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6일 1,000여명의 시민들이 국제평화활동가들과 함께 통일대교를 거쳐 도라산평화공원까지 국제여성평화걷기를 진행했다. 도라산 평화공원에서 한바탕 벌어진 평화축제. [사진제공-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작) “역사도 역시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981년 유럽에서 시작되어 1997년부터 평화여성회를 비롯한 국내 여성단체들이 해마다 기념하는 ‘5·24 세계여성평화군축의 날’을 맞이하여 지난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국내외 여성들이 2018여성평화걷기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 행사는 올해 남·북 분단정권 수립 70주년, ‘제주 4·3’ 70주년이 되는 해로서,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분단의 의미,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짚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되었습니다.

국내 27개 여성평화시민단체들로 구성된 2018여성평화걷기조직위원회와 16개국에서 온 30명의 국제여성대표단이 함께 모여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고 판문점 선언 적극지지, 조·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한반도 평화협상 프로세스에 여성의 동수 참여 등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국제 대표단은 특히 행사 내내 ‘4·27판문점 선언’에 대한 놀라움과 경의, 지지를 표명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1991년과 1992년에 이미 남·북·일본 여성들이 분단 이후 최초로 판문점을 오가며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을 고민한 바 있고, 2000년대에도 활발한 남북여성교류가 있었습니다만 여전히 이러한 여성의 목소리와 활동은 분단극복의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음을 상기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여성가족부의 ‘2018 양성평등 및 여성 사회참여 확대’ 공모사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지난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메이리드 맥과이어(Mairead Maguire)와 지난 2015년 북에서 남으로 종단행사를 치른 바 있는 위민크로스디엠지(Women Cross DMZ, WCD), 그리고 캐나다에 근거를 둔 노벨위민스이니셔티브(Nobel Women's Initiative)를 중심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반전·반핵·반군사주의·환경보호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온 여성 평화운동가들이 모였습니다.

원래 남쪽에서 북쪽으로 판문점을 통과하여 개성까지 걷는 남북해외여성들의 평화걷기를 기획하고 북측 여성들도 함께 하기를 희망하였습니다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공식일정은 23일 기자회견, 여성평화촛불, 24일 국제여성평화심포지엄, 25일 여성가족부 장관 오찬, 캐나다 대사관 리셉션, 26일 국제여성평화걷기, 27일 총평가회로 이루어졌습니다.

세계여성들, 평화촛불을 들다

▲ 23일 저녁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상 앞에서 여성 평화촛불 행사가 진행됐다. [사진제공-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5월 23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영국 BBC와 타임지 등 외국 언론의 취재 열기도 뜨거웠습니다. 이 자리에서 메이리드 맥과이어는 “남북정상이 손잡은 판문점 선언은 감동이었다. 외국의 간섭 없이 남북이 힘을 합쳐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이에 동의했습니다.

외국 언론들은 왜 북측이 국제여성평화걷기에 참가하지 못 했는지, 직접 접촉은 있었는지를 물었고, 미국인 참가자들은 미국정부의 북측여행 금지 조치로 인해 직접 평양과의 대화나 행사를 위한 사전 만남이 불가능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남측도 두 차례에 걸쳐 북측 여성단체들에게 공식적으로 초청장을 발송했고, 북측으로부터 일정상 참가는 어렵지만 “남녘의 여성들과 굳게 손잡고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는 회신을 받았음을 공개하였습니다.

오후 7시에는 광화문 세종대왕 상 앞에서 여성평화촛불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원 빌리언 라이징(One Billion Rising, 10억명이 일어나다)’을 시작으로 여성평화춤 플래시몹과 대동놀이를 마친 후 이번 행사의 주요 구호인 ‘판문점 선언 적극지지,’ ‘Yes Peace, No War’ 손 팻말을 들고 주한미대사관 앞을 거쳐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까지 촛불을 들고 행진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는 중국 대표가 자기 마을에서 벌어졌던 일본군의 ‘위안소’ 만행을 열거하는 열변을 토해 다시금 여성에 대한 전시 성폭력 문제를 환기시킴으로써 참석자들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전 정권의 ‘12·28 위안부합의’ 문제를 다시금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국제여성평화걷기 선언...한반도평화협정 체결,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등

▲ 24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세계 여성들, 평화를 말하다'라는 제목으로 '2018 국제여성평화 심포지엄'이 열렸다. [사진제공-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5월 24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세계 여성들, 평화를 말하다(Ushering in a New Era of Peace and a Feminist Future)’라는 제목으로 국제여성평화심포지엄이 열렸습니다.

1부 개회식 및 기조발제에서는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과 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의 축사,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의 격려사, 김성은 평화여성회 이사장과 메이리드 맥과이어의 기조발제가 있었습니다.

2부 패널 발제에서는 국내 3명, 국제 4명의 발표가 있었고, 점심시간 이후에는 3개의 장소에서 3개의 제목, 즉 ‘여성과 군사주의,’ ‘여성과 인권, 평화 만들기,’ ‘여성이 만드는 동북아 평화’를 중심으로 모든 참가자들이 발언하는 형식의 라운드테이블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자리는 매우 다양한 여성의 평화 의지와 선언,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토의되고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국내외 모든 참석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폐회식에서는 다음과 같은 국제여성평화걷기 선언문 총 8개항이 발표되었습니다.

1.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하라.

2. 한반도 비핵화 뿐만 아니라 전세계 비핵화를 실현하라.

3. 유엔안보리 결의 1325에 의거하여 한반도 평화협상 과정에 여성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라.

4. 비무장지대를 평화지대화하라.

5. 민간인 교류 전면 자유화와 이산가족 재결합 즉각 실시하라.

6. 모든 국가는 여성과 소녀에 대한 전시폭력을 금지하라.

7. 북측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라.

8. 군비를 축소하여 여성의 복지와 환경보호에 사용하라.

북미정상회담 개최 촉구 평화 행동

▲ 25일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상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규탄하고 예성대로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하라는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제공-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 국제여성평화활동가들이 이날 저녁 미 대사관 앞에서 진행된 긴급 촛불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5월 25일에는 예정에 없던 일정이 갑작스럽게 잡혔습니다. 오전 11시 30분, 광화문 세종대왕 상 앞에서는 국내외 대표단의 긴급 기자회견이 이루어졌습니다.

5월 24일 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한 통보는 국내외 대표단 여성들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밤부터 새벽까지 토론이 이어졌고 아침에 참가자들의 의견을 조율하여 성명서 내용을 정리하고 긴급 기자회견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북미정상회담 정상개최’를 주장하며 이루어진 긴급기자회견 성명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트럼프 정부는 북측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재고하길 촉구한다.

2. 우리는 미국이 평화를 만들어 주기를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다. 지금 이 순간,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을 멈출 수 없다.

3. 우리 여성들은 평화를 위해 계속 전진할 것이다. 한국 시민들 역시 평화를 위해 계속 전전할 것이다.

4. 우리는 6월 12일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연대의 날로 지정할 것이다.

5.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해 꼭 만나길 제안한다. 이를 위해 남북 정상간 핫라인을 조속히 가동하길 촉구한다.

오전과 오후 각국 대표단은 필리핀, 일본, 미국, 영국, 캐나다 등 한국 주재 자국 대사관을 돌며 ‘판문점 선언’ 지지와 북미정상회담의 정상 개최에 힘 써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통일대교’ 넘어 평화를 위해 걷다

5월 26일에는 1,000 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국내외 대표단이 오전 9시 30분부터 임진각공원 내 납북자 전시관 앞에서 발대식을 시작한 후 통일대교를 거쳐 도라산 평화공원에 이르는 5.5km를 걷는 평화걷기를 진행했습니다.

자전거나 자동차는 다닌 바 있습니다만 민간인들이 통일대교를 도보로 걷는 것은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처절한 분단의 역사를 안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 모내기를 앞 둔 푸르른 논과 국경이 없는 하늘과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며 여성들은 함께 손잡고 걸었습니다.

조금은 무더운 날씨였습니다만 도라산 평화공원에서 대동놀이 등 신나게 한바탕 벌어진 평화축제는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 시각, 문재인 대통령의 차량이 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 통일각을 향해 우리 옆을 지나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해당 군부대의 참가자 체크가 갑자기 까다롭게 이루어진 것도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5일에 이루어진 긴급기자회견에서 외쳤던 여성들의 “남·북이 빨리 만나라”는 요구가 전달된 것 같다는 후일담이 평가회에서 나와 우리를 미소 짓게 했습니다.

분단과 전쟁없는 ‘2020 평화협정’

▲ 25일 대인지뢰 관련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도 북미정상회담의 정상 개최를 촉구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사진제공-안김정애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상임대표]

5월 27일 오전 10시부터 이루어진 국내외 대표단 총 평가회 시간에서는 4박 5일간의 일정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앞으로 우리 여성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국제팀에서는 ‘2020 Peace Treaty(평화협정)’를 제안하였고, 한국 측은 조속하고 직접적인 남북여성교류를 위한 ‘남북여성교류추진위원회’구성, 그리고 ‘에코 페미 농장 만들기’ 등 땅을 매개로 한 실질적인 남북여성 공동프로젝트를 제안하였습니다.

한반도 평화공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더 이상 핵과 전술적 무기 등 ‘무차별 살상무기’를 전제로 한 통상적 ‘군사 안보’가 더 이상 활개 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데 참가자들은 모두 동의하였습니다.

함께 모인 여성들은 갈등과 분쟁과 전쟁이 없는 세상, 핵 공포 없는 세상, 여성에 대한 전시폭력이 없는 세상, ‘#미투’ 없는 성평등한 세상, 여성이 남성과 동수로 참여하는 평화 프로세스를 희망하면서, 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것을 다짐하면서 분단된 나라에서의 긴 여정을 마쳤습니다.

“여성 없이 평화 없다(No Women, No Peace)”

“역사의 수레바퀴는 두 개로 굴러가야 한다”

“만나야 평화고, 만나야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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