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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공기를 많이 마신 사람들과의 울산바위 산행<산행기> 615 산악회 동해안 기행
배경석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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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7  09: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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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석 /  양심수후원회 회원

 

사람의 기억이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제 때에 정리해 놓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된다. 회의록이든 산행기든 마찬가지다. 이 글은 지난 주 그러니까 5월 19일 밤과 그 다음날의 기록이다. 나는 좀 특이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기행을 다녀왔다. 그 사람들과 기행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늦은 밤, 일군의 사람들이 서울역 맞은편에 모여들었다. 반가운 사람들이 만나면 으레 있는 큰 소리 인사도 없이 그저 반갑다는 표시로 악수와 목례만 있을 뿐이었다. 서울역발 마지막 기차도 떠난 늦은 시간이라 대부분의 길거리 상가는 셔터가 내려졌고, 마지막 술꾼들이 남은 힘을 토해내고 있는 맥줏집 몇 군데만 희미한 불빛을 내고 있었다.

모여든 사람이 얼추 서른 명이 되었을 때 쯤, 버스는 출발하였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준비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날짜만 정해진 산행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보는 집사람이 산행 총무의 간곡함에 못 이겨 동의를 해 놓은 터라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나 이외에도 친하게 아는 사람이 같이 가자는 말에 따라 나선 사람이 몇 되는 것 같았다.

   
▲ 오르면서 바라본 울산바위 풍경. [사진제공-6.15산악회]

산악회 총무가 일정을 소개하자 여기저기서 “우리 설악산 울산바위 가는 거야”라는 놀라움이 뒤따랐고, “통일전망대 갈 때 반공교육 받아야 하는데, 거긴 뭐 하러 가”라는 볼멘소리도 가볍게 들렸다. 험한 세월을 헤쳐 오면서 터득한 지혜와 사람에 대한 믿음 그리고 닥치면 한다는 용맹으로 다져진 사람들이다 보니 리더가 뭘 하자고 해도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 모임의 첫 번째 특징이다.

이제는 서울에서 설악산이 있는 속초까지는 지하철로 인천에서 의정부 가는 것보다 더 가깝다.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싶으면 곧 설악동에 도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 떠난 버스가 2시가 조금 넘자 설악동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은 듯 싶어 버스에서 미적거리다가 바깥에 나오니 새벽 3시가 못되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 박혀있다.

설악동 매표소 매표 개시 시간은 새벽 3시지만 매표소 직원은 누가 공짜로 통과할까 싶어 그 이른 새벽에 환한 불빛을 켜 놓고 눈을 부라리고 있다. 말이 없을 리가 없다. 외설악 그 넓은 땅의 상당부분이 신흥사 소유라는 것과, 산을 다니면서 절에 들어가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매표를 해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 그리고 비싼 입장료에 대해 드러내 놓고 또 속으로 궁시렁거린다. 부당한 제도와 관행에 대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모임의 두 번째 특징이다.

출발인원 확인을 위한 줄서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난 뒤에야 산행이 시작되었다. 산길을 오르기 힘든 몇 분을 제외하고 모두 채비를 하였다. 설악동 공원을 지나 신흥사까지는 포장된 길이기도 하고 희미하나마 가로등이 군데군데 있지만, 신흥사를 지나면 돌계단과 돌투성이 길이 시작된다. 어두운 길을 별빛에 의존하여 걸으려니 조심스럽다. 몇 분이 랜턴을 가져오라는 공지를 제대로 못 받았다며 걱정을 하였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누구도 못 올라가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과제라 생각하고 묵묵히 길을 갈뿐이다. 이 모임의 또 다른 특징이다.

   
▲ '새벽빛은 청색이다' [사진제공-6.15산악회]

새벽빛은 청색이다. 일 년 중에 해뜨기 전에 일어나는 횟수를 손으로 꼽는 내 짝꿍 같은 사람들이야 새벽 빛깔에 별 관심이 없지만, 일 년에 반 이상을 새벽별 보기 하는 나 같은 사람은 새벽 빛깔에 민감하다. 창공의 푸른 기운이 산과 나무 그리고 사람들의 어깨에 내려앉을 때, 설레임이 왜 파란색으로 표시되는지 알게 된다.

이번 산행을 같이 한 사람들은 어느 누구보다 새벽 공기를 많이 마신 사람들이다. 평생을 밤새며 토론하고 유인물을 만들며 희뿌연 새벽을 맞았고, 사그라져가는 통일의 기운을 일으키기 위해 밤늦도록 술잔을 기울였으며, 새벽이슬을 맞으며 길 떠나기를 마다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푸른색이 어울리고 푸른 기운을 아는 사람들이다. 네 번째 특징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특징을 지닌 사람들과 산행은 부담이 적다. 각자 자기 몫을 알아서 하고, 어렵다 싶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택한다. 이번에도 무릎이 좋지 않은 김순자 선생님과 몇 분이 중간 전망대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경치 좋은데서 쉬겠다고 하셨다. 높은데 올라가서 좋은 경치를 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겠지만 자기 요량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배려의 고마움이 동시에 들었다.

   
▲ 울산바위 정상에서. [사진제공-6.15산악회]
   
▲ 울산바위 정상에서 내려다본 기암괴석. [사진제공-6.15산악회]

긴 거리는 아니었지만 경사가 급해 철계단으로 이어진 마지막 길은 젊은 사람에게도 쉽지 않는 길이었다. 목적지인 울산바위에 올랐다. 속초의 호수와 건물이 코앞에 펼쳐져 있고 바다가 손에 잡힐 듯 하여 대청봉에서 바라보는 일출 못지않게 웅장했다. 일출을 본다고 하면 으레 대청봉에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장관이 펼쳐졌다.

   
▲ 너럭바위에 선생님들의 체력자랑을 펼친 팔굽혀펴기. [사진제공-6.15산악회]

내려오는 길에 흔들바위가 올려져있는 너럭바위에서 때 아닌 체력자량이 펼쳐졌다. 권오헌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선생님들께서 팔굽혀 펴기 시범을 보여주셨다.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운동을 여든, 아흔이 넘은 선생님들이 하시는 모습을 뵈니 아침 운동이랍시고 열 개 남짓 팔랑거리는 내 모습이 겹쳐졌다. 잠시 고민에 빠졌다. 늘려야 하나?

여러 장의 사진과 장엄함을 가슴에 담고 간 다음 목적지는 통일전망대였다. 고성통일전망대는 파주에 있는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달리 민통선 안쪽에 위치해 있고 출입을 위해서는 안보교육을 받도록 되어 있다. 안보교육은 우리가 오랫동안 봐 온 영상 위주였는데, 6.25 전쟁이 첫 장면이었다. 10여분 남짓 되는 동영상이었는데, 까무룩거리는 바람에 나머지 장면은 기억나지 않는다. 일요일 오전이라 많은 사람들이 통일전망대를 가기 위해 안보교육장에 꾸역꾸역 밀려들어왔다.

이를 보면서 ‘저강도 전략’의 무서움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 전략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이 적은 중립성을 띤 부정적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자연스럽게 세뇌되고 동화되는 것을 노린다. 전쟁의 위험과 평화의 소중함보다는 누가 전쟁을 일으켰느냐는 것을 지속적으로 물음으로써 갈등을 조장하고 적대적 감정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 고성통일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북측 동해안. [사진제공-6.15산악회]

이 밖에도 고성통일전망대 주변에는 6.25기념관 같이 전쟁을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수많은 장치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생각을 적군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적 틀에 가두고 ‘너는 누구의 편이냐? 선택 하라’고 강요한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를 증오하고 제거의 대상으로 여기게 만든다. 이러한 교육과 시설물을 반면교사로 활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렇게 통일전망대는 그 이름과 아름다운 풍광과는 어울리지 않게 증오와 대결을 사람들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마지막 답사지인 건봉사에 가기 전에 점심식사를 위해 대진항에 들렸다. 대진항은 조그만 항구다. 금강산 관광이 한창일 때는 흥청거렸을 항구가 작은 어선 몇 척과 페인트가 벗겨져 가는 건물 몇 동이 전부인 포구로 변해가고 있었다. 점심식사는 회였는데, 특이하게도 청어를 횟감으로 사용하였다. 잘 잡히지 않던 청어가 최근에 돌아왔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상에 올라왔다. 식사 후에 들린 화진포 해수욕장은 회원들의 낭만을 풀어놓기에 딱 맞는 장소였다. 인생이 밋밋한 사람들이야 물을 보면 젖을까봐 걱정을 하지만, 낭만을 품고 사는 사람들은 뒷걱정이 없다. 일단 뛰어들고 본다. 그걸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건봉사는 금강산 자락이 뻗어 내려온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금강산 건봉사라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4대 사찰에 들 정도로 큰 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초입에 있는 불이문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문화적 가치는 크지 않아 보였다. 권오헌 선생님 말씀에 의하며, 전쟁 때 불탄 절을 권 선생님이 군에 계실 때 부대에서 재건하기 시작하셨다고 한다.

건봉사에는 적멸보궁이 있는데 다른 적멸보궁과 달리 부처님 치아 사리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치아 사리가 적멸보궁 뒤뜰에 묻혀 있어 실물을 볼 수가 없었는데, 도굴꾼이 이것을 도굴하여 돌려주는 과정에서 일부 치아 사리는 묻지 않고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에서 일을 보시는 보살님의 자랑이다.

건봉사를 둘러보고 난 후 빈 공터에서 권오헌 선생님의 짧은 말씀이 있었다. 최근 한반도 정세를 개괄하시고 우리가 어떤 자세로 돌파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면서 마무리 하셨다. 노구에,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을 보이시는 선생님이 건강하시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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