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4월 20일 조선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를 개최하여 핵 및 ICBM 실험 종식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선언하였다.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은 2013년 3월에 천명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로선’에 입각하여 핵무력 건설에 매진한 결과 “핵무기병기화 완결‘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핵실험이나 ICBM시험발사가 필요없게 되었고 자연히 핵실험장도 불필요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북미 정상회담 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도적으로 ‘미래핵’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조선반도 비핵화’ 의지가 어느 정도로 강한가를 보여주는 징표이다. 물론 ‘과거핵’에 대한 언급은 없기 때문에 향후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북의 ‘과거핵’에 대한 처리문제가 큰 쟁점이 될 전망이다.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면담한 ‘3.6 합의’에 의하면 ‘과거핵’ 폐기 문제와 관련하여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고 북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군사적 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이다. 사실상 ‘북 비핵화’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무조건 비핵화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북이 비핵화한다면 누가 북의 체제를 보장해 주는 것인가? 당연히 미국이다. 북이 누차 강조한 핵개발 이유는 ‘미국’의 ‘대북 침략 가능성’이었다. 따라서 북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하지 않고 체제안전보장을 해주는 당사자는 미국인 것이다. 만일 미국이 북핵에 대한 CVID를 주장하는 것에 상응하여 북 체제에 대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안전 보장(CVIG,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를 해준다면 북핵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트럼프가 북의 ‘독특한’ 체제를 보장해 줄 것인가이다. 미국은 그동안 북의 핵문제뿐만아니라 인권문제를 거론해 왔다. 북미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미국은 4월 20일 북을 ‘일상적으로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로 재차 규정했다. 북의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개입하려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핵협정 개정을 요구받는 이란도 인권 침해 국가에 포함됐다. 미국과 북이 대화 국면에 들어선 상황이지만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유지한 것이다.

존 설리번 국무부 장관 대행은 “표현의 자유와 평화로운 회합을 제한하고, 종교인·소수민족 등 소수의 집단에 대한 폭력을 자행하고, 인간 존엄의 근본을 훼손하는 나라들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며, 우리의 이익을 저해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인간 존엄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전 세계의 사람들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외에는 미 국무성 지원으로 대북 방송 및 삐라 살포,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단체가 여럿 있다.

그리고 사실상 미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2월 17일 발표한 4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북한 내부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이 보고서는 마이클 커비 전 호주 대법관을 비롯한 COI 위원들이 2013년 1년간 서울 워싱턴 런던 도쿄에서 공청회를 열어 80여명의 증언과 240번 이상의 개인면담을 기초로 작성했다.

보고서는 “북한 정권이 저질러온 끔찍하고 포악한 행동은 그 참혹함, 방대함, 악독함에 있어서 현재 지구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수십 만 명의 북한주민들이 정치범수용소나 기타 형무소에서 지난 오십여 년간 계획적으로 살해당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번 유엔보고서가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북의 실상을 꼼꼼히 기술한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해결방법을 명시했는데 김 위원장을 비롯한 북의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한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8일(현지시간) 아베 일본 총리와의 미일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이지 않으며 결실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회담을) 하지 않을 것이다. (회담장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만약 회담에서 결실이 없으면 각각 (회담장에서) 나와서 우리가 해온 것을 계속 하겠다”라고 말하여 최악의 상황도 대비하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 국무성이 말한 것을 분석해 보면 마치 2005년 9.19공동성명 이후를 보는 것 같다. 미국은 북과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지원 및 관계개선을 합의하고서도 바로 다음날 BDA(방코델타아시아)사건을 터드려 비핵화 합의를 무력화시켰다. 북은 이에 반발하여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하였다. 미국은 1994년 10월 북미제네바 합의도 성실히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북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북은 1998년 8월말 대포동 1호를 발사하였다. 당시 미국은 북의 ‘조기붕괴론’을 신봉하여 합의 이행을 질질 끌었다.

미국은 왜 큰 협상을 앞두고 북의 인권 문제를 꺼내고 있을까? 우선은 북핵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것일 것이다. 북이 북핵문제에 성실히 임하지 않으면 다음은 인권카드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실제로 북핵문제가 타결되어도 북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향후에도 계속 압박할 것이라는 미국의 속내를 내보인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생존 시 미국은 북의 붕괴를 위해 계속 압박을 가할 것인데 핵문제, 인권문제, 수령유일체제문제, 주체사회주의 문제 등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북은 핵을 수단으로 미국으로부터 ‘완벽한’ 체제안전 보장을 받아야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만일 핵문제와 체제안전보장 문제를 ‘어설프게’ 맞교환했다가는 큰 후환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 김 주석의 경고였다. 이제 김 주석의 유시에 따라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 핵을 수단으로 체제안전 보장을 위한 건곤일척 ‘대 담판’을 벌이려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매사 “잘 될 것이다”라고 낙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의 압박에 못이겨 ‘항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의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는 ‘잘 될 것이고’ 자신이 보장하는 북의 체제안전은 언제든 ‘휴지장’으로 만들 수 있는 협정문서라고 계산할 수도 있다. 따라서 향후의 일을 낙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유일패권 국가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을 침공하는 등 세계질서를 마음대로 요리하였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핵을 포기했지만 서방의 ‘민주화 공작’에 의해 피살되었다. 담판으로만 인생을 살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북을 요리하는 정도는 ‘식은죽 먹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과거 행태를 잘 아는 북은 모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으로부터 철저한 체제안전보장을 받지 않으면 ‘과거핵’에 대해 호락호락한 양보를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진정 북핵을 포기시키고 한반도는 물론 미국의 안전보장을 원한다면 금번 정상회담을 통해 ‘백년숙적’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미국은 1968년 1월 프에블로호 나포사건, 1976년 ‘8.18 미류나무 사건’ 등으로 인해 대북 복수심이 있을 것이고 자유자본주의 국가로서 주체사회주의 같은 ‘특수한’ 체제를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은 이런 독특한 체제를 ‘보장’해 주는 것을 ‘패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 도처에 깔려있는 ‘독특한’ 체제들이 북의 방식으로 체제안전 보장을 받으려할 때 선례가 될 것에 대한 우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은 이제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다. 리비아, 이라크, 이란, 여타 잠재적 핵개발 우려국 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동북아의 ‘핵도미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모처럼 도래한 기회에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의 발언대로 북의 체제안전 보장과 관련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실히 이행하여 북의 신뢰를 쌓고 북미관계를 완전히 정상화시킨 이후 다른 사안들을 논의해야 한다.

결국 북핵 문제 해결 성패는 미국이 북을 그 체제적 특성과는 무관하게 정상적인 파트너로 생각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미국이 과거의 ‘테러국가’, ‘불량국가’, ‘실패국가’와 같은 이미지나 ‘조기붕괴론’, ‘제재에 의한 항복론’적 시각으로 북을 인식하고 대한다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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