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태양을 향해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어야 한다 (체 게바라)

 

노래여, 노래여
​- 김준태

물 한 모금씩 마시고
먼 들판을 바라본다.
익으면 익을수록 어찌하여
더욱 모가지를 치켜드는
산 너머 산 너머 보리밭이여
물 한 모금씩 마신 가슴으로
먼 들판을 달려가다가
어디서 후루룩 날아오르는
메추라기 떼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아아, 우리는 강물이었어라
그 어떤 칼날로도 벨 수 없는
멀리 멀리 강물이었어라.

한 중년 여성이 말한다. ‘심하게 아프고 났더니 다 용서하고 싶은 생각이 났어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 표정이 수긍하는 눈치다. 아마 다들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래, 사는 게 뭐가 있어? 서로 서로 용서하고 살아야지!’

이런 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시 그 중년 여성이 건강해지면 다른 사람들을 다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다시 ‘오만한 자아’로 돌아갈 것이다.

아플 땐 마음도 약해진다. 약해진 마음은 ‘유아(幼兒)의 마음’이 된다. 우리는 어릴 때는 항상 듣는다.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서로 사이좋게만 지내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준다.

용서(容恕)는 ‘받아들이는(容) 것’이다. 다른 사람과 ‘같은(如) 마음(心)’이 되는 것을. 다른 사람과 같은 마음, 공감(共感)이 되기 전에 남을 용서한다고 하는 것은 ‘착한 어린 아이’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싶은 유치한 마음일 뿐이다.

한 멋진 전사 시인은 죽음을 앞두고 소리쳤단다. ‘개 같은 세상!’ 아, 나는 그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가슴이 미어졌다. ‘끝내 당신의 시퍼런 정신을 놓지 않는구나!’ 내게 시를 가르쳐주신 그 선생님의 마음은 항상 내 가슴에 살아있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어른들 말씀이 우리 마음 속 깊이 들어와 버렸다. 다들 어린 아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시인은 노래한다.

‘물 한 모금씩 마시고/먼 들판을 바라본다./익으면 익을수록 어찌하여/더욱 모가지를 치켜드는/산 너머 산 너머 보리밭이여’

‘물 한 모금씩 마신 가슴으로/먼 들판을 달려가다가/어디서 후루룩 날아오르는/메추라기 떼의 울음소리를 듣다가’

우리는 안다.

‘아아, 우리는 강물이었어라/그 어떤 칼날로도 벨 수 없는/멀리 멀리 강물이었어라.’

세상은 자꾸만 우리의 고개를 숙이게 한다. 무릎을 꺾게 한다. 직립(直立)하고 사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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