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재판을 받아 본 사람들은 검사와 판사가 한결같이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하나 있는데, 그 말은 ‘자유민주주의’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피고인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이를 전복하려 했기에 엄중이 벌하고 다스려야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신성불가침적 존재라는 것은 국가보안법 재판을 한 번 받아보면 실감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말이다. 변호사 역시 자유민주주의를 해칠 의사가 없었다는 것을 끝까지 강조해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자유민주주의’란 말, 더 없이 아름다우면서, 더 없이 고통을 주는 말. 당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 말에 수긍할 것이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4차 산업화와 함께 제일 먼저 사라질 것으로 ‘자유주의’라고 본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현금 자유민주주의를 새 헌법과 검정 국정 교과서에서 다루는 문제를 놓고 진보와 보수가 각을 세우고 있다. 양쪽 모두 다가오는 미래 산업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지 않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같은 것 같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은 신문 5월 5월 자 ‘오피니언’ 난에서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 이론을 원용하면서, “위대한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치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상언 논설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교육부가 중.고교 검정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 중,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뺀 ‘민주주의’만 하라고 한 데 대한 보수 언론의 논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신성불가침인 것이 추락하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 어디에도 신성한 것 같은 것이란 없기 때문이다. 신성한 것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고, 신성하다고 믿고 싶어 하는 요구사항 일 뿐이다. 지금까지 인류 문명사에서 과거에 신성하다고 하던 것이 추락 안 한 것은 하나도 없다. 신마저 니체에 의하여 그 사망선고를 받았고, 중세기의 그 신성하다던 로마 교황의 오늘날 처지를 보라. ‘자유민주주의’ 역시 그 신성불가침의 권좌의 자리에서 내려 올 때가 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4차 산업의 시대로 온 세계가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라리의 말을 들어 보자. “오늘 날 세계는 개인주의, 민주주의, 자유시장이라는 자유주의 패키지가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과학이 이 자유주의 질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호모 데우스, 386쪽)

자유주의자들이 개인의 자유에 높은 가치를 둔 이유는 인간이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는 중세기뿐만 아니라 계몽주의와 그 이후에도 서구적 인간관을 지배해 온 사상이다. 이 자유주의가 그 자체로서 위험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그리스 철학과 결탁되면서 존 로크, 루소, 제퍼슨 같은 계몽주의 사상 속에도 스며들었다는 데 있다.

자유의지란 말 속에는 인간의 내면에는 부셔지거나 파괴될 수 없는 알갱이 같은 자아(에고)가 있고, 이 자아는 자유의지를 조종하는 운전자와 같다. 다시 말해서 서양적 자아는 개인주의적이고 그것은 파괴될 수 없는 원자(아르케)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자아 자체가 없거나 불가능하다면? 4차 산업이 자아의 허구를 증명할 것이다.

20세기 과학에 의해 이러한 아르케와 같은 실체는 양자물리학에 의하여 여지없이 부정되었고, 4차 산업의 유전자 공학과 생명공학에 의하여 자아의 존재와 자유의지가 설 자리는 없어졌다. 이는 곧 자유주의의 근간과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언 논설위원은 성균관대 최준선 교수의 말을 인용, “민주주의는 권력의 행사 주체가 국민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이 선택의 권리와 책임의 의무를 갖고 미래를 개척하며, 자아실현을 추구하도록 하는 사상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이다.”

그럼 과연 그런가? 과연 최 교수가 말한 대로의 자유민주주의가 지켜 진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가? 이상은 논설위원은 “학교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정보기관의 여론조작, 정부의 문화 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 작성, 재벌의 갑질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여 교과서에서 자유를 지우지 말라’고 이상언은 강변하고 있다.

묻고 싶다. 왜 이 논설위원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엔 이런 논설을 쓰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란 말이 사람 잡는 수단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진데, 자유민주의란 말을 교과서에 그대로 둔다는 것은 그 수단을 그대로 두자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를 그대로 두자고 하는 말은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부 때와 같이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정보 사찰을 하고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도 좋단 말이지 않는가?

보수 언론이 이런 자가당착적인 논리를 전개할 경우 이와 같이 자기 발등을 찍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고문과 구타를 함부로 해 온 것이 지금까지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란 이름이고 행태일진데, 이를 알면서도 이를 지키자고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 역시 정보사찰이나 블랙리스트를 감시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가 불가결하다는 논리가 아닌가?

유발 하라리에 의하면, 4차 산업과 함께 발달된 알고리즘algorithm은 유기체로서의 생명체 속에서 자유의지 같은 것, 혹은 자아 같은 것은 있지도 않고 발견할 수도 없다고 한다. 8만 년 전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에게 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 같은 것이 있다는 상상의 산물이 4차 산업의 등장과 함께 자취도 흔적도 없이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호모 사피엔스의 종언을 고하고 초인 ‘호모 데우스Homo-Deus’로 대변화가 이미 도래해 왔다.

호모 사피엔스가 동물을 사육하고 가축화 하듯이, 앞으로 호모 데우스는 호모 사피엔스를 그렇게 할 것이라고 한다. 현생 인류는 멸종이 되든지 아니면 초인의 가축이 될 것이다. 동물에게 자유의지를 인정하지 않듯이 앞으로 호모 사피엔스도 그렇게 될 것이다.

뉴턴-데카르트적 세계관이 인간을 하나의 기계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면 이런 패러다임이 혁명적으로 변해, 20세기에 들어 인간은 유기체적인 존재로 여겼지만, 4차 산업과 함께 로봇이나 사이보그 같은 존재는 알고리즘의 구조로 된 기계와 같은 존재로 다시 탄생하였다. 무기체가 유기체를 압도하는 전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리 알고리즘을 쉽게 이해하면 동양의 역에서 말하는 괘卦와 같은 것으로서 0과 1의 비트의 조합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말해 두는 것은 알고리즘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양에서는 알고리즘이 만물 속에서 작동하고 존재는 유기체와 무기체의 조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1. 유기체는 알고리즘이고 생명이나 자아 그리고 자유 같은 것도 모두 알고리즘이며 생명이란 데이터 처리 과정이다.
2. 지능이 의식에서 분리되기 때문에 의식을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사이보그 같은)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544쪽)
3. 미래의 종교는 알고리즘 데이터교로 통일 될 것이다.

서구 사회는 이런 세계를 ‘멋진 신세계’라고 한다. 우울증 환자를 진찰 한 결과 뇌 속에 넣어 둔 칩에 배터리가 닳은 것이 원인이었다. 배터리를 새로 갈아 주니 우울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경두개 직류 자극 헬멧을 쓰니 전쟁에서 두려움 같은 것도 완전히 사라진다. 진통 같은 것도 유전자 알고리즘에 의하여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칩을 몸속에 넣어 두었다가 이를 의사에 보내면 인간의 수명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이를 ‘길가메쉬 프로젝트’라 한다. 쉽게 말해 ‘진시황제 프로젝트’라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세상이 오면 우리를 괴롭히던 자유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아니 적어도 문명의 초기 농경문화가 등장하면서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의 지고의 가치이던 자유의지라는 것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 확실하다. 자유의지가 무용지물이 되면 자유민주주의도 사라질 것이다.

통일조국과 함께 이러한 4차 산업화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자유’라는 말을 교과서에서 제거하려고 할 때에 이러한 4차 산업의 도래를 의식한 것일까? 그렇다면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유기체와 무기체가 알고리즘에 의하여 결합된 사이보그가 호모 데우스로 등장해 호모 사피엔스를 가축하는 그날까지 생각해 지금부터 헌법과 교육 지침을 만들어야 하는가? 너무 앞서 가고 성급한 주장일까? 아니라고 본다.

최근 하버드 대학교 조지 처지 교수는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현생 사피엔스 여인의 자궁에 넣어 3만 년 전에 사라진 우리의 조상을 재생시킬 것이라 한다. 많은 여인들이 이에 동참하려 한다고 한다. 이들에게 자유민주주란 무슨 의미가 있고, 인권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3만 년 전 유인원과 같이 산다면 그런 세상은 어떤 세상이고, 그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자유민주주의를 적용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도 국가보안법은 유효할 것인가?

확실히 인권과 자유의지, 그리고 인간의 자아에 대한 개념 정리를 다시 할 순간에 서 있다. 이 순간이란 바로 호모 사피엔스 종언의 순간이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 즈음하여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남북이 합작하여 새로운 설계를 해야 될 순간이 되었다. 북이 핵을 포기하더라도 남북이 같이 노력해 핵보다 더 위대하고 큰 시너지 효과를 해 낼 수 있지 않을까? 4차 산업은 앞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포함해 19-20세기 적폐들을 다 삼키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첫째 생명공학, 둘째 사이보그 공학, 셋째 비유기물 공학(로봇공학) 같은 것을 남북 합작으로 성공시켜 나가면 한반도에서 새로운 문명이 분명히 탄생할 것이다.

통일조국에서 북한에 가 부동산 투자하고 여행 다닐 꿈만 꾼다면 서글프지 않는가? 남북이 지혜를 모을 때에, 이 세 가지의 발전이 결코 ‘1984년’과 같은 세상이 아닌 진정한 사람 하나하나가 사회 관계망 속에서 중심이 되는, 호모-데우스를 너머 ‘호모-호모 Homo-Homo’의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그것은 이미 동학이 예견한 인내천人乃天의 세상일 것이다.

동양의 불교적 세계관은 자아가 없는 무아無我의 세계가 참된 세계라고 했다. 애시당초부터 서양식 자유민주주의는 우리 철학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었다. 음양오행에 의하면 오행 가운데 목木은 유기체이고, 금金은 무기체이다. 금과 목이 서로 상생상극 하여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생성된다고 보았다. 이 말 속에는 유전자 공학과 생명공학을 맞이할 사상적 준비가 우리 가운데 있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 과학은 이러한 상생상극 관계를 모른 채 4차 산업에 진입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서양은 지금 유기체와 비유기체의 결합을 성공시키려 하고는 있지만, 그 자체가 왜 가능하고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이 될 것인가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사이보그와 로봇에 대해 경외감과 두려움을 함께 가지고 있다.

칩과 같은 비유기체가 유기체인 몸과 어떻게 조화가 될 것인가에 대한 철학이 아직 없다. 데카르트가 두 세계를 단절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치과에서 임플란트는 두 세계의 연결 고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눈과 귀에서도 앞으로 비유기체 같은 칩을 넣으면 생화학 작용을 하여 인체의 신경망과 잘 조화 될 것이라 한다. 

동양적 지혜는 오랜 고대로부터 양자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목생화-화극금-금극목 이라는 상생상극의 조화 관계를 다시 되돌아 생각해 보면서 이런 세계관에 맞는 정치 철학과 교육 이념을 발견해야 될 순간에 우리는 서 있다.

서양의 자유민주주의와 유일신관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유일신관도 종언을 고할 것이다. 통일조국 한국에서 4차 산업의 신문명을 통일과 함께 탄생시킨다는 것이 우리의 몫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서양은 지금 유기체와 비유기체의 결합을 성공시키고는 있지만 그 자체가 왜 가능하고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이 될 것인가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사이보그와 로봇에 대해 경외감과 두려움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양적 지혜는 오랜 고대부터 그 관계를 알고 있었다. 서양의 자유민주주의와 유일신관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함께 유일신관도 종언을 고할 것이다. 4차 산업은 이미 수천 년 전 우리의 지혜 속에 들어 있었다. 우리 사상으로 무장된 ‘멋진 신세계’, 곧 통일 조국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 5월의 신록만큼이나 가슴 벅차고 살 맛 나지 않는가?

한국의 정보기관과 사법부는 앞으로 사이보그를 어떻게 국가보안법으로 다룰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온 것 같다. 음양오행의 균형 있는 감각으로 다루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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