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담 취소와 재추진, 그 전후 사정

지난 2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5.24)했다가 재추진을 공식화(5.26)하고, 애초대로 6.12 회담을 다시 확정(6.1)하는 등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토록 원하던 회담을 그는 왜 취소했고, 어떻게 그 취소에서 다시 빠져나올 수 있었나?

1) 회담 취소, 트럼프의 취약성

트럼프의 회담 취소는 그의 미국 내 정치적 힘의 크기가 얼마나 허약한지, 또한 북미 정상회담 성공을 방해하는 미국 주류세력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잘 드러낸다. 5월 12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북 선비핵화 요구, 5월 16일 김계관 북 외무성 제1부상의 그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대화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5월 22일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트럼프는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안 해도 좋다”며 정상회담 취소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일괄타결 방식이 제일 좋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물리적 이유가 정말로 존재한다”고 말해, 그동안의 선비핵화에서 물러설 여지를 슬쩍 내비쳤다. 조건 충족을 강조하며 스스로 조건을 낮춘 것이다. 청와대가 한미 정상회담 결과 발표에서 북의 체제안전 보장방안, 3자 종전 선언 등을 논의했다면서,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한 것은 트럼프의 그런 내심과 맥락이 같다.

다음날인 5월 23일 반격이 나왔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란 익명으로 CNN 방송을 통해 “어떤 합의도 행동 대 행동 방식을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속하고 중대한 진전 뒤에 북한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이 합의문에 포함될 것(한겨레 5.24)”이라며, 선비핵화를 명시적으로 주장한다. CNN이 받아 옮길 만한 백악관 실세가 전날 트럼프의 발언을 뒤집은 것이다.

그 다음 날(5.24) 최선희 북 외무성 부상의 담화가 나온다. 미국이 계속 이렇게 나오면 북미 정상회담 “재고려를 최고 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 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담화(5.16)를 통해 “재고려”를 경고한 이후 두 번째였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북에 다가갔다. 5월 24일 맥스선더 훈련이 하루 일찍 사실상 종료됐으며, 태영호의 국가정보원 사직이 보도됐다. 그리고 트럼트는 <폭스 뉴스> 인터뷰를 통해 “단계적으로 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처음으로 단계적이란 단어를 사용, 선비핵화에서 명백히 후퇴했음을 공표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 최선희 담화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고 대화 분위기를 다시 살리려던 트럼프가 돌연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공개서한으로 발표(현지시간 5.24)한다. 따라서 최선희 담화를 회담 취소의 이유로 갖다 붙인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럼 왜 그랬을까? 트럼프가 서한을 “볼턴 보좌관에게 받아 적게 했다(조선일보 5.25)”는 것으로 볼 때, 결정 당시 그의 귀는 볼턴에게 붙들려 있었다. 무슨 말이 트럼프를 움직였을까? “북한이 회담 준비를 위한 사전 실무 협상장에 나오지도 않고 아무런 연락도 없으니(같은 기사)” 회담을 취소해야 한다는 것이 볼턴의 논지였다.

당시 북은 의전, 보안을 위한 싱가포르 실무협상에 불응하고 있었고, 미국은 5월 26일 싱가포르 실무협상을 다시 제안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을 남긴 시점까지 북의 회신이 없었던 것이다. “재고려” 경고 담화 2회, 그리고 실무협상 거부, “그 다음은 북의 회담 취소 발표일 수 있다!” 이런 우려가 트럼프의 가슴에 불처럼 일었다면, 선수를 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선비핵화로 북을 자극한 볼턴이 그 발언에 반응하는 북의 언행을 이용, 트럼프를 구석으로 몰았음은 분명하다.

트럼프의 취소 서한을 공개한 다음 백악관 기자회견장에는 또 다시 익명으로 보도해달라는 고위 관리가 나타났다. 그는 정상회담 취소 이유로 싱가포르 실무회담 불참, 한미합동군사훈련 비난 등과 함께 북이 “북한만 비핵화하라는 요구 등 많은 것들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VOA 5.25)"고 했다. 익명 뒤에 숨었으나 평소 볼턴이 하던 말과 같다. 

2) 회담 취소, 반전 위한 센터링

트럼프가 취소 서한에 ‘김정은 각하’라 부르고 자필 서명을 넣는 등 정중한 형식을 갖춘 것, 서한 발표 당일에조차 “기존 회담이 열릴 수 있고, 나중에 열릴 수도 있다” 미련을 가득 뿜어낸 것은 취소 서한이 본심이기보다는 극적 반전을 바라는 센터링이란 걸 강하게 암시한다.

북은 아홉 시간 만인 그 날 저녁에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를 통해 “아무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이라 응수했고, 트럼프는 다음날(현지시간 5.25) 아침 일곱 시 “따듯하고 생산적인 담화를 받았으며 매우 좋은 뉴스”라고 한 다음, 얼마 후 “대화 창구가 다시 열렸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거기까지, 새로 합의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5월 26일(현지시간),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북미 정상회담 사전 준비팀이 이번 주말 싱가포르에 간다”며 정상회담을 위한 협상 재개에 합의했음을 알렸다.

3) 반전의 길목, 판문점 선언 이행

그 하루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5월 26일(한국시간) 오후 3시부터 2시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렸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들 눈에 띄는 평소의 의전용 대신 은색 차량을 이용할 정도로 극도의 보안 속에 이동했다. 실제 오후 7시 50분 청와대가 회담 사실을 공개하기 전까지 어떤 언론도 이를 다루지 못할 만큼 비밀은 철저히 지켜졌다.

왜 이토록 꽁꽁 감췄을까? 회담 결과를 미리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5월 27일 발표된 전 날의 회담 결과는 크게 네 가지다. 1)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결단하고 실천할 경우, 북한과의 적대관계 종식과 경제협력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다는 점을 전달했습니다> 북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는 누차 공언됐으므로, 이 문장의 알짜는 “트럼프의 적대관계 종식 의지 전달”에 있다. 2) <양측이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고, 정상회담에서 합의해야할 의제에 대해 실무협상을 통해 충분한 사전 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 위원장도 이에 동의하였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김 위원장의 동의”다. 3항과 4항은 ‘판문점 선언 이행 재확인’이다.

1항과 2항이 북미 사이 주고받기로, 북미 정상회담을 되살리기 위한 합의란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거기에 판문점 선언의 이행 재확인이 따라 붙은 것일까. 많은 언론이 초점을 흐리거나 지나쳐서 잘 실감하지 못했을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판문점 선언 이행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트럼프 입장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B-52 전략폭격기 투입설(5.10), 대북전단 살포(5.12) 지원 등 판문점 선언 이행을 차단해 온 그동안의 언행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한 것이다. 북 언론은 5월 27일 김정일 국무위원장이 “6월12일로 예정돼 있는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문재인 대통령의 노고에 사의를 표했으며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보도한다.

2. 트럼프 앞의 높은 허들, 매티스

1) 트럼프,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논의했다

5월 27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북미 정상회담 의제 논의가 시작됐다. 양국의 의전, 보안 실무팀 협상도 개시(5.29)됐다. 6월 1일 트럼프는 김영철 북 통일전선부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존 켈리 미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원에서 그를 맞아 대통령 집무실로 인도하고, 80분이란 장시간 회담을 했으며, 트럼프가 직접 배웅을 하는 등  파격적인 대접이 화제다. 미국 지정, 특급 제재 대상에 대한 응대였으니 더욱 그렇다.

내용에서 주목할 것은 1) 6.12 북미 정상회담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한 것이다. 2) 선비핵화를 공개적으로 버린 것이다. 이는, 그들이 선비핵화의 다른 말로 사용해온 “일괄타결, 빠른 비핵화”란 말을 일절 삼간 채 “협상을 할 것이고, 정말로 과정을 시작할 것”이라며 ‘과정’이란 말을 아홉 번이나 쓴 것으로 객관화됐다. 3)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추가 제재는 없을 것이며, 최대한의 압박이란 용어도 사용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적대관계 해소 의지를 공언했다. 4) 우리는 전쟁을 끝내는 것을 얘기했다면서,  6.12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5) 그럼, 종전논의와 동전의 양면인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말이 오갔을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김영철 부위원장과 전쟁종식과 주한미군 규모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동아일보 6.2)”

2) 매티스, 높은 허들

트럼프가 북과 거리를 좁힐 때마다 나타나는 방해 작업이 또 불거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급이 다르다. 매티스 국방장관이 6월 2일부터 직접 최전선에 나선다. 그는 이날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협상의 대상이 돼서도 안된다(한겨레 6.2)”고 했다. 기존의 “협상 대상이 아니다”가 성에 안 찼는지 “협상 대상이 돼서도 안된다” 아예 쐐기를 박는다.

그러면서, 주한미군은 남북관계와 별개란다. 이제껏 “북의 위협에서 남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더니, 그 말은 어디 갔나. 같은 날 그는 한미 국방장관회담을 통해 “주한미군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는 공동보도문을 낸다. 우리 입까지 묶은 것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6월 3일 북의 노동신문이 5월 30일 시작된 미군 주도 연합 군사훈련 림팩에 우리 군이 참여한 것, 그리고 8월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에 대해 판문점 선언 위반이라며, “대화와 대결, 평화와 전쟁연습은 절대로 양립될 수 없다”고 하자, 바로 다음 날 우리 국방부를 통해 “훈련 일정 불변”이 공언된 것이다. 그러면서 “지난 6월 2일 송영무 국방장관이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 비공개 회담을 갖고 한미 연합훈련을 ‘로키(low-key·저강도)’로 진행하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 6.4)”고 한다. 비공개하던 것을 굳이 공개하는 시점이 절묘하다.

트럼프는 6월 1일, 한국전쟁 종전을 논의했고 6.12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러나 매티스는 한미 군사훈련이 계속될 것이란다. 종전은 전쟁을 끝낸다는 것인데, 전쟁연습은 전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앞면이 없는 동전, 남극만 있는 자석, 이건 성립 불가능하다.

매티스의 전선은 거기 그치지 않는다. 6월 3일 한미일 국방장관회담 직전 “유엔의 대북 제재는 북한 정권이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조치를 보일 때만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선비핵화를 다시 꺼내들었다.

3) 트럼프, 매티스를 넘을 수 있을까?

트럼프는 5월 19일의 미중 무역전쟁 종식 합의를 열흘 만인 5월 29일 뒤집었다. 5월 20일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이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보류한다” 하고, 트럼프 자신도 트위터를 통해 “아주 좋은 일”이라고 했던 그 합의다. 미 의회와 언론 등 주류 세력이 반발하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리곤, 5월 29일, 중국 상품 500억달러어치에 대해 25%의 관세를 6월 15일부터 부과한다고 발표한다. 이는, 6월 2일에서 4일까지의 미중 무역협상을 앞둔 압박 조치였다. 그러나 협상은 6월 3일, 중간에 결렬됐다.

5월 27일 미 군함 남중국해 인공섬 12해리 안 진입, 5월 31일 B-52 남중국해 비행 같은, 군사적 압박의 강도를 더욱 높여야만 중국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고 11월 중간선거에 활용할 수 있다. 매티스의 협조가 절실한 것이다. 그런 매티스를 볼턴처럼 뛰어 넘을 수 있을까.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전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전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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