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겨레하나는 7월 4일부터 31일까지 총 6회에 걸쳐 시민강좌 ‘판문점선언시대를 읽는 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판문점선언 이후 달라진 한반도와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와 시민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다음은 지난 7월 31일 마지막 강연, ‘싱가포르에서 느낀 한반도 평화체제의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김준형 한동대 교수가 진행했던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한반도 평화의 당사자로서, 그리고 북-미 간의 상호간의 신뢰 보증인으로서 우리에게 많은 역할들이 있음을 생각해보는 자리였습니다.

강연 :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 국정기획자문위원
정리 : 강혜진 서울겨레하나 홍보팀장

 

▲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7월 31일 서울겨레하나가 주최한 "'판문점선언 시대'를 읽는 아카데미" 마지막 강연자로 나서 ‘싱가포르에서 느낀 한반도 평화체제의 가능성’을 주제로 강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강혜진 통신원]

북미정상회담을 만약 판문점에서 했다면

북미정상회담 당일을 포함한 사흘간 싱가포르에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3일에 올 수도 있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통령이 그 때 오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북미정상회담 장소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 혹은 평양에서 회담을 진행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만약 싱가포르가 아닌 판문점이나 평양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문재인 대통령이 가볍게 올라가서 남북미가 종전선언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후 평화협정으로 넘어가고 남북미중, 또는 6자회담을 진행하며 한반도 문제를 조금 더 빠르게 풀 수 있었을 것 같다.

예상 외로 늦어지는 종전선언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이 나온 이후, 금방이라도 종전선언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에 종전선언이 있지 않겠냐고 예상을 했지만 아쉽게 지나가 버렸다.

미국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1차 비공개 방북과 2차 방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확인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문제는 이후 미국의 대북강경파들이 욕심을 부리면서 생겨난다. 볼튼을 포함한 대북강경파들이 리비아식 모델 발언을 하는데 이러한 공격들이 중간에 북미정상회담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 종전선언이 어려움에 봉착한 것 역시 이들의 반대 목소리 때문이다. 실제로 북한이 진행한 핵과 미사일 시험 유예, 풍계리 폭파, 동창리 발사장 해체에 대해서 ‘검증할 수 없으니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 북한은 25년간 한 번도 자발적으로 이러한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 이런 자발적 조치에 대해 믿을 수 없다며 가치평가를 절하하는 것은 억지다.

대북강경파들이 종전선언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은 종전선언이 매우 큰 양보라고 생각한다. 종전선언은 미국이 더 이상 군사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대북공격 카드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은 한 번도 군사공격 카드를 포기한 적이 없다. 실제로 리비아와 평화협정까지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두 번째는 종전선언이 가지는 법적, 제도적 함의 때문이다. 실제로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한반도에서 정전체제가 없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종전선언과 정전체제가 동거하는 비정상적인 체제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입장에서는 종전선언과 동시에 정전체제를 해소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이 북한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골대를 계속 뒤로 옮기는 미국

미국의 대북정책 격언이 있다. “믿지 말고 검증 하라”다. 북한을 믿을 것이 아니라 미국이 만족할 정도로 핵무기, 비핵화를 검증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늘 사찰과 검증을 요구한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검증은 현존하는 프로그램만 검증할 수 있다. 핵무기 완성품은 은폐하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 있어도 잡을 수 없다. 북한이 핵개발을 완성하기 전이었다면 검증하면 된다는 말이 맞았을 테지만 핵개발을 완성한 지금, 미국이 북한을 믿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먼저 북한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 기존 대북강경파의 방식이 아닌 트럼프의 ‘신뢰하고 테스트하라’는 방식이 이 국면에서는 맞다. 북핵문제는 불신의 게임에서 신뢰의 게임으로 판이 변화했다. 그런데 대북강경파들은 신뢰를 쌓아가기는커녕 주권국가가 받아들일 수 없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주장하고 있다. ‘CVID’는 마치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일본에게 항복문서를 받아낸 것과 같은 수준의 요구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겠다고 나섰음에도 ‘아닌 것 같은데?’, ‘이것도 문제인 것 같은데?’라고 하며 미국은 골대를 계속 뒤로 옮기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북한을 다루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국은 지금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말하고 있지만 북한이야말로 미국에게 문제 해결의 진정성을 묻고 있다. 최근 북한에서 ‘우리는 네 가지나 양보했는데 미국은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는 한미군사훈련 하나만 중단했다’며 ‘강도 같은 미제’라고 표현했다. 북한 입장에서 답답함의 표현인 것 같다.

북한은 비핵화의 진정성이 있는가

▲ 김준형 교수는 “미국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먼저 북한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 통일뉴스 강혜진 통신원]

북한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인민들에게 비핵화 의사를 발표했다. 그리고 핵과 미사일 시험 유예, 풍계리 핵시험장 폭파,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해체, 한국전쟁 미군유해 송환과 같은 네 가지 조치를 조건 없이 진행했다.

미국은 북한에게 어떻게 신뢰를 표할 수 있을까. 한미군사훈련중단, 종전선언, 그리고 제재완화 등이 지금 단계에서 미국이 보일 수 있는 진정성의 표현이라고 본다.

문제는 미국이 종전선언, 제재완화를 길게 끌고 가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11월 중간선거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데 그 때까지 북한 문제를 유해송환 정도로만 풀고 갈 것인지, 조금 더 진전시킬지 재고 있는 것 같다.

북한 입장에서 이 국면을 살펴보자. 2020년까지 북한은 경제개발 완수를 목표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이번 중간선거 이후, 2020년이 되어서야 종전선언과 제재완화 혹은 해제를 하는 것이 북한에게 이점이 있을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미국은 일부라도 제재 완화 정도는 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해야 미국도 북한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평화,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

종전선언을 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가 지나갔다. 다시 한 번 기대해볼 수 있는 날이 있다. 바로 9월에 있을 유엔총회다. 남북미중이 모두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매우 좋은 기회다. 네 정상이 모여서 종전선언을 하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8월에는 북한을 만나야 한다고 본다. 북한 정부수립일인 9월 9일과 유엔총회가 진행되기 전인 2주 사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평양방문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지금까지 한국정부는 중재자의 역할을 잘 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몇 가지 장면에서 감지된다. 북미정상회담 전날 40분, 회담 직후 20분간 통화를 한 점, 북미정상 합의사항 중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 점, 그리고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서울을 방문한 장면들이 그렇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다. 북미 간 지금 고비를 넘기면 바로 우리가 문제를 주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민간영역에서는 정부를 응원하고 있기만 하면 될까?

평창올림픽에서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보면서 이전 정부 9년간의 삶과 평창올림픽 이후가 참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어떤 학생은 웃으면서 말하곤 한다. ‘군대 안 갈 수 있겠네요’ 가볍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남과 북이 친해지면 나에게도 이득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우리가 긴장 속에 사는 것이 디폴트값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

이처럼 민간에서 통일문제에 대해 계속 얘기해야 한다. 분단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우리가 무엇을 손해보고 사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통일의 필요성, 긴장상태의 종식의 필요성을 알리는 것들을 쉬지 않고 진행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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