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쓰레기, 나비날다

젖꼭지를 입에 문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핵쓰레기통을 짊어진 인류가 어지러이 힘겨운 발걸음을 옮긴다. 이미 핵쓰레기통에 깔려버린 사람도 있다. 그 곁에는 핵발전소 돔이 우뚝 서있다. 일본작가 하시모토 마사루씨의 그림이다.

깊은 슬픔과 절망을 자아내는 이 작품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7주기 퍼포먼스 주제가 되었다. “핵쓰레기, 나비날다.”

▲ 본작가 하시모토 마사루씨의 그림이다. [자료사진 - 이태옥]

탈핵문화학교가 열린 지난 1월말 5일 동안 하자센터에서는 내가 짊어질 핵쓰레기통을 만드는 분주한 작업장이 열렸다. 박스를 재단하고 원통을 만들어 신문지로 밑 작업을 한뒤 노란색 페인트를 입힌다. 드럼통 이랫쪽에 어깨끈을 달고 방사능물질 표시를 그려 넣으면 한 개의 핵쓰레기통이 탄생(?)한다. 몸과 손을 쓰는 일은 왁자하고 들뜨기 마련인데 핵쓰레기통을 만드는 작업이어서 그런지 내 눈에 비친 작업자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편의점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하얀 마스크 하나에 의지해 힘없이 빗자루질을 해대던 후쿠시마 제1발전소 인근 마을 제염노동자와 저 멀리 서해안·동해안 바닷가 마을 끄트머리에 존재하는 핵발전소가 내 곁의 현실로 다가온다.

핵쓰레기, 계속 만들고만 있을 것인가?

지난 6월 19일 고리1호기 퇴역식에서 탈핵을 선언했던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신고리4·5·6호기와 신울진1·2호기 등 5기 핵발전소를 늘리는 시대착오적 역행을 결정하였다. 총 16,000여톤의 핵쓰레기가 쌓여있고, 5기 신규핵발전소에 핵연료가 장전되는 순간 앞으로 60년간 맹독성 방사능물질인 고준위핵쓰레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2019년 고리핵발전소, 2024년 영광한빛핵발전소 포화를 예고하며 맹독성 방사능폐기물(고준위핵폐기물)을 저장할 임지저장고, 또는 중간처분장, 또는 영구처분장 논의가 급하다고 주민들에게 또다시 공론화를 제안한다.

올해 고장과 정비를 위해 운행 중단 된 핵발전소가 11기인데도 혹한기인 이 즈음도 전력예비율이 평균 14~15%를 넘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기, 기존 핵발전소 용량 대비 7기를 더 짓겠다는 정부와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장에 대한 논의가 가능할까?

핵폐기물을 더 이상 늘리지 않을 방책을 논의하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문재인정부의 핵발전소 정책은 역행과 반칙을 넘어서고 있다. 이전 정부와 다름을 찾을 수 없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불, 인근주민 4만명

지난 1월 20일, 유성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불이 났다.
원자력연구원은 자재보관소도 아니고 단순한 연구소도 아니다. 중저준위부터 고준위까지 핵폐기물이 보관된 핵폐기장이다. 그리고 하나로 원자로가 가동중인 핵발전소이다. 핵물질을 다루고 핵재처리실험을 위한 위험한 시설들이 즐비한 핵시설이다.

이곳에서 불이 났는데 한국원자력연구원측은 또 이 사실을 축소 발표했다가 번복하고 결국 원장이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1시간여 동안 불이난 장소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다는 사실에 우리는 고작 가슴만 쓸어내릴 수 밖에 없다.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그 어떤 접근도 차단되었다. 무시무시한 군사시설이 왜 인구밀집 지역에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화재로 인해 원자력연구원 창고에는 200리터짜리 핵폐기물 34드럼이 있었고, 핵폐기물 저장고 5곳 모두 샌드위치 패널 같은 화재에 매우 취약한 자재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화재가 난 건물 바로 옆에는 액체와 금속 핵폐기물처리 시설이, 멀지 않은 곳에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가 있다는 사실도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것이 더 나았을까? 한국원자력연구원 1.5km인근에는 4만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모르고 살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핵재처리, 고속증식로는 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를 통해 지난 20년 동안 6,800억원을 쓰고도 연구결과를 내지 못했던 사용후핵연료재처리와 고속증식로에 대한 2018년 연구사업비로 531억원을 요청했다. 대전시민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논란 끝에 국회는 결국 406억원을 수시배정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결정했다.

수시배정예산이란 국회에서 예산이 확정되었더라도 사업 계획이 미비하거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을 경우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산 배정을 보류할 수 있게 한 제도이다. 그러나 수시배정예산에 대한 결정권을 사업주체인 과기부에 맡겨 셀프검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연구·개발 사업은 일부 핵마피아가 관련 정보를 독점한 채, 실효성도 없는 무모한 연구를 장밋빛 낙관론으로 치장하여 지난 20년 동안 약 6,800억원의 혈세를 낭비한 사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사자인 과기부에 계속적인 사업 추진 여부의 결정권을 맡긴 것이다.
‘고양이 앞에 생선’인 격이다.

핵재처리 결과는 플루토늄 추출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건식재처리는 순도높은 플루토늄 추출을 할 수 없어서 핵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일본, 프랑스 등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기술을 한미원자력협정까지 고쳐가면서 매달리는 이유가 명쾌하지 않다.

핵재처리 전문가인 장정욱(일본 마쓰야마대학)교수는 과학적 결과를 무시한 채 지난 20년간 국민혈세를 등친 이 연구·개발은 세계 어디서도 과학적으로 실증된 것이 아니며, 그저 온갖 가정 위에서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핵마피아의 희망사항만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406억원의 혈세를 결과 제로에 가까운 연구개발비로 날리자는 것이 핵재처리와 고속증식로 예산이다.

핵쓰레기 전문가 사와이 마사꼬에게 묻다

일본 반핵운동의 상징 다카기 진자부로 선생이 1975년 설립한 일본 최대 반핵시민단체인 일본원자력자료정보실에서 25년간 핵쓰레기, 핵재처리와 씨름해온 사와이 마사꼬 연구원이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핵폐기물의 위험과 핵재처리의 무모함’ 강연 제목부터 묵직하고 심상치 않다.
‘천하에 쓸모없는 핵쓰레기가 내 전공’이라며 쓰게 웃는 사와이 연구원은 대전핵재처리저지 30km연대가 주최한 제3회 탈핵활동가대회, 영광한빛핵발전소안전성확보를위한 원불교대책위와 영광공동행동이 주최한 영광탈핵학교, 천주교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가 주최한 카톨릭에코포럼 등 전국을 돌며 강연을 이어갔다.

입에 붙이기도 어려운 방사능물질과 기호, 그림과 말들로 가득한 사와이 마사꼬 연구원의 강연장은 핵폐기물을 통해 핵노답(핵은 답이 없다)을 확인하는 한숨과 탄성의 장이었다.

“이것이 핵연료봉입니다. 4미터짜리 연료봉에 가득 찬 우라늄연료는 중성자와 만나 무지막지한 열을 내며 그 열이 전기를 만들어 내죠, 핵연료가 다 타고 나면 남는 방사능물질은 죽음의 재가 됩니다.”

사와이 마사꼬 연구원은 단언한다. “핵발전소를 돌리면 무조건 방사능물질이 나옵니다. 핵재처리는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추출이 목적이지만 세계 어디에도 핵재처리에 성공한 나라는 없어요. 그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뿐이지요.”

사와이 마사꼬 연구원은 현재 한국 정부의 사용후 핵연료재처리 예산문제가 논란이 되는 상황에 대해 “핵무장을 할 것이 아니라면 핵을 재처리할 이유가 없으며, 특히 한국이 추진하는 건식 재처리와 이를 활용하기 위한 고속증식로는 어디에서도 성공한 예가 없다”고 강조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재처리의 이유로 드는 핵폐기물량 감소에 대해 사와이 마사코 연구원은 ‘사용후연료 재처리는 건식이든 습식이든 그 과정에서 폐기물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재처리공장이 가동되면 시설 전체가 방사성폐기물이 되며 이는 이전 폐핵연료의 약200배 폐기물이 양산되는 것으로 추정되므로 그 말은 속임수 일뿐’이라고 일축한다.

프랑스 라아그, 영국 셀라필드, 일본 로카쇼무라 재처리공장에서 나오는 기체방사능물질과 액체방사능물질은 이미 공기와 바다를 통해 전 세계로 흘러들고 있다.

더군다나 재처리한 연료는 일반 핵발전소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연소시키면서 동시에 새로운 플루토늄을 만들어 내는 원자로인 고속증식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데 가동 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과 방사성도 문제이지만 고속로 수명이 40-50년밖에 되지 않아 가동을 시작하면 계속 지어야 한다. 어쩌면 핵마피아들의 노림수가 여기에 있을 않을까 싶다.

일본 몬주 고속증식로는 1994년 가동된 뒤, 소듐 누출 사고, 핵연료봉 낙하 사고 등으로 중단되면서 2016년 12월 21일 폐로 됐고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 고속로 개발을 먼저 시작한 나라들도 기술과 안전, 비용의 문제로 완전히 철수했다. 이걸 하겠다고 올린 예산이 406억원이고 지난 20년간 까먹은 예산이 6,800억원이 넘는다.

전형적인 문과출신 50대 여성이 알아먹기 힘든 기호와 용어들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핵산업계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현실성 없는 일을 그저 하고 싶어 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도 핵마피아들에게 다시, 묻고 싶다.
“도대체 왜?”

 

 

이태옥은 핵발전소가 6기나 있는 영광지역에서 여성농민회와 여성의전화를 만들고 활동했다.

현재는 원불교환경연대에서 탈핵과 에너지전환 등 에너지개벽운동을 하고 있으며, 태양광발전소 협동조합인 둥근햇빛발전협동조합 상무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