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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시대의 운전자론<기고> 김상일 미 클레어몬트대 과정사상연구소 한국부 담당자
김상일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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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20  00: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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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신베를린 구상으로 알려진 ‘운전자론’에 대해 취임 100일을 맞는 좌담에서 야당 원내 대표들은 "차에도 못 타고 있는" 주제에 무슨 운전대를 잡겠다고 하느냐고 일제히 혹평했다.

"(문 대통령은) 운전석은커녕, 조수석은커녕 뒷좌석에 앉아 한반도 정세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정우택)고, "운전대론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클린턴이 했던 말이다. 그만큼 김 전 대통령을 신뢰했다는 것"(김동철)이라고, "철지난 낭만주의에 빠져 대화에 매달리느라 운전석에 앉기는커녕 차에도 못 타는 모습을 매일 연출해 국민의 불안이 최고조"(이혜훈)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네티즌 가운데는 “운전면허가 있는지 의심스런 운전기사 때문에 탑승자의 불만이 도를 넘었는데, 뭘 기대해?”라고 비꼬기도 했다.

잠잠해 지는 듯하던 운전자론은 평창 올림픽이 개막되고 북한의 김영남과 김여정이 내려 왔다 가자 바로 다시 운전자론이 물위로 부상하고 있다. 막상 올림픽이 개막되자 문재인 대통령은 운전대를 성큼 잡은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운전대를 놓진 펜스와 아베는 볼멘소리를 하다 퇴장하고 말았다. 올림픽이란 대사가 운전자론에 힘을 받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동안 미국이 운전석에 앉아 있었는데 한국이 운전석을 앉겠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미국과 한국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운전자이면 다른 하나는 조수가 될 것이다. 차 안에는 6자 회담의 당사자들이 모두 동승하고 있다고 할 때에 운전석에 누가 앉느냐가 관심의 관건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러나?

속도 조절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가속 페달로 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브레이크로 하는 방법이다. 가속 페달로도 속도의 강약을 조절할 수 있고, 브레이크는 차를 완전히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다. 속도 조절을 두고 마치 미국과 보조를 맞추는 것처럼 이해되고 있다. 그것을 가속 페달로 속도 조절하는 것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 브레이크로 속도 조절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속도를 자제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코피 작전 운운하면서 급 과속 주행을 시도하려는 것 같다. 여기서 문재인 대통령은 브레이크를 걸어 급제동을 시키려 한다. 일찍이 김영삼 대통령 때도 1994년 도 북폭을 미국이 시도하자 급브레이크를 대통령이 걸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다.

한국의 대통령이 몇 가지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국이 북한에 전쟁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자주권이 없어도 이것만은 할 수 있는 것이 한국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다. 이 카드를 한국 운전자는 할 수 있다.

한국 대통령이 가속 페달을 밟아 줄 수 있는 것은 북미 대화이다. 적극적으로 북미 대화를 추동시켜 주는 것이 그것이다.  이 둘은 한국 대통령이 운전자로서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는 권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아무리 잘 구사해도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동승자인 미국의 속셈 때문이다. 속셈을 잘 내 보인 장본인은 힐러리이다. 힐러리는 월가의 한 강연에서 북핵이 미국에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했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미국의 의도 혹은 ‘속셈’이 나변에 있다는 것이다. 그 속셈을 정확하게 짚은 분은 서울대 이근 교수가 아닌가 한다. 일언이 폐지하고 ‘무기 팔아먹기’ 말이다. 무기 팔아먹기 위해 쓰는 카드가 북핵이라는 것이다.

북핵이 말 그대로 국가 안보상에 관계 되는 문제라면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핵은 미국 무기상들이 뒤에서 충동질하면 미국 정부가 꺼내드는 카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운전대를 잡은 우리나라 대통령은 브레이크로도, 가속 페달로도 해결할 수 없는 난관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면 차 안에는 차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에 작동하는 장치이다. 그것은 기어(Gear)이다. 먼저 두 장치가 요지부동일 때에 기어변속을 하면 차가 다시 움직인다. 그러면 북핵이 무기가 아니고 카드로 변할 때에 별도리 없이 미국산 무기를 사들이는 길밖에 없다. 한국 대통령이 반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무기 사주기’이다. 참 기괴한 자주권이다. 카드를 꺼낼 때마다 기어 변속을 해야 하고 그것은 무기 사들이기이고, 그러면 북한은 핵개발을 해야 하고, 한마디로 말해서 ‘악순화(vicious circle)’의 연속이다.

핵이 무기일 때에는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로 속도 조절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상품일 때에는 즉, 꺼내드는 카드일 때에는 별도리 없이 기어를 사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미국산 무기를 사들여야 한다. 그러면 기어 변속이 될 것이다. 운전자 노릇하기에 너무나 큰 대가라 할 수 있다.
 
쇼트트랙 최민정 선수를 보는 외신들은 ‘기어를 바꿔 단 것 같다’고 했다. 장거리는 장거리대로 단거리는 단거리대로 속도 조절이 있다. 그러나 장거리 선수가 단거리에 속도 조절하기란 힘들고 그 반대도 힘들다. 그러나 최민정은 아웃코스에서 단거리 선수가 하듯 상대방을 따돌렸다. 이를 두고 ‘기어를 바꿔 달고 자유자재로 달린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속도 조절이라고 할 때에 속도 조절 자체를 조절해야 할 것이다. 단거리도 장거리도 자유자재로 달릴 수 있는 최민정 선수와 같이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폭 불가 급제동을 걸자, 미국은 당장 철강 수출 관세를 53%로 올리겠다고 했다. 일본과 대만 모두 아닌 데 우리만 관세를 갑자기 올리겠다고 했다. 안보, 통상의 연계가 아닌가 우려한다. 그러나 나쁘지만은 않다. 통상에 있어서만은 미국과 자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통상 압력을 받더라도 안보, 통일 문제에 자유로운 것이 민족의 장래로 보아 바람직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알기나 하고 운전자 노릇을 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조수는 운전자에게 끝없이 위장 깃발(false flag)을 흔들 것이다. 지금까지 큰 3대 위장 깃발은 일본의 만주사변, 미국의 통킹만 사건 그리고 진주만 사건이라고 미국 클레어몬트대 그리핀 박사(Dave Griffin)가 지적하고 있다.

위장 깃발은 가해자가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해자가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자처하면서 자국민들에게 전쟁을 유도하는 것, 다시 말해서 위장으로 애국 국기를 흔드는 것이다. 지금 미국 국민들은 북핵이 미국 전국을 초토화할 것이라는 공포에 질려 있다. 마치 진주만 공격 때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할 것인가 아니면 평화를 유지할 것인가. 지금 한반도 문제는 양쪽 다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러면 무엇인가. 답은 ‘카드’이다. 핵 이외에 카드는 또 있다. ‘인권’, 그리고 또 있다, ‘신앙의 자유’. 앞으로 미국은 이들 카드를 동시에 혹은 수없이 꺼내 사용할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직시한다면 운전석에 앉은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운전대를 놓는 것이다. 가속 페달도 브레이크도 기어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이것들을 사용하면 결국 제 살을 너무 많이 도려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허리가 휘어지도록 무기를 사드려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에 자율주행 차를 시승한 적이 있다. 답은 자율주행에 있다. 운전대를 놓고 가만히 운전석에 앉아 있기만 해도 된다. 이것이 북핵 문제 해결과 무슨 상관이라도 있단 말인가?

차가 저절로 가속 페달도 브레이크도 기어도 스스로 사용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도 문재인 대통령도 차 자체를 의식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민중이고 민족이다. 차가 스스로 알아서 주행하도록 해야 하고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4차 산업이란 바로 ‘자기의 시대와 자율의 시대’를 의미한다. 말과 소가 마차를 앞에서 끌던 시대에서(1차 산업),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던 시대(2차 산업), 이제 3차 정보화 시대 이후, 차는 차 자체가 스스로 가는 4차 산업시대에 지금 우리는 진입해 있다.

2015년 촛불 혁명은 자율주행과 함께 온 혁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운전대를 잡으려는 2차 산업혁명 시대의 운전자 개념을 버려야 한다. 자신도 차에 타고 있으나 차 자체가 운전자라는 사고의 전환을 이 순간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차가 자율주행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촛불의 저력을 믿어야 한다.

직접 운전대를 잡는 순간 미국은 조수석에 앉아서 교통법규 위반 카드를 꺼내 들 것이다. 그 순간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말 것이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일구어 놓은 남북 관계는, 대화를 여는 계기로 삼아서 남북 지도자가 함께 자율운행에 몸을 내맡겨야 한다.

남북의 민중과 민족의 구성원들이 차 자체이고 그 안에는 자율주행이라는 자산과 저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운전석에 앉기만 하면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단순히 변화만을 해서는 안 될 순간에 처해 있다. ‘변화의 변화’를 해야 될 순간이란 말이다. 위에서 말한 자율주행이란 ‘변화의 변화’란 메타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메타 변화를 해 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미국의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변화의 변화’라는 주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하와이에서 직접 돌고래 길들이기 실험을 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돌고래가 먹이를 주면 먹이를 재롱으로 바로 일대일로 연관 시킨다. 먹이 하나에 재롱(장기) 하나와 연관을 시킨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행동을 반복할 줄 알지만, 같은 행동을 바꿀 줄은 모른다. 다시 말해서 ‘변화를 변화’시킬 줄 모른다.

베이트슨은 재롱 하나에 먹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돌고래가 행동을 변경시키는 바로 그 순간에 먹이를 준다. 그러면 돌고래는 ‘아하’,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 반복해서 자기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서 ‘변화를 변화’시켜야 한다. 이를 두고 메타(meta)라 하고 더 쉽게 말하면 ‘수(數)’라 할 수 있다. 바둑에서 ‘한 수 높다’에서 나온 말인 것 같다. 상대방의 속셈을 파악하고 내가 파악한 것을 또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까지 파악하는 것이다.

일본어로 ‘속셈’을 本音(하네)라고 한다. 속셈은 숨기고 밖으로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健前(다테마에)라고 한다. 미국의 속셈은 무엇이고 일본의 속셈은 무엇인가. 그들이 진정한 우리의 우방이고 우리를 살리려 하는 가 죽이려고 하는가. 속셈을 파악해야 한다. 속셈을 파악하자면 ‘변화의 변화’를 해야 한다.

때는 바야흐로 4차 산업화 시대의 문턱에 와 있다. 자율주행 차가 등장한 것이다. 문 대통령도 얼마 전 시승한 모습을 보았다. 운전대를 잡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자율차량을 타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말해서 운전자가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운전석에 앉겠다는 자기 생각을 수정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차량이 스스로 가게 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차량인가. 그것은 ‘민족’이고 ‘국민’이다. 2015년 촛불을 든 성원들은 자율운행 차량과도 같았다. 누가 시켜서 그럴 수는 없었다. 이 촛불이 전 지구촌의 상징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번 단일팀을 노벨상 후보로 올리자는 목소리가 미국 IOC 입에서 나왔다. 촛불 혁명도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르고 있다. 전 세계가 흔들 수 없는 요지부동의 가치로 자리매김해 놓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구성원 스스로가 스스로를 자율주행 하도록 만드는 지도자를 최근 지도력 이론에서는 이를 ‘분산 지도력(distributed leadership)’이라고 한다. 농경시대의 소나 말이 마차를 끌고 가는 지도력, 그리고 2차 산업시대의 운전자가 운전석에서 변화를 주도하는 식으로 운전대론을 생각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고 실패하고 말 것이다.

촛불을 살려라 그리고 촛불을 든 주인공들이 자율주행 하도록 하라. 대통령은 분산 지도력을 발휘하라.

부디 문재인 대통령, 성공한 대통령 되시어 세종과 이순신을 합성한 상으로 민족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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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소나무 (qnseksrmrqhr) 2018-02-20 12:19:58
소식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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