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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남북대학생 독립운동 역사답사 추진 대학생 교류 추진하는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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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0  14: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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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희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총장과 지난 2,3일 두 차례 좌담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남북관계 개선이 급진전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오랜 기간 민간교류 일선을 누벼온 민간단체 관계자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대표적인 민간교류협력 단체 중의 하나인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사장 조성우, 이하 겨레하나) 이연희 사무총장을 3일 광화문 한 찻집에서 만났다.

이연희 사무총장은 먼저 판문점 정상회담에 대해 “감동받았다”며 “지난 11년 간의 단절을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나도 화면으로 보면서 현실인가 믿기지 않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북도 그동안 많이 변했고, 남도 변했고, 이 달라진 조건에서 새로운 민간교류 패러다임을 어떻게 짤 것인가가 우리 민간 통일운동의 숙제”라며 “북측이 그동안 여러 차례 실무협의를 통해서 우리한테 강조했던 것은 더 이상 인도지원 방식의 협력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고 고민의 일단을 내비쳤다.

“지난 시기는 인도지원이 지원 자체의 의미도 있었지만 남과 북이 일상적으로 오갈 수 있는 통로 역할도 했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 인도지원이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거나 선전하는 수단, 악용하는 수단이 돼 왔기 때문에 오히려 남북관계를 훼손하는 것 같다라는 게 북쪽의 입장이었다”는 것.

겨레하나는 9개 지역본부와 9개 사업본부가 있고, ‘대동강 어린이 영양빵공장 사업’, ‘북녘 어린이 콩우유 지원사업’ 등을 진행해 왔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시기 모든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이연희 사무총장은 “뭔가 인도지원을 뛰어넘는 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 없을까에 대한 연구와 모색을 좀 하고 있다”며 “이 숙제를 잘 풀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서 확인하고 진정성이 통해야 무엇을 할지에 대한 청사진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과 달리 북측 파트너에게 실무협의를 제안했지만 “지금 대단히 남북관계의 큰 변화가 있는 만큼 차차 실무협의 일정을 조정해보자”는 취지의 답신만 받았다.

이 총장은 “이번에 정상회담을 지켜보고 4월 30일 실무협의를 요청하는 팩스를 보냈다”며 “‘북측이 편리한 장소’로 제안했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사업협의가 용이한 장소가 평양”이고 “빠른 시일 안에 평양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

이번 실무협의에서 겨레하나 측이 염두에 둔 것은 대학생 교류사업이다. 이 처장은 “일단은 이미 합의했던 이것을 시작으로 천천히 대북 협력사업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남북 대학생 독립운동 역사답사’를 먼저 추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올 7월 남측 대학생 100명이 평양을 방문해 독립운동 역사답사를 진행하고, 이어 북측 대학생 100명을 서울로 초청해 서대문형무소 등 역사답사를 진행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3차 답사에 대해 “내년 3.1절 전에 서울-평양 간에 철도가 연결되면, 우리 바람은 내년 3.1절에 평화대장정 혹은 역사대장정 같은 이름으로 남북 대학생들이 같이 서울에서 출발해서 평양, 신의주를 거쳐서 상하이와 하얼빈까지 답사하는 코스를 잡아보려 한다”고 밝혔다.

   
▲ 지난 2일 서울 서대문 소재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사무실에서 대학생들과 함께 좌담을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전날 서울 서대문 겨레하나 사무실에서 가진 좌담회에서 서울대학생겨레하나 대표 정철우 항공대 학생은 “우리 학교가 항공대인데, 경의선을 경유해서 등교하는 학교이고, 북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라며 “기찻길이 열리면, 자칫 졸면 북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보니 관계가 열리면 사고 자체가 유연해지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정철우 학생은 “청년학생들이 소녀상을 지키려고 농성하면서 느낀 게, 민족의 문제, 전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역사교류를 통해서 남북 대학생이 함께 문제해결을 한다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여명거리, 미래과학자거리 그런 곳에서 서있는 장면이 상상이 안돼서, 인증샷을 찍고도 싶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미대생과 만나서 교류하고 싶다”는 서울여대 이진희 학생은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냉면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이들은 외국여행은 해봤지만 북녘 땅은 밟아보지 못했다.

이연희 총장은 “지금 우리가 남북대학생 교류 준비단을 만들고 있는데 대학생들의 문의가 빗발친다”며 “오는 12일 모집된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일 건데, 최소한 2,3백명은 올 것 같다. 원래는 강연 듣고 조별로 토론도 하고 이런 자린데, 아무래도 최근 흐름을 반영한 이벤트도 섞어야 되겠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나는 우리 선배 세대들이 다음 세대를 육성하는데 사활을 걸어야 된다고 본다”며 “이번 3.1 독립운동 역사답사가 잘 되고 나면 일제 강점 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한 남북 대학생 공동기구 같은 걸 북에 제안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총장은 “남북관계가 다시는 전과 같이 되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만들 수 있는 사회적 동력과 힘은 정부의 힘만으로 되지 않고 남북의 국민들이,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야 할 영역이라 생각한다”고 강조하고 “적폐는 청산되어야 마땅하다. 판문점 선언을 환영하는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과 3일 오후 4시 서울 광화문 한 찻집에서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민간교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 겨레하나는 대표적인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로 콩우유, 영양빵, 국수 등을 현지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공장을 지어주고, 운영비를 지원해왔다. [사진제공 - 겨레하나]

□ 통일뉴스 : 오랫동안 남북관계 일선에서 일해왔는데, 이번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어떻게 보았나?

■ 이연희 사무총장 : 감동받았다. 이번 회담에 남북의 주된 관심사항은 조금 달랐을 것 같다. 그러나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심이 통하니까 좋은 성과를 내지 않았나 싶다. 지난 11년 간의 단절을 생각하면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나도 화면으로 보면서 현실인가 믿기지 않았다.

내가 주목했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우리 정부가 이번 회담의 주요의제로 준비했던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 비핵화가 중요하긴 한데, 무엇보다 이번 회담에서 남북이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평화체제 문제, 비핵화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고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길동무’라는 말의 함의가 정말 크지 않나 생각했다.

다른 하나는, 시작부터 대단히 많이 언급된 게 ‘이행과 실천’이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다시는 되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두 정상의 약속이 정말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다시는 되돌아가는 일이 없어야겠다.

□ 남북교류를 많이 해왔는데, 이번 정상회담을 접하면서, 떠오른 구상이나 느낌이 있다면?

■ 나도 주목해서 본 게 다방면적 교류와 협력, 그리고 민간교류를 잘 보장하기 위해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는 부분이다. 물론, 나는 뭔가 이전 시대의 연장선이 아니리 새롭게 발전된 남북관계에 맞는 민간교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북도 그동안 많이 변했고, 남도 변했고, 이 달라진 조건에서 새로운 민간교류 패러다임을 어떻게 짤 것인가가 우리 민간 통일운동의 숙제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숙제를 잘 풀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서로에 대해서 확인하고 진정성이 통해야 무엇을 할지에 대한 청사진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은 좀 답답하고 급한 마음이 있다.

덧붙이자면, 전에는 남북 정부 간에 정치군사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조건에서 민간교류가 남북관계의 윤활유 역할, 막힌 고리를 푸는 역할을 담당한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어려울 때마나 남북교류 푼다고 하면 인도지원을 먼저 풀었다.

이제는 정부가 확고히 주도하는 속에서, 혹은 한반도 평화라는 큰 틀의 문제가 해결돼 가는 조건에서 민간교류가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게 우리 화두이고 과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 북측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첫 단계라고 했는데,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 마지막으로 북측 파트너를 만났던 게 지난해 2월 (중국) 심양에서였다. 북민협(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차원의 실무협의였는데, 그 이후로 여러 차례 팩스를 주고받았지만 지난해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라서 한 번도 직접적인 만남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팩스를 통해서, 언제 만나서 실무협의를 진행할지 협의하고 있는 과정이다. 지난 2월에 평창 남북공동응원을 다녀와서 북측에 실무협의 요청을 보냈는데 북측에서 3월 27일자로 팩스가 왔다. 지금 대단히 남북관계의 큰 변화가 있는 만큼 차차 실무협의 일정을 조정해보자는 요청이었다.

그에 따라서 우리도 이번에 정상회담을 지켜보고 4월 30일 실무협의를 요청하는 팩스를 보냈다. 아마 그날 팩스를 보낸 단체가 많을 거다. 정상회담이 금요일이었고 이날이 월요일이었기 때문이다.

“실무협의, ‘북측이 편리한 장소’로 제안했다”

   
▲ 이연희 총장은 북측에 실무협의를 제안했고, 평양에서 개최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그러면 정상회담을 지켜보고 나서 이번에 보낸 팩스에 달라진 내용이 있나?

■ 겨레하나의 경우는 2015년 평양방문 때도 그랬지만, 워낙 지난시기 진행해오던 기존사업이 많고 그것을 마무리하지 못한 조건이기 때문에 전반을 다 실무적으로 협의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단체들이 예측하기로는 이런 사업들이 재개되리라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러면 앞으로는 협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실은 북민협 차원에서 지난해 정권 바뀌기 전인 4월에 사전 토론을 하자는 대토론회 제안이 있었는데 그게 실현되지 못했다. 참 아쉬운 건, 그게 실현됐더라면 미리 좀 서로 어떻게 새 시대를 준비할 것인지, 새로운 교류협력을 준비할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 이번에는 실무협의 장소를 평양으로 제안했나?

■ 우리도 사실은 그게 좀 난감하다. ‘북측이 편리한 장소’로 제안했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열리면 개성길이 열리기 때문에 아마 가벼운 실무협의는 개성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사업협의가 용이한 장소가 평양이다.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하는 건 실무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나. 이미 거기 개성공업지구사무소가 있고, 그래서 개성에서 할 수도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그래도 당연히 단체의 바람으로는 빠른 시일 안에 평양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겨레하나가 여러 교류협력사업을 해왔는데, 대표적인 사업들을 소개해주고,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싶은 사업이 무엇인지 밝혀달라.

■ 우리 겨레하나 하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게 ‘대동강 어린이 영양빵공장 사업’, 그리고 ‘북녘 어린이 콩우유 지원사업’이 있다. 우리가 9개 지역본부에 9개 사업본부가 있을 정도로 거의 전국에 걸쳐서 북과 활발하게 사업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2007년 평양 삼석구역에 양묘장을 건설했다. 이명박 정부 1년차인 2008년 9월에 서둘러서 준공식을 하긴 했는데 그 사업을 채 완료하지 못한 채로 교류가 중단됐다. 그때 직항기로 120명이 평양을 방문했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2015년에 방북 했을 때 현장 방문을 했는데, 이미 개보수해서 사용하고 있더라. 대부분의 사업장들이 그럴 것이다.

북측이 그동안 여러 차례 실무협의를 통해서 우리한테 강조했던 것은 더 이상 인도지원 방식의 협력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지난 시기는 인도지원이 지원 자체의 의미도 있었지만 남과 북이 일상적으로 오갈 수 있는 통로 역할도 했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 인도지원이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공격하거나 선전하는 수단, 악용하는 수단이 돼 왔기 때문에 오히려 남북관계를 훼손하는 것 같다라는 게 북쪽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인도지원이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뭔가 인도지원을 뛰어넘는 협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 없을까에 대한 연구와 모색을 좀 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2015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남북 대학생 교류, 대학생 역사답사를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래서 일단은 이미 합의했던 이것을 시작으로 천천히 대북 협력사업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남북 대학생 독립운동 역사답사’를 먼저 추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세 차례 ‘남북 대학생 독립운동 역사답사’ 추진

   
▲ 겨레하나는 대학생 교류사업에 우선 힘을 쏟고 있다. 사진은 대학생 금강산 통일새터(08.03.21 - 23) 모습. [사진 제공 - 겨레하나]

□ ‘남북 대학생 역사답사’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 구체적인 것은 협의해 봐야겠지만 우리 남측 대학생 100명과 북측 대학생 100명이 참가하는 ‘남북대학생 독립운동 역사답사’로 추진하려고 한다. 이것은 내년 3.1독립운동 100주년을 기념해서 남북대학생이 함께 공동의 역사를 공부하고, 답사하고, 토론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취지다.

□ 답사에 대한 구체적 구상은?

■ 일단, 1차 답사는 평양과 북측지역으로 잡고 있고 빠르면 7월로 추진할까 한다. 우리가 여러 사료들을 가지고 학생들과 공부하고 토론하고 있다. 북측에도 3.1운동 유적지가 많이 있을 것으로 예상돼서 그 지역들을 먼저 방문해 1차로 답사할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서울에 북측 대학생들을 초청해서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한 남측에 있는 3.1운동 유적지를 공동으로 답사할 예정이다.

내년 3.1절 전에 서울-평양 간에 철도가 연결되면, 우리 바람은 내년 3.1절에 평화대장정 혹은 역사대장정 같은 이름으로 남북 대학생들이 같이 서울에서 출발해서 평양, 신의주를 거쳐서 상하이와 하얼빈까지 답사하는 코스를 잡아보려 한다. 물론 이 3차 답사는 3.1운동 100주년위원회 등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일 것 같다.

□ 서울이 아니라 목포나 여수, 부산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닌가?

■ 검토해보겠다.

□ 이야기를 잠깐 돌려서,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공동응원을 다녀온 걸로 안다. 이후 교류를 위해 평가해본다면?

■ 평창 동계올림픽 공동응원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남북간 공동응원에 대한 합의도 있었고, 더 주요하게는 단일팀이 급하게 구성되면서 젊은 층 내에서 논란이 많았다. 그런데 사실은 한반도의 오랜 긴장, 특히나 하반기에 전쟁분위기 끝에 어렵게 찾아온 기회이기도 하고 북측의 손님을 맞이하는 이 기회를 이런 여론 속에서 맞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대학생들이 40여명 정도, 연인원으로 치면 50여명 정도 결합했다. 남북 단일팀을 환영하는 강원도 시민들과, 올림픽에 참가하는 시민들과 함께 공동응원을 만들면서 하나된 분위기를 현장에서 만들었던 성과들이 있다.

우리가 가장 주목한 건 우리 사회 내에서 단일팀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 현장을 함께 만들고자 했던 것이 컸고, 더불어 남측을 찾아온 북측 손님에 대한 우리 방식의 환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 그래서 실제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평가했나?

■ 현장에서 보면 그렇더라. 사실 북측 사람을 처음 만나면 어색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지 않나. 경기에 참가했던 시민들의 마음도 다 그랬을 것 같은데, 북측 응원단이 응원을 하는데 남측 관중들이 호응이 정말 없는 거다. 어색하고 구경하기 바쁘고.

그래서 우리 대학생 응원단 리더들이 북측이 응원하면 그 구호를 받아서 같이 외치고, 또 북측에서 파도타기를 하면 파도타기를 우리가 시작해서 북측으로 쭉 넘겨서 온 관객들이 함께 응원하게 하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 장면을 바라본 우리 시민들도 대단히 가슴 뜨거워지고 자신들에게 호응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북측 응원단도 매우 기뻤을 것 같다. 나중에 북측 응원단도 고맙다고 했다. 뿌듯했다.

참가한 대학생들이 “이게 뭔지 모르겠다” 이런 표현을 하더라. 이 젊은이들한테는 민족이라는 개념도 낯설고 북이라는 대상도 낯설고 한데, 뭔가 만났을 때 가슴 뜨거워지는 이것이 뭘까? 이런 이야기를 대학생들과 정말 많이 나눴다.

“민간의 역할이 더 많아져야 한다”

   
▲ 항생제 실습공장 준공식(07.8.3~8.5). [사진제공 - 겨레하나]

□ 북민협 차원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보다는 개발협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쭉 있어 왔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생각해보면 앞으로 큰 기업들도 북으로 많이 진출하게 되면 민간이 설 자리가 있을까 싶다. 어떻게 보나?

■ 정부가 직접 나서는 마당에 “민간이 할일이 없겠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오히려 그 반대다. 교류를 누가 주도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남북이 분단을 끝내고 통일을 준비하는 시대에 민간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또 보다 적극적으로 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여론과 의제를 만들고, 그것에 바탕해서 실제 시대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우리 민이, 시민사회가 담당해왔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교류의 영역에서 민간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역할이 더 많아져야 한다.

왜냐하면 통일이 단순히 체제 통일이거나 당국 간의 통일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남북이 섞이는 과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한반도를 구성하는 남북의 8천만 겨레가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어떻게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통일의 상을 합의하고 만들어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한반도 평화통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정말 많은 난관들, 장벽들이 있을 거다. 이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 사회적인 동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하고 그걸 만들기 위해서 민간이 어떻게 할 것인가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될 것 같다.

교류의 영역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니 뭔가 민간이 혹은 국민이 수혜자가 되는 분위기다. 물론 좋은 일이다. 다들 북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평양에 먼저 가보고 싶고, 평양냉면을 먹고 싶어하는 것은 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걸 넘어서서 남북관계가 다시는 전과 같이 되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만들 수 있는 사회적 동력과 힘은 정부의 힘만으로 되지 않고 남북의 국민들이,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야 할 영역이라 생각한다.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후퇴를 우리 국민들이 지켜보다가 보다가 촛불항쟁을 만들었다. 지난 11년 간의 남북관계의 후퇴도 우리가 그걸 지켜낼 수 있는 동력과 여론, 힘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남북관계가 악화됐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법제도가 없어서 악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동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교류의 영역에서도 경협도 필요하고 개발협력도 필요하지만 더불어서 민간교류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북미간의 관계정상화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완전히 다른 미래를 만들 것이다. 국가보안법도 당연히 폐지되어야 하며 통일을 준비하는 법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역할도 훨씬 역동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온 사회의 에너지와 지혜를 모아 민족 전체의 새로운 도약이 현실이 되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 민간교류 운동이란 무엇인가?

■ 지난 2001~2008년 기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고는 하지만 금강산 200만, 그리고 이래저래 따져보니 겨레하나를 통해서 방북한 분들이 1만여명 가까이 되더라. 그래도 주변에 보면 “나 북에 안 가봤어”, 젊은 세대는 “그게 뭐야?” 한다. 평양도 금강산도 개성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다.

그동안 인도지원을 매개로, 혹은 6.15공동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행사들을 매개로 많은 분들이 방북했지만, 그러나 여전히 우리 국민들에게는 북은 먼 대상, 가볼 수 없는 곳임은 여전했다.

물론 가는 것 자체가 우선이 아니라 실제 가는 과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교류에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건가. 이 문제에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경제인들이 오가고 의사와 전문가들이 오가는 것도 중요한데, 대학생들이, 노동자들이, 농민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함께할 수 있는 교류를 만들고, 그 교류를 통해서 북과 직접 만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촛불항쟁 이후 ‘직접 정치’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마찬가지로 통일도 우리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그런 통일의 과정으로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지금 우리가 남북대학생 교류 준비단을 만들고 있는데 대학생들의 문의가 빗발친다.

정말 우리가 지난시기 어렵게 통일운동 해왔지 않나. 그런데 전례 없을 정도로, 포스터를 붙이자마자 전화가 올 정도로, 정말 많은 학생들이 모일 것 같다. 다 북에 가보고 싶은 거다.

“시민사회운동, 다음 세대 육성하는데 사활 걸어야”

   
▲ 이연희 겨레하나 사무총장은 '다음 세대 육성'에 방점을 찍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민간교류에서도 대학생 교류를 주목하는 이유는?

■ 대학생이 상상력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건 너무 당연한 것 같다. 상상해 볼 기회도,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것이 지금의 대학생들의 현실인데, 특히 우리 대학생들의 경우는 어려운 세대지 않나.

나는 이들이 이 국면의 수혜자가 아니라 새로운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치 이들이 한국사회의 피해자로 ‘3포 세대’로 규정돼 왔는데, 그렇다면 이제 열려진 남북관계의 수혜자가 아니라 달라진 국면을 바탕으로 해서 직접 이 시대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미래세대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시민사회운동이 이후 세대가 없는 문제가 어디에나 걸려있다. 단순히 시민사회운동뿐만 아니라 종교단체든 어디든 “아, 요즘은 젊은 사람이 참 없어” 이런 이야기를 다 호소한다.

젊은 세대들한테 “이제 열렸으니 보내줄께”가 아니라 “너희들이 마음껏 상상하고 준비하고, 이 남북관계의 새 시대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동력, 운동을 만들어 봐라”라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는 그런 운동으로서의 교류를 만들고 싶다.

선배들이 반발 앞서서 학생운동, 통일운동으로 표현했던,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대단히 어려울 수 밖에 없었지만, 그런 운동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달라는 거다. 물론, 앞으로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 대학생 독립운동 답사의 취지가 이거라고 보면 되나?

■ 나는 우리 선배 세대들이 다음 세대를 육성하는데 사활을 걸어야 된다고 본다. 민간 통일운동이, 혹은 시민사회가 제대로 숨쉬고 이 운동이 계승되려면 다음 세대가 있어야 된다.

다음 세대인 우리 학생들이 공동체로부터 배제돼 있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여지가 대단히 적은 이 현실에서, 새롭게 미래를 꿈꾸고 자신들이 꿈꾸는 미래를 막아서는 문제들에 대해서 과감하게 싸우고 집단화 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인터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다음 세대 통일운동을 육성하는데 사활을 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민간단체도, 정부도, 대학도 조건을 만들고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겨레하나는 학생, 노동자들, 그들이 주역이 되는 직접적 교류를 추진한다고 보면 되겠나?

■ 그렇다. 나는 이번 3.1 독립운동 역사답사가 잘 되고 나면 일제 강점 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한 남북 대학생 공동기구 같은 걸 북에 제안할 생각이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걸 만들어야겠다.

사실 정상회담 앞두고 모든 단체와 언론에서 겨레하나 대학생들을 찾는 요청이 정말정말 많았다. 서울대학생겨레하나 대표는 정상회담 전후로 언론 인터뷰만 수십 건을 했을 정도다. 그걸 보면서도 정말 다음 세대가 없구나 절감했다.

독재에 항거했던 386세대들이 분단이 금기시된 사회에서 통일운동을 만들었고, 그 통일운동의 표상들이 있다. 그리고 그게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고, 우리 사회에 통일운동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어려운 과정이기도 했지만.

그런데 사실은 지금은 젊은 세대에 통일운동이 없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만드는 새로운 통일운동을 기대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한 여건을 마련하는 교류와 통일운동을 하고 싶다.

□ 겨레하나 대학생 모임에 대해 소개해달라.

■ 학내에서 동아리 활동과 학생회 활동을 어려운 조건에서 하면서, 역사문제를 가지고 대학사회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친구들이다.

학생들이 서로 접근할 수 있는 틀 자체가 대단히 어려웠는데, 소녀상을 건설하고, 학내외에서 싸우고 하면서 많이 달라지더라는 거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민족문제, 역사문제에 대해서 고민해본 경험이 있고 실천 속에서 체득한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잘 성장했으면 좋겠다.

전국 지역본부별로 대학생 겨레하나를 운영 중이고, 대학별로 학교 동아리가 있다. 지역별 사정은 각이하지만 남북정상회담 이후 새로운 대학동아리 전성기까지 꿈꾸고 있다. 서울의 경우 남북정상회담 이후 36개 대학 300여명이 활동 신청을 한 상태다.

진짜 대학생들이 활동하는 게 어렵다. 예전에는 운동 성향이 있건 없건 학생회 틀 안에서 대학생들이 생활하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지금은 아예 대학생들이 학점 관리도 어렵고 알바도 어렵고 공동체라는 틀이 없는 거다. 자기 친한 친구들 소집단을 제외하고는 모일 수 있는 틀도 없고 요즘 학생들은 술도 잘 안 먹고 담배도 잘 안 피고 그렇다더라.

오는 12일 모집된 친구들이 한 자리에 모일 건데, 최소한 2,3백명은 올 것 같다. 원래는 강연 듣고 조별로 토론도 하고 이런 자린데, 아무래도 최근 흐름을 반영한 이벤트도 섞어야 되겠다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판문점 선언을 폄훼하는 세력이 있다. 민족사적 경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다시는 남북관계를 되돌리지 않을 최소한의 장치인 ‘판문점 선언 국회비준’조차 시비를 걸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들과 합의를 이뤄내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적폐는 청산되어야 마땅하다. 판문점 선언을 환영하는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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