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트럼프, 북미정상회담 일정 공언

지난 2주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향해 한 걸음 더 확실하게 나아갔다. 그 첫째는 3월 26일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 국무위원장의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에 대한 반응이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모호한 약속(뉴욕타임스.3.28)” 또는 “중국의 관여 없이는 북한과 어떤 협상도 할 수 없다는 것(CNN.3.28)” 등 언론들이 일제히 재를 뿌리자 트럼프는 3월 28일 “우리의 만남을 기대한다”며 트윗을 통해 논란의 확산을 차단한다.

이것이 국내용이라면, 4월 2일 내퍼 주한 미국 대리대사의 ‘한미 클럽 간담회’ 발언은 대외용이다. “내퍼 대리 대사는 리비아와 북한의 상황을 비교하는 건 현명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선 비핵화, 후 보상’으로 알려진 리비아식 해법을 북한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보입니다(VOA.4.3)” 오랫동안 북미 대화, 협상을 가로막아온 차단막 하나를 살짝 들어 올린 것이다.

두 번째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진행 양상이다. 4월 1일 개시된 독수리훈련은 한 달로 축소되고 비공개된데 이어 해마다 그 ‘하이라이트’로 내세워지던 쌍룡훈련의 핵심, 상륙작전 연습이 취소(4.5)됐다. 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하는 키리졸브 연습(KR)도 방어에 치중하는 내용으로 수정(중앙일보.4.5)”됐다. 훈련 성격의 대폭 변경, 북의 핵, 미사일 동결과 미국의 변화가 짝을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서야 “북미 간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고 심지어 제3국에서 만나기도 했다(CNN.4.7)”는 기사,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대화 의지를 직접 확인했다(로이터. 블룸버그.4.9)”는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이어 “5월이나 6월 초 언제쯤에 북한과 만나게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4.9)이 가능했다.  

2. 과거의 실수 되풀이 말아야

이제 북미 정상회담은 한층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성공할까? 이와 관련, 트럼프 등이 자주 하는 말 중에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란 것이 떠오른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그럼, 반복하지 말아야 할 그 ‘과거의 실수’는 무엇일까? 첫째는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2002년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이 8년간이나 유지되던 ‘북미 제네바 합의’를 깨뜨린 것이다. 둘째는 2005년 9.19공동성명이 발표된 바로 다음날 미국이 북의 해외계좌(BDA은행)를 동결, 합의 이행을 21개월이나 정지시킨 것이다. 셋째 사건은 북미가 9.19공동성명 2단계 조치를 동시 이행하던 2008년에 벌어졌다. 북은 핵 시설과 물질에 대한 신고서를 제출(6.26)하고,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6.27)하는 등 신고와 블능화를 이행한다. CNN 등 미국 언론이 냉각탑 폭파 장면을 전세계에 생중계함으로써 부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침략과 전쟁으로 얼룩진 8년의 집권기록에 평화의 이미지를 슬쩍 덧칠하는데 성공한다. 딱 거기까지였다. 그해 12월 미국은 6개국의 기존 합의에 없는 전혀 새로운 조건을 추가로 들고 나와 협상을 붕괴시킨다.

넷째는 2012년 2.29합의에 대한 미국의 약속 위반이다. 2.29합의는 북이 1) 핵, 미사일 동결 2) 이를 확인하기 위한 IAEA사찰단 복귀 수용 등을 이행하고 미국이 1) 대북 적대시정책 폐기 2) 교류 협력 재개 3) 경제 지원 등을 이행, 상호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다음 단계를 모색하기 위한 약속이었다. 당시 미 국무부의 관련 발표는 이렇다. “북한은 대화 분위기를 개선하고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장거리 미사일 발사, 핵 실험 및 우라늄 농축 활동을 포함한 영변에서의 핵 활동에 대한 모라토리엄 이행에 동의하였다” 여기 ‘인공위성 발사 동결 혹은 금지’란 말은 없다. 그러나 북이 인공위성 발사를 예고(3.16)하자 미국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종류의 발사 금지도 2.29합의에 담겨 있다”고 반응한다. 합의문에 없는데도 당당히 “담겨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인공위성 발사가 결국 탄도미사일 발사 아니냐는 말도 있다. 그렇다면 거듭된 인공위성 발사에도 불구, 탄도미사일에 대해서는 ‘재진입’과 ‘핵탄두 소형화’ 등 탄도미사일 기술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한 그 무수한 언사들은 다 뭔가. 2.29합의를 유지했다면 북의 핵, 미사일 능력은 2012년 2월 시점에 멈춰 섰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시작점으로 새로운 평화 환경도 가능할 수 있었다.

미국은 서명까지 마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했고,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두 번이나 입맛대로 뜯어 고쳤으며, 지금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마구 헤집어 놓고 있다. 또 있다. 트럼프는 오는 5월 12일까지 이란과 맺은 핵 합의(2015.7.14)가 재협상 완료되지 않으면 이를 파기하겠다고 예고(1.12)했다. 나머지 합의 당사사국들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모두 이란의 ‘핵 협정 준수’를 확인해주면서 미국을 비판하는데도 트럼프가 파기를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핵 합의 정신’ 위반이다. 헷갈리면 안 된다. ‘합의’가 아니라 ‘합의 정신’이다. “핵합의 정신을 어긴다는 게 무슨 뜻인지 살펴봐야겠는데요. 이란 핵 합의는 핵무기 프로그램 철폐만 결정했을 뿐, 미사일은 구체적으로 규제하지 않았습니다(VOA.3.23)" 애초 합의에는 없는 ‘미사일 관련 제약’을 새로 추가하든지, 싫으면 합의를 깨자는 것이다.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와 기존의 약속을 뒤집는 방식, 2.29 합의를 다룬 솜씨와 닮았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말아야“란 트럼프 등의 언사가 이런 거울에 비춘 것이길 간절히 바란다.

3. 비핵화 본론으로 빠르게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임명(3.22) 이후 첫 언론 인터뷰(3.25)에서 발언한 것을 뜯어보면 트럼프가 북으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받고 싶은지 짐작 가능하다. 볼턴은 먼저 “북한과의 협상에서 시간을 끌지 말고 바로 비핵화 본론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협상을 수용했으니, “비핵화 본론으로 빠르게”가 “닥치고 빨리 비핵화”는 아니겠고, 그럼 뭘까? 2007년 2.13합의 이후 2008년 6월 27일 북의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폭파되기까지 1년 4개월이 걸렸다. 11월 중간선거 전에 가시적성과를 얻어야 하는 트럼프에겐 그렇게 긴 시간은 절대 금물이다.

볼턴은 그날 “북한은 핵탄두를 미 본토 목표물까지 운반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고 협상을 천천히 끌고 가려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 말은  ‘코앞에 닥친 북의 ICBM 위협으로부터 미 본토를 지켜낸 위대한 트럼프’가 그들이 얻고 싶은 첫 번째 목표임을 알려준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을 다시는 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더욱 안전해질 것(제임스 도빈스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 중앙일보.3.13)”이라거나 “시험 발사 횟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실전 배치 단계에 이르지 못한 현 시점이 양측 모두에 협상의 적기라는 분석입니다(VOA.4.5)" 등은 볼턴의 발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언어들이다.

4. 트럼프, ‘동시 조치’ 능력 될까?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ICBM 시험발사 동결에서 생산 동결, 나아가 폐기 및 검증 등 “ICBM 위협으로부터 미 본토를 지키는” 문제가 주요하게 담긴 1단계에서, 한반도 비핵화의 최종적 해결에 이르는 단계까지, 일련의 과정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매 단계마다 북미가 이행해야 할 동시 조치도 약속될 수 있을 것이다.

1단계에서 미국은 대북제재 해제 이행에 직면할 것이다. 트럼프는 대북 제재를 해제할 능력이 될까? 미국에서 2016년 발효된 ‘북한 제재와 정책 강화법(이하 제재 강화법)’에 따르면 “유엔 안보리 결의 준수, 핵무기 프로그램 검증 가능한 조치 등에서 진전을 보일 경우” 미국 대통령은 1년간 대북 제재를 유예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이 있다. 첫째는 작년 말 이후 미국 의회에 상정된 대북제재 강화법안들이 한건도 통과되지 않은 것, 둘째는 새롭게 상정된 대북제재법(브링크액트)에서 개성공단 재개를 반대한다는 조항이 작년 말 삭제됐다는 것 등이다. 왜 이럴까? “상원 외교위 소속 일부 의원들은 최근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 개선도 중요하지만 현재로선 북 핵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습니다(VOA.4.3)"

트럼프가 1단계를 무사통과, 다음단계로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위의 ‘제재 강화법’은 제재의 완전한 해제요건도 정하고 있다. 여섯 가지 제재 유예조건을 충족한데 덧붙여 추가로 다섯 개의 조건이 붙는다. 거기에는 1) 핵, 생화학, 방사능 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보여야 하며 2) 이런 무기의 운반을 위해 설계된 시스템 개발에 관한 모든 프로그램을 폐기하는 것 3) 평화적 정치 활동에 대한 검열을 중단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이상, VOA.3.14 참고). 여기서 “평화적 정치활동에 대한 검열 중단”이란, 북의 ‘체제 변경’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런 요건들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일 경우 미 의회의 승인을 득하여 대통령이 대북 제재를 완전 해제할 수 있다. 이런 법이 권능을 발휘하는 한 트럼프의 활동 범위는 1단계에 갇힐 가능성도 크다.

지난 2월 21일 트럼프는 플로리다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관련 학생, 학부모를 만나 서 학교를 총기 금지구역에서 해제, 교사들을 무장시키는 것이 참사를 막는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여론조사 지지율에 결코 유리하지 않아도 ‘전국총기협회’ 등 현실 정치를 움직이는 힘 앞에 순응한 것이다. ‘실수를 되풀이하기보다는’ 미국의 핵능력을 강화하고, 미사일 방어망을 확충하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 방안이라고 다시 주장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그다.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전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전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