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먼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살라 두려워하지 말라 (니체)


 그 여자 늑골 아래
 - 황인숙

 그 여자 늑골 아래
 흉가 한 채 있다네.

 난 알지, 거기엔
 붉은 지네 살고 있어.

 놈은 그럭저럭 자리 잡아
 별 해꼬지를 않았고
 그녀 역시 손닿지 않는지라
 그들은 하여간
 그럭저럭 잘 지내네.

 난 알지, 거기엔
 붉은 지네 살고 있어.
 하지만
 나 잘 있어요, 하고
 전보라도 보내듯
 이따금 놈은
 느닷없이 물어뜯네.

 느닷없이 그녀가 몸서리치며
 가슴 뜨끔해하는 걸 보았는지?

 난 알지, 거기엔
 붉은 지네 살고 있어.

 다행히도 놈은 잠꾸러기.
 하지만 바람소리만 나면
 빨간 눈을 반짝 뜨고
 술렁술렁 고개를 쳐든다네.
 오, 제발.
 바람이 불면 그 여자의 손은
 더듬더듬
 담배상자를 찾네.

 난 알지, 거기엔
 붉은 지네 살고 있어.


 강의 시간에 한 수강생이 질문을 했다.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돈키호테를 왜 읽어야하느냐고 묻더라고요. 뭐라고 말해줘야 하죠?’

 아, 나도 기억이 났다. 중학교 다닐 때 돈키호테를 읽으며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창을 들고 풍차를 향해 무모하게 달려들던 엉터리 기사 돈키호테를 상상하며 씁쓸하게 웃었던 것 같다. 

 그 뒤 40대가 되어 우연히 ‘돈키호테’를 다시 만났다. 심층심리학자 융을 공부하며 그의 원형이론을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성격유형이론 엠비티아이(MBTI) 검사를 해 보았는데, 내 성격이 ‘돈키호테형’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쓴 웃음이 나왔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살아온 내가 돈키호테라니? 그러다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 정말 나는 돈키호테였구나!

 나는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아이로 자라났다. 착실하게 학창시절을 보내고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기까지 공상은 많이 한 것 같으나 돈키호테처럼 모험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36세 때, 나는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었다. 두 아이를 둔 가장이었는데, 이렇게 ‘무료한 일상’을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허무감이 바다의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내와 절에 가서 예불을 한 후 아내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자기야, 나 직장을 그만두고 마음 가는 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어!’ 아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아내는 그 때 얘기를 했다. 내 얼굴 표정이 너무나 참혹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 말을 받아주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 될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자유로운 새가 되어 창공을 마음껏 날았다. 아내가 가사를 다 책임지고 처갓집에서 살았기에 아이들은 장모님이 돌보셨다.

 시민단체에 들어가 대학 시절에 못했던 데모를 하고 모 출판사에서 개설했던 시 창작과에 등록했다. 

 밤새 술을 마시며 이 세상을 다 구할 듯이 열변을 토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눈물이 쉴 새도 없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 여자 늑골 아래/흉가 한 채 있다네.//난 알지, 거기엔/붉은 지네 살고 있어.’

  ‘놈은 그럭저럭 자리 잡아/별 해꼬지를 않았고/그녀 역시 손닿지 않는지라/그들은 하여간/그럭저럭 잘 지내네.’

  ‘이따금 놈은/느닷없이 물어뜯네.//느닷없이 그녀가 몸서리치며/가슴 뜨끔해하는 걸 보았는지?’

 아, 내 가슴 속의 붉은 지네가 나를 얼마나 오랫동안 물어뜯었던가? 나는 ‘착한 아들’로 자라며 시퍼런 멍 자국의 가슴을 숨기며 살아왔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직장 동료들과 술집을 전전하고 고스톱을 치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다행히도 놈은 잠꾸러기./하지만 바람소리만 나면/빨간 눈을 반짝 뜨고/술렁술렁 고개를 쳐든다네./오, 제발.’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돈키호테처럼 가출을 해 버린 것이다. 그리곤 돈키호테처럼 천하를 주유했던 것 같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하며 살았다. 아마 남들은 내가 맛이 좀 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주변에서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오랫동안 방황한 결과 나는 이제 꿈꾸는 것이 내 직업이 되었다. 매일 여기저기 강의를 다니며 꿈을 꾼다. 

 ‘바람이 불면 그 여자의 손은/더듬더듬/담배상자를 찾네.//난 알지, 거기엔/붉은 지네 살고 있어.’

 내가 만일 36세 때 가출(출가?)을 하지 않고 직장 생활을 계속했다면 지금 나는 내 가슴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더듬더듬 술병을 찾을 것이다. 내 안의 붉은 지네와 함께 한 평생을 쓸쓸하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어느 날 돈키호테를 자세히 읽었다. 아, 나는 그에게서 나를 보았다. 작가 세르반테스의 마음도 가슴 저리게 알게 되었다.

 작가는 ‘해가 지지 않는 조국(스페인)’이 몰락해가는 것을 보며 돈키호테를 썼다고 한다.  

 작가는 움츠려드는 국민들에게 이렇게 울부짖은 것이다. ‘다시 일어서라! 세상 밖으로 나가라!’

 이 말은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장래 희망 직업 1위가 교사, 공무원인 나라. 돈키호테처럼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젊은이들이 ‘안정’이라는 굴레로 들어가는 이 시대는 얼마나 참담함가!

 그래서 중학생들이 이 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학생인 그 아이는 이런 얘기를 엄마에게서 전해 들으며 그의 가슴 속에서 잠자던 야생 짐승이 깨어날까?

 외국의 많은 나라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 주로 창업을 한다고 한다. 돈키호테로 사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젊은이들에게도 돈키호테처럼 살아갈 여건이 하루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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