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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벡터<연재> 민경우의 '시대를 보는 색다른 시선' (24)
민경우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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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02  01: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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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1들이 보는 이과 수능 시험범위에서 기하벡터가 빠졌다. 수학 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비유하자면 의대생이 해부학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수학공부양은 점점 줄어 들고 있다. 행렬이 빠졌고 삼각함수에서 사인, 코사인 법칙은 물론 다양한 공식들이 빠졌다. 이번에 기하벡터가 빠진 것도 연장선에 있다.  

교과야 늘어날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지금의 중고등 6년 과정은 2년이면 충분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문제는 교과부가 기하벡터를 뺀 이유로 사교육 경감이나 학습 부담 완화를 들고 있는 점이다. 나는 이런 주장을 들을 때마다 기이한 생각이 든다. 어떻게 공부양 산정 기준이 사교육 경감일 수 있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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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양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객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다.

석기 시대이면 석기 제작기술을 배워야 한다. 긴 막대기에 날카로운 석기를 끼울 수 없다면 그 집단은 사자의 공격을 막아낼 도리가 없고 일주일 치 식량이 될 들소를 사냥할 수 없다.

석기 제작기술을 배울 것인가 말 것인가는 석기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 집단의 생존 환경과 관련되어 있다. 석기를 제작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은 더 이상 들소 사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농경 시대 씨를 뿌리고 추수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석기 제작 기술이나 농사일은 해당 집단의 존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학생들의 처지를 고려하여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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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5일 대선을 앞두고 거의 모든 진보적 교육단체들이 함께 만든 사회적교육위원회는 출범 기자회견에서 ‘경쟁과 불평등의 교육 체제’를 청산하자고 주장한다.

http://cafe.daum.net/edacademy/f8XM/53?q=%BB%E7%C8%B8%C0%FB%20%B1%B3%C0%B0%C0%A7%BF%F8%C8%B8

‘대학입시 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은 2017년 11월 23일 수능을 앞두고 발표한 ‘대학입시거부 선언’에서 획일적인 입시 위주의 교육을 거부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실제로 대학입시생 11명이 참가했다.

https://www.facebook.com/hiddenbag/?hc_ref=ARTW48nECGExZe81i-3tzUIxPCbYRMF7mR6VwPib1EqWQQArvdVXWjDcC_kvipJ0Xkc)

무엇을 반대하는지는 알겠다. 수학 선생의 입장에서 난감한 것은 그래서 수학을 가르쳐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수학은 입시 위주의 교육이고 엄청난 사교육을 유발하며 경쟁교육의 본산이다. 그래서 수학은 배워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위 사회적 교육위원회 선언과 투명가방끈에는 그게 없다.

경쟁과 차별, 불평등은 교육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에 해당한다. 그러나 교육에서 선차적인 것은 이전에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 요구에 따라 객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지 사회적 갈등 유무와는 별 상관이 없다.  

위 사회적교육위원회의 선언문에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위 선언문 마지막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대학서열체제를 해체하여 입시중심교육을 철폐하라!

하나, 교육부를 해체하고 국가교육위원회를 설치하라!

하나, 교육재정을 확충하여 무상교육, 무상급식을 확대하라!

하나, 유아교육에서 대학교육까지 교육공공성을 실현하라!

하나, 교육주체의 권리를 보장하고 교육자치를 완성하라!

하나, 특권교육, 교육차별을 전면 철폐하라!

소감을 말하자면 내용 전부가 사회적 갈등을 염두에 둔 매우 이념적 순도가 높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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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주장은 민주화 세대가 성장하면서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이색적인 사조이다.

박정희 정권은 불균등 성장 전략을 펼쳤고 이를 위해 과학기술을 강조했다. 반면 민주화 세대는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균형 성장론을 중시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했다. 균형 성장론이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으로 발전했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교육적 버전이 전교조의 인간화 교육이다.

2010년대 진보교육감 당선을 시작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에 이르러 민주화 세대의 교육관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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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사이의 충돌이 세가지 지점에서 발생하고 있다.

첫째는 지지기반과 이념적 지향의 차이이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기반은 고학력 중년 민주화 세대이다. 그들은 사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을 주도했던 집단이다. 반면 이들은 평준화 교육을 지지한다. 최근 수시 학종의 문제를 지적하며 정시를 강조하는 경향이 이런 흐름이라고 본다. 정시는 강남에 유리하다.

둘째는 학교정상화와 입시의 충돌이다.

공교육으로는 수능을 감당할 수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다. 현재 이과 수능 수학은 넘사벽이다.

따라서 학교 정상화를 말하려면 입시의 난이도를 조절해야 한다. 이는 순차적으로 수능 절대평가-대학입시의 자격고사화-대학서열제 폐지로 이어진다. 위 사회적교육위원회의 주장은 실제로 그걸 하자는 것이다.

거대한 사회적 실험에 가깝다.

셋째는 시대와 교육 사이의 충돌이다.

수학 교육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4차 산업혁명이 되었든 다른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시대가 객관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시대의 객관적인 요구를 인간의 주관적 의지로 어쩔 수 없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 등 소득주도 성장론을 강조하던 정부가 작년 하반기부터 혁신 성장을 강조하는 것과 유사하다.

양자의 충돌이 불가피하지만 우열은 명료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돌아 가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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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년간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나는 대안학교를 다니는 학생들, 학생운동에 관여했던 청년들, 진보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학부모들을 만날 때마다 당황하곤 했다.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는데 주장이 너무 불균형하다. 그들 상당수가 수학과 과학에 대해 너무 모르는데 비해 사회와 역사에 대해 과도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왼팔에 비해 오른팔이 터무니없이 길다.

한국사회는 당분간 세상을 사회적 갈등을 중심으로 보고 권력관계에 민감한 거대한 사회적 집단이 세상을 주도할 것 같다.

이제는 민주화 세대가 간과했던 또다른 팔 이야기를 해야할 때이다. 수학과 과학, 성장과 효율, 시장과 활력... 이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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