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혁당 재건위 사건 권양섭 선생 탄생 100주년 평전 및 자료집 출간기념식이 17일 저녁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55살이던 1972년 2월 13일 섣달 그믐날이었다. 설날 차례지낼 음식과 떡을 준비하고 있다가 나는 아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우리를 연행하기 위해 서울에서 비행기가 두 대 왔는데 한대에는 나와 큰아들 낙기가 타고, 또 한대에는 일본에서 유학했던 이학돌이 탔다. 어린 시절 비행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아들과 함께 수갑에 채여서 비로소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김포에 내려 '안가'에서 취조를 받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줄줄이 끌려왔다."

통혁당 재건위 사건의 '권양섭(權養燮)선생 탄생 100주년 평전 및 자료집 출간기념식'이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 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성대히 열렸다.

권양섭 선생이 생전에 박소연 작가에게 구술한 내용을 정리한 '수난삼대'에는 '통혁당 재건위사건' 당시 연행 장면이 이같이 묘사되어 있다.

권양섭은 1심 사형선고에 이어 이듬해 4월 2심에서 무기로 감형되었으며, 당시 25살이었던 큰 아들 권낙기는 1심에서 무기, 2심에서 10년으로 감형되었다. 18살이던 둘째 아들 권재기는 소년수로 복역하다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부인 조석귀는 2심에서 3년 6개월로 감형되었으며, 그때 중학생이던 셋째 문기와 국민학교 6학년이던 막내 충기는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돌봐줄 사람이 없어 부산과 천안의 고아원으로 보내졌다.

▲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통일뉴스-이승현 기자]

이날 출간된 평전 『권양섭』은 1972년 4월 11일 '지하통혁당조직 거물간첩사건', '여간첩 유위하 사건'으로도 불린 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그 전해 말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면 전환용 남북협상 카드를 꺼내든 상황에서 공안당국이 유위하가 만났던 사람들을 줄줄이 엮으면서 대사건으로 포장된 측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평전 『권양섭』은 인원이 부풀려지고 내용이 조작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권양섭 일가족을 중심으로 실제로 지하당 사업이 이루어졌다"며 통혁당 재건위 사건이 실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다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역사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 사건에 가까이 다가가려면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사월혁명 뒤 자생적으로 탄생한 일련의 공안사건과의 연관선상에서 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양섭과 아내 조석귀를 비롯해 아들 권낙기와 권재기, 동생 권희섭과 권영섭의 아내 김정옥, 처남 김현구 등 일가가 줄줄이 연루된 이 사건은 "일제 강점기의 항일운동과 해방정국에서 분단을 막으려 분투했던 행적과 민주화운동과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은 '권양섭을 기억하고 기록하자'는 제목의 권두언을 통해 "권태영(부친)-권양섭-권낙기(맏아들)로 이어지는 3대의 운동사는 이 민족해방운동사와 통일운동사의 백미이다. 부친은 1919년 3.1운동이 터지자 이에 참가해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아들과는 같은 비합조직에서 활동하다가 통혁당 재건사건으로 함께 체포되었다"며, "가히 '수난3대'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또 "권양섭 운동의 총체는 경상도 통혁당 재건사건으로 집약되는데, 모두 29명에 달하는 온 집안, 온 친적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았다"면서, 권양섭이 9살이던 보통학교 3학년때부터 바짓가랑이나 저고리 동정속에 비밀문건을 감추고 레포(연락원)로 일하도록 한 12살 위 사촌형인 권효섭의 영향과 두번 투옥, 거짓 사망신고를 불사할만큼 투철했고 월북 후 통혁당 재건위 사건의 빌미가 된 유위하를 권양섭에게 소개한 동생 권영섭도 지나칠 수 없다고 적었다.

박 명예의장은 "신념과 이념에 관계없이 항일운동을 하고 통일운동을 한 애국자는 발굴되고 연구되어야 한다"면서 "권양섭의 삶과 활동에 대한 천착은 한국 근현대사에 있어 감춰지고 은폐된 99% 운동사를 복원하는 첫 작업이자, 민족해방운동사와 통일운동사의 혼돈된 퍼즐맞추기의 일환이다. 그의 삶이 판문점선언 시대를 맞아 온전히 복원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김영옥 선생이 권양섭 선생 평전 및 자료집을 유가족에게 봉헌하고 이를 고인의 둘째 손녀인 권다인 양이 받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권양섭 선생이 "일본제국주의자의 강압에 맞서서는 민족해방투쟁을, 분단세력에 맞서서는 조국통일투쟁을 실천하였고 탄압에 맞서 '비합법 조직운동의 외길'을 걸었다"고 회고했다.

18살되던 1935년 첫 구속 이후 1948년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경북지역 노동자대표로 참가했다 귀향길에 체포되어 두번째 구속되었고, 1972년 통혁당재건위사건으로 구속되어서는 21년의 수형생활을 거쳐 1993년에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나 1995년 11월 직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던 끝에 1997년 3월 18일 생을 달리할 때까지 자신을 두드러지게 나타내지 않는 활동가였기 때문에 온전히 그 역사를 드러낼 자료를 모으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1917년 7월 17일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면 유곡리에서 출생한 권양섭 선생의 실제 탄생 100주년인 지난해 7월 17일 평전을 발간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출간 기념식에는 함세웅 신부,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임방규·김영옥·김영승 등 통일광장 장기수 선생 및 통일원로들, 장남수 유가협 대표 등 150여명이 참가했다.

이날 권양섭 선생의 맏아들 권낙기 선생은 "모든 자술서는 자기 자랑에 불과한 것이어서 평전 발간에 반대했으나 지금와서 보니 얘깃거리라도 제공하면 좋았겠다는 후회가 생긴다. 막상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책이 나오게 되니 고맙고 쑥쓰럽다"고 인사를 전했다.

출간기념식 사회를 맡은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은 "1948년 4월 연석회의에 이어 권양섭 선생이 참석한 8월 해주 인민대표자회의에서 사회자가 이날 회의에 695명의 대표자들이 참석했으며, 대표자들의 옥살이 기간을 다 합하니 746년 9개월에 이른다고 하면서 조선의 백성은 이 분들에게 큰 빚을 진 것이라고 소개한 일이 있다"면서 "권양섭 선생이 항일과 통일을 위해 세 차례 26년의 옥살이를 감내했고 아들인 권낙기 선생 17년, 사모님과 동생의 수형기간을 합치면 50년, 사촌형의 징역살이까지 합하면 60년이 넘는다. 오늘 우리는 권양섭 선생의 집안에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권낙기 선생은 부친의 평전 발간에 한사코 사양의 뜻을 밝혔으나 이날 출간기념식 자리에서 '고맙고 쑥쓰럽다'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권양섭 선생 탄생 100주년 평전 및 자료집 『권양섭』에는 이창훈 실장이 모은 자료를 토대로 박소연 작가가 기록한 180쪽 분량의 권양섭 평전과 권양섭 선생의 생전 녹취록인 '수난삼대', '권양섭 선생과 함께 한 옥중일기'(조성우 인터뷰), 말지 1992년 3월호와 1997년 5월호 등에 게재된 기고 및 인터뷰 기사, 대구형무소에서의 기록, 연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

(수정-18일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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