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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는 교통문화⑤ 버스 (편)<연재> 최재영 목사의 남북사회통합운동 방북기(99회)
최재영  |  9191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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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4  10: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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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트롤리버스(무궤도전차)의 보조수단으로 운영되는 시내버스들
      
평양시내는 어디를 가든지 하루 종일 승객을 가득 태운 버스들과 전차들이 대로를 분주하게 달리며 승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아울러 교차로에는 멈춰 선 차량들이 신호등이 아닌 교통안전원들의 수신호를 기다리는 모습도 매우 익숙하게 목격됐다. 특히 평양에는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단층버스보다는 이색적인 2층 버스가 많아서 이미 평양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시내를 달리는 자동차 행렬들 중에는 유난히 외제차량들이 많았는데 최신형부터 2-30년 넘은 구형모델까지 외제차의 종류도 매우 다양했다. 차령이 10년은 넘은 듯한 일제 자동차와 버스, 승합차 등이 주종을 이뤘지만 대부분 자국산 평화자동차들이 많았으며 현대에서 만든 스타렉스 승합차나 그랜저 승용차도 간혹 눈에 띄었고 중국제 차량들도 많았다.

필자가 버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던 시기는 모란봉과 대동강구역을 잇는 금릉동굴 입구 위, 대동강구역의 문수거리 등에는 온통 개나리, 살구꽃들이 한창이었다. 얼핏 보면 벚꽃처럼 보이지만 북조선에는 벚꽃나무가 일제를 상징하는 꽃이라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자세히 살펴보면 살구나무 꽃들이 많았다. 이처럼 평양 시내와 언덕들의 흐드러진 봄꽃 소식은 도로가의 다양한 버스와 자동차들만큼 화려하지는 못한듯했다.

해외동포들이나 외국인들이 평양을 방문할 경우 가장 많이, 가장 가까이서 흔하게 보는 광경이 바로 지하철을 비롯해 궤도전차, 무궤도전차(트롤리버스), 버스, 택시, 오토바이, 자전거 등의 대중교통들이다. 그중에서도 버스와 무궤도전차가 가장 많이 눈에 띈다. 그러니 평양시내의 버스 운영실태에 대해 필자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삼천리 금수강산’, ‘내 나라 제일로 좋아’, ‘강성대국을 향하여’,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런 구호문구들은 건물이나 벽면에 부착된 것들이 아니다. 바로 평양시내를 운행하는 다양한 종류의 버스 양측 외벽에 가로로 새겨진 구호문들이다. 또한 저 구호들은 2-30여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고 지속적으로 적혀있는 요지부동한 국가적 구호문들이다.

또한 각 버스마다 5만km 이상 안전주행을 했을 경우에는 차 외벽에 별 1개씩 부여하는 제도가 있다. 시내버스에 붉은 별이 그려져 있다는 것은 바로 무사고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버스좌석에는 전쟁참가로병을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는 평양지하철에도 노약자석, 임산부 배려석은 없어도 전쟁참가로병을 위한 자리는 반드시 구분돼 있는 것처럼 공공 교통수단에는 거의 모두 비슷한 개념이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버스 종류들을 보면 우선 트롤리버스라고 불리는 무궤도 전차가 있고 이런 무궤도 전차의 보조 수단으로 운행되는 시내버스가 있다. 또한 주요 도시들 사이에 운행되는 시외버스들이 있고 유명 관광지를 셔틀버스처럼 운행하는 관광버스들이 있다. 또한 각 기관과 단체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직원들의 출퇴근 전용 버스들과 스쿨버스들도 많았다.

시내버스는 평양시의 경우 40여개 노선이 운행되고 있어서 시내 변두리에서 인근 교외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시외버스는 평양과 신의주, 원산, 만포, 사리원, 남포 등 주요 도시 사이에 운행되고 있으며 시내를 벗어나야 하는 아주 먼 장거리는 철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평양시 당국은 2010년 무렵부터 시가지 정비를 위해 그동안 도로 한복판에 설치됐던 궤도전차 차선을 도로 양옆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면서부터 도로마다 큰 변화를 겪어왔다. 평양시는 통상적으로 트롤리버스의 노선이 없는 시가지와 외곽지역 혹은 트롤리버스 노선이 끝난 지역에서 연계수단으로 일반 시내버스가 활용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시내버스는 트롤리버스(무궤도전차)와 함께 병행되는 보조 수단의 역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궤도 전차는 지난 1962년에 개통된 이후 현재는 10여개 노선이 운행 중이며 수송능력은 1량 당 대형전차는 100여명, 소형전차는 50명 정도 탑승하는 교통수단으로서 시내버스와 같은 레벨의 매우 유용한 대중교통수단이다.     

   
▲ 평양시내를 달리는 2층 버스. 모든 버스 외벽에는 모두 4가지 종류의 구호가 적혀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양각도호텔 주차장에 세워진 대형버스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시내 주차장에 세워진 고급 버스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직장에서 운영하는 기관용 버스와 트롤리버스가 함께 도로를 달리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고급 대형버스들이 어느 건물에 주차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국가선물관 주차장에 참관객들을 내려준 각종 버스들이 주차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뻐스비는 ‘리원’, 택시비는 ‘다섯 달러’, 무궤도전차 료금은 ‘오원’"
      
필자는 틈나는 대로 평양거리를 걷거나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는 것을 즐겨한다. 오후에는 길을 따라 지하도를 통해 평양호텔에서 김일성 광장까지 둘러보고, 다시 대동강변으로 돌아온다. 아침에는 대동강변 산책로를 따라 김일성광장 부근까지 갔다가 다시 강변으로 되돌아온다, 강변에는 아침마다 카세트를 틀어놓고 에어로빅 댄스를 하는 아낙네들, 이른 아침부터 낚시하는 노인들과 아저씨들이 볼만한 광경들이다.

또한 베드민턴을 치거나 달리기를 하는 시민들, 천천히 걷는 산책꾼들이 있는가하면 자전거놀이를 즐기는 청년들, 인근 건설지역에서 건축노동을 하고 대동강물로 아침 세수를 하기 위해 물가를 찾아온 병사들 일행도 볼 수 있었다. 낮에는 장기를 두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가 있고 대동강 유람선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때로는 군복 입은 인민군들이 풀밭에 오손도손 서너 명 모여 앉아 아코디언에 맞춰 멋진 노래를 열창하는 모습, 벤치에 앉아 독서를 즐기는 시민들도 목격된다.

뿐만 아니라 그냥 강변 뚝방에 걸터앉아 주체탑을 향해 상념에 젖어있는 시민들의 모습 등 다양한 군상들을 본다. 그러나가 고요한 시간이 지나고 출근시간 무렵이 되면 평양시 도로는 역동적으로 돌변하며 차량들 간의 출근전쟁이 벌어진다.

그 동안 필자가 방북기를 통해 북의 대중교통에 대한 관련 통계나 제도, 영상물을 올렸던 이유는 한 마디로 우리의 통일의 대상인 북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알아보자는 취지였다. 필자의 목격담이나 경험담은 실체적 사실에 있어서 정보와 자료가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그 이면의 모습은 눈에 선하게 보일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 심리적, 문화적, 정서적 이질감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민족통일은 언감생심이다. 필자는 교통문화에 대한 좋은 정보들과 경험을 바탕으로 ‘버스 편’을 비롯해 ‘전차’, ‘기차’, ‘항공기’, ‘여객선’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그 외에도 ‘새 차를 뽑을 때’, ‘주차비 징수와 주차난’, ‘교통위반 범칙금’, ‘운전기사들의 운전면허 문화’, ‘거리의 환경미화원’, ‘교통보안원’, ‘신호등 시스템’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연이어 소개하고자 한다.

주말이 되면 대동강변에 나들이 나온 가족들이나 팔짱을 끼고 다정스럽게 걷는 젊은 연인들, 풀밭에 앉아 한 쌍을 이루어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들은 익숙한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고정관념을 떨치지 못하면 그런 모습들이 마냥 신기하게 보일 뿐이다. 필자가 처음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이를 염두하고 “연애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라고  동행한 안내원 동무에게 물었더니 그가 하는 말이 “최 선생님, 그럼 여기는 사람들이 안 살고, 모두 동물들만 사는 도시인 줄 아십니까? 여기도 사람들이 사는 곳입니다"라고 대꾸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특히 최근에는 지하철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거리낌 없이 연인들끼리 서로 손을 잡거나 포옹하는 모습도 보였다.

최근 필자가 안내원들에게 택시 요금을 물었을 때 “다섯 달러입네다”라는 답변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연이어 버스요금도 묻자 “두 달러입네다”라는 답변이 곧바로 돌아왔다. 그러나 안내원이 말한 2$은 외국인에게 적용된 요금을 말해준 것이다. 실제로 내국인들과 평양시민들은 2달러가 아니고 국돈(북조선 화폐)으로 2원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궤도전차 승차요금이 얼마입니까?”라고 물으니 “오원 입네다”라는 답변을 던져주었다.

그동안 평양의 시내버스 요금은 7.1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전에는 10전이었는데 지금은 2원으로 인상된 것이다. 2원이나 5원은 미화 달러로 계산하면 좀 복잡하다. 보통 공식환율을  100:1로 치면 2센트나 5센트가 되겠지만, 들리는 말로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은 8000: 1 정도라니 계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평양에서는 외국국적의 해외동포나 외국인들은 공식적으로 미화 달러와 유럽의 유로화, 그리고 중국 위안화와 일본의 엔화가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북조선과 가까운 사회주의 우방국가인 쿠바에서는 외국 돈은 통용되지 않는다. 외국인은 환전소를 통해 외국인 전용화폐인 쿡(CUC)으로 환전을 해서 사용해야만 한다. 공식 환율은 미화 달라와 쿡이 1:1 비율이기 때문에 화폐운용 면에서는 북조선이 훨씬 더 개방적으로 보였다.

   
▲ 평양의 어느 대형주차장에 세워진 각종 버스와 차량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의 어느 주차장에 세워진 미니버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의 도로를 달리고 있는 고급 버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시내를 달리는 오래된 버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 미림승마장 셔틀버스가 시내 한복판을 달리고 있다. 평양에는 의외로 승마인구가 많았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해외동포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운행되는 평양시내 버스
       
평양은 한국의 대도시들처럼 아주 번잡하지는 않지만 출퇴근 시간대의 행인들 모습을 보면 혁명의 수도답지 않게 조용하고 수수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치스러움이라고는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는 단조로운 건물들과 결집과 단결을 호소하는 대형 구호문들이 여기 저기 거리마다 나붙어있을 뿐이다.

일정을 보내기 위해 평양거리를 지나다보면 수십 명의 어린아이들이 붉은 기를 흔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행렬로 걸어가는 모습, 로동적위대 행렬이 지나는 모습, 수천 명으로 보이는 여학생들과 여성시민들이 드넓은 김일성 광장에 운집해서 무슨 군중대회를 준비하는 모습들을 본다. 아울러 연습하는 군중들 사이로 펼쳐진 광장 대로에는 다양한 차량들이 쌩쌩 지나가는데 그중에서 버스들의 행렬이 가장 많았다. 그런 버스에 몸을 실은 승객들은 차창 밖을 바라보며 무색무취한 얼굴표정들을 짓고 있었는데 그 모습들이 곧 평양의 일상으로 느껴졌다.

필자가 글을 쓰는 동안에도 평양에는 40개 노선에서 운행되는 각종 버스들이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조직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단층버스나 2층 버스들이 중국에서 주기적으로 도입돼 운행되고 있어서 그런지 버스문화가 나날이 향상되어 발전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버스노선도 점점 개혁적으로 증설되면서 지하철과 전차 승객들과 버스 승객들 간의 균형을 맞추면서 조절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양시내의 출퇴근 모습들은 한국처럼 버스, 승용차, 지하철 등을 주로 이용한다. 그러나 한국과는 달리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시민들도 많았다.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주로 내근직 직장인들은 버스를 가장 선호하고 동시에 자전거도 선호한다고 했다. 버스는 러시아와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롤리버스(무궤도전차)가 많은데 이는 일반 버스처럼 중유나 가스 연료를 탑재하지 않고 버스와 연결한 전선에서 전기를 공급받아 운행하는 장점이 있어서 매우 친환경적이었다. 일반 버스와 트롤리버스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대로를 달리는 모습을 보면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현재 평양시내를 달리는 버스들 대부분은 평양시 인민위원회 교통당국이 직접 통제하고 운영하고 있으나 일부 노선들은 개인 사업가들이 영업용 버스사업도 진출한다. 특히 2층 버스들 중에 ‘송신에서 대동교 방향’, ‘대동교에서 대성산 방향’이라고 쓴 노선 간판을 부착한 버스들은 버스사업소나 공장기업소에 등록된 영업용 개인 버스들이라고 한다.

평양시 대동강여객운수사업소에서 운영하던 송신 팔골 방향 궤도전차가 운행을 중단하였고, 연못동과 대성산 방향으로 달리던 무궤도 전차도 운행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이 노선을 대신해 영업용 버스들이 운행되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중국에서 수입하는 버스들 중에는 새 버스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개인사업자가 수입하는 경우에는 중고버스도 도입되고 있으며 약 10-20만 킬로미터를 사용한 중고버스들은 대당 미화 1만-1만 5천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13 평양시내 운행을 위해 차고에서 대기 중인 트롤리버스들. (사진제공: 최재영목사)

   
▲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평양시민들. 이 정류소는 공중에 전선이 설치된 곳이기 때문에 일반 시내버스와 트롤리버스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짐 가방을 맨 여성이 일반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정류장 설치물은 없으나 지정 정류소에서도 버스가 정차한다. 정류소에서 나란히 버스를 기다리는 평양시민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평양시내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2층 뻐스’
      
겉으로 볼 때 수도 평양은 세계 다른 나라 수도들보다 매우 조용한 도시로 보인다. 그러나 대개 아침 7시쯤이 되면 어김없이 러시아워가 시작되며 도시가 시끄러워진다. 인도위에는 서로 반대 방향에서 오가는 출근길 시민들이 서로의 몸이 스칠 정도로 혼잡하지만 각자 서로 실수하지 않도록 잘 피해서 보행하는 모습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근로자들과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전용도로를 따라 달리는 경우도 있고, 인도를 따라 걸어가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인들은 지하철역 등 각자의 행선지로 향했고 나머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 길게 줄을 서며 기다린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나선 시민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들을 자세히 보면 아이들이나 청년들, 장년들 할 것 없이 대부분 손에 책을 들고 독서를 하고 있었다.

또한  “충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오래된 22인승 버스나  “천리마”라는 이름을 가진 구형 버스처럼 외형은 비록 낡았으나 고풍스런 느낌을 주는 오래된 버스들이 무수히 많이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반면 최신형 대형 버스를 비롯해 최고급 리무진 버스까지 매우 다양한 종류의 멋진 버스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특히 승합차를 비롯해 울긋불긋한 원색적인 색상을 지닌 중소형 버스들이 거리를 달리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북 인민들은 독특한 억양 때문인지 버스를 일컬어 ‘뻐스’라고 부른다. 특히 평양시내에 돌아다니는 독특한 형태의 다양한 ‘2층 뻐스’들은 이미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명물이 되어있었다. 웬만한 선진국에서도 2층 버스는 보기가 쉽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평양에는 너무 흔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거주하는 미국 남가주의 경우 그레이하운드 2층 버스가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운행되기는 하지만 시내에서는 대중적으로  보편화되지 않았고 보기도 드물다.

평양시내에서 2층 버스가 최초로 도입되어 대중화된 시기를 필자가 알아보니 지금부터 약 20여년 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0년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55주년을 맞이한 날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최초로 도입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100대를 중국에서 직수입해서 운행에 투입했다고 한다. 당시 첫 도입된 2층 버스는 1대당 최대 160명까지 태울 수 있었다고 하니 대단한 수송능력이 아닐 수 없다.

이 2층 버스들은 2000년 당시 중국 장쑤성에 있는 난징(南京) 금릉쌍객공사에서 수입했는데 이때 2층 버스 100대뿐 아니라 단층버스 200대도 같이 수입하는 바람에 모두 300대의 새 버스를 들여온 것이라고 한다. 이후에도 평양시 당국과 내각에서는 계속해서 중국으로부터 새 버스들을 수입해왔는데 특히 2008에는 평양시 인민들의 교통편의를 관장하는 평양 인민위원회가 주도해 110대의 시내버스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때 모든 수입버스에는 에어컨 장착을 요청해 주문 제작했다고 한다.

이어서 2010년 초에도 또 다시 2층 버스와 단층 버스를 수입했는데 그 숫자가 무려 400대에 가까운 총 388대였다고 한다. 당시 신형 버스는 기존 6개 노선 외에 팔골-2백화점, 칠골-련못, 조중우의탑-산업동 간 3개의 신설 노선을 달리는 등 모두 9개 노선을 운행할 정도로 인기였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이듬해 4월에는 평양-묘향산을 왕복하는 2층 버스가 운행돼 해외관광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면서 지금까지 2층 관광버스로가 대중화가 된 계기가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평양-향산(묘향산) 관광노선은 지난 96년 총 120㎞로 건설된 관광도로를 따라 형성되었는데 당국에서는 이에 걸맞게 최신형 2층 관광버스를 투입한 것이다. 평양-향산 간에 정기적으로 운행되는 2층 버스 정류소는 평양역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필자가 직접 확인해보니 평양의 시내버스 요금은 7.1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전에는 10전이었는데 지금은 2원으로 올랐으며 버스를 이용해 묘향산과 구월산 등을 관광하려면 시간 당 30원씩을 내야하기 때문에 매우 비싼 편이다.

   
▲ 출근하는 시민들이 김일성광장 부근 버스정류장에서 2층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2층 버스는 보통 1층에 34석, 2층에 55석을 구비하고 있으며 입석까지 총 150명을 태울 수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퇴근시간에 승객들을 가득 태운 2층 버스가 평양시내를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출근하는 시민들을 태운 2층 버스가 청춘거리 태권도전당 앞 거리를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2층 버스가 평양역 인근에서 승객들을 태우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대성산행 2층 버스가 승객들을 가득 태우고 거리를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의 표정들을 지닌 승객들을 태운 2층 버스가 대성산 유원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평양시내 버스 운전기사들의 수고와 애국심
      
북에서 버스, 전차, 지하철들을 운전하는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힘든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도 버스 운전기사일 것이다. 출퇴근시간에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를 직접 운전하는 것도 매우 힘들지만 낡은 버스일 경우에 고장이라도 한번 나게 되거나 빙판길과 빗길을 운전하는 날이 되면 낭패를 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처럼 출퇴근 시간에는 승객들과 함께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아침 출근시간이 시작되면 버스는 발 디딜 틈 \조차 없을 정도로 승객들로 만원이다. 대로변에 있는 버스 정거장에는 승차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는데 이들을 모두 태워서 목적지에 내려주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다.

평양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은 대개 오전 7시 50분이다. 출근해서 직장에 도착하면 곧바로 출근표에 체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든 미리 버스를 타야한다. 국가에서는 이를 반영해 지금부터 15년 전에 시내버스 운전사들의 헌신적인 수고에 대해 국가가 직접 발 벗고 나서 매일 아침 빵과 콩우유를 기사들에게 제공해주어 아침식사를 해결해주었다고 한다.

평양시내 버스운전기사들은 보통 새벽 4시 반에 집을 나와 오전 6시부터 운전대를 잡는다고 한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기사들은 그동안 아내와 자녀들이 가져오는 곽밥(도시락)이나 보따리에 싸온 약식 식사로 운전 중에 잠시 짬을 내 식사를 대충 해결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빵과 콩우유를 도시락 대신 먹게 되었으니 기사들 입장에서는 그 기쁨과 감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지금까지 평양시내 여객운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6-7천여 명에게 매일 아침 제공되는 빵과 콩우유는 단순히 한 끼 식사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운전기사들이 제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도착하며 안전한 운행을 보장한다는 건 몇 푼의 월급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충성심과 애국적인 마음이 선행되어야 하기에 식사제공을 계기로 전체 기사들의 사기가 매우 더 높아졌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버스나 궤도전차가 정류소에 들어서면 아침밥을 먹지 못한 채 출근한 운전기사 가장을 위해 곽밥을 날라다 주는 부인이나 자녀들의 모습은 매일 아침 벌여지는 흔한 아침 풍경중의 하나였다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한다. (계속)

   
▲ 직장인과 학생들이 김책대학교 부근의 버스정류장에서 출근과 등교를 위해 버스에 오르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낡은 시내버스가 만경대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호텔 앞 버스정류장에는 아침마다 작업을 위한 복장과 도구를 들고 승하차하는 인민들의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아침 출근시간에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승객을 가득 태운 시내버스가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아침 출근시간에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차례대로 질서 있게 버스에 오르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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