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소유는 도둑질이다 (프루동)


 레이스 짜는 여자
 - 김혜순

 송편을 빚다가
 떡 반죽을 두 손으로 마구
 짓뭉개고
 침을 탁 뱉고
 마구 내던지고 싶다가도
 형형색색의 가지런한 송편

 술을 따르다가
 술잔을 내던지고
 깨뜨리고
 깨어진 술병을 들고
 마구 찌르고, 뚝뚝 듣는
 선혈을 보고 싶다가도
 약간 떨며 술잔 모서리에
 찰랑 알맞게

 언제나 고요한 시선, 고요한 수면
 하늘 한번 쳐다보고 한숨 한번 쉬고
 불을 지피다가
 불붙은 장작을
 초가삼간 지붕 위로 내던지며
 나와라 이 도둑놈들아
 옷고름을 갈가리 찢고
 두 폭 치마 벗어던지며
 용천발광하고 싶다가도

 문풍지가 한밤 내 바르르 떨고
 하이얀 식탁보는 눈처럼 짜여지고


 요즘 ‘생계형 절도’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살기 위해 남의 물건을 훔쳐야 하는 심정은 얼마나 참담할까?

 구석기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산에서 나무 열매를 따 먹고 저수지의 물고기를 잡아  먹으며 신나게 살았을 텐데. ‘문명사회’에 태어나 도둑이 되어 버렸다.

 먹을 게 지천으로 넘쳐나는 데 어떤 사람들은 먹을 게 없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세상인가?

 ‘도둑질하지 말라’는 도덕률은 언제 생겼을까? 구석기 시대엔 도둑질이 없었다. ‘내 것, 네 것’이라는 소유 자체가 없었으니 ‘훔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러다 농업혁명(신석기 혁명)이 일어나 ‘내 땅’이라는 개념이 생기고 훔친다는 개념도 생겨났다. 힘으로 많은 땅을 차지하고 권력을 행사하던 지배계급들이 자신들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도둑질 하지 말라’는 도덕률을 만들었다.

 소유물을 갖지 못한 피지배 계급들은 지배계급들에게 노예가 되어 생존을 보존해야 했다.  

 소설가 프루스트는 말했다. ‘열망은 모든 것을 꽃피게 하지만 소유는 모든 것을 시들고 스러지게 한다.’

 ‘레이스 짜는 여자’는 얼마나 시들어 있는가?

 ‘송편을 빚다가/떡 반죽을 두 손으로 마구/짓뭉개고/침을 탁 뱉고/마구 내던지고 싶다가도/형형색색의 가지런한 송편’

 ‘언제나 고요한 시선, 고요한 수면/하늘 한번 쳐다보고 한숨 한번 쉬고/불을 지피다가’

 하지만 그녀의 마음도 고요할까?

 ‘불붙은 장작을/초가삼간 지붕 위로 내던지며/나와라 이 도둑놈들아/옷고름을 갈가리 찢고/두 폭 치마 벗어던지며/용천발광하고 싶다가도’

 ‘문풍지가 한밤 내 바르르 떨고/하이얀 식탁보는 눈처럼 짜여지고’

 ‘소유의 역사’와 ‘남녀 불평등의 역사’는 함께 한다. 농업에 적합한 근육을 가진 남자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갈수록 가부장 사회는 굳어져 갔다.

 겉으로는 고요한 이 세상에 생계형 도둑들이 파문을 일으킨다.

 노자는 말했다. ‘하늘의 도는 남는 데서 덜어내어 모자라는 데에 보탠다. 天之道 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천지도 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남는 것’을 엄청나게 많이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넘치는 것들을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보태주지 않으면 생계형 도둑들의 파문은 점점 커지게 될 것이다. 큰 강둑도 작은 쥐구멍 하나로 무너진다.
 
 노자 또 말했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 天地不仁 (천지불인)’ 그렇다. 하늘과 땅은 냉혹하게 제 이치대로 움직일 뿐이다.

 우리는 생계형 도둑들을 통해 드러난 하늘과 땅의 냉혹한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금 당장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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