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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이 끝났다. 남북 정상회담을 보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나는 조금 색다른 각도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생각을 적어 볼 까 한다. 그냥 감상문 정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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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후 한국은 두 개의 거대한 집단이 경합했다. 하나는 독립운동을 하고 남북협상을 중시하는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육성한 어떤 집단이다.

전자는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었고 남북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통한 사회경제적 활로를 모색하고 있었다. 반면 후자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하자를 갖고 있었지만 당시 선진 문물을 대표하는 미국과의 친화력이 높았다.

양자는 한국 현대사의 두가지 흐름을 대표한다.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지적‧경제적 인프라를 건설했던 집단은 후자이다. 그럼에도 정서적‧도덕적으로는 전자가 강력한 기반을 갖고 있다.

양자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던 것은 1960년대 하반기에서 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이다. 토대와 뿌리의 관점에서는 후자가 한국사회를 압도했다. 2018년의 한국을 기저에서 지탱하는 인프라의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하자가 있지만 미국과 친했던 어떤 집단에 의해 건설된 것이다.

한편 산업화‧현대화는 민주화를 고리로 정서적‧도덕적으로 유지되어 온 남북협상 사조를 다시금 전면에 부각시켰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그렇고 지금은 중년이 된 민주화 세대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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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2차례의 남북협상은 이러한 상황에서 벌어진 것이다.

1차 정상회담은 충분히 산업화되고 현대화된 한국을 배경으로 추진되었다. 화해와 평화, 통일에 대한 열정이 폭발했지만 다분히 감정적인 측면이 강했다. 남북 정상회담의 열기가 소진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한국은 남북 정상회담 이전으로 돌아갔다.

언제나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열정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프라이다. 통일에 대한 여망이 극적인 열기를 불러 왔지만 통일은 실제 생활과 별다른 연관을 갖고 있지 않았다.

2차 정상회담은 더욱 그랬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 등 글로벌 무대로의 진출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2차 정상회담은 김대중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는 통과의례에 가까웠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모두 주요한 정책 과제, 실제 국민적 삶과 직결된 문제에 있어서는 북한과 그다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지 않았다. 남과 북은 실제 삶과 생활양식에 있어 예상보다 먼 거리에 있었고 통일을 둘러 싼 감정의 분출은 일회적이거나 감정적인 요소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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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정상회담은 이전 정상회담과 확연한 차이를 갖는 것 같다.

첫째는 북미 회담의 결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 지점은 그냥 예상이다. 여러 사람의 의견과 내 의견 그리고 현재까지 벌어진 상황을 요약하여 나름의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만약 이게 틀리다면 이 글 내용 중 상당 부분이 틀릴 수 있다.

북미 회담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동결과 체제 보장’으로 끝날 것 같다. 여기에 상징적인 핵 폐기와 같은 극적인 이벤트가 결합되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북한은 자신의 기본 노선을 지키는 선에서 상당한 수준까지 양보할 것 같다. 남한을 비롯해 주변 열강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절묘한 타협점을 찾은 것이 2018년 정국을 강타했던 정세 격동의 추동력이다

미국이 이를 거부하더라도 상황을 근본적으로 역진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남북 대화 국면은 구조적이고 안정적인 성격을 갖는다.

둘째는 북한의 적극적인 협상 의지이다. 북한은 통일방안과 같은 정치적 상징성이 높은 의제를 넘어 군축이나 철도 연결과 같은 구체적이고 실물적인 문제를 전격적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1, 2차 정상회담이 보여주지 못한 요소, 한국 국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제공할 것이다.

셋째는 여론 지형이다.

386과 함께 1990년대 초반 전대협의 전성기에 학생이었던 민주화 세대가 40~50대와 자녀 세대를 완전 장악했다. 이들은 남북 대화와 협상의 진전을 간접적으로 환영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청년시절의 세계관과 현실을 동일시할 가능성이 높다.

전통 세대가 통일을 이산가족과 연결시켰다면 민주화 세대는 통일을 정치적 비원의 실현과 연결시키고 있다. 후자가 훨씬 강도가 센 것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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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대화와 협상 국면은 안정적이고 구조적이며 실물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반면 우리는 통일과 함께 두 가지 결정적이고 중요한 과제를 갖고 있다.

첫째는 글로벌화와 한국사회의 산업화를 한 단계가 발전시키는 과제이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얼마나 더 만들어낼 수 있는가이다.

2차 대전 직후 남북협상파는 남북 사이의 교류와 협력을  유력한 사회경제적 출로로 판단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러한가하는 의문이 남는다. 남북이 경제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하면 예를 들어 개성공단을 재가동하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면 한국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이다.

한국은 남북교류와 협상으로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규모와 단계가 아니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이 어떤 포지션과 실력을 갖는가이다. 남북 교류와 협력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의미를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는 남북협상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한국의 활로를 대립적으로 볼 가능성이다. 과학과 기술, 기업과 전문가 집단에 대한 경시 경향은 그런 징조를 보여준다.

민주화 세대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인 윤민석은 그가 창작했던 ‘애국의 길’에서 이렇게 말한다.

“통일은 우리의 소원일 수만은 없다. 오로지 통일만이 살 길이어라”

나는 이렇게까지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면 대다수가 통일이 발휘할 사회경제적 변화를 과장하고 그것과 다른 경로와 가능성에 대한 의미 있는 탐구와 시도를 경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남북 정상회담은 감격적이지만 촛불-문재인 정부의 출범-적폐청산과 유사한 감정 과잉 상태에 있다.

한국사회의 운명을 결정지을 또 다른 문제는 사회경제적 개혁이다. 저출산‧산업경쟁력‧청년실업 등이 그것인데 이는 문제를 환기하는 정도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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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극적인 국면으로 돌입하고 있다.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우리는 2018년 불과 4개월 사이에 경천동지할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김정은과 김여정 등 북한의 3세대 리더와 그들이 구사하는 놀라운 전략 전술 말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 가장 중요한 장면은 김정은 위원장의 월경이다. 할아버지, 아버지는 남한의 정치리더들을 북한에 초대하여 정치적 담판을 통해 상황을 개척했다. 반면 김정은은 적절한 협상안을 들고 직접 남한을 찾아 여러 사람들을 설득할 모양이다.

‘도보다리’ 위 두 정상의 담화 장면은 세계 외교사의 명장면으로 남을 것 같다. 아마도 문재인 대통령은 간곡히 북한의 핵포기를 설득했을 것이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주고받는 대화가 가능한 인물임을 선보였다.

2018년 4월말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모습은 불량국가 북한을 남한이 설득하여 정상국가로 등장시키는 장면이 아니라 와신상담했던 북한이 남한을 고리로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장면이다.

누군가의 말을 빌린다면 북한은 미끼를 던졌고 남한은 미끼를 물었다. 달리 표현한다면 북한은 상당한 양보가 담긴 협상안을 던졌고 남한은 이를 받아 전 세계로 뿌리는 중이다.

전후 사정이 어떻든 잘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어디까지 전진할 것인가는 신중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을 보며 김구를 떠올렸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가망 없는 통일의 길을 부여잡고 북행길을 택했던 노 정객은 서산대사의 선시를 빌려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심경을 노래했다.

눈 덮인 길을 걸어갈 때
발걸음을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이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이건 70년 전 과거의 일이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 본 민주화 세대가 지금도 갖고 있는 신념체계이다. 중년 민주화 세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1970~90년대 청년 세대가 집단적으로 내면화했던 어떤 경향의 집단적 분출처럼 보인다.

지금의 중년 세대는 1.4후퇴 때 잃어버린 아버지와 형제를 찾아 헤매던 전통 세대와 다르다. 그들에게 통일은 혈육을 만나는 장면과 연결된 감정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민주화 세대는 그걸 위해 최루탄을 맞고 감옥에 갔던 그들의 청년 시절과 연결되어 있다. 민주화 세대에게 통일은 70년 전 김구가 후대가 걸어갈 길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이정표와 같다. 대를 이어 달성해야할 정치적 비원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70년 전에 또 다른 스토리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나 지금이나 미국은 초강대국이다. 정전협정과 주한미군, 전쟁위기와 군사훈련이 미국의 한 측면이라면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엘런 머스크와 제프 베조스를 만들어낸 혁신과 창조의 요람이 다름 아닌 미국이다.

나는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갔으면 한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인 혁신과 과학기술에 합류하는 것을 중심으로 남북협상과 교류협력의 가능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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