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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는 교통문화② 영업용 택시(편)<연재> 최재영 목사의 남북사회통합운동 방북기(95회)
최재영  |  9191j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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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6  10: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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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목사 / NK VISION 2020 대표
 

재미동포 목사, 평양에서 택시를 타다
     
평양을 비롯한 이북 전역에서 택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제 기차, 지하철, 버스 등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 되었다.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올 3월 31일 오전 남측예술단 ‘봄이 오다’ 공연팀 중에 한 명이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해 평양시내에 들어서니 영업용 택시들이 승용차들의 두 배가 될 정도였다고 첫 소식을 알려왔을 정도로 지금은 택시가 보편화, 대중화되었다.

필자가 평양에서 처음 영업용 택시를 탑승해본 시기는 2013년도였으며 그 후 재미삼아 매년 한두 차례씩 이용해왔다. 첫 승차 경험을 했을 때 이야기다. 당시 평양 양각도호텔에 체류하던 필자는 일행 중 한 분과 함께 호텔에서 평양시내 오탄공원 앞 사거리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원래 해외동포나 외국인이 자신의 담당 안내원을 배제하고 택시를 타는 건 불법이다. 그러나 나와 동행한 분이 워낙 방북경험이 많은 분이신지라 마치 학생이 학교에서 땡땡이치고 몰래 학교 밖을 빠져 나가듯 나는 아무 거리낌 없이 택시 타는 거사(?)에 합류했던 것이다.

평소에 평양시내 호텔입구나 주차장을 보면 택시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어서 언제나 누구든지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시내 도로변의 택시 승강장에서도 쉽게 택시를 잡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호텔이나 주요 교차로에도 택시가 어느 정도는 대기하고 있다. 그러나 교통법규상 손님이 택시를 세운다고 아무 도로가에나 무작정 택시를 댈 수는 없다고 한다. 하필이며 필자가 택시를 타려는 날에는 호텔 주차장에 택시가 전혀 안 보이길래 호텔 로비 카운터로 가서 택시를 불렀다.

평양에서 택시를 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설레기까지 했다. 택시를 호출한지 5분도 채 안돼서 총알처럼 택시 한 대가 도착했다. 평양시내에서 택시를 이용하려면 호텔 데스크에서 제공해주는 전화번호를 보고 택시기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 수 있으며 콜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다. 대동강택시를 이용할 경우에는 휴대전화나 유선전화로 ‘186(일팔육)’ 번을 누르고 요청하면 10분도 안 돼 곧바로 택시가 대기한다. 손님이 186을 누르면 택시사업소 중앙 캠프에서 전화접수를 받고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택시 분소로 연결해 택시를 쏜살같이 보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남측이나 서방세계의 콜택시 개념과 비슷했다.

탑승해보니 의외로 차량내부도 깔끔하고 운전기사도 매우 친절한 것으로 보아 택시 서비스는 매우 괜찮은 수준이었다. 호텔로 복귀할 때 이용한 택시 내부에 부착된 알림판(부착 게시물)들을 살펴보니 운전석 계기판에 ‘등불확인’이라는 글씨와 함께 그 옆에는 “신발을 벗지 마시요”라는 글씨도 붙어 있었다. 또한 천장 바로 아래 앞 유리에는 작은 글자로 “인민을 위해 복무합시다”라는 글귀도 붙여 놨다. “등불확인 글자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On, Off 여부를 점검하여 밧데리가 소모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의미라고 한다. 또한 그날 호텔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택시 내부에는 “담배를 피우지 마시요”라는 승객들에게 당부하는 문구도 부착되어 있었다.

또한 필자가 오가던 택시 내부 앞자리 조수석에는 공히 운전사의 사진과 이름, 휴대전화 번호 등 기사의 신상이 기재되어 있어 택시회사에서 승객을 보호하고 배려하려는 방침을 세운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차량의 뒷좌석 유리에는 택시 요금을 나래카드로도 결제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전자결제 스티커가 부착돼 있었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기본요금이 원래 2불이었는데 그날따라 나는 기분이 좋아서 3불을 나래카드로 결재하고 팁을 7불 건네주었다. 오가는 차안에서 운전기사들과 이런저런 궁금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거운 시내 드라이브가 되었다.

그 후 이듬해 가을이 되자 또 다시 택시를 탔는데 이 당시는 마침 평양에 택시 2부제가 도입된 직후였다. 당시 평양시에 택시 숫자가 갑자기 1000대로 늘어나다보니 빈 차로 운행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그해 상반기에 이 제도가 도입됐다고 한다. 차량 끝 번호가 홀수인 차량은 홀수 날에, 끝 번호가 짝수인 차량은 짝수 날에만 운행되는 식이었다. 당시 홀짝제를 운영하면서 하루 운행 대수를 500대로 제한한 것이다. 그러나 2017년 초 무렵에는 이미  500대가 더 증가된 상태라서 현재 1500대의 택시가 운행 중이라고 한다.

   
▲ 평양 고려항공사 직영 택시회사의 영업용 승합차 택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필자가 목적지에서 호텔로 복귀할 때 탔던 택시. 소위 비야디(BYD)라고 부르는 택시 브랜드인데 중국산 차량이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필자가 처음 탄 택시 뒷좌석 유리에는 나래카드 스티커가 부착돼 있다. 이때 요금은 카드로 결제하고 팁은 미화현금으로 지불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필자가 소지한 전자결제 카드인 나래카드 모습. 은행이나 호텔카운터를 방문해서 필요한 만큼 충전할 수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필자가 택시를 처음 타고 목적지를 가는 차량의 내부 모습. 운전석 계기판에 ‘등불확인’이라는 글씨가 붙어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필자가 처음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갔던 택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평양시내 택시요금은 가급적 미화로 지불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평양시민들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가면서 시민들은 어느 누구나 부담 없이 택시를 이용하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으며 지하철보다 택시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만 먼 거리는 택시를 이용하는데, 보통 기본요금은 첫 2km까지 미화 2달러이고, 이후 1km 당 56센트 정도가 부과되었다. 그리고 통상 10km이상 탑승할 경우 통상 요금 5달러를 지불하게 된다. 밤 9시 이후엔 할증료처럼 요금이 두 배로 계산된다. 택시비는 주야간, 주중, 주말에 따라 다르며 보통 1km에 미화 50센트~1달러 정도한다. 그리고 평양과 지방의 택시요금도 차이가 있다.

택시요금은 해외동포이든 외국인이든 혹은 내국인이든 미화 달러를 주로 지불한다. 간혹 택시기사가 손님에게 국돈(북 화폐)을 받을 경우에는 때마다 다르지만 가령 시세 환율 1달러당 8500원 정도로 계산하는 방식이다. 택시운전사들은 하루 규정된 사납금은 사업소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본인이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 평양역전과 백화점 앞은 물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교차로 등을 다니며 한 명이라도 더 태워 수입을 올리려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택시요금은 보통 미화 달러나 중국 위안화를 내는 모습을 흔히 보았다. 또한 미화, 유로화, 위안화, 국돈(북조선 화폐) 등으로 지불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택시비용 계산 방법 자체가 미화 달러 위주로 되어 있어 국돈을 지불하는 경우 택시기사도 잘 받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는 달러나 위안화가 북측 사회의 기본 유통 화폐가 된지 오래됐음을 확인시켜준 케이스였다.

물론 택시 요금을 무조건 미 달러로만 받아야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국돈보다는 미화나 위안화가 경제적인 면에서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원동력이 되도록 시스템화 되었다. 택시를 이용하는 평범한 평양 시민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평소 생활가운데 미화를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택시를 이용하기 전에 가급적 미리 미화로 바꾼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됐다.

한편 택시기사가 연유소(주유소)에 들려 기름을 넣는 경우에도 미화로 지불하는 것을 주유소 측과 기사 측 피차간에 선호한다. 손님이 택시 요금을 국돈으로 내거나 혹은 운전기사가 주유소에서 기름 값을 국돈으로 지불할 경우 시세에 따라 변동되는 환율을 계산해야 되고, 다시 미 달러화로 환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알고 있는 주유소 측과 운전기사 측도 미화로 거래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 평양산원 앞에서 유아를 업은 여성과 남편이 대기 중인 자주색 택시에 탑승하려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손님을 태우고 출발하려는 하늘색 영업용 택시.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호텔 주차장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빈차표시등을 켜고 대기 중인 BYD 택시와 손님을 태우고 출발하려는 회색 택시.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해당화관 길 건너편에서 택시에 탑승하려는 평양시민.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빈차표시등을 켠 택시가 다른 차량들과 함께 신호대기 중인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일명 개나리 택시가 김책공대 부근을 지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오래된 구형 택시가 평양시내를 달리고 있다. 영업용 택시도 새 차와 낡은 차가 공존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영업용 택시 운전사와의 대화
      
필자는 처음 택시를 탔던 2013년부터 그 후로 매년 한두 번씩 택시를 탑승했으며 이때 택시기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울러 필자가 체류했던 호텔주차장에서 대기하며 휴식을 취하던 택시기사들과도 역시 많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평양에는 과거 중앙기관의 택시사업소가 주도해서 운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기업이나 개인회사에서도 영업용 택시회사를 운영 할 수 있게 되었으며 현재 평양시에는 굴직한 택시회사들이 모두 열 개가 넘는다.

현재 택시를 운영하는 사업소들을 보면 고려항공에서 직영하는 택시회사를 비롯해 마식령 스키 리조트 회사, KKG회사, 조선금강총회사, 대동강여객운수사업소가 운행하는 대동강택시 회사, 대외봉사총국 택시사업소, 운수무역회사, 승용차 관리소 등이다. 평양시내는 이처럼 많은 택시 회사들끼리 서로 경쟁을 벌여야 할 정도로 많이 늘었다. 택시회사들은 각각 택시 색깔을 달리하고 있으며 기사들은 각각 자신의 회사에 소속되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택시사업소에서 운전수를 뽑을 때는 인민위원회 노동과에 공고를 내는 것이 아니라 자체로 뽑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택시운전사들은 2급 운전 면허증을 소지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택시 운전사들 중에는 과거 중앙기관에서 운전사 직책을 맡았던 운전 경력자나 군부대 장령급 전용차 운전사 출신들이 의외로 많았다.

“운전기사 선생님들이 매우 친절하시고 택시도 안팎이 아주 깔끔하던데 운전사 교육을 따로 받습니까?”

“물론입니다. 운전사들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교육을 받고 그 후로도 필요하면 더 받습니다. 운전하면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어있고, 입 냄새가 나지 않도록 구강 위생도 잘 지켜야합니다. 요즘은 영어도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영어도 배우고 있습니다. 운전수들이 해야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택시는 주로 어떤 제품입니까?”

“현재 우리 조선에서 사용하는 택시들은 전부 중국제 차량입니다. 평화자동차에서 나온 ‘휘파람’ 승용차가 있기는 한데 제 때 생산 공급이 잘 안되니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정도 택시차량이면 가격이 얼마정도 됩니까?”

“새 차는 1만 딸라를 줘야하고 중고 택시는 7천 딸라 정도 주면 구할 수 있습니다. 평양이나 지방이나 택시용 차량이 거래되는 시장에 가면 새 차일 경우 대당 1만 2000 딸라, 중고는 값이 5000-7000 딸라 나갑니다. 그뿐 아니라 번호판을 위탁할 경우에는 행정비를 포함해 모두 300-500 딸라를 더 지불해야 합니다.”

“운전하시면 한 달에 얼마정도 급료를 받으시나요? 월급인가요? 아니면 매일 일당을 받으시나요?”

“하루 벌은 돈을 납부하고 나머지는 운전사들이 갖게 됩니다. 급료는 얼마 받는지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합니다(그러나 필자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하루에 보통 미화 50달러에서 많게는 100달러 정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영업은 잘되시나요?”

“아이구, 잘 안됩니다. 이게 돈이 되니까 지어(심지어) ooo에서도 회사를 차려 택시들이 아주 많아졌고  간섭도 심한편이라서 영업이 잘 안됩니다.”

필자는 뜻하지 않게 어느 일반 운전기사를 통해 평양의 택시 변천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사실 1987년 평양에서 세계청년학생 축전을 했지 않았습니까? 그때부터 우리 평양에 택시가 본격적으로 운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동무들이 택시운전사로 복무하기도 했습니다. 손님들은 대부분 외국인과 해외동포 분들이었고 당시는 국돈(북 화폐)으로 기본료금이 6원 정도였을 겁니다. 1㎞당 잘해야 1원씩인가 추가될 정도로 료금이 아주 눅은 편(싼 가격)이었습니다.”

“현재 기본요금 2달러에 비하면 참으로 저렴했네요”

“처음이다 보니 택시비가 눅은 편이었지요. 지난 시기 우리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 서거하셨을 무렵(2011년 12월)에 중국산 택시가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부터 올 초(2014년)까지 500대로 증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올 중순에 홍콩회사까지 참여해 500대의 택시가 또 들어오는 바람에 모두 1천대로 늘어났지 뭡니까? 택시가 2013년도에 아마 가장 많이 늘어났고 그 당시 료금은 1km에 국돈 500원이었을 겁니다.”

운전사들의 증언처럼 2012년-2014년 사이에 평양에 택시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며 급기야  1000대까지 증가했던 것이며 2017년 초 무렵에는 이미 평양에만 택시가 무려 1500대 이상 운행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후 ‘기본요금 2달러’ 규칙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2015년도만 해도 평양의 택시회사가 서너 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대형 택시회사가 열 개가 넘는다고 했다.

필자는 호텔 주차장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운전기사들에게 지방의 영업용택시에 관한 궁금증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2014년 당시는 평양시에만 택시가 보편화되기 시작했으나 그 후 택시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매년마다 지방에도 영업용 택시가 늘어났고 현재는 택시 이용자가 지방에도 무척 많아졌다고 한다.

“평양 외에 지방에도 택시가 많습니까?”

“이전에는 평양시하고 라선시에만 있었지만 지금은 평성, 원산, 함흥 할 것 없이 지방에도 모두 택시가 운행되고 있습니다(운전기사가 알려준 자료들을 아래 단원에 상세히 적었다).”

아무튼 대부분 평양의 택시 차종들은 온통 중국산 비야디(BYD, 比亚迪汽车) 차량이 차지하였고, 차량이 워낙 많다보니 평양시내 택시 손님들을 싹쓸이 하고 있었다. 차량 색깔은 노란색과 초록색을 조합한 디자인, 노란색과 빨간색을 조합한 디자인, 파란색과 회색 조합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평양시민들은 비야디 택시들이 알록달록하게 두 가지 색상을 가진 탓에 ‘알락이 택시’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비야디 택시는 필자가 북경에 방문했을 때 자주 목격했던 영업용 택시 차종인데 그래서 그런지 이곳 평양시민들은 ‘베이징 택시’라고도 불렀다.

택시기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자신들은 외화를 벌어 애국을 하고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다. 한편 대부분의 인민들은 농장이나 공장 기업소등에서 육체적으로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들은 시원한 찻바람을 맞으면서 돈도 벌고 여유롭게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대부분의 택시기사들은 매우 애착심을 갖고 있었고 자기들 세계에서는 인기직종으로 간주하고 있음도 확인되었다.

   
▲ KKG회사 소속 택시가 로동당 구호문이 적힌 현수막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갓길에서 손님을 태운 KKG회사 소속 택시가 도로에 진입을 시도하려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비야디(BYD) 택시가 손님을 태우기 위해 주차하며 기다리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다양한 회사소속의 평양시내 택시들이 호텔 주변에서 손님을 태우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 맨 앞차는 대동강 운수사업소 소속 택시이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지방에도 활성화된 영업용 택시
       
2016년도 만해도 평양과 나진(라선시)에서의 택시영업은 이미 체계가 잡혀 보편화됐으나 다른 지방 도시들은 활성화가 덜 됐었다. 이북의 영업용 ‘지방택시’는 무조건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한다. 영업용 ‘지방택시’는 평양시에 있는 고려항공 항공운수영업부 산하 조직에 소속한 ‘지방택시’가 있으며 또 하나는 돈주나 개인 사업자가 국가기관의 승인을 얻어 직접 운영하며 사업하는 ‘개인택시’로 나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방택시와 개인택시는 비슷한 것처럼 들리지만 확연히 구분이 되는 것이다.

특히 고려항공 소속의 택시는 소위 ‘국가택시’로 불릴 정도로 특혜가 주어진다고 한다. 공항이나 중요한 기차역을 갖춘 지방 도시들을 출발해 평양을 가거나 반대로 평양에서 지방의 공항과 역을 가는 손님을 태우는 택시들을 말한다. 국가택시에는 반드시 미터기가 부착돼 있고 요금이 비싼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방택시(국가택시)’ 외에 미터기가 없는 ‘개인택시’는 기사가 임의로 요금을 책정해주며 비교적 요금도 저렴하다고 한다. 지방에서 운영하는 영업용 택시요금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30리(12km) 주행에 20위안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한다.

조중 국경도시인 신의주의 경우 영업용 택시가 증가해 시내 교통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시내에서 돌아다니는 빨간색, 검정색 택시는 모두 고려항공이 운영하는 국영 택시회사의 차량들이라고 한다. 고려항공 신의주-평양 항공편을 구매하면 해당 공항까지 택시 서비스가 제공되며 택시요금은 평양행 항공권 가격에 포함되어 있다. 필자가 신의주를 경유하거나 기차가 몇 시간동안 머무를 때 거리 전경과 역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평양 택시들이 많이 보였는데 대부분 중국 BYD  F3 모델들이라고 한다. 신의주는 도로 교통량이 적어 미터기 택시가 교통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2017년 초반 당시에는 이미 강원도 원산과 평안북도 신의주, 함경도 청진시, 함흥시, 평안남도 평성시, 황해북도 사리원 등지에서 개인택시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으며 지방 도시들은 중앙기관에서 주도하기보다는 자금력 있는 인물들이 운수업에 뛰어들어 택시영업을 하도록 기회를 주기도 한다. 지방 도시에도 영업용 택시 운행이 활성화되면서 지방에 거주하는 인민들이 빠른 시간에 이동할 수 있게 됐다. 가령 평안남도 평성에서 량강도의 혜산까지도  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방택시들은 이제 단거리와 장거리 운행은 물론, 함경북도나 량강도 국경지역까지 직행할 수 있는 특별한 교통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내륙 지방에서 회령이나 혜산 등 국경도시까지 빠르게 도착하는 교통수단은 개인택시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평안도 내륙과 량강도 북쪽 택시운전사들은 손전화로 긴밀하게 통화하면서 장거리 손님들을 중간지점에서 인수 인계해주는 방식으로 택시를 운행하고 있다고 한다. 평안도 택시가 함경북도 경계를 넘어 운행할 수 없기 때문에 경계지역인 함경남도 함흥시가 택시 환승지역으로 자리 잡히고 있다고도 한다.

가령 평안도 평성에서 함경도 함흥까지 택시 요금은 중국돈 100위안을 지불하고 또 다시 함흥에서 량강도 혜산까지 가는 요금을 100위안 지불함으로써 모두 200위안을 지불해야 국경도시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국경지역으로 운행하는 장거리 택시는 편안한 승용차 형태의 택시가 아니라 15명 정도의 인원이 탑승하는 농구망차(승합차)가 운행한다고 한다. 이런 농구망차는 고려항공에서 제공하는 크기의 승합차와 비슷한 규모라고 한다.

지방택시 회사들이 택시기사를 채용하고 운수사업소에 택시를 등록하면 택시 운행증과 번호판을 발급 받아야만 여러 검문소를 그냥 통과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운행증과 번호판을 부여 받은 개인택시는 평양시와 국경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운행을 할 수 있다. 또한 지방 도시들 중에는 의외로 황해남도 사리원, 평안남도 평성, 함경남도 함흥, 양강도 혜산 등이 택시를 비롯한 대중교통 서비스가 발달됐다고 한다.

   
▲ 고려항공에서 직영하는 승합차 택시들이 일렬로 주차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비야디(BYD)택시가 국제배송서비스 업체인 DHL차량과 함께 나란히 해당화관 교차로를 통과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타고 왕래하는 그날까지

1980년대 말 한국 대학가에서 청년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민중가요 중에 ‘서울에서 평양까지’란 노래가 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5만원. 소련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가. 우리민족 우리의 땅 평양만 왜 못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 볼란다” 

1980년대 말부터 불리던 이 노래 가사를 보면 최초에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을 ‘2만원’으로 규정했었다. 그런데 90년대 들어서 이 노래를 가수 신형원 씨가 다시 개사해 정식앨범으로 만들어 부르면서 요금 단가가 ‘5만원’으로 올라갔다. 그 후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에 방문할 무렵에는 당시 미터요금제를 적용해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이 15만~20만 원정도로 계산이 된다. 그러나 또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은 아마 서울-평양구간 택시요금이 30만 원정도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의 일반택시 요금체계를 따라 기본요금과 추가요금을 감안해 환산하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250㎞를 편도 이동할 경우 30만원 정도 나올 것이다.

구글 인공위성사진에 보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도로를 따라 거리를 잴 경우 250㎞ 정도의 거리가 나온다. 군사분계선까지 약 60㎞, 그리고 다시 개성과 사리원을 거쳐 평양까지 거리가 190㎞정도가 되니 총 250㎞정도가 되는 거리이다. 서울에서 광주(약 270㎞)보다 가깝고, 대전(약 150㎞)보다는 먼 거리다. 그러나 이처럼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70년이 넘도록 서울과 평양에 한 번도 택시 한대 운행하지 못했다. 조만간 평양택시가 서울로 손님을 태워 갈 수 있고, 반대로 서울택시가 손님을 태우고 평양을 갈 수 있는 날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계속)

   
▲ 평화자동차 공장 내부에 2002-2010까지 자체생산하고 있는 각종 차량들을 소개한 현황판.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화자동차 공장 내부에 2011-2013까지 자체생산하고 있는 각종 차량들을 소개한 현황판.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시내에 택시차량으로 제공되는 휘파람 승용차를 완성하기 위해 기술자가 평화자동차공장 조립라인에서 작업하는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 평양시내에 택시로 제공되는 휘파람 승용차가 조립 생산되는 모습을 필자가 카메라를 들고 참관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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