 인물이다. 그가 북한 소설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봄인 오는 데’ 다행이었는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과연 북한 출판물에 접근도 말아야 하는가? 그런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고 보수들에게 유익한 것인가. 그가 지금 와서 이를 문제 삼는다면 얼간이 소리 밖에 듣지 않을 것이다. 진보 좌파가 알려준 정보를 가지고 문제시 할 진데, 그 누군들 그를 비웃지 않겠는가?

그러면 국가보안법이 왜 이렇게 웃음거리가 돼 가고 있는가? 영화 ‘공작’에서 흑금성의 말 속에 답이 있다.

"'뼛속까지 빨갱이'인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진짜 빨갱이'인 북한 정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말이 되나요?"

흑금성을 통신병에 비유한다면 정권에 따라 국가보안법에 저촉되기고 하고 안 되기도 할 것이다. 이것이 엄연한 우리 현실이다. 미국 인디언 부족 가운데 나바호 족은 2차 대전 당시 자기들 고유 언어로 암호를 만들어 사용해 승리를 안겨 준 공로로 지금 특대우를 받고 있다. 우리 현실에서 누군들 흑금성 같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시 묻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가보안법인가? 오직 정권 하나, 그것도 오직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씨리즈 정권을 위한 국가보안법이란 것을 흑금성이 아는 순간,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남북 교류 사업을 잘 하던 흑금성이 2010년 이명박 정부 때는 국보법 위반자가 돼 6년 감옥살이를 했다. 기막힌 사연이다.

당장 오늘에 일어난 일, 경찰이 날조된 증거를 영장청구 신청서에 기재해 이후 검찰, 법원 착오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사업가 김호 씨 측이 구속 취소 의견서를 장경욱 변호사는 검찰에 냈다.

이 글은 판문점 선언에 걸맞게 하루 속히 지금 국가보안법을 시대에 알맞게 고쳐야 한다는 취지에서, 그리고 ‘가을이 왔다’가 더 이상 이런 웃음거리가 아닌 행사가 되도록 비는 마음에서 쓴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다른 것으로 받아드려져서는 안 된다는 취지에서 작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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