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엄수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제27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가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유가족과 추모단체 등으로 구성된 '범국민추모위원회'(명예 추모위원장 김중배, 박순경, 박중기, 백기완, 오종렬, 이석태, 이선종, 이창복, 이해동, 임기란, 청화, 함세웅) 주최로 9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엄수됐다.

유가족과 통일, 노동, 농민, 빈민, 청년, 여성 등 각 부문 인사를 비롯해 1,000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이날 범국민추모제의 총괄 구호는 '열사정신 계승하여 70년 분단적폐 청산하고 사회대개혁 실현하자'로 정해졌다.

1990년 6월 10일 성균관대에서 처음으로 '민중민주열사 희생자 합동추모제 및 6월항쟁계승 국민대회'를 할 때 모신 181명의 영령이 27년을 지나는 동안 680여명으로 늘어났다.

추모제 사회를 맡은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 사무총장은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와 통일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열린 평화와 통일의 시대가 앞서간 민족민주열사·희생자들의 숭고한 헌신과 투쟁, 그리고 실천하는 삶의 정신이 이끌어준 역사임을 알고 기억하고 있다"면서 "열사정신을 계승하여 70년 분단적폐 청산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시대를 열어내겠다는 결심과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함께 만들기 위해 싸워 나가겠다는 결의를 다지자"고 밝혔다.

▲ 왼쪽부터 이창복 명예추모위원장, 송경동 시인, 한충목·김명환·최진미 상임추모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창복 명예추모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한반도의 이 새로운 변화는, 지난 70여넌간 전쟁과 분단의 장벽을 깨뜨리고 이 사회의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 피땀을 바쳤던 숱한 선열들과 민중들의 투쟁과 희생이 이끌어 낸 위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쟁과 분단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세력들은 평화와 통일을 여전히 걸음걸음 방해하고 있다"면서 "더 이상 선량하고 의로운 양심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함께 싸우자"고 강조했다.

송경동 시인은 '역사의 광야에서'라는 추모시(아래 전문)에서 열사의 정신이 우리를 여기까지 함께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앞으로도 고난과 탄압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화와 평등으로 가는 길을 가도록 하여 끝내 승리로 이끌 것이라는 굳은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충목 상임추모위원장은 추모사를 통해 "영령들께서 열망하던 민주, 민생, 평화, 통일의 새 세상으로 향하는 민중의 수레바퀴, 역사의 수레바퀴가 다시 힘차게 굴러가고 있다"면서 △남북의 전면적 교류와 화해 △한일 위안부야합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국가보안법 폐지와 모든 양심수 석방 △민주유공자법 제정 △종속적 한미동맹 종료 △민중생존권 보장과 과거사 진상규명 등 미흡한 과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김명환 상임추모위원장은 추모사에서 "수많은 노동열사들을 만든 노동현장에서 천박한 자본과 적폐정권이 결탁하고, 불의한 사법부의 편협한 재판으로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노동을 탄압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박근혜 정권 양승태 대법원장과 사법부의 사법농단에 대해 언급했다.

또 최저임금법 개악에 대한 항의의 뜻을 표시하면서 "촛불정권을 자임한 문재인 정권이 일시적 지지율에 취해 적폐청산의 임무를 등한시한다면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의 힘으로 적폐청산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겠다"면서 "그 투쟁에는 새로운 적폐를 만들려는 문재인 정권을 비롯한 집권여당인 민주당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도 들어있다. 이를 흘려듣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진미 상임추모위원장은 "열사들이 있었기에 후대들이 길 잃지 않고 지금 여기 서 있다"면서 "한반도 평화통일의 진정한 봄은 분단적폐를 청산할 때 비로소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다짐을 밝혔다.

▲ 장남수 유가협 대표가 유가족을 대표해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유가족을 대표해 이날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전하면서 "열사 한분 한분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씨앗이 되었고 밑거름이 되어서 1,700만 촛불이라는 거대한 나무가 되어서 적폐 권력을 몰아낼 수 있었다. 살아남은 우리들은 이분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올바른 민주주의를 하고 남북통일을 이루는 것만이 열사들에게 빚을 갚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영령들의 열망이었던 자주, 민주, 민생, 평화가 숨쉬는 통일 조국을 건설하자.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산자의 의무를 다해 나가자"고 다짐했다.

이날 본 추모제에 앞서 오후 1시에는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터에서 전국대학민주동문회협의회와 전대협 동우회 등이 학생열사 추모제를 진행한 후 시청까지 행진하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단체들은 같은 시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노동열사 추모제를 열고 광화문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이동하는 등 부문 사전 행사를 진행했다.

서울광장에는 4.9통일평화재단과 구속노동자회, 마석민족민주열사·희생자묘역정비단, 유가협후원회, 이수갑정신계승사업회, 전태일재단, 한국전쟁전후피학살자유족회와 권역별 추모연대 홍보 부스가 운영되었다.

▲ 박행덕 전국농민회총연합 의장, 장애인열사 우동민추모사업회 이원교 대표,  최영찬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 정종성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왼쪽부터)가 범국민추모제 참가자들을 대표해 결의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역사의 광야에서
-2018 민족민주열사 범국민추모제에 부쳐

송경동

지치고 외로울 땐
초롱초롱한 당신의 두 눈동자가
먼 별빛이 되어 다가오곤 했다
보름달 속에 깃든 해맑은 당신이
나를 내려다보기도 했다
당신과 함께 했던 기억이
파도가 되어 밀려들던 날도 많았고
선선한 바람결에 당신의 속삭임이 들려와
주변을 둘러보던 날도 많았다

누구나 그러했겠지만
나의 용기는 당신의 용기였다
간혹 무대에 오를 때 나는 당신의 육성을 떠올렸고
경찰과 맞붙을 때 당신의 창살을 기억했다
실의와 번민 앞에 설 때면
당신의 낙관과 혼신과 결단을 생각했고
온갖 유혹이 다가올 땐
당신의 소박한 꿈과 순정을 생각했다
그러면 위안이 되어
다시 다가온 역사의 퇴행도
독재의 그늘도
잔인한 자본의 공세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게 당신들이 우리의 유일한 책이었고
교훈이었고 지혜였고 길과 등대였다
이 선 너머론
후퇴할 수 없는 역사의 고지였고
오늘도 쉬지 않고 내일로 흐르는 새벽강이었다
지칠 때마다 우리는 당신이라는
뿌리로 다가갔고 당신들이라는
천 개의 고원 만 개의 광야 1억 개의 바다와
푸른 행성들의 아득한 세계 속으로 젖어들곤 했다

그런 당신들을 누가 철 지난 꿈이라 하는가
누가 당신들을 역사의 박제로 만들려 하는가

당신들은 과거에 먼저 간 이들이 아니라
먼 미래를 향해 앞서 간 이들
역사에 공치사는 필요없다
보상이나 바라는 마음도 무용담도 간지럽다
작은 항쟁의 열매나 쫒는 자에겐 미래가 없다

백 만 개의 촛불로 다시 살아난 당신을 보았고
천 만 개의 생동감으로 다시 얼어서는 당신을 보았고
끝내 삼팔선을 넘는 평화의 걸음을 보았고
끝내 특권과 독점을 넘어
평등으로 나아가는 당신의 몸부림을 보았다
그 모든 곳에 당신은 높은 사람으로 서 있지 않았다
떵떵거리는 사람으로 똑똑한 사람으로
특별한 사람으로 서 있지 않았다
당신들은 그 모든 자리의 가장 낮은 곳에 서 있었고
가장 못나거나 힘겨워하는 이 곁에
아직도 어둡고 눈물겨운 자리에
모든 모순의 극점에 저항하는 이들 곁에 늘 서 있었다
당신은 여전히 노동자거나 농민이거나 빈민이거나
장애인이거나 착취받는 여성이거나 청년이다

그게 놀라워
우리 여기까지 함께 왔다
그게 신기해
우리 여기까지 함께 왔다

당신이 있어, 당신들이 있어
평화와 평등으로 가는 이 먼 길이 외롭지 않다
고난과 탄압이 두렵지 않다
모든 억압과 차별과 착취와 폭력의 쇠사슬을 끊고
역사의 광장에서 역사의 평지에서
역사의 광야에서 우리 끝내 승리하리라

▲ 추모공연[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6.15합창단의 추모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동학농민혁명희생자 신위, 한국전쟁전후민간인 피학살자·희생자 신위, 4.19혁명 열사·희생자 신위, 5.18민중항쟁 열사·희생자 신위, 해외민주통일인사 신위 등이 모셔져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열사·희생자 영령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박종철 열사.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김남식 선생.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민중총궐기 대회 중인 2015년 11월 14일 경찰의 살인적 물대포에 의해 쓰려져 의식불명 상태에서 2016년 9월 25일 선종한 백남기 열사(오른쪽)과 지난 2016년 7월 25일 영면한 류종인 선생이 나란히 계신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추모제 참가자들은 영령들 앞에서 아쉬움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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