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문가들이 다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서 전망보다 현실적 대안을 중심으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는 실현 불가능하다. 북의 핵무기 포기와 무관하게 미국과 러시아 및 중국이 자신들의 세계전략에 따라 한반도가 포함된 동아시아에서 언제든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영토 영해 영공에 핵무기가 없어도 각축전을 벌이는 주변강국들의 핵무기와 핵전쟁 시나리오가 있는 한, 한반도는 끊임없이 위협받지 않을 수 없기에 그렇다.

지금 전문가들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이 일방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불가침조약, 평화협정, 북미관계 정상화 등으로 체제를 보장받고 핵개발, 핵-미사일 주권, 핵기술 수출을 포기하는 대가로 그 비용을 보상받는 것이다. 이러한 북 핵 폐기는 우리 민족이 모처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강국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나라의 안전과 평화, 통일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풀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포기하는 것으로 사실 외세의존적 해결방식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맞교환은 1차 북 핵실험 이전의 9.19공동성명 같은 철 지난 유행가에 다름 아니다. 과거에 북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을 때,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하는 유인책이자 보상책에서 한치의 진화도 없이 변화된 정세를 애써 무시하는,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통조림과 같은 것이다.

북 핵-미사일이 미국 정보기관도 예측 못한 빠른 속도로 고도화된 지금, 북이 작성될 평화협정문과 개설될 연락사무소나 대사관을 믿고 힘의 균형이 깨질 때 언제든지 강대국들의 난무장이 될 한반도의 미래를 내맡길 바보일까. 리비아 이라크의 처참한 사례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비핵화 대 평화협정’의 빅딜 등식은 북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매우 비현실적인 대안이다.

둘째, 이제는 남이나 북이나 강대국들과 대등하게 한반도의 안전과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풀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것은 핵무장 주권국가로서의 북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는 것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냉엄한 국제 역학관계에서 미국의 불확실한 약속만을 믿고 스스로 안보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통일문제까지 풀어나갈 핵무기를 완전 검증 불가역으로 폐기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역지사지로 남쪽도 북쪽의 이런 입장을 이해해줘야 한다.

물론 지구 상의 핵무기 추방은 인류의 소망이자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정의용 서훈 등 방북대표단의 결과 발표문의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는 그야말로 북의 원칙적 입장 천명으로 보아야 한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의 핵무기와 핵전쟁 계획을 그냥 놔두고 북이 먼저 핵무기를 완전히 내려놓겠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또 북쪽의 어디에 핵무기, 핵물질이 있는지 어떻게 검증 가능하단 말인가? 핵무기, 핵물질을 축소하다가도 상대가 약속을 위반하면 빠르게 복원하고 확대할 것이다. 미국도 북미관계 정상화의 길을 걷다가 수 틀리면 뒤집어엎고 대북 군사적 압박, 경제적 제재, 외교적 고립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렇듯 북의 핵과 미국의 적대정책은 불완전하고 검증 불가능하고 늘 가역적이다.

셋째, 우리민족이 강대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통일을 이루려면 자주국방에 기초한 비동맹 외교노선을 고수해야 한다. 미국만이 아니라 중국, 러시아도 핵-미사일을 위주로 국방력을 키워 자국의 안전과 패권경쟁을 일삼는 국제환경에서 자주국방의 중추에 해당하는 핵 억지력은 불가피하다. 다만, 핵무장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남과 북 모두 민주적인 정상국가로 확립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핵무장한 비동맹 외교노선을 고수하는 민주적인 정상국가로서의 통일국가를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북은 이제 핵무기를 고도화함으로써 안보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북은 중국, 러시아와의 동맹이 필요 없다. 미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반미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듯이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할 이유가 더욱 없게 된 것이다. 북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하고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지금보다 조정하는 등의 비동맹중립 균형노선을 걷게 되면, 미국이 남을 대중국 견제, 대러시아 봉쇄의 전진기지로 사용할 명분도 약화된다.

또한 남북미가 종전선언과 동시에 평화조약을 맺는다면 한미 군사동맹은 군사교류 수준으로 약화되어야 하며, 대북 억지력으로서의 주한미군은 더 이상 머물 근거가 없고 한꺼번에 또는 단계적으로 철수되어야 마땅하다. 이때, 남도 미국과의 동맹을 폐기함으로써 남과 북 모두 침략전쟁을 포기하고 비동맹중립의 평화노선을 택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6.15공동선언 2항의 연합방 통일의 실질적인 조건이다.

넷째, 북이 핵무장을 인정받으려면 미국과 국제사회에게 핵무기의 안정성을 담보해주어야 한다. 북이 핵무기로 다른 나라를 선제공격하지 않는 것, 핵무기와 그 기술을 확산하지 않는 것, 핵무기 운용에 대해 국제사회의 투명한 상호 통제와 감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핵무기를 가진 북을 인정하려면 북이 핵무기에 대한 안전과 신뢰를 줄 수 있는 정상국가로 탈바꿈해야 한다. 북은 사회주의적 법치주의를 정착시켜 민주주의와 법치 및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보편적 기준을 강화하고 이를 폭넓게 인정받아야 한다. 미국의 적대정책으로 왜곡되고 고립된 북이 북미수교를 시작으로 전 세계 각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급속히 정상국가로 탈바꿈할 것이다.

북이 정상국가가 된다면, 다시 말해 다른 핵무장 국가와 마찬가지로 핵 통제에 대한 신뢰를 얻는다면 북의 핵 포기 여부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주권사항이므로 누구도 이를 탓할 권리가 없다. 최근 북은 군보다는 당을 앞세우고 있다. 국가에 대한 당의 지도를 권력적 방식이 아니라 정치적 민주적 방식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북의 퍼스트레이디의 공개적인 활동도 바로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로 인정받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리하면, 북이 핵무장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획득한다면 다른 강대국이 핵무기를 감축, 포기할 때까지 핵무기를 동결이나 축소하더라도 보유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동맹을 폐기하고 미국 등 모든 강대국들과 자주 평화 친선의 원칙에 따라 관계를 정상화하여 안보문제를 해결하면서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의 실질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고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평화와 통일의 문제와 얽혀 있는 핵문제를 푸는 로드맵은 투쟁과 협상의 영역으로 교과서적 정답을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제재압박의 중단과 북의 핵-미사일 가동 중단, 북미관계 정상화와 북 핵무기에 대한 국제적 상호통제 및 핵확산 금지 수용, 불가침 조약과 북의 대중 대러 동맹 폐기, 그리고 한미동맹의 폐기와 주한미군의 철수, 북의 정상국가로서의 국제규범 준수와 실질적 핵무장 국가로의 국제사회의 인정, 남북의 비동맹화와 6.15 10.4선언에 기반한 통일의 첫 단계 진입 등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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