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 정치학 박사(북한정치 전공) · 『수령국가』 저자 · 21기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본인은 지속적으로 ‘제2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전제 하에 본인은 ‘제대로 된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 수령국가체제’라는 큰 주제를 갖고 왜곡된 북한이해를 바로잡고자 (이슈가 있을 때마다) <통일뉴스>에 정기 기고 글을 게재하고자 한다. 

동시에 4.27 판문점선언과 6.12 싱가폴 북미선언 이행과정에서 있을 수도 있는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정론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의미도 담아내고자 한다. 또한 이미 사문화되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생명력과 위력을 가지고 있는 분단적폐의 제도적 주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는데도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정상국가와 전략국가 사이: 북한은 왜 전략국가이면 안되는가?’는 상, 중, 하로 연재될 것이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그 본질적 왜곡에 해당되는 ‘수령제 사회와 우상화 문제’, ‘백두혈통에 대한 이해와 오해 문제’ 등 이런 주제가 우선적으로 다뤄질 것이다. / 필자 주


2018년 5월 24일부터 27일 사이 국제외교사는 일찍 있어본 적 없는 롤로코스트를 경험하였다.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되고, 불과 하루 만에 다시 예정대로 정상회담 추진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대부분의 국내외 언론들과 전문가들이 분석해낸 것은 선택한 단어들에는 비록 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트럼프, '협상전략' 아니었나?”로 치켜세우고 있다. 어이가 없어도 너무 어이가 없다. 북한이 사용할 때는 너도나도 달려들어 아주 극단적 의미의 ‘부정적인’ 벼랑끝 전술(Brinkmanship)로 몰아붙이더니만, 막상 미국이 사용하니 아주 ‘훌륭한’ 벼랑끝 전술이 둔갑되는 그런 기준 앞에 실소를 금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힘이 전부는 아닐 텐데 말이다. 
  
생각해보시라. 그 어떤 하나의 정치적 선택이 정치·군사적 용어에서 쓰여 지는 ‘전술’이 되기 위해서는 그 나름의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고 있어야만 그 제격에 맞는 것이다. 제아무리 벼랑끝 전술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이 선택한 것은 눈뜨고 살펴봐도 합리성과 정당성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있다면 오직 북미정상회담을 거부해야 하겠다는 명분 찾기에 급급한 나머지 현상과 본질을 왜곡한 미국의 처량함만 보일 뿐이다.
  
어떻게? 그것은 이번 회담이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듯이 세기의 회담이지 않던가? 그런 회담이 취소되었다, 그렇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합당한 원인과 근거가 충분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그 정당성과 합리성을 띌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그런데 고작 내세운 변명사유가 (그것도 외교 총책임자가 아니라) 외교 실무담당자가 내놓은 개인담화를 핑계 삼아 취소했다?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우선은 왜 그런 개인담화가 발표되었는가에 대한 역지사지의 원인분석이 없다. 볼튼(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과 펜스(미 부통령)의 발언에 대한 최선희 부상의 담화는 북측으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또는 불가피한 대응적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이는 북미 두 국가가 기간 100여년의 대결을 종식하고 화해와 평화, 수교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기(氣) 싸움 성격이 강했고, 그 흐름에 역행하는 대응에 대해서는 어느 상방이라 하더라도 그 회담 당사국으로서는 응당 대응할 권리가 있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발언을 이유로 들어 회담을 취소한다? 그것도 세기의 회담을. 해서 오히려 그 상황을 이해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 된다. 열 백번 복기하더라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매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그 취소 배경과 이유가 좀 다른데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다시 말해 미국 내 복잡한 정치 역관계에 따른 본질적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른바 회담을 끝까지 방해하려는 신(新)네오콘 세력과 회담추진 세력 간의 파워 게임 산물로 보는 점 말이다. 볼튼과 펜스로 대변되는 신네오콘 세력과 트럼프와 폼페이오로 대변되는 회담추진세력간의 알력대결이 그 본질이었다는 말이다. 
  
그런 본질을 보지 못하고 북미회담 취소원인을 북한이 제공했다? 참으로 못난 분석이고, 참으로 미국적 분석이다(사대적 분석이다). 촛불민심도 있고, 참여민주주의가 일정 궤도에 올라 자랑할 만한 대한민국이건만 미국 앞에서는 그렇게 한없이 작아지는 그런 대한민국의 모습을 본다. 씁쓸하고도 가련하다.  
  
북한을 싫어한다는 것과, 그것과 있는 것을 그대로 보고 그 토대 위에서  전략과 전술을 짜야하는 문제는 엄연히 다른 문제인데도 말이다.  
  
해서 이번 그 결론은- 회담 취소에서 다시 재추진까지 단 하루가 걸렸다고 한다면 조변석개도 이런 조변석개가 없다고 결론 내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한 분석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서 대한민국의 역할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의 ‘협상전략’이라고 분석해내는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 분석이다. 과히 역대 급이라 할 만하고, 그 어떤 변명으로도 국제사회의 눈총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동시에 미국의 신뢰가 하늘아래 떨어졌고, 미국외교의 치명적 약점도 잘 들어났다. 
 
이 정도 해놓고 할 말은 매우 많지만, 이제 그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번 글(상)에서 밝혀낸 바와 같이 북한은 정상국가론에 대한 대응으로 보통국가론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은 우리가 그러한 북한의 주장에 귀 기울일 여유와 제대로 된 북한 들여다보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유는 정권이 교체되어 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기는 했지만, 여전한 것은 북한을 들여다봄에 있어 반공·반북이념과 종북이데올로기, 국가보안법, 거기에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경제적 삶의 어려움은 북한을 이해하는데 있어 어느 한 방향으로 인식할지를 미리 정해놓고 그런 방향으로 인식하는 스탬피드 현상에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북한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며 이 상황과 조건이 변화되지 않는 한 수천수만 번을 반복해서 들여다봐도 결과는 똑 같을 수밖에 없는 그런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우려 또한 매우 깊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흐름은 두 개이지만, 하나의 결론, 그렇게 말이다.   
  
그 첫째는 우리가 흔히 일컫고 있는 분단적폐세력들의 인식방법이다. 북한 악마화 프레임에서 절대 벗어날 생각은 없고,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 붕괴론’ 또한 이제까지 단 한반도 맞아 떨어진 적이 없는데도 마치 종교 교리(敎理)와도 같이 지금도 여전히 신봉하고 있다. 북한체제 그 자체와 그에 관한 사실과 현상을 왜곡시키는 인식방법인데도 말이다. 
  
두 번째 흐름은 지금의 정부인 문재인 정부 때 형성된 인식방법론이다. 주로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같이 맞춘 인사들이 그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해찬 의원, 문정인 교수,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북한의 전략국가라는 위상을 부정하고 ‘정상국가론’으로 치장하는 주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두 흐름이 하나의 결론을 갖는다? 의아할 수도 있겠으나 분명 그렇다. 비록 그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종국에는 자유민주의주의체제의 절대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는 말이다. (차이가) 있다면 한쪽은 극단적 형태의 반공·반북이념과 만나져있고, 다른 한쪽은 미국적 인식과 시각의 결과로서 인식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자본주의라는 잣대로 북한식 사회주의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희망적 사고로 분석해내는 자본주의 우월적 관점과, 그 관점은 필히 사회주의체제를 천하게 보는 발상이 깔려있다는 사실이고, 북한의 수령제 사회주의체제는 더 이상한 체제로 인식되는 그런 또 하나의 변형된 비북(非北) 논리라는 점 때문에 이 둘은 비록 그 인식경로는 다르다고 할 수는 있지만, 하나의 결론으로 만나진다는 점에서는 분명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전자는 두말할 것도 없고, 후자 또한) 경계하고도 또 경계해야할 인식방법론이 되는 것이다. 

[팩트체크 하나]
  
위 두 번째 주장은 친미 일변도적 관점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용미이고, 저열한 반북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좀 더 세련되게는 개량주의적 인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이론적) 원형은 국민의 정부시대까지 거슬려 올려간다. 6.15시대 초기에 북한의 실리사회주의 전략에 대해 ‘개혁·개방’ 개념으로 왜곡한 사례가 그것이고, 그 인식은 결국 북한과의 전면적 관계개선을 내오는데 상당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한 오류가 또 현 문재인 정부에서도 발생하려 하는 것이다. 되풀이 민주정부 한계의 한 단면이고,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시대는 통일의 새 시대로 향해 나아가는데 그 인식은 여전히 ‘개혁·개방’이 가능하다는 인식에 머물려 있으니, 이 어찌 평화와 번영, 통일의 새 시대를 올곧게 맞이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조성렬 수석연구위원은 큰 틀에서는 이들과 인식의 궤를 같이하고 있으나, 좀 특이한 것은 전략국가라는 개념 그 자체를 전면부정하기보다는 왜곡변형을 내오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북한의 전략국가라는 개념에 대해 “미국과 협상을 전략국가의 지위로 한다는 의미”라며 북한이 “비핵화가 되면 전략국가의 지위를 더 이상 갖지 않는다(<통일뉴스>, 2018-04-19)”라고 해석해낸 것이 그것인데, 의역하자면 북한이 전략국가가 되고자 했던 목적이 미국과 협상하기 위해서이고, 그렇게 협상이 성공하여 비핵화되면 더 이상 핵무기를 갖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북한이 더 이상 전략국가가 아니라는 이상한 논리를 들고 나온 것이다. 참으로 주관주의적인 인식이고, 전략국가의 개념을 매우 한시적이고 전술적 개념으로 왜곡시키는 방식이다.
  
그리고 위 두 번째 주장에서 오버-랩 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발언된 ‘따로 또 함께’(문장: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가 만에 하나 ‘양국체제론’의 연장된 인식이라면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라는 사실이다. 즉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만 구축된다면, 분단된 상태가 오래 가 설령 따로 있다 하더라도 크게 나쁠 것까지는 없다는 것이 그 논리의 핵심이라면 이는 헌법적 정신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의 정상국가론은 단순히 북한 들여다보기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우리 내부를 향한 이념논쟁까지도 유발시켜 내고 있는 프레임인 것이다. 해서 그 발언에는 문재인 정부를 믿고 싶다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문재인 정부가 우려스러운 이유가 되는 것도 사실이 된다. 

  
하지만 독자들이여,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모든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할 때도 북한은 그 시간을 동결시켜 그 어느 국가보다 확신에 찬 사회주의 강성국가와 수령제 사회를 지향해낸 그런 국가이다. 그러한 북한은 보이지 않고, 아주 가난하고, 곧 망하거나 그렇지 않는다하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개혁·개방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본주의체제로 충분히 흡수통합이 가능할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고, 보고 싶은’ 그런 주장만 계속하여 듣고만 있어야 하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이 정상국가론에 숨어있는 정확한 의도를 읽어내어야만 하는 것이다. 복잡하지도 않다. 최근에 들어서야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화두가 되는 것인지를 보면 금방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이 그렇게 북한의 정상국가론을 들고 나와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가 발생했다는 말이다. 아니 심각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고, 그 한가운데에 북미관계 정상화가 있다.  
  
웬 북미관계 정상화와 정상국가론 조합?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조합일 수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그렇게 조합시켜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기간 미국에게 북한은 악마화된 불량국가였다. 그런데 그런 국가와 관계정상화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런 국가와 관계를 정상화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 명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그 명분이 북한의 정상국가론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장에는 치명적 약점 3개가 있다. 
  
그 첫째는, 국가체제에 그 무슨 정상과 비정상이 있으랴. 모든 국가체제는 그 국가와 민족만이 갖는 역사성과 현실성, 보편성과 특수성, 조건과 상황이 결합된 공고한 결집체라고 한다면 그 체제선택은 그 국가와 민족을 이루는 구성원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같은 체제 내에서도 그 정부조직과 운영형태는 당연히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체제를 선택하든 사회주의를 선택하든 말이다. 그런데도 마치 국가체제에 정상과 비정상, 정의와 불의가 있는 듯 자꾸 구분 짓는다면 그것 자체가 불순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각자 체제를 존중해주면 그만일 것을 말이다. 
  
두 번째는, 궁극의 무기, 핵을 일찍부터 가져 유일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해온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가 그 무기를 가지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상상할 수 없는 극강의 제재와 압박을 이겨내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면, 이는 분명 유일 초강대국의 압박과 제재를 뚫고 핵을 보유한 그 국가가 승리한 것이 이치적으로 맞는 것이 된다. 그런데도-이렇게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부정해야 한다면, 거기에는 분명 그렇게 부정해야만 하는 유일 강대국의 깊은 고민과 속내가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 더 타당한 인식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합리적 인식이다. 
  
다시 말해 분명 그 실체적 진실은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선언(2017-11-29)을 통해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을 실패로 끝내게 했고, 그 결과 미국은 북미대화에 응할 수밖에 없는,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운전자역할도 존재하는 그런 북미정상회담이 2018년 6월에 개최될 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엄연한 사실, 그렇게 마련된 북미정상회담에서 체제보장과 비핵화가 맞교환되는 방식으로 세기의 대결이 종식되어지려 한다는 그 사실,  그런 상황을 외면한 채 북한이 자유민주주의국가체제가 아니라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삼척동자가 다 아는 그 일반의 인식수용법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 야만적 발상에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현 모습이라면 이 또한 정상적이지 않다는 그 사실을 말이다.  
  
합리적으로 보나 경험적으로 보나 충분히 설명될 수 있고, 객관적으로 인식되어질 수 있는 그런 문제를 괜한 억측이라고 그렇게 부정해서는 안 되는데도 말이다. 

[팩트체크 둘]
  
최근의 북한태도 변화, 남한을 향해서는 고위급 회담(5월 16일 예정)의 취소, 미국을 향해서는 북미정상회담 재고 발언에 미국과 대한민국의 대응태세를 보면 위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북한의 그러한 도발에 대해 미국은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으로 그 반발을 무마하려 하고 있고, 대한민국은 ‘한고비 넘겼다’며 안도하는 모습인데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안일한 생각이고, 사태의 본질을 잘못 짚어도 한참 잘 못 짚은 것이 된다. 
  
왜냐하면 사태의 본질은 미국이 마치 북한 체제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승전국 행사하는 것에 있으며 이에 부화뇌동하는 문재인 정부를 향한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인데, 이를 위와 같은 인식에 빠져있다 보니 그 사태의 본질을 바로보지 못하고 체제보장과 경제지원 운운으로 해결될 수 있는 냥 그렇게 북한의 감정을 자극하고 자긍을 무시한데 있기 때문이다. 즉 북한은 비핵화를 통해 체제보장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를 확약 받으려는데 있음인데 그걸 너무나도 모르는 대한민국이다. 그런데도 위와 같은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우월적 사고방식에 젖어들어 지금의 정세국면을 들여다보면 체제보장과 적대정책 포기를 같은 개념으로 볼 수밖에 없고, 그 인식으로다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려하니 엄청 큰 사달이 생긴 것이다.
 
그 두 개념-체제보장과 적대정책 포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 시혜적이냐, 대등하냐. 현상적이냐, 본질적이냐가 그것이다. 즉 체제보장에는 수동적·시혜적·현상적 개념이 가깝다면, 적대정책 포기에는 능동적·대등적·본질적 개념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체제보장이라는 시선으로는 북한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제대로 된 협상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해서 대등하고도 호혜적 관점의 철저한 파트너십만이 그 정답이 되는 것이다.

그 세 번째는, 다음과 같은 상황인식을 하면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과 김정일의 북한은 예외 없이 미국과 담판으로 그 적대성을 해소하려 했다. 끊임없이 직접적인 구애도 했고, 관련국의 도움을 받아 회담에 나서려고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저러한 이유와 핑계로 매번 좌절되거나, 거부되어졌다.(실질적으로 말이다)    

그러던 것이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그 관계가 끝장나려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 미국이 북한의 그러한 요구에 대해 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그러한 그 어떤 결정적 이유가 발생했고, 그렇게 담판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정상회담이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생각 아닌가. 그러니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고와 추론능력을 가진 인사들과 국가들 모두는 이번 6.12 싱가폴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이른바 북한의 전략적 승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발언은 명확하다. “원숙한 김정은, 이번 판 이겼다…전략적 목표 이뤄(타스통신, 2018-01-11, 현지시간)”

그래서 모든 이들에게 당부한다. 미국이야 미국이 처한 조건과 상황으로 인해 북한을 그렇게 포장시켜 자국의 합리화 과정이 필요하다하더라도, 즉 체제보장과 핵의 맞교환이야 말로 미국과 수교하면서 비로소 북한이 야만국가, 불량국가, 세습국가, ‘악의 축’ 국가에서 광명을 찾아 정상국가가 되었다는 논리가 필요했다 하더라도 우리-우리 대한민국은 꼭 그럴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하는 점을 꼭 인지해달라고 말이다. 
 
 그냥 같은 민족이 오랫동안 지속된 분단의 상태에서 체제경쟁에다 적대하고 대결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전략적 판단으로 핵을 보유했고, 그 핵으로 모처럼 찾아온 남북, 북미 해빙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6.15와 10.4의 정신에 입각한 민족공조의 관점에서 그 문제를 풀어가려하는 그러한 인식정도를 해 내면 정말 딱 좋다고 말이다. 정말 그렇게는 안 되겠는가? 꼭 그렇게 미국과 인식을 같이 해야만 하겠는가?
  
굳이 그렇게 인식하고 싶다면-미국과 같은 인식을 하고 싶다면 이 말만은 꼭 남기고 이번 글을 마감할까 한다. 
  
서글프지만 또 비유이다. 마치 명이 청에 의해 망했으나, 망한 그 명을 사대의 예를 다해 숭배해야 한다는 그 고집 그것 때문에 발생한 것이 병자호란이라고 한다면, 그 같은 인식의 연장선상에 이번 북한의 정상국가론이 있다고 한다면 과연 너무 과한 발상일까? 그렇지를 않길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GDI 40배 차이 난다고 그렇게 좋아하는 우리인데, 또 우리 스스로 이 인류가 만들어낸 정치기제 중 현존하는 것 중 가장 합리적이고 잘 되어져있다고 강변하는 것이 민주주의체제라고 한다면, 그런 체제를 갖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인데 그 대한민국의 정신건강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다면 ... 
  
제발 조잡한 논리와 사대(事大)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계속>   
 

 

저서로는 『수령국가』(2015)외에도 『사상강국: 북한의 선군사상』(2012), 『세습은 없다: 주체의 후계자론과의 대화』(2008)가 있다.
강의경력으로는 인제대 통일학부 겸임교수와 부산가톨릭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를 역임했다.
주요활동으로는 전 한총련(2기) 정책위원장/전 부산연합 정책국장/전 부산시민연대 운영위원장/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상임이사/전 민주공원 관장/전 하얄리아부대 되찾기 범시민운동본부 공동운영위원장/전 해외동포 민족문화·교육네트워크 운영위원/전 부산겨레하나 운영위원/전 6.15부산본부 정책위원장·공동집행위원장·공동대표/전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포럼’위원/현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부산지역본부 운영위원(재가)/현 사)청춘멘토 이사/현 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현 6·15부산본부 자문위원/현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외 다수가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