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 


 어린이
 - 이정석

 바다로 나가려고 
 몸살하는 
 바구니에 담아 놓은 꽃게들.


 영어 학원을 운영하시는 분에게서 들은 얘기다. ‘아주 오래 전이에요.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감기 증상이 있기에 감기약을 먹였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졸렸나 봐요. 집에 가서 엄마한테 학원 원장선생님이 자신에게 수면제를 먹였다고 이야기한 거예요.’ ‘그 엄마가 만나자고 해서 카페에서 만났어요. 엄마가 대뜸 말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고 있어요. 솔직히 말씀하세요.’         

 아이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그 엄마와도 사이가 참 좋았는데, 그 뒤 아이는 학원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그 분은 너무나 억울하다며 낯빛이 어두워졌다.

 왜 엄마들은 아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까? ‘우리 아이는 착한 아이’ 아마 아이들은 집에서는 다들 착하게 보일 것이다. 그게 아이들의 생존법이니까. 

 그런데 아이들의 거짓말이 ‘나쁜 의도’에서 나왔을까? 아이들은 현실과 비현실을 어른처럼 선명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신화나 전래 동화처럼 현실과 비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아이들의 풍부한 상상력이 어른들 눈에는 거짓말로 보이는 것이다. 

 ‘밀리의 특별한 모자- 기타무라 사토시 지음’라는 그림책이 있다. 밀리라는 어린 여자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자 가게 앞을 지나간다. 밀리의 눈에 알록달록한 깃털이 달린 모자가 쏙 들어온다.

 밀리는 가게로 들어간다. ‘저 알록달록한 깃털이 달린 모자 좀 볼 수 있어요?’ 점원은 대답한다. ‘물론이지요. 꼬마 아가씨.’ 아저씨가 깃털이 달린 모자를 가져오고 밀리는 높은 가격에 놀라 ‘좀 더 싼 것은 없어요?’ 한다. 

 밀리는 지갑을 열어 보여준다. 텅 비어 있다. ‘흠 어디 보자...... .’ 아저씨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이 때 아저씨가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는 지금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하! 꼬마 아가씨에게 잘 어울릴 만한 모자가 있어요.’ 아저씨는 잠시 뒤 상자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이건 아주 특별한 모자랍니다. 꼬마 아가씨, 원하는 대로 모양과 색깔이 바뀌거든요. 모자를 쓰고 상상만 하면 됩니다.’ 

 아저씨는 상자에서 조심조심 모자를 꺼내 밀리에게 씌워주었다. 밀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마음에 쏙 들어요.’ 밀리는 지갑에 있는 것을 몽땅 아저씨에게 주고 밖으로 나왔다.                      

 밀리는 신이 났다. 온갖 모양으로 바뀌는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한다. 공작새 모자도 되고 케이크 모자도 되고 꽃다발 모자도 되었다.

 집에 도착해서 외친다. ‘엄마, 제 모자 어때요?’ ‘모자라고 어디...... .’ 하다가 엄마는 활짝 웃으며 ‘멋진 모자구나! 밀리, 엄마도 그런 모자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엄마도 지금 쓰고 있는 걸요.’ 

 다 읽고 나자 눈시울이 뜨겁다. 우리는 이 동화처럼 살 수 없을까?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는 넉넉한 어른, 사회가 될 수 없을까?

 아이들의 상상력을 학교에 학원에 꼭꼭 가두니 아이들은 ‘바다로 나가려고/몸살하는/바구니에 담아 놓은 꽃게들.’이 된다.

 몸살을 하다가 아이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몸부림친다. 치명적인 장난이 된다. 고층아파트에서 아령을 벽들을 창밖으로 마구 집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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