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남북정상회담, 6.12북미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한미군사훈련은 중단되고 남북 간 교류와 각급 회담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서울겨레하나는 7월 4일부터 31일까지 총 6회에 걸쳐 ‘판문점선언시대를 읽는 아카데미’라는 주제로 시민강좌를 진행합니다.

다음은 지난 7월 4일 ‘북미정상회담이 예고하는 한반도의 미래’라는 주제로 김민웅 서울겨레하나 대표가 진행했던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최초의 통일원칙을 합의, 발표한 7.4선언 46주년이 되는 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에 대해 생각해보는 자리였습니다.

강연 : 김민웅 서울겨레하나 대표, 경희대 교수
정리 : 강혜진 서울겨레하나 홍보팀장


 

▲ 서울겨레하나가 4일 개최한  ‘판문점선언시대를 읽는 아카데미’ 시민강좌 첫 강연은 김민웅 경희대 교수가 맡았다. [사진 - 통일뉴스 강혜진 통신원]

우리는 북미정상회담을 해석하기 전에 판문점선언부터 봐야한다

이번 6.12북미정상회담은 과거와 다른 상황에서 이뤄졌다. 4.27판문점선언이 만들어 진 뒤에 만들어진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이전과 다른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북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 군사문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군사문제는 어려우니 쉬운 것부터 하자,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신뢰를 만들어 가자고 했다. 그런데 판문점선언은 어려운 문제부터 풀자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정치군사적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그 이후의 남북관계는 언제든 틀어질 수 있음을 개성공단을 통해 봤던 것이다. 개성공단을 만들 때 내·외국의 정치·군사적 환경에 절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자고 약속을 했으나 정치·군사적 이유를 들어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개성공단을 닫아버렸지 않았나.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강조했다. 과거 6자회담 틀은 남이 판을 벌리는 것이었는데 그러다보니 미국 등의 개입을 고려해야 했다. 그러나 판문점선언은 남과 북의 문제해결을 두 당국이 하겠다는 선언이다.

9·19공동선언 보다 후퇴했다는 평가는 타당한가

언론에선 6.12북미정상회담을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으로 규정했고 회담 후에는 공동성명이 이전 9·19공동선언보다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9·19공동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과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북의 비핵화 의제를 9·19공동선언에선 1항으로 다룬 반면 이번 성명은 3항에 있다. 우리는 이 순서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북 비핵화는 중요의제가 아니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또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라는 단어도 등장하지 않는다. 핵의 해체,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는 경로나 방법이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북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효력이 없는 회담이라고 미국과 우리나라 보수언론들이 비판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평가가 과연 타당한 것일까.

CVID는 왜 폐기될 수 밖에 없었나

이번 성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뢰구축’이라는 단어다. ‘상호신뢰구축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전과 굉장히 다른 논리다. 북의 비핵화로 인해 두 국가의 신뢰가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구축 과정이 있으면 북의 비핵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번 성명을 통해 미국은 비핵화 방법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신뢰구축 단계에 따라 다르며 두 나라간 본질적 문제는 비핵화가 아닌 평화체제 구축이라고 밝혔다.

CVID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에서 나왔다. 악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결전의 대상이자 무장해제를 시켜야 하는 존재이다. 지금 ‘악의 축’ 전략은 폐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CVID 또한 폐기되었어야 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이것을 두고 네오콘들이 비핵화의 완벽한 방법으로 CVID를 계속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CVID는 왜 폐기될 수 밖에 없었을까. CVID는 요구하는 쪽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만 요구하는 일방적 개념이다. 즉, 미국은 하는 것 없이 북에게만 무장해제를 하라는 것인데 이는 주권국가 사이에 적용될 수 없는 논리다. 모든 주권국가가 가장 우선시 하는 임무는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주권을 행사하는 대외적 수단을 스스로 포기하라는 주문은 가능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일 나라 또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구축을 하겠다는 두 국가 사이에 CVID 개념은 끼어들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CVID의 프레임으로 공동성명을 바라보면 평가하기보다 부당한 개념이라고 치고 나가야하지 않나.

트럼프, “오븐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건 좋지 않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노스다코타주에서 열린 유세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오븐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건 좋지 않다”며 “지금은 요리가 완성돼 가고 있는 단계이지만 아직 서둘러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무슨 의미일까. 추수감사절에 먹는 칠면조는 인내심을 가지고 요리해야한다. 하루 온종일 시간이 걸리는데 그 사이에 잘 구워졌는지 확인하려 뚜껑을 열면 맛있는 칠면조를 먹을 수가 없다. 이렇게 완성된 칠면조를 가장이 가족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미국 추수감사절 문화이다.

이 수사가 표현하는 게 무엇인가. 트럼프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니 그 사이에 계속 끼어들지 말고 기다려달라는 것이다. 추수감사절이 미 중간선거가 있는 이후이니 기다리면 좋은 결과를 맛볼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 과정에서 유해송환은 북과 미국이 신뢰구축을 쌓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 될 것이다. 미국은 유해송환에 대해 예민한 국가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사자 유해는 약 6,000구로 추산되는데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다. 사망자들이 잊혀졌고, 마지막 장면은 비극적이며 아직까지도 준전시 상태의 전쟁이다. 타국의 땅에서 죽었던 수많은 청년들은 지난 몇 십년동안 ‘버려진 채’있었다.

이 한국전쟁을 북과 미국이 함께 유해를 발굴하면서 전쟁의 기억을 함께 마무리하는 장면은 미국의 국민, 나아가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트럼프도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남, 북, 미 각국의 내부 사정과 반발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미 자국 내 여론과 언론의 분위기는 좋지 않다. 그나마 트럼프가 네오콘에 둘러싸이거나 군수산업이 성장시킨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에게 호재라면 호재다.

CVID나 비핵화에 우리의 꿈과 상상이 가려질 수 없다

얼마 전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동아시아와 관련한 토론이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그 곳에 조총련계열의 조선대학교 교수도 참가했다. 아마 일 년 전이었다면 그 자리에 있었던 나 자신의 안위가 걱정되고, 조선대 교수도 토론회에 참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동아시아에 새로운 인식의 변화와 지평을 넓히고 있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아시아-태평양체제와 유라시아체제를 양 옆에 끼고 있다. 두 체제가 충돌할 때는 소위 ‘한반도 샌드위치론’이 나온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두 체제를 조정하는 양 날개가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거대한 양 날개를 움직이기 위해선 튼튼한 몸통이 필요하다. 지금, 남북이 힘을 합치면 두 날개를 움직일 수 있으리라. 이제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실험을 해볼 기회가 찾아왔다.

새만금은 70년대 개발논리로 본다면 인간의 어마어마한 위업이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인식이 바뀐 지금은 흉물이 되었다. 이렇듯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이 우리 모두에게 생긴다면 세상을 보는 방식, 해결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때 세상은 달라진다. 북과 미국이 신뢰방식에 따라 해결방식을 채택하겠다는 것처럼 우리도 비전이 달라지면 우리 삶의 해결방식이 달라진다.

인도의 경제공동체 오로빌처럼 우리도 DMZ에서 평화공동체를 실험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세계 청년들이 DMZ에서 평화에 대해 꿈꾸고 살아보는 공동체를 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상상할 때다.

현실을 분석하는 것 못지않게 미래를 그리는 것은 중요하다. CVID나 비핵화에 우리의 꿈과 상상이 가려질 수 없다. 그런 소모적 논쟁 대신 상상하고 꿈을 꿔보자.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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