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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특사 김여정이 서울을 방문해 화제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와 주변 정세가 극적으로 발전하였다.

북한이 보여준 것은 무엇일까?

한 때는 남북관계나 국제정치에 관심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냥 감(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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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가 격동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안보다. 현대 역사를 주도했던 것은 미국과 유럽의 동맹이다. 소련이 도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묘한 정세가 열리고 있다.

첫째, 미국과 유럽 사이의 균열 조짐이 있다. 작년 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안보에 미온적이었고 이에 독일과 프랑스가 독자적인 안보 구상을 밝히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동맹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둘째는 미국의 국제 전략이 다시금 중국과 러시아 등 강대국에 초점을 맞추면서 강대국 정세가 격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셋째는 강대국과 강대국 사이의 제3지대에 광범위한 불안과 갈등이 조성되고 있다. 이런 양상 또한 점점 더 확대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중동인데 약소국들의 상당한 피해와 고통이 예상된다.

향후 안보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발전할 것이다.

안보 정세를 근원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무기 체계이다. 1~2차 대전을 결정지었던 것은 핵이다. 그리고 미소 냉전을 궁극적으로 결정했던 것도 핵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고리로 미국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핵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핵의 지위이다. 핵이라고 해봐야 20세기 초반 물리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과학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무기체계의 발전을 예고하고 있다.

사이버전, 드론이나 로봇의 도입, 우주전이나 양자통신을 활용한 새로운 세대의 무기 체계가 현실화되고 있다. 사실 군사 부문은 첨단 과학기술 문명의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20세기 초 물리학의 성과에 기반한 핵이 현실 무기로 작동하는 한편 새로운 레벨의 무기 체계가 도입되는 과도기일 듯하다.

평창 개막식을 1,200대의 드론이 아름답게 수놓았다. 이를 한 사람이 조종했다고 한다. 민간 행사가 저럴 정도면 군사용으로는 이미 상당 수준의 발전이 있을 것 같다.

이를 종합하면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핵은 미국의 대북 고립정책을 넘어 전례 없는 격변기에 북한과 같은 약소국이 자신의 생존을 지탱할 수 있는 군사적 기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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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환경과 함께 중요한 것은 변화된 국제정세에 부합하는 새로운 리더십이다. 국제정세의 변화는 안보정세, 과학기술발전, 강대국의 통화정책의 변화 등이 있다.

트럼프의 당선과 영국의 브렉시트는 미국과 영국이 건설적인 리더십 구축에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유럽은 난맥상을 빚고 있다. 좌파든 우파든 중도 성향의 정치적 리더십을 부정하는 흐름이 강세를 띄고 있다. 극우파의 성장, 스페인의 포데모스·그리스의 시리자 등등이 그렇다.

중국은 잘 모르겠고, 전통 시대의 강대국 인도의 부상이 예고되고 있다. 중동과 중남미는 대파란이 진행 중이다. 중동 그리고 남미에서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운명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중동의 파국은 2002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뿌리로 한다. 이라크가 무너지고 사담 후세인이 사망한 후 중동이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이라크 북부에서 태동한 IS가 중동을 황폐화했고 2011년 기대를 모았던 이집트와 튀니지의 SNS 혁명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가운에 시아파 이란, 수니 사우디, 미국과 러시아 등의 외세가 맞물려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들었다.

중남미도 유사하다. 한 때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는 한국 진보진영의 관심 대상이었다. 브라질의 경우는 BRICs의 일원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잘 모르겠지만 과거와 같은 상황이 아님은 명백해 보인다.

이들 나라들의 성장은 2000년대 초반, 중국의 성장에 따른 원자재 수요의 급증을 배경으로 한다. 문제는 그런 축복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제도 개혁과 리더십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순진했던 것 같다. 험난한 세계정세를 이겨내기에는 브라질, 베네수엘라의 리더십은 취약하거나 낭만적이었다.

반면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이후의 제3세대 리더십을 창출하는데 성공한 것 같다. 2017년 북핵을 두고 각축했던 김정은의 행보나 2018년 한국에 나타난 김여정의 모습은 왕조국가를 물려받은 철딱서니 없는 후계자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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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초반의 남북관계는 2000년과 많이 다른 것 같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 같은 성격이 강했다. 당시 북한이 가지고 있었던 카드는 미사일 정도였다. 덕분에 2001년 부시 행정부가 상황을 원점으로 돌렸을 때 북한은 거의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했다.

반면 지금은 미국을 사정거리로 한 미사일에 핵을 장착할 수 있다.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야 한다.

2018년 초 북한의 신년사는 명백히 남한을 타겟으로 하고 있다. 2000년의 남북회담은 북미관계가 진행되지 않으면 완결될 수 없는 구조였다면 2018년의 정세는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북미관계에 대한 해결 없이 남북관계 그 자체가 나름의 완결성을 가진다.

북한의 의도는 북한의 핵이 묵인된 채 정상적인 국가로 활동하는 것이다. 2018년 김여정 방문 과정은 그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북한의 의도는 평창 이후 특사파견-다양한 남북 간 접촉-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그대로 진행되면 북한으로써는 아쉬울 게 없다.

북한의 통일·외교 정책은 미국을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물론 지금도 어느 정도 유효하지만 비중은 확연히 다른 것 같다. 북한의 제안은 북의 핵을 인정한 채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는 제안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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