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평화협정, 북미수교가 당면 과제로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나온 판문점 선언은 기왕의 남북 합의를 집대성한 것을 넘어서서 더욱 진전된 합의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역사적 합의다.

남북 정상은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하면서 “민족의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고,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하여 적극 협력”하기로 하였다.

특히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으며,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또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이어 6월에 열리는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과 이어질 각급 회담과 조치들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북미수교가 이뤄진다면 70여 년에 걸친 북미 간, 남북 간 적대관계가 마침내 종식된다. 끝없이 이어져온 전쟁위기와 핵 대결이 사라짐으로써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가 깃들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의 전개는 곧 자주적 평화통일이 우리의 당면 과제로 떠오를 것임을 예고한다.

판문점 선언을 기준으로 단결해야

한반도 정세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오늘의 정세는 자주평화통일운동을 염원하고 이를 위해 헌신해온 이들에게 비상한 각오와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 이 역사적 시기에 정파와 정견의 차이를 앞세워 분열과 고립‧분산적 각개약진으로 자주평화통일운동의 대중적 신뢰와 영향력을 약화시켜온 가슴 아픈 상황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

70여 년에 걸친 분단과 대결로 인해 수난과 치욕의 세월을 살아온 부끄러운 역사를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역사와 민족에 대한 드높은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대동단결, 대동투쟁에 나서야 한다.

단결의 기준은 당연히 판문점 선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의 남북의 합의를 존중하고 지지해왔던 것처럼. 여기서 예외가 없어야 한다.

판문점 선언 부정하는 ‘북미 상호 비핵화론’

그런데 핵심 의제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에서 판문점 선언에 배치되는 주장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는 북과 미국이 상호 비핵화를 실현하는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민족자주선언’, 판문점 선언지지‧이행! 전민족적 통일대회합 성사! 민족자주통일대회 참가자 일동, 2018. 5. 12)는 주장이 있다.

이 같은 주장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한 판문점 선언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북미 핵군축’ 주장은 미국이 핵군축을 한 상대는 핵능력이 대등한 소련(러시아)뿐이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전혀 없다. 북미 간 핵대결의 장기화를 초래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주관적인 주장은 북미 간, 남북 간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평화협정 체결을 가로막는 주장이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으면 통일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평화와 통일에 역행하는 주장이다.

전세계 비핵화 즉, 미국이 핵무기를 포기할 때까지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입장의 연장선에 있는 이 같은 주장이 내세우는 대표적 사례가 이라크와 리비아 정권의 몰락이다. 이들 나라는 핵무기가 없어서 미국의 침략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정권의 몰락의 주된 원인은 핵무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권과 국민의 괴리, 종파‧종족 간 분열 등이다.

1953~2006년까지의 북한, 베트남, 쿠바의 경우 미국과 적대국이었고 핵무기가 없는 나라지만 미국의 침략을 막아낼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북이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무기를 포기하겠다고 결단한 것은 이 같은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북한 주변에는 이라크나 리비아와는 달리 미국의 침략을 단호히 반대하는 남한, 중국, 러시아 등 강력한 무장력을 갖춘 나라들이 버티고 있다는 점도 미국이 함부로 북을 공격할 수 없는 요인이 된다.

이런 조건에서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공고한 평화상태를 정치적, 국제법적으로 보장하는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제아무리 세계 최강이고 무법자처럼 행세하는 미국이라도 국제적 비난과 고립을 감수하고 북을 맘대로 침략할 수는 없는 것이다.

북이 수소탄과 ICBM을 가지게 되어 미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유치한 사고(북과는 질량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는 핵미사일 능력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나 중국이 미국을 굴복시키고 있나?), 핵무기를 포기하면 미국이 언제든 침략할 수 있다는, 미국의 힘을 절대화하는 패배주의를 동시에 벗어나 주객관적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북이 주객관적 정세를 과학적으로 판단하여 핵‧경제병진노선을 포기하고 사회주의경제 건설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하고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도 계속 북미 상호 비핵화 즉, 미국이 핵무기를 포기할 때까지 북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고집하는 것은 북의 결단을 불신하고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의 핵‧경제병진노선의 폐기와 그 이행과정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중지 등의 방침에 대해 미국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자 북의 노동신문은 정세해설 기사를 통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언론, 전문가 나부랭이들을 내세워 조선이 사실상 비핵화 선언이 아니라 핵보유국 선언을 하였다고 나발질(헛소리)하면서 우리 공화국에 대한 지지환영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획책하고 있다.”(연합뉴스, 2018. 4. 30)

북미 평화협정 주장도 판문점 선언에 어긋나

북미 평화협정 주장도 끈질기다.(위 민족자주선언) 이 주장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한 판문점 선언에 어긋난다. 북미 평화협정 주장은 세계 10위권의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남한군을 규율하지 못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공고한 평화를 실현할 수 없는 주장이다.

이승만 정권은 북진통일을 고집하면서 정전을 거부하여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가 되지 않은 것일 뿐이다. 남한은 정전협정 이듬해의 제네바 정치협상회의에 성원으로 참가한 바 있고, 이후 1990년대 후반의 남북미중 4자회담에도 참가하여 한반도 평화 문제를 협의했다. 2000년 조미공동 코뮈니케와 10.4선언에도 남한은 평화체제 또는 종전선언 주체로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역사와 현실을 무시하고 판문점 선언을 사실상 부정하면서 ‘판문점 선언 지지‧이행’을 외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세와 동떨어진 이 같은 주장은 평화통일운동을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킴으로써 역사의 대전환기를 맞아 대중을 자주와 평화, 통일로 이끌기는커녕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민주의 주인에서 평화와 통일의 주인으로!

지금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 현대사의 대전환의 바탕에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이 도도히 이어져온 민중의 거대한 열망과 분투가 자리잡고 있다. 분단과 전쟁이 반도를 도륙한 이래 우리 겨레는 단 한순간도 이를 극복하기 위한 피어린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자주와 평화통일을 향한 거대한 에너지는 민주혁명의 열기 속에서 분출해왔던 것이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다. 4.19혁명과 6월 민중항쟁에 이어 타오르던 통일의 열기가 이를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와 민생을 파탄으로 내몬 전직 대통령을 거대한 민중의 촛불로 축출하고 등장한 정부에서 평화와 통일의 새시대가 열리는 것은 역사의 필연이라 할 만 하다.

따라서 무너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운 촛불은 이제 평화와 통일의 촛불로 진화해야 한다. 민주의 주인이 우리 민중이듯이 평화와 통일의 주인도 우리 민중이다. 평화와 통일은 우리 운명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정부 당국자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평화와 통일의 역사에서 우리는 여러 차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해왔다. 지금의 천재일우의 기회도 언제 한순간의 물거품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한미일의 대북 강경세력의 힘이 여전히 막강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와 통일의 촛불을 거대한 횃불로 키우는 것이 절실하다. 고루한 인식과 자기만족적 실천의 틀을 깨고 격변하는 정세에 조응하여 대중과 함께 평화와 통일의 촛불을 거대한 횃불로 키워내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역사적인 판문점 정상회담의 성과를 기준으로 남북의 공동번영과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북미수교 등이 민족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지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6월 9일, 광화문에서 평화와 통일의 촛불을 들자.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대전충청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상임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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