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덕 교무)
 

화두(話頭). 관심을 두어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이야기할 만한 것의 뜻으로 제 삶의 가장 절실하고 골똘한 화두는 ‘함께 잘사는 공생의 평화’입니다.

2017년 4월 18일, 시작된 ‘평화일기’가 오늘 일기로 100회를 맞이했습니다.(통일뉴스 연재에서 누락된 부분이 있어 연재 횟수가 서로 다릅니다.)

1년여의 세월이 지난 4월 초 『평화일기』로 출간되며 서울 시민청에서 평화일기 북 콘서트도 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제가 몸담은 원불교소태산기념관 건축현장의 안전, 노동자들의 건강, 행복한 건축을 기도하며 일주일에 한 편씩 ‘건축평화일기’ 소식을 전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비밀도서관 [사진제공-유니세프]

지난해 여름 열반하신 아버님의 1주기 제사를 모시고 난 후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 시리아 내전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라는 부제를 활자 그대로 느끼게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일상에서 무너져 갈 때 무엇이 삶을 지속하게 해 주는가를 화두로 되묻습니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자유와 비폭력, 인간다운 삶을 꿈꾸며 폐허 속에서 도서관을 세운 다라야 청년들의 이야기를 읽고 100번째 평화일기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집이 많은 곳’이라는 뜻을 지닌 시리아의 작은 도시 ‘다라야’

한 달에 600여 차례의 폭격이 쏟아지는 곳, 2011년부터 시작되어 8년째 이어지며 35만 명이 넘는 사망자와 1,0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낳은 시리아 내전의 중심 도시, 다라야는 시리아의 반군 거점이라는 이유로 정부군에 의해 봉쇄되고 맙니다.

식량도 의료품도 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그 도시에 남겨진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의 화두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16년 2월 이야기 속에 나타난 시리아의 다라야 모습은 별을 몰아내고 헬리콥터가 차지한 하늘, 폭탄으로 황폐해진 땅, 혼돈의 그늘에 숨은 유령도시의 모습입니다.

화학무기 공습을 감행하고, 유엔 안전보장회의의 결의를 무시한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는 안보, 안전, 재건, 국가 등의 거짓된 언어로 억압의 고삐를 죄며, 악습에 굴복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저자인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분쟁지역 보도 전문가인 델핀 미누이는 2015년 10월 15일 이스탄불에서 페이스북으로 접한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시리아 내에서도 정부에 강경한 대응으로 유명한 다라야 지역의 젊은이를 알게 됩니다.

끊겼다 이어짐을 반복하는 인터넷의 불안정한 연결 화면을 사이에 두고, 그 초조와 염려 가운데서도 매일 오가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비밀 도서관을 유지하고자 하는 낙관적인 농담과 웃음이 살아 있었습니다.

죽음의 땅, 무너진 폐허에서 찾아낸 그들의 생명력은 책이었습니다.

저항자들은 종이로 된 요새를 구축하며 지하 비밀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의 무차별 폭격으로 폐허가 된 건축물에서 발견한 책들, 그 책들을 하나씩 모으고 정리하면서 다라야의 주민들은 독재의 포탄과 야만에 직면했을 때 책을 읽고 강의를 열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독서는 피난처이자 아이들에게는 학교이고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책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수단이자 무지로부터 나올 수 있는 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무너진 전쟁과 죽음과 배고픔의 공포 속에서 다라야의 청년들이 학교에 다니고 친구를 만나는 평범한 삶 대신 시공간을 초월한 책을 읽고 깊게 대화하며 절망의 시간을 견디는 모습에 심장이 저립니다.

세상으로 연결된 모든 문이 막혔을 때, 책은 그들에게 아주 작은 틈을 열어주었고 희망을 품게 했습니다.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자아를 형성하는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았고, 『연금술사』, 『껍질』, 『어린왕자』, 『레미제라블』 등은 전쟁의 구덩이 속에서, 개인의 기억과 눈물과 웃음 위로와 희망을 노래하게 해주었습니다.

책은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를 선사해주었고 책은 성숙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주옥같은 평화의 언어를 건져 올렸고 그들이 유지한 도서관은 치유의 장이자 평화의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혼돈의 한가운데서 지하 도서관은 국경이 없는 영토였습니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도서관을 운영한 오마르는 독서는 생존 본능이자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회고합니다.

평화의 생장점이었고 생명의 용기를 담아내는 샘터였습니다.

▲ 정부군에 둘러싸여 폭격당한 시리아의 반군 도시 다라야의 폐허속에서 도서관 운영을 맡은 한 청년이 책을 수거하고 있다. [사진제공-더숲]

2016년 주민들은 강제로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전방으로 가서 음식보다 책을 먼저 찾던 다라야의 청년, 오마르는 죽었고 이 책이 나오면 비치하려고 했던 비밀 도서관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번 세기 최악의 인도주의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리아의 고통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심장의 두근거림과 아픔을 동시에 느낍니다.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사상 유례없는 폭염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의 땀과 전교도의 기도로 짓고 있는 원불교소태산기념관도 치유와 희망을 노래하고 정신개벽의 문화터전이 되기를 염원하며 폭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8년 7월 31일

더운 여름날 원불교소태산기념관 건축현장에서 정 상 덕 합장

 

 

원불교 교무로서 30여년 가깝게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함께해 왔으며, 원불교백년성업회 사무총장으로 원불교 100주년을 뜻 깊게 치러냈다.

사회 교화 활동에 주력하여 평화, 통일, 인권,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늘 천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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