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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하고 곤란한 주제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다.

3년 전 20대 중후반 여성이랑 토론한 적이 있다. 단호하고 과격했다. 나는 도대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재차 페미니즘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마땅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시종 확신에 차 있었다. 기묘한 경험이었다.

나는 최근 대학생 3명과 인터뷰를 했다. 학생들은 인터뷰와 별도로 페미니즘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글로 써주었다. 3명 모두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부정의 강도도 셌다. 특히 2015년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한 강성 페미니즘의 부상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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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전하는 현실은 기묘했다. 용어부터 낯설었다. 여성시대·워마드·메갈리아, 한남·흉자·냄져....

한남충은 한국남자를 비하하는 말이고 한남유충은 남자아동을 비하하는 말이란다. 흉자는 ‘흉내자지라는 말로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여성을 (남성의 성기와 결부하여) 비하하는 말’이란다.

나는 누군가를 벌레에 빗대어 풍자하는 것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냥 언어 습관이므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한다. 그럴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 서는 몇 가지 현상은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학생 중 하나는 그런 사례로 ‘독립운동가와 참전용사를 성적으로 유린하고 비난한 사건, 남아 낙태 인증 사건, 부동액 살인 미수 사건, 호주 성폭력 사건’ 등을 열거했다. 모두 사회통념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우연히 같은 날 50대 초반 여성으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페미니스트 중에는 남자 아이에게 치마를 입히기도 한단다.

페미니즘의 뿌리 중 하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관심이다. 여기에는 노인·장애인·이주민·성소수자 등이 해당한다. 사회적 약자 또는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서 서서 그들 모두의 이해를 대변하고 그것을 옹호하는 신념 체계를 갖는다면 이해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소 과격한 일탈이 있더라도 용인할 수 있겠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그런 생각과 행동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한국에서 가장 어려운 대상은 노인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년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자의 삶은 위태롭다. 이주민을 포괄하는 새로운 사회공동체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

강성 페미니즘은 사회적 약자 전반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그 연장선에서 출현한 신념 체계라기보다는 특정 연령대의 여성 집단이 사회 전반에 대해 갖고 있는 무차별한 분노에 뿌리를 둔 사회적 현상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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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가, 이다. 강성 페미니즘이 나타나게 된 사회적 배경이다. 나는 이를 추적해 왔는데 아직은 부족하다고 느껴 하나의 가설로 생각한다.

한국의 인구 구조는 2000년경 극적으로 무너진다. 위험 신호는 한 해 출생아 숫자와 미혼 비율이다. 2000년경부터 한해 출생아 숫자는 40만 명을 간신히 넘어 인구 구조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1990년 20대 후반 여성의 77.3%가 배우자가 있었다면 2005년에는 40.1%만이 결혼을 했다. 미혼 비율이 15년 만에 37.2%가 늘어난 것이다.

2005년 한국은 글로벌 대기업의 대약진을 배경으로 정규직 일자리를 두고 고용경합이 벌어졌다. 기업과 정규직이 담합하여 고용을 지킨 대신 청년은 고용 기회를 잃었다.

고용을 둘러 싼 갈등은 여성의 경우 결혼과 출산이 결합되어 보다 극적인 양상을 띤다.
http://m.media.daum.net/v/20171109030550816

 

저출산이 본격화된 2000년 합계 출산율은 1.3이고 배우자를 둔 여성의 출산율은 1.7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후반 이래 특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배우자를 둔 여성의 출산율은 2.0을 돌파하여 2015년 2.5까지 늘어난 반면 합계 출산율은 16년 1.17까지 떨어진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자 결혼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늘어났고 이를 배경으로 결혼 여성의 출산율이 늘어났다. 반면 결혼하지 않는 여성의 비율이 더 많이 늘어나면서 결혼 여성의 출산율이 늘어났음에도 출산율은 더욱 줄어들었다.

양자를 갈랐던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장과 사회에 정상적으로 진입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으로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가설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구분하는 것이 정확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을 수 있다. 아마도 가장 극단적인 페미니즘은 오히려 교육수준이 높은 전문가 집단이거나 고용시장에 진입하지 않은 학생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현상에는 사회적 뿌리가 있는 법이다. 2015년을 계기로 강성 페미니즘이 확대된 것에도 당연히 그런 문제가 있다. 200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규정했던 요인 중 하나가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라면 페미니즘 또한 위와 같이 분석하는 게 합리적일 듯싶다. 물론 아직은 가설이다.

결국 강성 페미니즘은 2000년대 후반 고용 시장에서 밀려 난 불우한 청년 여성들의 무차별한 분노의 한 형태인 것 같다.

이를 부채질한 것이 2012년 대선 이후 담론 지형이다.

2012년 대선에서 진보민주진영은 패배하면서 깊은 좌절에 휩싸인다. 여기서 온갖 신비주의가 자라났다. 역사와 음모, 팬덤들이 그런 사례이다. 강성 페미니즘이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사회적 환경 때문일 것이다.

‘문빠’의 핵심적 지지대상이 30대 초반의 여성인 것과도 상당한 관련을 갖는다. 한국은 현실보다는 팬덤과 환상, 신비주의와 이상주의에 너무 많이 물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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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배우자와 사별한 독거 노인을 생각할 수 있다. 내 어머니가 그랬다. 이들의 말년은 비극적인 자살이나 고독사로 얼룩져 있다. 독거 여성 노인들은 담론조차 남기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두 번째는 영세자영업이나 비정규직에 취업해 있는 중년 여성들을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을 뿌리로 한 담론이 비정규직일 수 있다. 나는 6년 전 서울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 금천구에 학원을 열면서 이들의 자녀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여기서 정말 할 말이 많다. 결론만 말한다면 한국의 비정규직 담론은 실제 현실과 인텔리들의 관념적 담론 사이의 괴리가 가장 큰 영역이다. 실제 현실과 담론의 소비자가 다른 것이다.

최근의 최저임금 국면에서도 유사하다.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청년이다. 정치인·세력에게 중요한 것은 표라는 형태로 실제 표출되는 정치적 의사 표시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경제적으로 열악한 중년 저학력 여성들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세 번째는 중년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에서 겪는 문제이다. 승진에서의 차별, 가정과 일을 병행할 수 없는 문제, 직장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성 희롱 문제, 가정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가부장적 문화들이 그것이다.

이런 페미니즘은 현실도 명확하고 대안도 명료하다. 세 번째 영역에 대해서는 그에 해당하는 집단과 인터뷰를 했으면 한다. 여기서도 성공적인 기억은 없다.

1990년대 중반 대학진학률이 50%를 넘어섰다. 2000년대 중반 여대생들은 이중의 고통에 직면했다. 하나는 청년 모두가 겪었던 실업이고 다른 하나는 결혼과 출산에 따른 고통이다. 이들 문제는 이미 결혼 파업이라는 형태로 한국 사회를 영원히 바꾸었다.

2018년 현재 고3이 59만 명인데 반해 중1은 41만 명이다. 5~6년 사이에 18만 명이 줄어든 것이다. 나는 이게 무슨 뜻일까? 고민하고 있다. 수학을 가르치는 내가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촛불 이전 비정상적인 사회가 있었고 촛불로 정상화된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은 2000년대 후반 극적으로 바뀌었고 박근혜와 문재인 정부를 오갔던 일련의 변화는 사회의 기저적 흐름이 극적으로 바뀐 상황에서 벌어진 정치적 사건이다.

사람들은 세상이 정치적 의사 표시와 행동으로 바뀐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사회의 영역에서 보다 본질적인 것은 기후 변화, 질병의 창궐, 인구구조의 변화 같은 것이다. 후자의 관점에서 보면 결정적이었던 것은 2000년대 중후반이다.

결국 2015년 이후 확산되기 시작한 강경 페미니즘은 사회에 제대로 착근하지 못한 여성들과 관련된 우울한 이야기다. 그것도 사회변화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확정된 국면에서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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