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형직 사범대학 교수로 있다가 지난 91년 남한에 온 정종남(가명.68)씨가 최근 북한 사람에게 생소한 남한 어휘 3천300개를 수록한 어휘집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북한 주민이 알아야 할 남한 어휘 3300개」라는 제목의 이 책은 필자가 남한에 온 뒤 9년 동안 신문을 읽고 TV를 들으면서, 또 남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북한 사람에게 생소한 한자어, 외래어, 순 우리말을 하나하나 정리한 것이다.

이 어휘집은 종로서적이 발간했으며 2일 시판되기 시작했다.

책에 수록된 어휘는 단순히 남북한 국어사전을 통한 비교가 아니라 남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살아있는 생활어`에서 골라낸 것으로, 남북한에서 모두 살아보고 체험한 현실을 바탕으로 저술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또 3천300개의 어휘를 구체적인 용례까지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는데다 특히 필자가 남한 말을 이해하지 못해 일어났던 에피소드까지 수록해 재미를 곁들였다.

예를 들어 안면있는 목사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목사의 며느리가 `자부입니다`라고 소개하는 것을 `잡부`로 잘못 알아듣고(북에서는 자부라는 말을 쓰지 않음) `검소해야 할 목사가 집에 잡부를 두느냐`고 `야단`쳤던 일 등 웃지 않을 수 없는 일화들이 소개돼 있다.

이 책은 `남북한 언어동질성 회복 시리즈` 제1편으로, 정씨는 현재 제2편에 해당되는 「남한 주민이 알아야 할 북한 어휘」(가제)도 집필 중이다.

정씨는 이 책의 서두에서 `남한에서 많이 쓰이는 한자어, 외래어를 북한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순 우리말인 경우에도 그 뜻을 알지 못하는 것이 적지 않다`면서 이 책이 `남한에 와있는 탈북자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들이 남한의 생활용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길동무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국립국어연구원 심재기 원장은 `추천글`에서 `몇년전 남북한 언어 이질화 관련 학술세미나에서 정 교수의 발표를 듣고 북한에서 살아보지 않은 남한사람들의 탁상공론이 얼마나 현실에서 벗어나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며 `이질화 극복이라는 큰 결실을 위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정씨는 지난해에도 북한 사람들에게 생소한 한자어 1천7백여개를 소개한 책「남북한 한자어 어떻게 다른가」를 펴내 학계와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함남 신흥군(현 부전군) 출생인 정씨는 6.25전쟁 후 평양사범대학(현 김형직사범대학)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종합대학에서 러시아어 재교육과정을 마쳤으며, 김형직사범대학 노어교수와 대학의 사범교육연구소 외국어교육연구실장으로 38년간 근무했다.

현재 통일정책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인 그는 한국외국어대학 교육대학원과 통일교육원 강사, 한국교육개발원 자문교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문연구위원 등을 맡고 있다.

지난 6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 접촉과 교류가 날로 가속화 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씨가 펴낸 이 책은 남북한 언어 이질화를 극복하고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200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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