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반항하는 존재다 (까뮈)


 짐승들
 - 휘트먼

 나는 짐승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살았으면 한다.
 그들은 아주 침착하고 과묵하다.
 나는 서서 오래오래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제 처지 때문에 힘겨워하거나 애처롭게 울지 않는다.
 그들은 어둠 속에 깨어 앉아 죄 때문에 울지 않는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의무를 논하여 나를 구역질나게
하지 않는다.
 한 놈도 남에게 또는 몇 천 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
 무릎을 꿇는 놈이 없다.
 전 세계를 통 털어 한 놈도 점잔을 빼는 놈도 없고 불행한 놈도 없다.


 노회찬 사망- 쿵!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을 이때 쓸 것이다. ‘맨붕(정신붕괴)’이 되었다. 어떡해야 하나?  

 나는 30대 중반 쯤에 ‘전교조 활동’을 했다. 우연히 대학 후배가 권하는 한 행사에 나갔다가 전교조 전신인 교사협의회 준비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공부를 함께 하고 뒤풀이를 하고, 다른 지역의 교사들과 수련회를 하고, 전국 교사대회에 참가하며 나는 ‘사람’에 대해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 사람이 저렇게 멋있을 수 있나?’ ‘같은 교사인데 저 선생님은 왜 저렇게 멋있는 거야?’

 나는 그 때까지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교과서 속의 위인들은 다 죽은 사람들이었지 살아 있는 사람 중에 위인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살아오며 만난 사람들은 ‘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뿐(실은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이었다.

 자신의 소신을 저렇게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니! 살아있는 독립 운동가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 뒤 교직을 떠나 모 운동 단체에 활동가로 일하며, 인문학과 사회과학 공부를 하러 다니며 나는 ‘살아 있는 위인’을 많이 만났다.      

 그 때 만난 최초의 위인은 ‘고(故) 제정구 선생’이다. 내가 활동하던 단체의 대표로 오셨는데 나는 그와 악수하며 그의 보이지 않는 힘에 압도되었다.

 그 뒤 그 분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자주 뵙게 되었다. 전철을 나란히 함께 타기도 하고, 그 분의 집에도 찾아가며 그 분의 향기를 충분히 맡을 수 있었다. 멋진 사람에게서는 향기가 난다! 반대인 경우에는 악취가 선명히 난다!

 그 분이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몇 몇 활동가는 출마 자체를 반대했다. 그들은 아마 멋진 정치인들의 허망한 말로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선거 기간 내내 자신들의 돈과 시간을 들여 선거를 도와주었다. 상대 후보를 공공연히 돕는 깡패들에게 테러도 몇 번 당했다. 그런 온갖 어려움을 무릅쓴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으로 그 분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정 활동을 했다.

 나는 ‘노회찬’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하지만 아마 그 때의 제정구 선생 정도의 지지 속에 국회의원을 하고 정치 활동을 하지 않았을까 막연히 추측해 본다.

 ‘노회찬’을 조롱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분의 정치 활동을 자세히 안다면 감히 그런 조롱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진보 정당 활동을 하고 지지한다는 건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하는 일이다.

 소위 ‘선진국들’처럼 진보 정치가 자유롭다면 그 분이 ‘뇌물’이라는 치졸한 덫에 걸려들었을까? 그렇게 자살을 택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을까?

 그들은 그 분처럼 살 수 없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삶의 알리바이를 위해 그 분을 조롱하는 것이다.

 그 분을 지지하는 긴 조문 행렬을 보며 우리는 암울한 이 시대에 실낱같은 희망을 갖는다.
 
 암울한 이 시대를 온 몸으로 헤쳐 나가지 않으면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된다.

 ‘나는 짐승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살았으면 한다./그들은 아주 침착하고 과묵하다./나는 서서 오래오래 그들을 바라본다.//그들은 제 처지 때문에 힘겨워하거나 애처롭게 울지 않는다./그들은 어둠 속에 깨어 앉아 죄 때문에 울지 않는다.’

 역사 앞에 죄 짓고 살면 자신들의 삶이 너무나 초라해 ‘우상(偶像 역사 앞에 부끄러운 사람들은 자그마한 아이가 되어 ‘아버지’를 찾는다. 어릴 적 아무리 잘못해도 아버지에게 빌면 어쨌든 의식주가 보장되었으니까)’을 숭배하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의무를 논하여 나를 구역질나게 하지 않는다./한 놈도 남에게 또는 몇 천 년 전에 살았던 동료에게/무릎을 꿇는 놈이 없다./전 세계를 통 털어 한 놈도 점잔을 빼는 놈도 없고 불행한 놈도 없다.’

 우리의 깊은 마음속에는 항상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무언가가 있다. 불의에 반항하라! 우리의 반항이 큰 강물을 이룰 때까지 우리는 살아 있는 위인들을 죽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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