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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이승만 반공의 재검토(하)-박상‘민족일보 다시보기’ <38>
이창훈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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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3  09: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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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일보 다시보기’ 연재를 다시 시작하며

‘민족일보 다시보기’ 연재를 다시 시작한다. ‘민족일보 다시보기’ 연재는 지난 2007년 10월 31일 첫 회를 시작으로 게재돼 부침을 겪다가 2011년 7월 2일 36회를 끝으로 중단된 바 있다.

알다시피 민족일보는 1961년 2월 13일부터 5월 19일까지 지령 92호의 짧은 삶을 살았다. 단명(短命)하긴 했지만 민족일보는 당시 저 유명한 ‘양단된 조국의 통일을 절규하는 신문’ 등 4대 사시(社是)를 내걸고 사월혁명 직후 “한국사회의 새로운 발전과 모색을 대변하는 신문”으로서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통일뉴스가 ‘민족일보 다시보기’를 연재하는 이유는 일찍이 통일뉴스가 민족일보의 얼을 이어받겠다고 국내외에 선언한 바 있으며, 특히 4월혁명 직후 한국사회를 논한 민족일보가 6.15시대를 지나 4.27판문점선언 시대를 맞는 지금 남북관계 발전과 민족통일에 무언가 긍정적 메시지를 줄 것이라는 기대에서이다.

‘민족일보 다시보기’ 란에는 민족일보에 실린 여러 가지 내용이 게재될 것이다. 사설, 논단을 비롯해 인터뷰, 기획연재, 세계의 동향 그리고 생생한 사회면 기사들이 매주 금요일에 한 편씩 실릴 것이다. 게재 방식은 첫째 원본을 싣고, 둘째 그 원본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 싣고, 셋째 가능한 경우 해설을 덧붙일 것이다. 특히 이 작업을 주도하는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께 감사드린다. / 편집자 주

논단/이승만 반공의 재검토(하)-박상

덮어놓고 반공을 위하여는 민주적 제기본권리의 난폭한 유린은 물론 모든 불법 불정 부패마저 합리화될 수 있다는 이승만식 사고방식이 대중들의 반발을 샀고 집권층과 대중간의 이러한 간격은 남한내에 상위한 「두개의 국민」을 형성해 놓았다

대중들로부터 멀리 유리만되어간 정부가 대중들의 무언의 저항으로부터 자신의 지배권을 수호하기 위해 뻔질나게 집어든 것이 반공이란 이름의 방패였다.

이러한 과정이 거듭되는 동안 자신의 고립이 더욱 뚜렸해져감에 따라 가속적으로  「히스테릭」하게 되고 민주주의적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아무런 여유나 자신을 갖지 못하게 된 이승만과 그의 일당은 「설득을 통한 통치」라는 민주적 기본가치의 하나를 포기하고 「공포를 통한 통치」에 호소할 수밖엔 없었고 이것이 결국엔 자신의 몰락을 초래하고 말았다

이승만 자신이 굳이 감추기조차 괴로워했듯이 이승만적 반공이 내포한 가상의 적은 북한공산도당이었기보다는 내부의 반정부세력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정권은 일컬어 「막강한 국군」이 포진하고 있는 휴전선 이북을 전혀 타국시해 버리고 말았고 공산북한으로부터 이미 던져졌으며 또 앞으로 던져질 비군사적인 면에 있어서의 여러 도전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준비를 태만히 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 그러한 것에 대해 이렇다 할 관심조차 표명치 않았던 것이 감추기 어려운 사실이다.

일방에선 권력을 배경으로 한 불법 불정 부패로 배를 불린 자들이 봉건토후처럼 군림해 있고 타방에서 무수한 절량농민들과 실업자군이 기아선상에서 방황하는 조건하에서 집권층이 내세운 반공의 구호가 대중들에 의하여 한낱 타기할만한 헛구호로 밖엔 이해되기 어려웠고 이러한 불건전한 상태는 패배주의만을 무성케 해 놓았다는 것도 부인키 어려운 사실이 되고 말았었다. 

뿐만 아니라 민주적 권리와 좀 더 나은 생활을 희구하는 대중들의 정당한 소리를 다만 용공이냐 반공이냐 하는 극대화된 테두리 안에서만 판단하려 들었고 걸핏하면 「용공」이라는 각인을 찍기를 서슴치 않았던 이정권의 수법이 결과적으로 공산주의 침투에 대한 대중의 저항력을 약화시켜 놓음으로써 공산주의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해도 과언일 수 없다고 해야겠다.

왜냐하면 대중에게 「도대체 무엇을 지키기 위한 누구를 위한 반공이어야 하느냐」하는 초보적인 설명이나 조건조차 제공하지 못했고 결국엔 반공에 대한 전기한 위험스런 개념을 부식해준 이승만적 반공을 탐탁히 여길 자는 누구보다도 현 북한 공산층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퇴영적 이승만적 반공양식이 직각 청산되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국제적인 면에서도 이러한 반공양식이 몰락되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다.

이승만적 반공을 유일한 상표로 내걸은 친서방세력들이 무참한 패배의 고배를 마셔야했던 예를 우리는 중국 「라오스」 「큐바」 「터키」 등에서 보아왔고 기타 지역에서 그러한 사태가 반복되려는 기색을 발견할 수 있다. 

서방진영에게 결코 격려적이라고 할 수 없는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야만 했던 근본적인 원인이 이승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내건 반공이란 것이 대중들의 능동적 참여를 기대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적인 응집점이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겨우 불정부패무능을 은폐하기 위한 구차스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데 있었음이 명백한 일이다.
 
평화적 면에 걸친 동서 양세계간의 경쟁이 앞으로의 세계사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는 방대한 제3세력제국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일익(날로) 격화되어 가는 현재 이미 대중들에게 의해 불신되어 버린 이승만적 반공이 지양되어야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가위(이르자면) 「혁명적인 조류」가 높아져가는 역사의 흐름에 자신을 적응시켜갈 자신에 찬 자세가 갖추어져야할 것이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내세운 이른바 「뉴프론티어」도 결국 미국이 대내대외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의미에서도 그의 정치적 지표가 정확한 현실의 분석 파악에 기초하는 것이라고 평가해줄 수 있다.

「케네디」가 옳게 지적한 것처럼 소극적이며 퇴영적인 태도에 집착하고 있는 한 역사에 낙오하며 구경(궁극)에 패배할 수밖엔 없다.

현재 남북으로 양단된 상태에 있는 한국이 언젠가는 평화적 방법에 의하여 통일될 것이며 또 통일되어야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통일된 한국에서 현재 남북 간에 대립 중에 있는 두 개의 상반된 질서 중 어느 측이 지배적일 수 있는가는 어느 쪽이 대중들에게 더 큰 진보와 찬영을 가져다주었으며 앞으로 약속해줄 수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이승만적 반공 양식이 그러한 결정적 순간에서 「반공」의 우위를 보장할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만일 현 집권층이 남한의 주체적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과감한 선도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다만 폐물이 되어버린 이승만적 반공을 답습하는데 자탄한다면 그들이 반공은커녕 결과적으로 한국의 공산화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끝)

 

(정정=작 22일자 2면 「이승만적반공의 재검토(상)」 중 제2단 제13행 「남한의…」는 「남한에의…」 제3단 제9행 「표방해왔다고 …」는 「표방해왔고…」의, 제4단 11행 「내일에서…」는 「내일에의…」의, 그리고 제4단 제16행 「대하여…」는 「더하여…」의 오식이옵기 정정합니다)

論壇/李承晩的 反共의 再檢討 (下)-朴象
 
   
▲ 논단/이승만 반공의 재검토(하)-박상 [민족일보 기사 이미지]

덮어놓고 反共을 爲하여는 民主的諸基本權利의 亂暴한 蹂躪은 物論 모든 不法 不正 腐敗마저 合理化될 수 있다는 李承晩式思考方式이 大衆들의 反撥을 샀고 執權層과 大衆間의 이러한 間隔은 南韓內에 相違한 「두個의 國民」을 形成해 놓았다

大衆들로부터 멀리 遊離만되어간 政府가 大衆들의 無言의 抵抗으로부터 自身의 支配權을 守護하기 위해 뻔질나게 집어든 것이 反共이란 이름의 防牌였다.

이러한 科程이 거듭되는 동안 自身의 孤立이 더욱 뚜렸해져감에 따라 加速的으로  「히스테릭」하게 되고 民主主義的 寬容을 베풀 수 있는 아무런 餘裕나 自身을 갖지 못하게 된 李承晩과 그의 一黨은 「說得을 通한 統治」라는 民主的 基本價値의 하나를 抛棄하고 「恐怖를 通한 統治」에 呼訴할 수밖엔 없었고 이것이 결국엔 自身의 沒落을 招來하고 말았다

李承晩 自身이 굳이 감추기조차 괴로워했듯이 李承晩적 反共이 內包한 可想의 敵은 北韓共産徒黨이었기보다는 內部의 反政府勢力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李政權은 일컬어 「莫强한 國軍」이 布陣하고 있는 休戰線以北을 전혀 他國視해 버리고 말았고 共産北韓으로부터 이미 던져졌으며 또 앞으로 던져질 非軍事的인 面에 있어서의 여러 挑戰들을 克服할 수 있는 實質的인 準備를 怠慢히 했을 뿐만 아니라 都是 그러한 것에 대해 이렇다 할 關心조차 表明치 않았던 것이 감추기 어려운 事實이다.

一方에선 權力을 背景으로한 不法 不正 腐敗로 배를 불린 者들이 封建土侯처럼 君臨해 있고 他方에서 無數한 絶糧農民들과 失業者群이 飢餓線上에서 彷徨하는 條件下에서 執權層이 내세운 反共의 口號가 大衆들에 의하여 한낱 唾棄할만한 헛 口號로 밖엔 이해되기 어려웠고 이러한 不健全한 狀態는 敗北主義만을 茂盛케해놓았다는 것도 否認키 어려운 事實이 되고 말았었다. 

뿐만 아니라 民主的 權利와 좀 더 나은 生活을 希求하는 大衆들의 正當한 소리를 다만 容共이냐 反共이냐 하는 極大化된 테두리 안에서만 判斷하려 들었고 걸핏하면 「容共」이라는 刻印을 찍기를 서슴치않았던 李政權의 手法이 結果的으로 共産主義 浸透에 대한 大衆의 抵抗力을 弱化시켜 놓음으로써 共産主義者들에게 有利한 條件을 마련해 주었다 해도 過言일 수 없다고 해야겠다.

왜냐하면 大衆에게 「都大體 무엇을 지키기 爲한 누구를 爲한 反共이어야 하느냐」하는 初步的인 說明이나 條件조차 提供하지 못했고 結局엔 反共에 대한 前記한 危險스런 槪念을 扶植해준 李承晩적 反共을 탐탁히 여길者는 누구보다도 現 北韓共産층일것이 分明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退嬰的 李承晩적反共樣式이 直刻 淸算되어야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國際的인 面에서도 이러한 反共樣式이 沒落되어가는 科程을 보고 있다.

李承晩的反共을 唯一한 商標로 내걸은 親西方勢力들이 無慘한 敗北의 苦杯를 마셔야했던 例를 우리는 中國 「라오스」 「큐바」 「터키」 等에서 보아왔고 其他 地域에서 그러한 事態가 反復되려는 氣色을 發見할 수 있다. 

西方陣營에게 決코 激勵的이라고 할 수 없는 이렇한 傾向이 나타나야만 했던 根本的인 原因이 李承晩의 境遇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내건 反共이란 것이 大衆들의 能動的 參與를 期待할 수 있는 하나의 理念的인 凝集點이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겨우 不正腐敗無能을 隱蔽하기 위한 苟且스런 手段으로 轉落했다는데 있었음이 明白한 일이다.
 
平和的面에 걸친 東西兩世界間의 競爭이 앞으로의 世界史의 方向을 左右할 수 있는 尨大한 第三力諸國들이 注視하는 가운데 日益激化되어 가는 現在 이미 大衆들에게 의해 不信되어 버린 李承晩的 反共이 止揚되어야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可謂  「革命的인 潮流」가 높아져가는 歷史의 흐름에 自身을 적응시켜갈 自身에 찬 姿勢가 갖추어져야할 것이다.

美國의 「케네디」 大統領이 내세운 이른바 「뉴프론티어」도 결국 美國이 大內對外的으로 當面하고 있는 危機意識에서 出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意味에서도 그의 政治的 指標가 正確한 現實의 分析 把握에 基礎하는 것이라고 評價해줄 수 있다

「케네디」가 옳게 指摘한 것처럼 消極的이며 退嬰的인 態度에 執著하고 있는 한 歷史에 落伍하며 究竟에 敗北할 수밖엔 없다.

現在 南北으로 兩端된 狀態에 있는 韓國이 언젠가는 平和的 方法에 의하여 統一될 것이며 또 統一되어야한다는 것은 疑心의 餘地가 없는 事實이다.

統一된 韓國에서 現在 南北間에 對立中에 있는 두 個의 相反된 秩序中 어느 側이 支配的일 수 있는가는 어느 쪽이 大衆들에게 더 큰 進步와 粲榮을 가져다주었으며 앞으로 約束해줄 수 있는가에 의하여 決定될 것이다. 李承晩的 反共 樣式이 그러한 決定的 瞬間에서 「反共」의 優位를 保障할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萬一 現執權層이 南韓의 主體的 民主主義를 强化하는 果敢한 先導役割을 擔當하지못하고 다만 廢物이 되어버린 李承晩的 反共을 踏襲하는데 自呑한다면 그들이 反共은 커녕 結果的으로 韓國의 共産化의 터전을 마련한다는 事實을 認識해야 할 것이다.(끝)

 

(訂正=昨二十一日字 二面 「李承晩的反共의 再檢討(上)」 中 第二段 第十三行 「南韓의…」는 「南韓에의…」 第三段 第九行 「標榜해왔다고 …」는 「標榜해왔고…」의, 第四段 十一行「來日에서…」는 「來日에의…」의, 그리고 第四段 第十六行「대하여…」는 「더하여…」의 誤植이옵기 訂正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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