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1. CVID

CVID는 종말을 고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좌초시킬 뻔했던 CVID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CVID 주창자의 대부격인 존 볼튼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북미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볼튼은 이제 더 이상 CVID를 거론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를) 더 이상 명확하게 할 수 없다”고 못박았고, “완전한 비핵화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까지 발언했다. CVID라는 이상론보다는 비핵화 협상의 현실론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과의 협상이 못마땅한 미국의 일부 인사들이 CVID를 거론할 수는 있어도 북미 협상 테이블에서 CVID는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2. 종전 선언

종전 선언이 없어서 불안하다는 아쉬움이 존재한다. 그러나 기우에 불과하다.

북미 정상은 “수 십 년간 지속되어온 긴장과 적대(tensions and hostilities)의 극복”을 다짐했다. 긴장과 적대가 극복되어야 북미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될 수 있고, 한반도와 세계에 평화와 번영, 안정이 주어진다. 전쟁 상태에 있던 북한과 미국이 긴장과 적대를 극복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종전은 사실상 선언되었다.

또한 양 정상은 “포괄적이고 깊이있고 진정성 있는(comprehensive, in-depth and sincere) 의견을 교환”했다. ‘포괄성’은 북미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의제가 논의되었음을 의미한다. ‘깊이’는 양질의 의견 교환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진정성’은 양 정상의 신뢰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어지는 단락에서 “상호 신뢰 형성이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킨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따라서 ‘진정성 있는 의견 교환’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의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은 비핵화의 세부적인 로드맵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종전 선언이 명기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의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의지를 서로 확인했으며, 그 과정에서 남북미 정상이 만나서 종전을 선언하는 이벤트가 남았을 뿐이다.

3. 비핵화에 대한 밑그림 합의

포괄적 합의만이 담겨 있는 공동 성명이 나오다 보니 세부 합의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의 기자회견 그리고 북측이 6월 13일 공개한 회담 내용을 종합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조치가 합의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종전이 곧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상대방을 자극하고 적대시하는 군사행동들을 중지”할 것을 제안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선의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한미군사연습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약속까지 공개했다.

<노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 역시 “미국 측이 신뢰구축 조치를 취해나간다면” 북한 측도 “다음 단계의 추가적인 선의의 조치들을 취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북미 양측은 워싱턴과 평양에서 2차, 3차 정상회담 가능성도 피력했다. 북미 정상은 동시 행동에 입각한 단계적인 한반도 비핵화 조치의 밑그림을 합의한 것이다.

4. 비핵화 조치의 첫 단계로서 종전 선언

북미 양국은 다음 주에 열릴 북미 고위급 후속 협상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 첫 단계 조치는 종전 선언이 될 것이다. 정전협정 체결 65년이 되는 7월 27일에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종전을 선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종전 선언 채택으로 북미 사이에 적대 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게 됨으로써 8월부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동시 행동이 시작될 것이다. 미국은 한미 군사연습을 중단하고, 북한은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 성과에 기반하여 북한과 미국은 2차, 3차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위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또한 대사를 상호 파견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을 위한 행보를 본격화할 것이다.

5. 대등한 핵담판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는 그동안 북한이 제기해왔던 사항들을 시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한미 군사연습이 ‘전쟁(war) 게임’이었음을 그리고 사실상 북한에 대한 도발이었음을 시인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위협은 이제 제거될 것"이라고 함으로써 북한이 미국을 핵으로 위협할 수 있는 ICBM과 핵무기 보유국임을 인정했다.

북한은 세계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핵담판을 벌여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북미 양국은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적인 새로운 관계 맺기에 돌입했다. 동북아시아의 소국이 강대국들(great powers)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핵무기 협상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제정치사는 영토, 인구, 경제력 등 막강한 국력을 보유한 소수의 강대국이 다수의 약소국을 힘으로 제압한 역사였다. 따라서 국력의 모든 면에서 수십 배 혹은 수백 배의 열세에 있는 ‘약소국 북한’이 적대국이었던 ‘강대국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벌여 합의에 이른 것은 국제정치사적 이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쩌면 북한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고”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왔는지도 모른다. 북한은 더 이상 변방의 소국이 아니다. 훗날 국제정치사가들은 2018년 6월 12일을 “새로운 외교 강국”이 출현한 날로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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