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정상, ‘싱가포르 종전선언’ 가능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남북미 3국 종전선언’을 협의했다. [사진제공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가진 정상회담에서 ‘남북미 3국 종전선언’을 협의한 것으로 확인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소식은 한미정상회담 직후 현지 브리핑을 통해 “양국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이 합의했던 종전선언을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미 3국이 함께 선언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지난 4.27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천명한 바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23일 “개인적 추정이지만 싱가포르 북미회담장에 문재인 대통령이 가서 종전선언을 할 수도 있다”며 “정상들이 다시 모이는 것도 쉽지 않고 시간을 끌 필요도 없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이미 남북정상회담과 한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 논의됐기 때문에 사실상 남북미 3국 정상의 종전선언은 합의된 상태”라는 것.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릴 북미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합석해 곧바로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오는 7월 27일 정전선언 65주년을 맞아 판문점에서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이 모여 종전선언을 하는 모양새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구상을 제기하기도 한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10.4 남북공동선언’에서는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천명했다.

‘판문점 선언’에는 ‘10.4 선언’에 포함된 ‘한반도지역’과 ‘정상들’이라는 표현이 빠졌다. 싱가포르와 같은 제3국에서의 종전선언이 가능하다. 또한 문구대로만 따진다면 싱가포르나 판문점에서 3자 또는 4자 외교장관의 종전선언도 역시 가능하다.

종전선언은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이른바 정전협정(정식명칭: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으로 유지되고 있는 한반도의 정전(휴전)상태를 끝내고 평시로 전환하는 정치적 선언이다.

물론 종전선언은 법적 근거가 없고, 이후 평화체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닌 만큼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후속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 합의다.

트럼프, 두 차례 북중정상회담에 불편한 심기 드러내

▲ 트럼프 대통령은 두 차례 북중정상회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사진제공 - 청와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의 종전선언 협의 내용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남북미 3국이 함께 선언하는 방안”이 명확하게 언급된 점이다. 중국을 제치고 남북미 3국으로 종전선언의 주체를 한정한 셈이다.

이같은 결정은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두 차례의 북중정상회담에 대해 보인 민감한 반응과도 일맥상통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모두발언에 이어 예정에 없던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김정은이 두 번째 시 주석과 만난 다음에 내가 보기에는 김정은의 태도가 좀 변했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에 대해서 나는 별로 좋은 느낌이 아니다”고 불편한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시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에 대해서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다들 놀랐다”며 문 대통령에게 동조발언을 유도했다. 한미에 사전통보 없이 북중이 ‘짝짜꿍’했다는 불만인 셈이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는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더니 미국은 오히려 ‘선 비핵화’를 기정사실화 하고 전략자산을 동원한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등 압박공세를 강화하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으로 출로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 북한이 중국을 ‘안전판’으로 끌어들여 남북미중 4자구도가 형성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트럼프, 시진핑에 ‘뒷문 단속’ 입장료 요구할까

▲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전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접견하고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당부했다. [사진출처 - 청와대페이스북]

따라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보인 트럼프 대통령의 북중정상회담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나 3자 종전선언 기정사실화는 미국이 한국의 동의를 명분삼아 중국을 배제하고 남북미 3자 종전선언 구도로 돌아가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간선거 승리와 대통령 재선, 노벨평화상 수상 등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시진핑의 끼어들기는 달갑지 않은 상황인데다, 거시적 차원에서 미중간의 전략적 대치구도를 감안하더라도 3자 종전선언 구도에 중국을 쉽게 끼어줄 상황은 아니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역시 국제정치에는 상대가 있는 법. 북한과 중국이 강력히 반발할 경우 미국은 중국을 포함한 4자구도를 인정해주는 대신 ‘입장료’로서 ‘뒷문 단속’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이 먼저 북한에게 뒷문을 열어줌으로써 미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북한이 구상하고 있는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 대한 로드맵도 중요한 변수다. 과연 북한이 중국을 적극 끌어들일지 하나의 협상카드로만 사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뒤에서 북미협의를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북한과 미국은 이미 수교까지 갈 것으로 다 합의됐고, 국내정치용으로 써먹는 거다”고 짚었다. 북한 역시 중국의 한반도 문제 개입을 달가워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러나 현실적으로 비핵화 과정에 따른 상응조치로서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고 대북제재를 해제하는 과정에 중국의 ‘안전판’ 역할은 북한에게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지난달 20일에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의 결정에 따라 ‘경제 발전’에 전력을 쏟아야 하고 오는 9월 9일 정부수립 70주년 기념일을 승리적으로 결산하기 위해서는 북한에게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

당장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제재해제나 경제보상을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기대할 수 없다면 중국으로부터 상응하는 경제협력이나 지원을 받는 것이 현실적인 답이기 때문이다. 북중 간에 합의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지역에 매장량이 풍부한 갈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소 건설 지원의 경우만 보더라도 북한으로서는 절실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안이다.

북한이 중국을 끌어들일 것인지,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게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제재해제와 경제지원을 실시할 것인지 서로 결정해야 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을 둘러싼 치열한 물밑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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