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전 논의 축복 - 핵, 미사일 동결

지난 2주간 북미 사이 가장 큰 변화는 양측이 본격적인 주고받기에 전격 돌입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품페이오 국무장관 지명자의 평양 특사 방문(4.1) 사실을 보름이 지난 후 공개하며 “만남이 매우 순조롭게 진행됐고 좋은 관계가 형성됐다”고 적극 평가(4.18)한 것은 그 사이 치열했던 물밑 대화에서 일정한 절충점이 형성됐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절충점이란 상호 간 얻을 무엇이자, 줘야할 무엇이다. 외형상 ‘교환’의 물꼬를 먼저 튼 것은 미국이다.

트럼프의 “남북 사이 종전 논의를 축복”한다는 발언(4.17)은 첫째 남북 정상회담 의제에 ‘한국전쟁 종전 논의’가 포함된다는 것을 처음 구체적으로 객관화한 것이며, 둘째 그 연장선에서 트럼프정부가 북미 평화협정 논의를 수용할 수 있다는 최초의 공개적 의사표시다.

이후, 우리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종전 선언’에 준하는 항목이 포함될 수 있다(청와대 관계자.4.18)”고 밝혔으며, 북은 남북 정상회담을 “특기할 사변(노동신문. 4.18)”으로 설명, 역사적 중요성을 한층 더 부각시켰다.

그로부터 이틀 후(4.20), 북은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핵무력, 경제 건설 병진노선’을 ‘경제 건설 총력집중노선’으로 수정하고, 그 사실을 공개(4.21)했다. 2013년 3월 31일 채택, 작년 11월 29일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세계 최강의 핵강국, 군사강국으로 더욱 전진, 비약할 것(2017.12.12)”이라 공언했던 것에 비춰, 이는 커다란 변화다. 북의 ‘4.20 결정’에서 핵, 미사일 관련 사항은 두 측면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핵, 미사일 실험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 핵 동결이다. 다른 하나는 이미 보유한 핵무기에 대한 것으로, 선제공격과 핵 확산 반대 입장표명이다.

뉴스가 뜨고 한 시간 만에 트럼프는 “북한이 핵실험을 모두 중단하고 주요 핵실험 부지를 폐쇄하는 데 합의했다”며 “커다란 진전”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류집단은 이번에도 일제히 재를 뿌린다. 엔비시(NBC)는 “북은 비핵화를 약속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북이 핵무기 완성을 선언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보좌진은 회의적”이란다. 공화당의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은 “쉽게 뒤집힐 수 있는 약속”이라며 깎아 내리는 등 정치권 반응도 대동소이하다.

그러자 트럼프는 “북한은 비핵화, 핵실험장 폐기, 시험 중지에 합의했다(4.22)”고 트위터에 올린다. 북의 동결이 비핵화의 ‘시작’이 아니라는 공격에 반격하는 맥락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점에서, 트럼프는 북의 핵 동결을 비핵화의 출발로 인식하고 있다고 해석해야 자연스럽다. 북의 ‘4.20 결정’은 그 자체로만 떼어서 볼 때 핵, 미사일 동결 선언이지 비핵화 약속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비핵화의 첫 걸음이라 굳이 규정했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다. 하나는 트럼프가 세상을 속이기 위해 동결과 비핵화를 일부러 혼동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 안전 보장’이란 상대의 해법에 열린 자세를 견지, 문제 해결에 몰입하겠다는 트럼프의 간접 약속이다.
     
2. 품페이오 인증 청문회, 미국의 한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지명자(CIA 국장)가 4월 12일 미 상원 인준 청문회에 섰다. “이번 회담은 트럼프, 폼페이오 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측 이익을 대표하는 그가, 위증할 경우 처벌이 부과되는 청문회에서 무슨 말을 했을까? 먼저, 북미 정상회담의 목표는 비핵화라는 미국의 공언이 사실은 허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드러냈다. 그는 “목표가 북한의 비핵화”라면서도 “북한이 정말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느냐”는 질문에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할 강압과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조선일보.4.14)”고 했다. 북의 ‘비핵화 결정’을 이끌어낼 미국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단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인데 처음부터 길이 없다니, 이건 뜻이 없단 말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회담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품페이오 지명자는) 미국에 대한 핵 위협을 다루는 게 회담의 목적이라고 거듭 확인했습니다(VOA.4.13).” 이와 관련, 같은 날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의 매티스 국방장관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현재는 북한의 핵, 미사일 역량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할 수 있지만, 추가 생산이 이뤄지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VOA.4.13).” 국무장관 지명자와 국방장관의 견해에 따르면 미국은 북의 ‘핵, 미사일 동결’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목적을 이룬다.

미국이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재확인됐다. “북한과 관련한 미국의 유일한 목표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냐”는 질문에 품페이오는 “역내 동맹인 한국과 일본, 다른 국가에 전략적 억지 제공을 계속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대답한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전략적 억지란 현재 양국에서 누리는 미국의 군사적 기득권과 같은 말이다. 군사적 기득권에 대한 집착, 이것이 미국의 한계다.

3. 군사적 기득권 집착 사례 - 시리아 공습

4월 14일 미군 주도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시리아 화학무기 관련 시설 세 곳에 105발의 미사일을 퍼부었다. 주권국가의 영토를 유엔 안보리 승인조차 없이 마구 유린하면서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 응징이다. 여기서 잠깐 시리아 내전의 기원을 보자. 2011년 중동, 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시위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이중적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군대 1000여 명 등이 바레인의 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2011.4.14)했음에도 미국은 방관했다. 그러나 리비아와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에는 초기부터 정치적, 물질적으로 적극 지원, 내전으로 발전시켰으며 그를 통로삼이 전쟁에 직접 개입했다.

시리아의 경우를 좀 더 보자. 2011년 반정부 시위가 한창이던 상황, 시리아 주재 미국 대사는 시위 현장을 방문, 공개 지지했고(7.7),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의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2011.8.18)했다. 2012년 4월 1일 미국은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리아의 친구들’이란 국제회의를 열고, 시리아 반정부군 지원을 공식화한다. “미국은 반군이 국제사회와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통신장비를 제공하고 추가로 1200만달러를 지원하는 등 총 2500만달러를 출연하기로 했다(조선일보.2012.4.3)” 2013년부터는 공개적으로 무기 지원을 시작한다. “지난 2013년 전임 바락 오바마 행정부가 시작한 미국의 무기 지원 프로그램은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압박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VOA.2017.7.20.).”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시리아 국민 모두, 강대국 이권의 희생양으로 스러지는 이 아수라장에 2015년 10월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군 편으로 군사 개입을 시작한다. 그리고 전세는 점차 시리아 정부군 쪽으로 기운다. 시리아 내전의 역량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건은 올 4월 4일 러시아, 이란, 터키가 정상회담을 갖고 시리아 내전 종식에 합의한 것이다.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와 이란, 반군을 지원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터키의 ‘종전 합의’는 시리아 국민에게 평화를 줄 수 있는 충분한 동력을 갖춘 것이었다.

바로 이 즈음 트럼프의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 발언이 나온다. 4월 3일 트럼프는 “시리아 철수를 매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면서 지난 17년간 중동에서 7조 달러(약 7392조 원)에 달하는 돈을 썼지만, 죽음과 파괴 외에 우리가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조선일보.4.4)”고 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시리아 개입 종료라는 ‘성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한겨레.4.5)”는 해석이다. 그러나 그 직후 열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시리아 철군은 결정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 개최 몇 시간 전에 언론에 밝힌 입장에서 달라진 것이다(같은 기사).” 하지만 트럼프가 철군 주장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국가안보회의(NSC)에서 단기적으로 시리아 주둔 미군을 조금 더 유지하는 데 동의하면서도 조만간 철군하기를 원한다며 참모들에게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했다(중앙일보.4.5).”

이러한 직후, 시리아 정부군에 의한 화학무기 공격 의혹 사건(4.7)이 불거진다. 시리아 정부군으로 ‘의심’되는 세력이 반군의 마지막 거점 동구타 지역에서 화학무기를 사용, 주민 70여명이 숨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4월 12일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증거를 찾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4월 13일 트럼프는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 증거를 확인했다”며 공격명령을 내린다. 미국이 찾은 증거는 무엇일까? 4월 14일 시리아 공습 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미 국방부는 시리아의 화학무기 공격증거를 확신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으나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공개하진 않았다(연합뉴스.4.15).”

증거도 없이 시리아를 공격한 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4월 15일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시리아 주둔 미군 부대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지만, 우리는 목표가 달성되기 전까지는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밝힌 미국의 목표는 화학무기 사용 금지와 이슬람국가(IS)의 패퇴다(조선일보.4.16).” IS를 다 물리쳤으니 이제 그만 시리아에서 철군하자는 트럼프의 논리는 박살났다. 화학무기 사용금지가 추가된 것이다.

없는 증거를 있다고 우기면서 시리아 공격을 명령(4.13)한 그 사람이 남북의 종전 논의를 축복(4.17)한다. 두고 볼 일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갈 일이다.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전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전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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