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주어진 물려받은 환경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마르크스)


 하 늘  
 - 박노해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 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 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 수도 살릴 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하늘처럼 뵌다
 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시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代代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것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초등생 버스 용변 사건> 교사 벌금 800만원’  이 사건에 대해 한 초등학교 교사는 분노했다. 요즘 부모님들 어떤지 아세요? 아이가 아파도 막무가내 학교에 보내요. 전화해서 아이를 집에 보내겠다고 하면 ‘학교가 아이를 책임져야 하지 않아요?’하고 말해요.

 나는 그 교사의 말을 들으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 사건이 교사와 학부모의 ‘진흙탕 싸움’으로 끝나고 말 것인가?  

 이 시대의 처세법은 한마디로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나부터 살고 보자!’이다. ‘함께 사는 윤리의 실종’이다.

 이 사건에 대해 부모는 부모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교사는 개념 없는 부모를 탓하지만 개념 없는 교사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아마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비해 매뉴얼들이 만들어지고 각자 책임을 면하기 위해 매뉴얼대로 하려 할 것이다. ‘왜 체험 학습을 하지?’하는 근본문제는 사라지고 하기 싫은 숙제하듯이 체험학습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 세상은 기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역사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우리는 물방울 하나하나가 되어 강물 따라 흘러갈 수도 있고 강물의 물줄기를 우리 뜻대로 흘러가게 할 수도 있다. 
   
 루소는 ‘개인 의지’가 ‘일반 의지’라고 말했다. 우리 ‘개개인의 의지가 우리 모두의 의지’라는 것이다.

 우리 ‘개개인이 진짜 원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에는 개개인의 의지가 모아지는 시스템이 없다. ‘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가 모두 유명무실하다.

 그래서 각자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각성해야 한다. 이대로 가면 제대로 된 교사도 되지 못하고 부모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언젠가는 참혹하게 그 대가를 치룰 때가 온다는 것을.

 우리는 먼저 우리 교육을 짓누르는 ‘검은 하늘’을 보아야 한다.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모두 하늘처럼 뵌다/아니,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검은 하늘이시다’

 우리 교육의 머리 위에 드리운 ‘신자유주주의 검은 구름’ 그 구름 위에 앉은 힘 있는 사람들, 그들로부터 교육이 독립해야 한다. 교사와 학부모는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교사들은 개념 없는 학부모들을 이해해야 한다. 얼마나 사는 게 힘들었으면 그렇게 몰상식하게 되었을까?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학부모님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리하여 학부모님들과 함께 꿈꿔야 한다.

 ‘나는 어디에서/누구에게 하늘이 되나/代代로 바닥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박노해 시인이 꿈꿨듯

 ‘그 사람에게만은/이제 막 아장걸음마 시작하는/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것지’

 교사들과 학부모님들은 함께 꿈꿔야 한다.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짓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서로를 받쳐 주는/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그런 세상이고 싶다’

 포이에르바하는 말했다. ‘현세가 힘들면 내세의 행복을 꿈꾼다’ 우리는 얼마나 헛된 희망으로 삶을 탕진하고 있는가? 헛된 종교적 믿음의 힘을 우리의 삶을 생생(生生)하게 가꾸는 데 쏟아야 한다.

 우리는 조상님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것을 물려받았는가? 차고 넘치는 너무나 풍요로운 물질, 정신문명을 보라! 우리는 ‘나는 무엇을 물려 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교사가 개념 없는 학부모를 탓하고 학부모가 개념 없는 교사를 탓하는 것은 얼마나 좀스러운 생각인가?

 큰 역사의 강물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사건을 해결하는 아주 작은 실마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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