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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통일의 광장으로 나아가자 (1)-박기준‘민족일보 다시보기’ <40>
이창훈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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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7  22: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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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일보 다시보기’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민족일보 다시보기’ 연재를 다시 시작한다. ‘민족일보 다시보기’ 연재는 지난 2007년 10월 31일 첫 회를 시작으로 게재돼 부침을 겪다가 2011년 7월 2일 36회를 끝으로 중단된 바 있다.

알다시피 민족일보는 1961년 2월 13일부터 5월 19일까지 지령 92호의 짧은 삶을 살았다. 단명(短命)하긴 했지만 민족일보는 당시 저 유명한 ‘양단된 조국의 통일을 절규하는 신문’ 등 4대 사시(社是)를 내걸고 사월혁명 직후 “한국사회의 새로운 발전과 모색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통일뉴스가 ‘민족일보 다시보기’를 연재하는 이유는 일찍이 통일뉴스가 민족일보의 얼을 이어받겠다고 국내외에 선언한 바 있으며, 특히 4월혁명 직후 한국사회를 논한 민족일보가 6.15시대를 지나 4.27판문점선언 시대를 맞는 지금 남북관계 발전과 민족통일에 무언가 긍정적 메시지를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이다.

‘민족일보 다시보기’ 란에는 민족일보에 실린 여러 가지 내용이 게재될 것이다. 사설, 논단을 비롯해 인터뷰, 기획연재, 세계의 동향 그리고 생생한 사회면 기사들이 매주 금요일에 한 편씩 실릴 것이다. 게재 방식은 첫째 원본을 싣고, 둘째 그 원본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 싣고, 셋째 가능한 경우 해설을 덧붙일 것이다. 특히 이 작업을 주도하는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께 감사드린다. / 편집자 주

논단/통일의 광장으로 나아가자 (1)-박기준

 
시급한 통일전선대열의 정비
우연의 기적을 물리치고 신념에 충만한 노력필요

 
△ 통일의 시기는 다가왔다

(「진보」)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인 「니이체」는 이렇게 갈파(잘못된 것을 누르고 진리를 추구)했다. 이미 역사의 정로에 입각하여 민족천년의 방향을 『평화통일』로 결정한 우리는 언젠가 『진보』의 호적(싸이렌)신호가 울려올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놀드 토인비」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일종 『불가항력의 상승운동』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여기 우리는 1961년 2월을 맞이하였다.

조국의 안팎을 들러 싼 모든 동향은 자주적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희망적인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눈에도 뚜렷한 흥겨운 예조(예견)이기도 하다. 이제사 우리 겨레는 서로 갑자기 전연 딴판의 보람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통일의) 해 1961년, 이독재 하의 가장 준열한 시기에 있어서도 까무러친 적이 없었던 통일의 투사들 그들이 국민과 함께 효망(새벽부터 바라다)하던 통일의 요건이 이처럼 신속히 이처럼 흡족하게 갖춰져 가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위대한 민족이면 일수록 우연의 기적을 물리치고 신념에 충만한 노력의 심판을 기다리는 법이다.

그렇다면 이 장미색 아름다운 희망의 예조(예견)야말로 민주주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인류의 양식과 자주와 통일을 위하여 싸워온 우리 자신의 확신에서 이루어진 당연한 귀결이라 아니하겠는가? 민족 숙원의 「도어」는 이제 막상 열려지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아름다운 꿈이 운명의 활차(도르래)소리와 함께 역력히 안전에 나타난다. 부산발 신의주행 열차가 신의주발 부산행 열차가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16년 동안 조국의 허리를 판가림 해오던 삼팔휴전선을 무너뜨리고 달린다. 

수풍「땜」의 전력은 남한의 어두운 밤을 밝혀 줄 것이요. 흥남에서 생산된 비료가 남한의 메마른 곡창을 기름지게 한다. 김제와 김해평야의 백옥 같은 쌀이 북한동포의 식탁을 풍족케 하는가 하면, 금강산을 탐승(유람)하는 소요객(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니는 사람)이 서울에서 부산서 운집하는 것도 가관 일것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처럼 그리워하면서 갈려져 있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가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벗과 벗이 서로 한데 모여 얼싸안고 기쁨에 흐느껴 우는 감격의 장면.. 이것이 통일의 해 1961년에 부치는 우리의 꿈이요 현실이 아니겠는가?

(평화통일)론자를 조소와 공포의 대상으로서 백안시(반갑지 않음)하던 시기는 완전히 지나갔다 죽산 조봉암사건을 극한으로 하는 이독재 단말마(비명)의 몸부림은 평화와 정의 사도를 자처하는 일부 외세의 은근한 비호 아래 민족분열과 전쟁도발의 역로를 줄창 달리고 했다. 그러나 만월(보름달)이 구름장 저편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것처럼 조화의 질서에 지혜로운 우리 겨레들은 언젠가 청명한 하늘의 때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4.19혁명은 이 나라를 뒤덮고 있던 암흑과 부패의 구름장을 몰아내기 위한 민중의 의욕적 자구운동이었다. 그 옛날 일제의 폭력과 압제에 대한 3.1운동 이래 처음 보는 이 투쟁일야말로 조국통일로 나아가려는 민족 진군대망(앞으로 나가길 바람)의 호적(사이렌)신호였다.

이로써 우리의 입체적인 자세가 「올바른 방향」으로 정돈되었고 그 숱한 반동적 요소가 하나하나씩 고된 민중의 심판 앞에 그때 뭍은 마각을 드러내어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결정적으로 후퇴하기에는 새벽과 오전 열시 사이의 과도기가 가려 놓여있다.

(통일의) 기운은 이렇게 익어간다 악독한 분열주의자들의 성곽을 무너뜨리고 이독재 하의 타성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일부 패배주의자들을 물리치고서 영롱한 민족의 긍지로써 우리 모두의 서로의 마음과 힘을 합쳐 조국의 평화통일을 전취해야겠다.

△ 통일불가피의 국내사정을 정시하라

(이 새로운) 희망에 찬 정세 하에서 해야 할 통일운동의 임무가 무엇일까? 첫째로 통일달성의 자주적인 정신의 밑바탕을 굳건히 닦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명확한 행동강령으로 일실된 통일전선의 대열을 하루바삐 갖추어야 한다. 피차의 독선적 이기주의를 지양하고 분열주의자와 패배주의자들의 기만성과 소극성을 폭로편달함으로써 통일에서 「물적기반」을 확대에 주력해야겠다.

이와 같이 숱한 통일에의 주체적 요인을 한가지로 표현한다면 「자주적 평화통일 역량」에 그친다. 1961년은 이 한 해만은 어떻게 해서라도 달성해야 할 민족의 지상명령이 이것이다. 이 지상명령은 또한 평화공존과 민족복지의 길을 틔우기 위한 1961년의 역사적 필연이기도하다

(우선) 미시적으로 「클로즈-업」하는 조국의 적나라한 현실에 눈을 던져보기로 하자.

조국의 평화통일 없이는 육백여만의 실업자(잠재적실업자포함)와 삼백여만의 절량농민들의 가난한 생활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가난에서 오는 사회 및 정치적인 불안과 민족도의의 파탄을 막을 길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해방이후 16년간이나 외원(외국의 원조)에 의존해서 살아왔다. 그러나 건설은 커녕 오히려 백성들의 생활고는 날로 격심해질 뿐이며 거기에는 아무런 희망과 기대가 없다는 것은 생활체험에서  느껴온 것이다. 해방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 및 국련(국제연합)으로부터 받은 원조액이 사십여억불이나 되지마는 그 중 과반이 군원(군사원조) 그 외원조(외국원조)는 대부분이 보수세력 및 매판자본가들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서민층에 있는 우리들은 외원(외국의 원조)의 혜택을 거의 입지못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1958년도의 수출입통계를 보면 수입이 수출의 26.3배나 된다는 사실과 1959년 7월부터 1960년 12월까지 18개월간 남한의 경제운용에 필요한 총자금이 사억여천만불이나 되는데 그 중에서 외국에서 수입해온 것이 전체의 95.2%나 된다는 놀라운 사실에 방관할 수 없으며 1959년도의 농업생산고가 구일제시대의 60%에 지나지 않으며 공업생산고는 불과 5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나타난 통계수자다. (계속)

論壇/統一의 廣場으로 나아가자 (1)-朴琦俊
 
   
▲ 논단/통일의 광장으로 나아가자 (1)-박기준 [민족일보 기사(1961년 2월 23일자 3면 ) 이미지]

時急한 統一戰線隊列의 整備
偶然의 奇蹟을 물리치고 信念에 充滿한 努力必要

 

△ 統一의 時機는 다가왔다

(「進步」)란 方向을 決定하는 것이다. 獨逸의 哲人 「니이체」는 이렇게 喝破했다. 이미 歷史의 正路에 입각하여 民族千年의 方向을 『平和統一』로 決定한 우리는 언젠가 『進步』의 號笛信號가 울려올 것을 確信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놀드 토인비」 敎授가 말한 것처럼 一種 『不可抗力의 上昇運動』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여기 우리는 1961年 2月을 맞이하였다.

祖國의 안팎을 들러 싼 모든 動向은 自主的 平和統一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希望的인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눈에도 뚜렷한 흥겨운 豫兆이기도 하다. 이제사 우리 겨레는 서로 갑자기 全然 딴판의 보람있는 自己 自身을 發見했을 것이다.

(統一의) 해 1961년, 李獨裁下의 가장 峻烈한 時機에 있어서도 까무러친 적이 없었던 統一의 鬪士들 그들이 國民과 함께 曉望하던 統一의 要件이 이처럼 迅速히 이처럼 洽足하게 갖춰져 가고 있다는 것은 實로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偉大한 民族이면 일수록 偶然의 奇籍을 물리치고 信念에 充滿한 努力의 審判을 기다리는 法이다.

그렇다면 이 薔薇色 아름다운 希望의 豫兆야말로 民主主義와 平和를 愛護하는 人類의 良識과 自主와 統一을 위하여 싸워온 우리 自身의 確信에서 이루어진 當然한 歸結이라 아니하겠는가? 民族 宿願의 「도어」는 이제 막상 열려지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아름다운 꿈이 運命의 滑車소리와 함께 歷歷히 眼前에 나타난다. 釜山發 新義州行 列車가 新義州發 釜山行 列車가 南에서 北으로 北에서 南으로 十六年동안 祖國의 허리를 판가림 해오던 三八休戰線을 무너뜨리고 달린다. 

水豊「땜」의 電力은 南韓의 어두운 밤을 밝혀 줄 것이요. 興南에서 생산된 肥料가 南韓의 메마른 穀倉을 기름지게 한다. 金堤와 金海平野의 白玉같은 쌀이 北漢同胞의 食卓을 豐足케 하는가 하면, 金剛山을 探勝하는 逍遙客이 서울에서 釜山서 雲集하는 것도 可觀일것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처럼 그리워하면서 갈려져 있던 아버지와 아들 南便과 아내가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벗과 벗이 서로 한데 모여 얼싸안고 기쁨에 흐느껴 우는 感激의 場面... 이것이 統一의 해 1961년에 부치는 우리의 꿈이요 現實이 아니겠는가?

(平和統一)論者를 嘲笑와 恐怖의 對象으로서 白眼視하던 時期는 完全히 지나갔다 竹山 曺奉岩事件을 極限으로 하는 李獨裁 斷末魔의 몸부림은 平和와 正義 使徒를 自處하는 一部外勢의 은근한 庇護 아래 民族分裂과 戰爭挑發의 逆路를 줄창 달리고 했다. 그러나 滿月이 구름장 저편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것처럼 調和의 秩序에 智慧로운 우리 겨레들은 언젠가 淸明한 하늘의 때를 믿어 疑心치 않았다. 四.一九혁명은 이 나라를 뒤덮고 있던 暗黑과 腐敗의 구름장을 몰아내기 위한 民衆의 意慾的 自救運動이었다. 그 옛날 日帝의 暴力과 壓制에 대한 三.一運動 以來 처음 보는 이 鬪爭일야말로 祖國統一로 나아가려는 民族 進軍待望의 號笛信號였다.

이로써 우리의 立體的인 姿勢가 「올바른 方向」으로 整頓되었고 그 숱한 反動的 要素가 하나하나씩 고된 民衆의 審判앞에 그때 뭍은 馬脚을 드러내어 물러서기 始作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決定的으로 後退하기에는 새벽과 午前 열시 사이의 過渡期가 가려 놓여있다.

(統一의) 機運은 이렇게 익어간다 惡毒한 分裂主義者들의 城廓을 무너뜨리고 李獨裁下의 惰性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一部 敗北主義자들을 물리치고서 玲瓏한 民族의 矜持로써 우리 모두의 서로의 마음과 힘을 합쳐 조국의 平和統一을 戰取해야겠다.

△ 統一不可避의 國內事情을 正視하라

(이 새로운) 希望에 찬 情勢下에서 해야 할 統一運動의 任務가 무엇일까? 첫째로 統一達成의 自主的인 情神의 밑바탕을 굳건히 닦아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明確한 行動綱領으로 一實된 統一戰線의 隊列을 하루바삐 갖추어야 한다. 彼此의 獨善的 利己主義를 止揚하고 分裂主義者와 敗北主義者들의 欺瞞性과 消極性을 暴露鞭撻함으로써 統一에서 「物的基盤」을 擴大에 注力해야겠다.

이와 같이 숱한 統一에의 主體的 要因을 한가지로 表現한다면 「自主的 平和統一力量」에 그친다. 一九六一年은 이 한 해만은 어떻게 해서라도 達成해야 할 民族의 至上命令이 이것이다. 이 至上命令은 또한 平和共存과 民族福祉의 길을 틔우기 위한 一九六一年의 歷史的 必然이기도하다

(于先) 微視的으로 「클로즈-업」하는 祖國의 赤裸裸한 現實에 눈을 던져보기로 하자.

祖國의 平和統一없이는 六百餘萬의 失業者(潛在的失業者包含)와 三百餘萬의 絶糧農民들의 가난한 生活問題를 解決할 수 없으며 가난에서 오는 社會및 政治的인 不安과 民族道義의 破綻을 막을 길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解放以後 十六年間이나 外援에 依存해서 살아왔다. 그러나 建設은 커녕 오히려 百姓들의 生活苦는 날로 激甚해질뿐이며 거기에는 아무런 希望과 期待가 없다는 것은 生活體驗에서  느껴온 것이다. 解放以後 오늘에 이르기까지 美國 및 國聯으로부터 받은 援助額이 四十餘億弗이나 되지마는 그 中 過半이 軍援이며 그 外援助는 大部分이 保守勢力 및 買辦資本家들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며 庶民層에 있는 우리들은 外援의 惠澤을 거의 입지못했다고해도 過言이 아니다

一九五八年度의 輸出入統計를 보면 輸入이 輸出의 二六.三倍나 된다는 事實과 一九五九年 七月부터 一九六十年 十二月까지 十八個月間 南韓의 經濟運用에 필요한 總資金이 四億餘千萬弗이나 되는데 그 中에서 外國에서 輸入해온 것이 全體의 九五.二%나 된다는 놀라운 事實에 放觀할 수 없으며 一九五九年度의 農業生産高가 舊日帝時代의 六十%에 지나지 않으며 工業生産高는 불과 五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國際的으로 나타난 統計數字다.(繼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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