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을 잃었다고 울지 마라, 눈물이 앞을 가려 별을 볼 수 없게 된다 (타고르)


 Personal computer   
 - 최영미

 새로운 시간을 입력하세요
 그는 점잖게 말한다
 
 노련한 공화국처럼
 품안의 계집처럼
 그는 부드럽게 명령한다
 준비가 됐으면 아무 키나 누르세요
 그는 관대하기까지 하다

 연습을 계속할까요 아니면
 메뉴로 돌아갈까요?
 그는 물어볼 줄도 안다
 잘못되었거나 없습니다

 그는 항상 빠져나갈 키를 갖고 있다
 능란한 외교관처럼 모든 걸 알고 있고
 아무것도 모른다

 이 파일엔 접근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그는 정중히 거절한다

 그렇게 그는 길들인다
 자기 앞에 무릎 꿇은, 오른손 왼손
 빨간 매니큐어 14K 다이아 살찐 손
 기름때 꾀죄죄 핏발선 소온,
 솔솔 꺾어
 길들인다

 민감한 그는 가끔 바이러스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쿠데타를 꿈꾼다

 돌아가십시오! 화면의 초기 상태로
 그대가 비롯된 곳, 그대의 뿌리, 그대의 고향으로
 낚시터로 강단으로 공장으로
 모오두 돌아가십시오

 이 기록을 삭제해도 될까요?
 친절하게도 그는 유감스런 과거를 지워준다
 깨끗이, 없었던 듯, 없애준다

 우리의 시간과 정열을, 그대에게

 어쨌든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
 필요할 때 늘 옆에서 깜박거리는
 친구보다도 낫다
 애인보다도 낫다
 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
 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
 이게 사랑이라면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


 최근에 결혼한 한 젊은 부부는 서로 얘기를 하지 않는다. 각자 애완견과 논다. 서로 얘기를 나눠도 개 얘기뿐이다.

 공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개를 데리고 나온다. 그들은 개를 사이에 두고 (개를 서두로) 이따금 얘기를 나눈다.

 독일의 동물행동학자 로렌츠는 그의 저서 ‘솔로몬의 반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마술, 요술 없이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진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동물들은 자유로운 상태에서만 자신들의 성향과 행동을 충분히 나타낸다.’

 우리의 정서가 이리도 메마르게 된 건 너무나 오랫동안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에 갇혀 산 동물처럼 강퍅해졌다.

 우리는 집에서 데리고 사는 개들을 ‘애완견’ ‘반려견’이라고 부른다. 정말 우리는 개를 사랑하고 삶의 동반자라고 생각할까?

 사랑하는 개를 주인 없는 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 있게 할 수 있나? 개에게 옷을 입히고 미용에 공을 들이는 것이 정말 개를 위한 걸까?

 인간은 수만 년 전 원시시절에는 동물과 더불어 살았다. 그래서 그 당시 신들은 동물로 나타나거나 반인반수(半人半獸)들이다. 사람과 동물의 구별이 없었다. 그야말로 서로가 ‘반려자’였다.

 아마 개를 기르는 현대인들의 깊은 심정에는 이런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것이다. 만물제동(萬物諸同), 우리는 만물이 하나였던 시절이 너무나 그리운 것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사는 우리는 항상 목이 마르다. 각자 ‘Personal computer(개인용 컴퓨터)’ 앞에서 중얼거린다.

 ‘어쨌든 그는 매우 인간적이다/필요할 때 늘 옆에서 깜박거리는/친구보다도 낫다/애인보다도 낫다/말은 없어도 알아서 챙겨주는/그 앞에서 한없이 착해지고픈/이게 사랑이라면’

 그러다 단말마의 신음을 내뱉는다.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만 있다면!’

 사람이 이렇게 외로운 시대가 있었을까? 하지만 우리는 울어서는 안 된다. 울면 눈물이 앞을 가려 길을 잃어버린다.

 외로움을 버텨야 한다. ‘고독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외로운 나와 대화를 나누며 견뎌야 한다. 그러면 자신이 사랑스러워진다. 그 때 우리는 만물이 하나임을 어슴푸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공동체(共同體)는 개인이 없는 공동체였다. 다시 전체주의적인 공동체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가 옛날의 공동체를 그리워하지만 그 안에서 약자들은 얼마나 비통을 삼키며 살았는가!

 지금 이 시대, 우리는 ‘자유로운 개인(個人)’으로 살아야 한다. 자유로운 개인이 될 때 우리는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며 남녀가 갈가리 찢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서로가 자유로운 개인이 되어가는 아픔일 것이다. 우리는 찬란하게 만날 때까지 각자 고독을 견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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