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원

 

미국보다 남측이, 트럼프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위기 관리 능력에서 뒤처지고 있다.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북한은 남측에게, 미국측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남측에게는 고위급 회담 무기한 연기를 통보했고, 미국측에게는 북미 정상회담 어려울 수도 있다는 김계관 담화가 발표되었다.
 
미국은 빠르게 움직였다. 트럼프가 직접 나서 “리비아 해법 아니”라고 해명했고, “안전보장을 제공할 것”을 강조했다. 반면 남측의 대응은 통일부의 ‘유감 표명’뿐이었다. NSC를 열고 고위급 회담 개최를 위한 협의를 계속한다는 ‘판에 박은 대응’을 하고 있을 뿐이다.
 
리선권 담화에 주목해야 한다
 
리선권이 등장했다. 고위급 회담 북측 대표이다. 리선권을 통해 나온 북한의 입장은 명확하다.
 
첫째, 리선권의 등장은 상황을 보다 엄중하게 인식하라는 북측의 메시지이다.
 
북한이 고위급 회담을 연기했을 때 남측에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라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강했다. 아마도 남측 당국에서도 이 같은 해석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북한의 메시지를 안이하게 읽은 것으로 보인다.
 
“남조선당국은 우리가 취한 조치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고 필요한 수습대책을 세울 대신 현재까지 터무니없는 <유감>과 <촉구>따위나 운운하면서 상식 이하로 놀아대고 있다.”
 
북측은 자신의 메시지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혹은 남측이 자신의 메시지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고위급 회담 대표가 직접 나선 이유이다.
 
둘째, 자신을 대화와 협상, 협력의 대상자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만약 남조선당국이 우리를 언제 쏟아질지 모를 불소나기 밑에 태평스레 앉아 말잡담이나 나누고 자기 신변을 직접 위협하는 상대도 분간하지 못한 채 무작정 반기는 그런 비상식적인 실체로 여겼다면 그보다 더 어리석은 오판과 몽상은 없을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분명 북한은 '예년 수준의 군사연습 이해' 입장을 밝혔다. 예년 수준이라 함은  전략무기가 전개되지 않았던 2012년까지의 통상적 군사연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4월 한미군사연습에서는 전략무기가 전개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전략폭격기가 등장했다. 지금 북한은 "우리를 뭘로 보고 그딴 짓을 하고 있느냐"하는 문제제기를 강하게 하고 있다.
 
6.15 민족공동행사, 안 될 수도 있다
 
판문점 선언에 “6.15를 비롯하여 남과 북에 다같이 의의가 있는 날들을 계기로 당국과 국회, 정당, 지방자치단체,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공동행사를 적극 추진”한다는 구절이 있다. 이에 기초해서 통일부는 6.15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통일부 장관은 5월 17일 국회에 출석해서 “6.15 남북공동행사 개최 준비에 주력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리선권 위원장의 담화는 국회를 지목하고 있다.
 
"지어 남조선당국은 집잃은 들개마냥 더러운 잔명부지를 위해 여기저기 싸다니는 인간쓰레기들까지 다른 곳도 아닌 <국회>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악랄하게 비난모독하게 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짓거리도 벌려놓았다."
 
"다름 아닌 국회 마당"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다름 아닌 국회'는 '민족공동행사에 참여하기로 명시되어 있는 국회'라는 의미로 보인다. 국회가 이런 행위를 하고 있다면 국회는 민족공동행사에 참여할 수 없으며, 따라서 판문점 선언에 따른 6.15 민족공동행사는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가 리선권 담화에 담겨 있는 이 같은 맥락을 읽지 못하고, 6.15 행사 준비에만 집중한다면 헛다리 짚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대로 간다면 이번 6.15 민족공동행사는 개최되기 힘들 수 있다.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 선언의 의미를 강조하는 다양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불미스러운 상황은 국방부와 통일부는 판문점 선언보다는 기존의 관성대로 움직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맥스 썬더 훈련에 미국이 전략무기를 전개하려는 기미를 보이면 국방부 장관이 나서서 제어해야 했고 그게 힘들면 대통령에게 보고 했어야 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사고가 지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 채 "대세에 지장 있겠어? 6.15 행사 준비 잘하자" 이런 사고였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전략 무기 전개와 통일부의 안일한 대응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이루어진 것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강조하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는 결코 뒤돌아 가지 않을 것”이라고.
 
최근 국방부와 통일부가 보인 행태는 판문점 선언에 부합하지 않는다. 국방부의 행위는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한다”는 판문점 선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 이행의 가장 책임 있고 주도적인 부처라고 할 수 있는 통일부는 안일함과 관성에 젖어 있다.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하루빨리 종식시키고”, “철저히 이행하고”,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고”, “시급히 해결하고”, “지체 없이 해결하고”, “엄격히 준수하고” 등 유달리 수식어가 많이 붙어있다. 양 정상의 의지가 판문점 선언 이행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안에 존재하는, 판문점 선언을 위험에 빠뜨리는 사고와 행위를 “시급하게, 철저하게, 지체 없이, 엄격히” 근절하지 못한다면, 6.15 공동행사도, 8.15 이산가족 상봉도, 기타 우리를 들뜨게 했던 남과 북의 교류와 협력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판문점 선언마저 위험해 질 수 있다.

판문점 선언 합의의 당사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수습해야 한다. 당국 안에 존재하는 판문점 선언에 위배되는 일체의 사고와 행동을 관리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과 통화해서 조속히 고위급 회담을 개최하고, 판문점 선언 이행에 속도를 붙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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