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상 최대의 대북 제재 조치’ 발표

▲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미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한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만찬을 가졌다. 이방카 보좌관은 ‘대북 최대압박’을 거론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2월 23일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이자 백악관 보좌관인 이방카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과 만찬하는 자리에서 ‘대북 최대압박’을 거론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정권에 대해 사상 최대의 새로운 제재에 착수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고, 미국 재무부는 북한과 관련된 무역회사 27곳, 선박 28척, 개인 1명 등 총 56곳에 대한 추가 대북 제재를 발표했다.

그러나 ‘사상 최대의 제재 조치’는 맞지만 강도는 예상보다 낮았다. 일부 언론들은 “군사행동을 빼고는 가장 강력한 압박조치로 여겨지는 사실상의 대북 포괄적 해상차단이 이뤄졌다”라고 평가했지만, 사실상 기존의 대북 제재조치에서 제대 대상만 확대됐을 뿐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북한의 경제가 엄청나게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석탄, 철광석, 수산물 등 북한의 주요 수출품이 막혀 수출액이 10억달러 이상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이 ‘자강력제일주의’를 내세우며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구조를 바꾸고 있고,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 시행으로 생산력이 증대되면서 대북제재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해외인사들이 주로 이런 논조를 편다.

어느 견해가 맞을 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렵다. 지난해부터 더욱 강화된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 특히 중국이 대북 제재에 협조하면서 북한 경제에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고, 서민들의 생활도 팍팍해지는 측면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이 사소한 부품조차 통관을 금지하면서 북한 기업들이 자재나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석탄을 비롯해 수산물, 송이버섯 등 대중국 주요 수출품들이 판로가 막히자 내수로 풀리고 있다.

북한 내 민간 사용 석유의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나선특구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에 2배 이상 올랐고, 특구 내 버스 등 차량 운행대수가 반 이하로 축소됐다고 한다.

큰 변동이 없던 평양의 석유 가격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해 2.5배 이상 올랐다고 한다. 아마도 급격히 늘어났던 평양의 택시회사들도 고유가의 충격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듯하다.

나진과 선봉을 잇는 버스 정기노선이 10분에 1대씩 운행됐지만 지금은 대폭 축소됐을 것이다. 평양과 지방도시, 지방도시간을 운행하는 다른 버스노선도 마찬가지 사정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제재와 석유가격의 상승으로 무역상이나 물류업종이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400개 이상으로 늘어난 북한 전역의 공식 시장도 타격이 예상된다. 그동안 북한의 공식시장들은 시장 내에 구역별로 나눠져 같은 모자와 복장을 갖춘 판매원들이 판매하도록 해 체계가 잡혔다. 시장과 시장을 오가며 장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민박도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제재에 적응하면서 경제체질을 바꾸는 북한

▲ 북한 소비시장에서 중국 제품 수입이 줄고 국내산 제품이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평양지하상점에서 열린 제28차 전국인민소비품전시회에는 전국의 경공업 공장들과 성, 중앙기관 산하 공장,기업소의 생활필수품 생산단위들에서 생산한 2,000여종 8만여점의 소비품이 출품됐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런데 중국 제품의 수입이 줄자 국내산 제품이 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북중합작으로 세워진 광복거리슈퍼마켓의 경우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중국 제품이 80%이상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국내산이 90%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제품구성이 변화됐다. 금컵식료품공장이 들어서면서 평양은 물론 장마당에서도 중국산 식품이 사라졌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여러 측면에서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그에 적응 또는 대응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석탄 수출이 막히고 그 물량이 내수로 돌려지면서 북한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그 어느 해보다 난방용 석탄을 구하기 쉬웠다고 한다. 또 석유가격은 오르고 있지만 식량 가격은 여전히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이 식량수입을 늘리기도 했고, 포전담당제 실시이후 전반적으로 식량 생산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해 북한을 방문했던 해외인사들은 다양한 사례를 거론한다. 포전담당제 실시이후 자기가 맡은 포전(논, 밭)에는 심는 작물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됐다. 평북의 한 협동농장의 할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 땅콩 농사가 잘 돼 재미가 난다.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데, 돌아오는 몫이 많으니 힘들지 않다”라고 말했다.

일찍부터 특용작물 재배에 뛰어든 농민의 경우 수매분을 제외하고 “수입금의 40%가 돌아온다”고 말했다. 함경북도의 한 농민은 텃밭에서 재배한 작물을 일부 친척들에게 나눠주고, 일부는 시장에서 판매한다고 밝혔다.

벼농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농민들은 포전담당제 실시 후 수확고를 늘리기 위해 거름을 더 주고, 관개에도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공공연하게 과거 분조관리제 때보다 더 편리해졌다고 말한다.

단편적인 사례들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과거 ‘고난의 행군’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먹고사는 문제에 전념했던 과거와 달리 의약품 개발 등 건강산업이 일어나고 있고, 인쇄업, 봉사업 등이 제재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한다. 평양과 대도시에서는 건설붐이 일면서 건자재 산업도 활성화되었다.

과거 평양의 고층 아파트 배정 때는 저층이 인기였다. 전기와 수도 문제 때문이었다. 그런데 2016년부터 신축아파트의 고층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전기가 정상적으로 들어오면서 엘리베이터가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옥상에 설치된 물탱크에서 물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도 고층이 더 비싸졌다고 한다. 물론 평양과 신의주, 원산 등 주요 도시에 민수용 전기공급이 늘었지만 산업용 전력은 아직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북한은 전기 문제 해결을 위해 노후시설 현대화,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 시차 배송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주민들은 자체적으로 중국제 태양광패널을 구입해 달고 있다. 개성 민속거리 기와집에 달린 태양광패널은 이색적이어서 그런지 외국 관광객들이 찍은 사진에 자주 등장한다.

북한의 정책기조가 ‘완전 월급제’, ‘독립채산제’ 등으로 가시화되면서 전반적으로 소득격차가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문제화 되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 취약시설과 계층에 대한 국가적 투자는 오히려 과거보다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재재가 강화되면서 북한경제의 파국적 상황을 점치는 외부 시각이 늘고 있지만 북한은 경제제재에 속수무책으로 견디기보다 스스로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다. 북한은 제재상황을 역으로 활용해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줄이고 내수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경제 체질을 바꾸는 실험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외자유치에 목표를 두면서 원산 등 경제특구의 기반시설 건설 중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리춘푸 중국 난카이대 교수는 “김정은 체제가 주민들을 장악하고 체제 정당성을 높여나가고 있다”며 “제재의 효과에 대해 맹신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외부에서 제재를 강화하는 게 오히려 김정은 지도자에 대한 믿음과 충성, 거기에 따르는 응집력, 결집력이 훨씬 강화되는 분위기가 북한 내부에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영원불변이란 없다”

▲ 25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북미대화’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북한은 항상 “우리가 언제 제재를 받지 않고 산 적이 있느냐”라고 말해왔지만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제재에 직면해 있다. 북한이 추구하는 자강력제일주의, 국산화 정책이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일정한 효과를 보고 있다.

물론 북한이 지난해 11월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올해 신년사를 통해 대대적인 대남, 대외 외교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강력한 경제제재가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평창올림픽에 고위급대표단을 파견한 것도 남북대화를 통해 미국의 군사적 압박을 완화하고 국제사회 제재를 풀어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대화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이 자신의 시간표대로, ‘평화적 환경’ 조성을 위해 전략적 수순에 따라 남북, 북미대화에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5일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석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북미대화’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북한이 그동안 한사코 논의를 꺼려온 비핵화 문제도 대화 의제로 올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벌써부터 예비회담 또는 ‘탐색적 대화’ 형태로 북미 접촉이 성사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가장 무거운(heaviest) 대북 제재’를 발표하면서 “솔직히, 무언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희망한다.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일단 방점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사상 최대의 제재’와 자강력제일주의의 충돌은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적절한 시점과 조건에서 출구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의 ‘회담일꾼’들이 잘 쓰는 말이 있다. “국제정치에서 영원불변이란 없다.” 더 이상의 대화는 소용없다고 선언했다가도 필요하고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면 다시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행보가 주목된다. 문재인 정부의 북미간 ‘중재외교’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시점이자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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