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른바 ‘재판거래’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사건이 포함되어 피해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정부의 ‘한일 우호 관계의 복원’ 방침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사건에 대해 청구기각취지의 파기환송판결 기대할 것으로 예상’ 등의 대응전략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해결을 도리어 어렵게 만든 2015 한일위안부합의는 물론이거니와, 한일협정이후 지난 53년 동안 어렵게 전진해온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원점으로 되돌리려 했음이 밝혀진 것이다.

▲ 일본 이키섬 덴토쿠지(천덕사)에서 진행된 조선인 유골 법요식에 참가한 한국 시민사회단체. [사진제공 - 겨레하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 유골 131위 넋을 위로하던 날

지난 5월 31일, 일본 나가사키현 이키섬. 덴토쿠지(천덕사)에서 열린 조선인 유골 131위를 모시는 법요식에 다녀왔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평화디딤돌,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 우리 시민사회단체와 일본 종교인, 활동가, 그리고 후생성 관계자와 이키시장 등 100여명이 참가했다.

해방 후 귀국선에 올랐다가 사고를 당한 조선인들. 그 주검은 조류를 타고 규슈 해안이나 이키와 쓰시마 등에 와 닿았다고 한다. 아직 정확히 통계도 내지 못했지만, 섬에는 기록과 증언들이 남아있다. 이번에 모셔진 조선인 유골 131위가 그 수많은 주검들 중 일부이다.

이키섬 등에 방치돼 있던 조선인 주검의 존재를 되살린 것은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노무관리를 했던 후카가와였다. 후카가와는 이끼섬에 매장된 조선인 주검이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피해자들이라고 보고 1976년 매장지를 파헤쳤다.

이끼섬에서 발굴한 유골 86위, 쓰시마 유골 45위는 일본의 사찰 네 곳을 돌고 돌다가 2003년 토쿄 인근 곤죠인 사찰에 안치됐다. 그런데 최근 곤죠인 사찰에서 더 이상 보관이 어렵다고 하자 일본 후생노동성은 후생노동성 창고로 옮긴 뒤 도쿄 전몰자 묘역에 합장할 방침이었다.

일본 활동가들의 정성, 한국 시민사회의 역할을 돌아보다

조선인 유골 131위를 이키섬으로 모실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일본 종교인들의 힘이 컸다. 그동안 히로시마, 나가사키, 오사카 등지에서 조선인 유골을 발굴하고, 또 당신들의 사찰에 모셔온 이들은 곤죠인 사찰 유골이 후생노동성 창고에 처박힐 처지가 되자, 지난 1월 ‘유골봉환 종교자 시민연락회’를 결성해 대응해 왔다. 조선인 유골이 전몰자 묘역에 합장되는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조선인들의 바람과는 먼 일이었기 때문이다.

연락을 받은 한국시민사회도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대응에 나섰고, 유골은 이제 이키섬 덴토쿠지에 모셔지게 되었다.

▲ 강제동원 유골문제 관련 한국시민사회가 일본대사관 앞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기자회견. [사진제공 - 겨레하나]

유골 수습과 봉환에 애써온 고령의 일본 종교인들과 활동가들의 얘기를 듣노라니, ‘우리는, 우리 정부는 무얼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다. 앞서 말한 양승태 사법부가 판결을 미루는 동안, 소송을 제기했던 피해자 9분 중 7명이 재판 결과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시민사회가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해야 할 중요한 이유이다.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일본의 종교인들과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달라진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가 크다. 강제징용 노동자들 중에는 북한에 고향을 둔 이들도 많다. 이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유족을 찾기 힘들거나 모실 곳이 어려운 대다수의 유골들을 남북이 공동으로 봉환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강제동원 남북공동실태조사를 언급한 바 있다. 일제강제동원위원회를 설치하고, 일본 정부와의 유골협의체 구성을 이끌어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 노무현 정부를 계승해 현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만큼 일제강점 청산을 위한 남북 공동의 노력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2015 위안부합의와 화해치유재단 문제 등에 대해 외교부와 여성가족부 등이 취해온 미온적인 태도는 우려로 남아있다. 강제동원위원회 종료와 후속조치도 문제해결을 위해 싸워온 피해자와 활동가들에게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아베 총리가 직접 부산 강제징용노동자상 대응을 요청하고, 우리 정부가 노동자상을 무리하게 철거한 일련의 과정도 이같은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시민사회 연대와 행동이 시작되다

2016년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주축으로 각계각층 시민사회가 참여한 강제징용상건립추진위원회가 용산역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 각계각층의 참여 속에 노동자상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관심과 연대의 시작이다. 연이은 강제동원 유골문제 대응 등의 실천 경험을 토대로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폭넓은 연대도 모색 중에 있다.

▲ 양승태 사법부의 강제동원 ‘재판거래’에 항의한 피해자와 시민사회단체의 공동기자회견. [사진제공 - 겨레하나]

1965년 한일협정은 일제강점에 대한 인정도, 사죄도, 배상도 전제하고 있지 않다. 해방 후 조국이 분단된 것도 모자라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는커녕 인정조차 받지 못한 한일협정에 발목잡혀 있는 것이 해방 73년, 일제강점 청산의 현주소이다. ‘사기업에 의해 고용되었을 뿐, 강제동원된 것이 아니’며, ‘일본과 조선은 한 나라였고, 전쟁 중이었으니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일본의 일관된 주장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식민과 분단의 한 세기가 지나는 지금, 일제강점역사를 바로 세우자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문제는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국가폭력’이다.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 정부로 하여금 이 명백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도록 외교하고, 투쟁하는 것은 일본사회의 양심과 강제징용 피해자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몫이다.

‘식민과 분단’의 한 세기가 지나고 이제 남과 북은 평화의 시대, 새로운 미래를 약속했다. 어쩌면 비로소 일제강점의 청산의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사연도 많고 아픔도 깊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굴곡진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남과 북 모두에게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튼튼한 주춧돌이 될 것이다.

(수정, 6일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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