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7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나는 카페에서 87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당시 나는 몇 살이었고 나는 무엇을 했다는 내용이다.

좋은 일이다. 30년 전 우리들은 젊고 뜨거웠다.

그런데 옛날이야기다. 내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옛날이야기 말고 지금과 미래의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들 모두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사랑도 이름도 남김없이 무언지 모를 이상과 열정 속에서 사는 것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가 많다. 나는 2011년 ‘안철수 현상’을 지지하는 책을 썼다. 나는 거기서 스티브 잡스와 과학기술혁명, 전 세계적인 SNS 혁명과 청년정치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안철수나 이해진을 조롱한다. 인생을 걸고 싸웠던 우리들의 젊은 날이 그렇게 악용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나는 촛불을 통해 권력을 잡고 세력을 확대해온 어떤 집단이 민주화의 역사적 성취를 독점하고 그것을 남용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2

아버지가 있었다. 1.4 후퇴 때 월남한 아버지는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 그는 1년 내내 가게를 열었고 억척같이 돈을 모아 자식들을 가르쳤다.

돌이켜 보면, 내가 공부를 하고 학생운동을 할 수 있었던 모든 여정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깊게 배어 있다.

나는 아버지 그리고 산업화 세대와 화해하고 싶다. 그리고 산업화-민주화라는 도도한 한국의 역사에서 산업화 세대의 공적과 민주화 세대의 한계가 공정히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정희는 저 아프리카에 있을 법한 무자비한 독재자가 아니다. 그는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서 한국을 세계 일류의 산업국가로 성장시킨 정치 리더이다. 그가 독재자였던 것이 한 측면이라면 경제성장은 간과할 수 없는 그의 다른 면이다.

민주화는 산업화의 토대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내가 아버지가 벌어들인 돈을 배경으로 사회운동을 했다면 민주화 세대 또한 산업화 세대의 유산 아래서 운동을 한 것이다.

민주화 세대는 산업화 세대가 쌓아 올린 경제적 부를 토대로 보다 많은 사람이 부를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민주화 세대의 역사적 성취는 훌륭하지만 우리 또한 누군가가 쌓아 올린 토대 위에서 무언가를 이룬 것이다. 역사는 진공 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했던 역할을 공정히 인정해야만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화 세대의 업적이 과대평가되어 있거나 일시적인 승리에 도취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나는 민주화 세대의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함을 제기한다.

                                              3

촛불은 위대하지만 불행한 사건이다. 불행했던 것은 2000년대 후반 세계적인 변화의 흐름을 놓쳤기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은 여전히 유효할 뿐만 아니라 목전의 현실로 다가와 있다. 멀리 어슴푸레 하던 파도는 해안에 임박해 사정없이 절벽을 들이치고 있다.

알파고, 크리스퍼, 드론, 블록체인 등 지금 우리가 화제로 삼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2011년 어름을 뿌리로 한다.

민주와 독재, 정권을 둘러 싼 경합에 시간을 뺏긴 만큼 우리는 과학과 기술에서 뒤진 것이다.

또 다른 지체는 세계정세이다.

미국발 금리인상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인 금융완화 정책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2000년대 초반 세계시장에 본격 진입한 중국은 이제 한국의 본격적인 경쟁자가 되어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촛불이 진행되는 동안 되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문제가 있다. 저출산, 지방소멸, 노인 자살 등이 그런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는 촛불을 긍정하되 그 시간 동안의 지체를 냉정히 보고 발걸음을 서둘러야 한다.

                                              4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위태롭게 보는 편이다. 사람들은 대통령과 정부 여당에 대한 높은 지지를 중시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인구구성, 산업경쟁력, 사회세력 분포 등이다.

문재인 정부는 고학력 중년 세대를 골간으로 20~40대의 견고한 지지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지지기반이 생각보다 엷다. 고학력 중년 세대 중 과학기술인과 기업인들이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20~40대 중 청년과 고학력 세대, 남성과 여성은 이해관계가 다르다. 광범위한 저학력 중고령 세대는 아예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정책의 폭이 크지 않다. 저출산 문제가 그렇고 가계부채가 그러하며 청년실업 등이 그러하다.

한국은 역동적인 정치적 갈등 속에 전진했다. 지난 30년만 해도 정말 파란만장했다. 정치적으로는 그랬지만 사회경제적인 맥락에서 보면 한국은 명백히 포용적이고 관용적이었다. 반면 지금은 정치적으로는 균질적이지만 사회경제적 여력은 크지 않다.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회로 진입한다. 정치적 갈등에 익숙해온 우리에게는 낯선 시대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금 과학이 무엇이고 성장이 무엇이며 경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그로부터 사회경제적 파이를 키우고 그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지지를 위험하게 본다. 그들은 산업화 시대가 쌓아올린 부를 토대로 민주와 분배에서 공적을 쌓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성과와 역량을 과신하고 있다. 나는 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빛깔의 생각과 정치세력, 사회세력이 성장해야 한다고 본다.

다른 빛깔의 생각은 과학과 기술, 기업과 성장, 글로벌 등이다. 정치사회적으로는 위 가치를 체현하고 과학기술인‧기업인‧청년‧여성의 진출을 확장하는 것이다.

우리들의 청춘을 아름답게 장식해준 30년을 마감하고 또 다른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