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세계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냉전구조 해체가 시작되었다. 한반도는 1990년대 초에 일어난 세계사적인 냉전구조 해체에도 불구하고 ‘냉전의 고도’로 남아 있었다. 이념과 체제 경쟁이 계속되어 언제 전쟁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었고 남북 주민 모두는 늘 전쟁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옛 로마의 경구는 전쟁론자들의 금과옥조가 되었다. 남(한)은 ‘섬 아닌 섬’이 되어 해로와 공로가 아닌 육로를 통해 대륙으로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전쟁 없는 세상의 여명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이 낮아지고 육로를 통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수학여행을 가고 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상의 통일’도 머지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남북의 모든 주민들이 평화에 대한 기대를 갖고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성명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남북 대결구조와 북미 대결구조였다. 특히 북미 대결구조는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 파괴의 주범이었다. 남북의 통일에 대한 의지는 미국의 대북 강경책으로 인해 번번이 무산되었다. 남북은 1974년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 상호 체제인정 존중과 평화공존에 대한 입장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는 북미 대결구조로 인해 빛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북은 미국의 간섭이 있는 한 자주적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정리하고 1974년부터 본격적으로 북미 평화협정을 주장하였다. 북미 간 평화공존이 없이는 한반도 평화통일도 요원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남은 ‘북의 남침’을 우려했지만 북은 ‘미국의 북침’을 우려하면서 살아 왔다. 상대방의 선제공격 가능성 논리가 비록 실상이 아닌 주조된 허상일 지라도 일반 주민들이 갖는 불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1950년 6.25 전쟁 시기 완전히 초토화된 북의 입장에서는 ‘미제의 제2의 북침’에 대한 의구심과 공포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북의 입장에서는 6.25 전쟁이 ‘미제’의 억압에 신음하는 남녘동포들을 구원하기 위한 ‘남조선 민족해방전쟁’ 즉, ‘정의의 전쟁’, ‘선의의 전쟁’이었는데 ‘미제’가 이를 가로막았고 미국이 언젠가는 5만명 이상의 미군 피해에 대한 ‘복수의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제2의 6.25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재래식 무기로는 불가능하고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기 시작한 배경이다.

1989년부터 발생한 북핵문제는 30여년 간의 지리한 논쟁 끝에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천명하고 ‘김여정 특사’를 보내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표명한 후 ‘3.6합의’를 통해 남북 정상회담 및 북미 정상회담 의지를 표명함으로써 일거에 한반도 정세를 180도 바꿔놓았다.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가 합의되었고 이것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재확인되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기 포기를 위한 전제조건으로 ‘미국의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을 내걸었다. 무조건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선 마치 북이 무조건적으로 핵을 포기했다고 약속한 것처럼 해석했다. 북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 희생을 통해 개발한 핵무기인데 그렇게 쉽게 포기하겠는가. 경위야 어떻든 이제 북핵 폐기와 포괄적 의미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가 맞교환되는 과정에 들어섰다. 그 여정이 성공하기만을 기대하면서 한 가지 가장 큰 걸림돌을 제기하고자 한다.

6월 12일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수많은 보수논객들은 ‘CVID’가 명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북에 “속았다”라거나 ‘빈껍데기’라고 폄훼하였다. 2005년 ‘9.19 공동성명’보다 못하다고 평가절하하였다. 우리가 ‘완전한 비핵화’라는 의미를 해석할 때 ‘비핵화’가 ‘완전한’ 상태가 되었다면 ‘모든 검증’을 거친 결과 북에는 일체의 핵무기, 핵물질, 핵프로그램 등이 없는 상태인 것을 의미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불완전한 비핵화’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논객들은 ‘CVID’라는 용어가 빼졌다는 이유로 싱가포르 성명을 깍아내리기에 바빴다.

문제는 북이 비핵화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을 미국이 과연 어떻게 해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북은 비핵화 초기조치로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실시하였다. 싱가포르 합의를 지키기 위해 미군 유해송환도 시작하였다. 물론 미국도 8월 예정이었던 UFG훈련 중지, 한미해병대훈련 중지 등을 결정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위대한 협상가”라고 추켜세우면서 비핵화만 하면 “한국처럼 잘살게 도와주겠다. 그러나 돈은 한국, 일본, 중국이 낼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는 대북제제에 관한 행정명령 1년 연장안에도 서명했다. 2중적인 태도인 것이다.

미국은 북의 비핵화의 속도가 느리다고 조바심을 내고 있다. 초기선행조치로 최소한 3-4개월내에, 미국 중간선거인 11월 초 이내에 북의 핵탄두 및 ICBM의 20%정도는 파기하거나 외부로 반출시켜야 한다고 대북 압력을 넣고 있는 것같다. 반면에 미국은 체제안전보장의 초기단계인 ‘한반도종전선언’도 미루고 있고 평화협정, 북미 수교, 제재 해제 및 대북 경제지원 등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은 내놓지 않고 있다. 오직 북이 ‘선 핵폐기’하면 ‘후 보상’하겠다는 전통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즉 ‘리비아식’인 것이다. 사실 리비아식이란 ‘선 핵폐기 후 보상’이 핵심이 아니라 미국 CIA가 민중폭동을 배후조정하여 카다피를 제거한 것이다. 북이 말조차 꺼내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이다.

미국의 협상전략을 몸으로 채득한 북의 협상가들은 미국의 전략을 꿰뚫어 보고 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과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를 누가 지연시켰고 2005년 9.19 공동성명 직후 미국 재무무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란 핵협상을 파기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칭찬 발언에 대한 불신, 미국 주류 언론과 기득권 세력 및 군사복합체 등의 대북 인식이 전혀 변하지 않은 것 등은 북의 비핵화 속도를 느리게 만들고 있다.

미국 보수파들은 북의 인권문제, 생화학무기 문제, 권력세습 및 민주화 문제, 주체사회주의 문제 등을 다음의 대북 압박 카드로 준비하고 있다. 북의 협상가들은 마치 완전한 비핵화만 이루면 북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줄 것처럼 장담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험한 장사가 이익이 많이 남는다”라는 경구를 외교에도 적용하고 있어서 시원시원한 면은 있지만 지속적이지 못한 면이 있다.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어떤 반전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 미국 의회는 2016년 행정부가 맘대로 대북 제재를 해제하지 못하도록 꽁꽁 묶어 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력으로 이것을 풀 의지와 능력이 있는 것인가?

만일 미국이 대북 CVIG를 해주었더라도 이것은 CVID와는 격이 맞지 않는다. 북이 쉽지도 않지만 만일 일단 CVID를 한다면 그것은 말 그대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핵능력을 돌이킬려면 그것은 수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북에게 약속한 종전선언, 평화협정, 관계정상화, 제재 해제 등은 순식간에 파기할 수 있다. 말 한마디면 끝이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일본에 있는 미국의 전략자산들은 2시간 이내에 북을 공격할 수 있다. 미국의 CVIG는 ‘돌이킬 수 있는 것’이다. 북의 전략가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아직 북의 비핵화와 미국의 체제안전 보장 문제가 초입단계에 들어선 상태에서 위와 같은 분석과 전망을 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하루속히 북이 원하는 ‘단계별 동시적’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솔직히 북은 갈 길이 멀다. 사회주의 경제발전 총노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UN안보리 및 미국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조건 성숙을 위해 과감한 핵포기에 나섰다. 본인이 얘기한 대로 “발목을 잡고 눈과 귀를 가리는 세력을 뿌리치고” ‘가본 적이 없는 길’을 가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도 그 진정성을 믿고 말이 아닌 행동이나 문서로 김정은 정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 김정은 정권 보장은 미국의 대북 군사적 불침략에 의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북 내부의 인민적 지지 상승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중국은 벌써부터 ‘북핵 이후’를 대비하여 북을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로 끌어들이기 위한 행보를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일정부분 이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최단기간 내에 3차례에 걸친 북중 정상회담이 그 증거이다.

미국이 진정 북을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유입시키기 원하다면 과감한 대북 유인책을 발표해야 한다. ‘꼼수’를 부려 북의 비핵화만 달성하면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가졌든 미국인 수 천명이 평양에서 활동한다면 미국은 대북 군사 공격을 하지 못할 것이고 북도 미국의 체제안전보장 약속을 믿을 것이다. 그 방법은 대북 제재 해제밖에 다른 길이 없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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