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국학 월례강좌>

‘국학과 민족주의 만나다’를 주제로 ‘2018 국학 월례강좌’가 매월 한 차례씩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민족통일이라는 커다란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학과 민족주의는 거의 백안시되고 있는 실정에서 절박한 마음들을 모아 기획된 강좌입니다. 이 강좌는 (사)국학연구소와 21세기민족주의포럼이 공동 주최하고 통일뉴스가 후원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12강) 김동환 “홍익인간.접화군생은 지고지선의 인류애”

(11강) 강철구 “신자유주의 무너지면 민족.민족주의 가치 커질 것”

(10강) 김치관 "분단으로 단절된 동학.국학은 민족통일운동의 원천"

(9강) 정영훈, ‘통일을 위한 중심이론’ 삼균주의와 신민족주의

(8강) 임영태 “과거사 청산은 ‘기억 책임 미래’”

(7강) 임찬경 “많은 시민들이 ‘고대사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6강) 신운용 “나철의 대종교 중광, 한국 민족주의 근대의 기원

(5강) 주요섭 ‘다시 개벽’으로 모두가 ‘진인’인 시대로

(4강) 박용규 “남북 언어 이질성, 교류만 하면 해결될 문제”

(3강) 이병한 “현대와 전통 분단체제 극복이 최대 화두”

(2강) 정수일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진정한 국제주의자”

(1강) 김동환, “국학을 세워 분단을 넘는다”
 

 

호치민-스탈린 민족주의 문답, 정수일-천이 민족주의 논쟁

▲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22일 서울 광화문 조영래홀에서 열린 ‘2018 국학 월례강좌’에서 ‘왜 다시 민족주의인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진정한 국제주의자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은 22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 조영래홀에서 열린 ‘2018 국학 월례강좌’에서 ‘왜 다시 민족주의인가’를 주제로 강연에 나서 이같이 말했다. 이 강좌는 (사)국학연구소와 21세기민족주의포럼이 공동주최하고 <통일뉴스>가 후원하고 있다.

실크로드학 권위자인 정수일(85) 소장은 “유럽에서, 우리도 그 영향을 받아서 대체로 민족주의를 보수로 보고 국제주의를 진보로 보고 있다”며 “국제주의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서 나온 술어”라고 짚었다.

그는 1952년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이 소련의 스탈린 서기장과 만난 유명한 일화를 들어 호치민이 “민족주의자이면서 국제주의자”라고 예시했다.

스탈린이 회의실 두 의자를 가리키며 “여기 두 의자가 있소. 하나는 민족주의자들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제주의자를 위한 것이요, 당신은 어디에 앉고 싶소”라고 묻자 호치민이 “둘 다 앉고 싶다”고 대답했던 것.

그는 “국제주의와 민족주의가 충돌할 때마다 국제주의는 변함없이 패배했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라며 “민족주의야말로 항시적으로 작동하는 역사의 보편가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민족주의에 대한 그의 확고한 태도는 자신의 ‘체험적 신념’과도 일치한다. “사실 내가 중국에서 출생했고, 중국에서 공부해서 중국에서 일 하다가 결국 고향이 함경북도이기 때문에 북으로 나왔다. 내가 나올 때 (중국) 외교부에 있었다. 내가 조국으로 가겠다고 해서 1년 동안 그네들(외교부 관리들)하고 씨름질한다.”

당시 그는 ‘협애한 민족주의자’로 낙인찍힐 뻔 했지만 “끝까지 민족주의의 정당성을 견지”해서 “가장 민족주의자가 가장 국제주의자고, 가장 국제주의자가 곧 가장 민족주의자라는 것이 신념이고, 결국 나는 정정당당하게 조국에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중국 혁명원로 천이(陳毅) 외교부장과의 치열한 ‘민족주의 논쟁’을 거쳐 1963년 합법적으로 북한으로 ‘환국’(還國)할 수 있었다.

그는 2015년 한국문명교류연구소가 마련한 기획강좌에서도 “내가 중국에서 북한에 나온 것도 나라가 분열 안 되고 하나였다면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중국 사람들과 싸울 때도 우리민족이 분열됐으니까 나가서 일해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먼길을 에돌아 결국 남쪽으로 오게 된 것도 ‘시대적 소명’인 ‘민족 통일’을 위해서였다.

“계급은 변해도 민족은 존속된다”

▲ 정수일 소장은 이른바 진보주의자들이 국제주의와 계급주의 등으로 인해 민족주의를 '오해'하고 있다고 논박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는 ‘민족주의의 시원’과 관련 “서구의 경우는 민족국가 건설의 부산물로 근대에 출현했고, 한국에서는 일제 내침을 계기로 한 저항적 민족주의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 ‘근대 시원론’이라며 “근대, 대강 100년 200년 전에 민족주의가 나타났다는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이론이 번복되기 시작한다”며 “전근대, 적어도 유럽에서는 기원 8세기부터 민족과 민족주의 이런 개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연구성과들이 제시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동양의 경우에는 민족 원형의 형성기부터 출현해 민족국가 건설과정에서 성숙했다”며 “우리 같은 경우는 삼국시대라든가 조금 더 올라가면 고조선 후기라든가 이때, 민족이 형성되기 시작할 때부터 민족과 더불어 민족주의가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그가 따르는 ‘전근대 시원론’이다.

그는 또한 “민족과 계급은 상보.상조 관계가 아닌 상극관계로 오해하고... 단군신화나 제(際)를 올리는 것은 다 반계급적이고 미신적이라고 한 면만 본다”며 “민족을 떠난 계급은 있을 수 없다. 계급은 변해도 민족은 존속된다”고 반박하고 “단군 신화는 민족구성의 하나의 주관적 요소다. 이런 신화적 기억 같은 것이 없으면 한 나라 역사를 복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급이라는 것은 민족내의 하나의 구성 부분”이라며 “민족모순이 전면에 나설 때는 계급 모순 같은 것은 좀 양보해서, 서로 지원해서 민족모순을 해결한다든가 그런 전략전술은 필요할 것 같다”고 제시하고 “자주와 평등 관계는 융통성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민족주의는 역사의 보편가치”라며 특히 ‘아시아적 보편가치’라고 강조하고 “한시적인 시류나 흥행물이 아니라 통시적(通時的) 역사과정에서 형성 축적된 역사와 생존의 보편가치”라고 풀이했다.

나아가 “민족주의야말로 모든 생활과 모든 이념에 깔린 저변에 편재해 있는 보편적 진보주의”라며 “민족주의는 정연한 논리적 체계와 내재적 구조를 갖춘 이념이고 의식구조이며 생활모습”이라고 규정했다.

결론적으로 “민족주의는 민족 구성원 간의 연대의식과 민족수호 의지 및 발전지향을 추구하는 민족의 이념적 표상으로서 민족구성원의 개개인의 삶에 체화된 의식구조이며 구체적 생활 모습이다”라고 개념규정한 그는 △민족 구성원 간의 연대의식 △민족수호 의지 △민족발전 지향을 민족주의의 3대 속성으로 제시했다.

“한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된다”

▲ 정수일 소장의 민족주의 강좌에 대한 참석자들의 관심은 높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는 특히 “우리는 한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된다. 여기에 절대적인 통일의 당위성이 있다”며 “우리는 민족론의 재생적 담론을 통해 민족론에 관한 보편이론과 실천지침을 도출함으로써 민족통일과 인류역사 발전에 응분의 기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남북간 경제의 이질성을 근거로 ‘하나의 민족’을 부정하는 흐름에 대해 “민족의 하나의 구성요소로서의 경제라는 것은 경제 제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며 “기본적으로 우리 민족이 누리고 있는 경제생활, 경제환경, 의식주가 똑같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대동소이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재생의 담론, 21세기 민족주의』(통일뉴스, 2010)에서 “원래 민족 구성 요소로서의 경제적 공통성이란 경제제도나 경제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기층구조(농업이나 공.상업 등)와 경제생활(주로 의식주), 그리고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지리적 여건(기후와 부존자원 등)의 3대 요인에서 나타나는 공통성을 말한다”며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다시피 봉건제도나 자본주의제도 등 각이한 경제제도나 경제 수준을 겪으면서도 경제적 공통성은 소실되지 않고 민족 구성 요소로서의 원초적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위의 3대 요인 때문”이라고 논지를 편 바 있다.

그는 통일보다는 평화를 강조하는 시류에 대해서도 “평화할 때는 평화하고, 부득이할 때는, 원치 않지만 우리 역사를 보면 전쟁할 때는 전쟁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평화는)시류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고 짚었다.

그는 ‘민족’에 대한 개념 규정에 있어서도 “민족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 공동체생활을 함으로써 혈연, 언어, 경제, 문화, 역사, 지역 등을 공유하고 공속의식과 민족의식에 따라 결합된 최대 단위의 인간공동체로서 소정된 역사발전의 전 과정에서 항시적으로 기능하는 엄존의 사회역사적 실체”라고 해, 기존의 사회주의 이론이 ‘경제’의 공통성에 방점을 찍는데 비해 ‘혈통’과 ‘언어’를 앞세워 왔다.

물론 ‘혈통주의’는 경계하되 “아직까지는 한민족의 고유혈통을 기본(핵)으로 하는 혈통보(血統譜)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혼혈을 빙자한 민족부정론’의 입지를 차단해야 한다는 논지다.

유럽 국가들이 다민족 혼혈국가를 이루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 275개 성(姓)이 있는데 130여개가 외래성”이라며 신라 때 30개, 고려 때 60개, 조선때 50개의 외래성이 들어왔다고 상기시키고 “고려 때 제일 많이 들어왔는데, 고려 초기 귀화한 사람이 17만이다. 그때 고려 인구가 230만명”이라며 “우리는 그네들을 우리 용광로에 융화시켰다. 그래서 마치 단일민족으로 만들었다”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민족주의 경험이 일천하고 당초부터 철학적 내용이 빈약한 서구에서는 개념 정립이나 대사상가 배출이 불가능하다”며 “우리 한반도에서 위대한 민족 대사상가, 이론가가 나와서 세상을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평생 민족 통일을 화두로 삼아온 정수일 선생은 “우리 한반도에서 위대한 민족 대사상가, 이론가가 나와서 세상을 이끌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그는 ‘국학과 민족주의 만나다’를 주제로 ‘2018 국학 월례강좌’가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 “국학과 민족론은 학문적으로 보면, 학문적 계보, 계통은 좀 다르다. 국학은 주로 인문학 쪽에 속하고, 민족론은 주로 사회과학에 속한다”면서도 “본질로 보면 일맥상통한다. 근간이 같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뿌리는 민족”이고 “뿌리에서 자란 민족 전통문화라든지 사상, 이론 같은 것을 도출해서 국학도 자라고 민족학도 자란다”고 비유했다. 뿌리에서 줄기가 뻗고, 가지가 나고 마지막에 꽃이 피어서 결실을 맺는, 표현하자면 ‘동근동간’(同根同幹), 뿌리와 줄기는 같다는 것.

정해랑 21세기민족주의포럼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2018 국학 월례강좌’ 두 번째 강좌는 60여명이 참석해 깊은 관심을 보였고, 다음 강좌는 3월 15일 오후 7시 조영래홀에서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저자가 ‘왜 유라시아인가 - 동북아 질서의 재편’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추가,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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