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적 구속력을 지닌 판결은 아니지만, 정의의 문제로서 대한민국에 책임을 지운 것이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국가배상법이 정한 배상기준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책임을 공식 인정하라.”

베트남전쟁(1960~1975)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생존자들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적 구속력을 지닌 판결은 아니지만, 정의의 문제로서 대한민국에 책임을 지운 것이다.

‘한베평화재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으로 구성된 ‘시민평화법정 준비위원회’ 주관으로,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시민평화법정)이 지난 21일과 22일 이틀간 서울시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렸다.

22일 마지막 시민평화법정 판결선고에서, 재판부를 담당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 “원고들은 전쟁에도 보호받아야 할 민간인으로 인정되며, 증인들의 진술도 신빙성이 있다”며 “100여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미뤄 이 사건이 전쟁 중에 일어난 의도치 않은 희생으로도 볼 수 없다”고 대한민국 군대의 잘못을 지적했다.

이에 ‘국가배상법’ 제3조가 정한 배상기준에 따라 학살 생존자들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배상할 것을 판결했다.

또한,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 지역에서 대한민국 군대에 의해 베트남 민간인에 대한 살인, 상해, 폭행, 성폭력 등 일체 불법행위가 일어났는지에 관한 진상조사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전쟁기념관을 포함해, 대한민국 국내 베트남전쟁 참전을 홍보하는 공공시설과 공공구역에 대한민국 군대가 불법행위를 했다는 사실과 진상조사 결과를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재판부를 맡은 김영란 전 대법관(가운데)이 선고를 내리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다만, 전쟁범죄 해결을 위한 ‘책임자 처벌’ 문제는 시일이 참전 군인들과 피해자들의 화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시민평화법정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법적 배상, 진상규명, 후세교육 등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 문재인 대통령의 유감 표명을 넘어서, 한국 정부가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판결이다.

정식재판이 아닌 시민법정이라는 점에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196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쟁 범죄를 다룬 ‘러셀국제법정’,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등이 전범 국가의 책임을 묻는 국제운동으로 퍼진 계기였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학살 피해 생존자들, “기쁘다..한국 정부와 참전 군인 사과 바란다”

이날 판결을 들은 퐁니퐁넛 마을의 응우예티탄 씨는 “기뻐서 온몸이 다 떨린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며 “기쁜 소식을 갖고 베트남에 당당하게 갈 수 있게 됐다. 희생자들과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 법정은 가설법정이지만, 나에게 큰 기쁨을 안겨줬다. 74명의 희생자도 오늘 이 판결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고, 이런 결과를 기대했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와 참전 군인들이 이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하미마을에서 온 응우예티탄 씨도 “이 기쁨을 베트남에 가서 사람들에게 다 알리겠다. 한국에 와서 직접 목격했던 모든 일을 생존자들에게 찾아가서 알리겠다”고 말했다.

▲ '시민평화법정'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시민평화법정’은 1968년 2월 베트남 중부 꽝남성 퐁니퐁넛 사건(74명 학살), 하미사건(135명 학살)을 다뤘다. 원고는 당시 한국군에 의해 피해를 본 생존자 2명이며, 피고는 대한민국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 이석태 변호사, 양현아 서울대 교수가 재판부를 맡았으며, 원고 측 대리인은 권민지, 김남주, 오민애, 이선경, 임재성, 함보현 변호사, 피고 측 대리인은 박진석, 이정선, 전민경 변호사가 담당했다.

이틀간 열린 시민평화법정에는 매일 5백여 명이 참석했으며, 두 피해자인 응우예티탄 씨들은 오는 23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 광장에서 열리는 릴레이 1인시위 종료 행사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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