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자가 한 번 울부짖으니 여우의 머릿골이 찢어지도다 (석가) 


 하관 
 - 박목월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하직(下直)했다.

 그 후로
 그를 꿈에서 만났다.
 턱이 긴 얼굴이 나를 돌아보고
 형님!
 오오냐. 나는 전신(全身)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는 못 들었으리라.
 이제
 네 음성을 
 나만 듣는 여기는 눈과 비가 오는 세상.

 너는 어디로 갔느냐
 그 어질고 안쓰럽고 다정한 눈짓을 하고.
 형님!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는데
 내 목소리는 미치지 못하는
 다만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 


 ‘열매가 떨어지면/툭 하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은 얼마나 신나는 세상인가! 한 번 실험해보자. 지금 이 순간,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조용히 눈을 감고 이 세상의 ‘어떤 한 소리’에 집중해보자. 잠시 후 기적처럼 우리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어느 스님이 얘기하듯 ‘텅 빈 충만’이 온 몸에 가득차오를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알 것이다. ‘눈과 비가 오는 세상’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느낀다. 이 세상이 자꾸만 누추해진다는 것을. 온갖 소리로 가득 찬 이 세상은 어느 한 소리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원시인들은 자주 ‘의례’를 행했다. ‘한 소리’로 함께 노래하며 춤 출 때 이 세상은 다시 말갛게 씻겨 졌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신성(神聖)한 세상에서 살았다. 그들에게 천국, 극락 같은 저승은 필요 없었다.      

 내가 아는 어느 중년 여인은 남편과 아이들을 버리고 어느 종교 단체에 들어갔다. 거기서는 어느 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한 소리를 듣고(耳)’ ‘말하는(口)’ ‘책무(壬)를 맡은’ ‘사람(人)’을 ‘성인(聖人)’이라고 한다. 신은 항상 한 소리로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전한다. 

 ‘열매가 떨어지면/툭 하는 소리’ 같이 소소한 한 소리로.  

 소크라테스는 신의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고 한다. 그래서 신의 뜻에 따라 독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공자는 평생 천명(天命)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자신이 낳은 갓난아기를 버린 한 여대생이 온갖 비난을 받고 있다. 그녀는 아기를 버릴 때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했을까. 아마 그녀는 이 세상의 소음이 가려 ‘한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길에 쓰러진 노인을 한 중학생이 구했다. 그 중학생은 노인의 신음 소리를 천둥처럼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 세상이 끝내 타락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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