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한데 모여 북적대며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고독해서 죽어 가고 있다 (슈바이처)

 


- 백석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아랫집 담배 냄새 때문에 창문을 못 열겠어요- 모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아랫집에서 담배 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속에서는 부아가 들끓고.

같은 주택에 사는 이웃인데,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데, 도움을 청할 수 없다니! 우리는 그런 이웃들과 데면데면 만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우리 가족은 무작정 시골로 내려갔다. 두 아이에게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게 하고 싶었다. 나도 시골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90년 대 초라 시골이 시골다웠다. 큰 아이를 전교생 46명의 작은 초등학교 분교에 입학시키고 작은 아이는 옆 마을의 어린이 집에 보냈다. 아이들은 항상 신나게 지냈다. ‘아빠, 오늘은 집에 올 때 아이들과 경운기 타고 왔어.’ 걸어올 때는 이웃집 아이들과 모여 함께 왔다. 20분이면 오는 거리를 두세 시간씩 놀면서 천천히 걸어왔다. 길에 핀 들꽃들을 보고, 기어가는 벌레들을 보고, 계절마다 바뀌는 시골 풍경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신기했을 것인가!

그 때는 시골에서는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은 마을 아이들과 하루 종일 어울려 놀았다. 산에 몰려가고, 썰매를 타고, 강에서 물장구를 치고, 나는 까르르대며 뛰어노는 두 아이를 눈시울이 뜨겁도록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평생 시골 추억을 잊지 못할 거야! 평생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뒷집에 사시는 할머니는 가끔 울타리 너머로 전이나 떡을 주셨다. 웃으시는 얼굴표정이 어릴 적 본 외할머니를 빼닮았다. 어린 시절은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가! 문득 커서보니 정겨웠던 얼굴들이 다 사라졌다.

내 고향 마을엔 아카시아가 많았다. 늦봄 초여름에 피는 아카시아향기가 온 마을에 자욱했다.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나는 개비린내가 좋았다. 어릴 적에는 집에 개를 길렀다. 개에게서는 묘한 비린내가 났다. 나는 그 비린내가 좋았다. 항상 개를 데리고 다니며 아이들과 놀았다. 추운 겨울 날 엄마가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면 개는 바들바들 떨면서 곁을 지켰다.

언젠가는 마루에서 밤새 비명을 지르는 개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야 했다. 개가 쥐약을 먹었다고 했다. 그 소리는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아카시아 꽃들이 내려앉은 지리에서는 물쿤 개비린내가 났다. 지금은 사라진 고향 마을, 낯선 사람들이 사는 고향 마을, 빈집 투성이의 고향 마을.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 가족은 다시 도시로 왔다. 시골 마을을 떠나며 다시는 시골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다. 예전처럼 아이들이 모여 뛰어 놀지 않는다. 적막한 시골이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시골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아이들은 이럴 적 시골 생활을 떠올릴 것이다. 한 때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고, 함께 일을 하고, 서로 서로 먹을 것을 나누고, 서로 서로 도우며 살았다고. 아이들은 전설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는 옛 마을을 기억할 것이다. 그 기억으로 아이들이 항상 건강하게 살아가길...... .

이제 우리는 어릴 적 보았던 마을을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의 개인은 각자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 다른 사람들을 간절히 찾을 것이다.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이다. 과거의 공동체는 ‘개인이 없는 공동체’다.

고도로 발달한 탈산업 시대에는 자유로운 개인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지유가 보장되는 공동체. 아직 우리는 그런 공동체를 경험한 적이 없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개인들. 우리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혼자서 버틸 것이다. ‘소비의 향락’에 취해. 그러다 결국엔 버티지 못하고 외로운 다른 사람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아니 죽어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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